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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지주(幢竿支柱)
당간지주란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운 기둥을 말한다. 당간은 당을 달아두는 장대인데 대개 돌이나 쇠로 만들어졌다.
당이란 본래 사찰의 문전에 꽂는 기당(旗撞)의 일종으로 사찰에서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당간 꼭대기에 달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당과 당간은 통일신라시대부터 각 사찰에서 성대하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은 내구성이 없는 것이어서 현존하지 않고 당간과 그 지주만 남아 있다. 호암미술관에는 당간과 지주, 간대와 기단부의 금동 축소모형이 남아 있어 그 형태를 알 수 있다.
현존하는 당간의 예로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갑사 철당간(보물 제256호), 충북 청주시 남문로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제41호), 전남 나주시 성북동 석당간(보물 제505호)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 중에서 통일신라시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갑사의 철당간 뿐이며 나머지 3기는 모두 고려 시대의 것이다.
철당간의 규모는 약간씩의 차이는 있으나 건립 수법은 같은 것으로서 직경 40∼50㎝, 높이 60∼70㎝의 철통을 20여 개씩 연결하여 세웠다. 석조 당간도 몇 개의 가늘고 긴 석주를 연결하여 세운 것인데 석재의 결구 수법은 철제 당간과는 달리 상, 하 연접한 돌기둥의 양끝을 깎아내어 접착시켜 세웠다.
신라시대의 철제 당간은 갑사 당간의 예에서 당시 건조양식을 알 수 있으나 석조 당간은 남아 있는 것이 없어서 그 원형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 시대의 석조 당간으로 미루어 보아 같은 양식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철제, 석조 당간의 기본 형태는 지주를 60∼100㎝ 간격으로 양쪽에 세우고 그 안쪽에 상대하여 간을 설치하기 위한 간구나 간공을 마련하였는데 하부에는 간대와 기단부를 설치하였다.
현존하는 당간지주는 기단부의 구조가 거의 파손되고 교란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간구는 반드시 내측면 상단에 파여져 있으나 그 아래부분의 간공은 그 구멍 수가 일정치 않아 한군데만 있는 경우가 있고, 어떤 지주에는 두군데, 어떤 것은 관통된 경우도 있다. 이러한 기본형은 시대의 흐름에도 별 변화가 없으나 각 면에 장식된 문양과 지주를 다듬은 수법만이 시대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당간지주 세부 명칭>
당간(幢竿)
당(幢:법회 같은 행사가 있을 때 절에 다는 기)을 달아두는 장대. 사찰의 입구에 세우는 깃대의 일종으로, 찰간(刹竿)·장간(長竿)·정간(旌竿)·기간(旗竿)·치간(幟竿)·번간(幡竿)·범장(帆檣)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나무·돌·구리·쇠 등으로 만든다.
당간의 끝에는 보통 당을 달아두지만 현재 당이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당간을 지탱하는 지주(支柱)만이 남아 있다. 당간 또한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도괴되고 파손되어 그 유례가 많지 않다.
현존하는 당간의 유례는 갑사 철당간(甲寺鐵幢竿, 보물 제256호)을 비롯하여 용두사지 철당간(龍頭寺址鐵幢竿, 국보 제41호) 등 철제당간 2기와, 석제당간(石製幢竿)으로는 나주동문외석당간(羅州東門外石幢竿, 보물 제49호), 담양읍내리석당간(潭陽邑內里石幢竿, 보물 제505호)과 비지정 당간이 몇 기 있다. 위의 네 곳의 당간 중 갑사 철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3기는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3기의 당간 중 용두사지철당간은 철제로서 20개의 원통형 주철(鑄鐵)을 상하가 서로 물려 이어지게 쌓아올렸는데, 특히 밑에서 세 번째 원통 표면에 양주(陽鑄)된 393자의 용두사당간기(龍頭寺幢竿記)에 962년(광종 13)이라는 주조연대를 밝히고 있다. 이 당간기에 의하면 애초에는 30단의 주통이었으며 높이는 60자(181.8m)였음을 알 수 있다.
당간은 파사현정(破邪顯正 : 邪道를 파괴하여 正法을 드러냄.)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범어사사적 梵魚寺事蹟≫에 의하면 절(節)은 33범천(梵天)을 상징하여 33단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고려도경≫ 흥국사조(興國寺條)에는 개성 흥국사에는 10여장(丈), 즉 30여m 되는 동주당간(銅鑄幢竿)이 법당 뒤 마당에 세워져 있었는데, 당간 표면에는 황금칠을 하고 당간 정상에는 봉황의 머리장식을 하였으며 그곳에 비단으로 된 당을 달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978년(경종 3)에 세운 보원사법인국사보승탑비(普願寺法印國師寶乘塔碑)는 당간을 절 마당에 세웠으며 범패(梵? : 기)를 그 위에 달았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상과 같은 기록에 의하여 당간의 양식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특히, 간두(竿頭)에는 봉황두(鳳凰頭) 장식을 하였다고 하나 그 예는 없고,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에서 발견된 금동제 당간용두식(金銅製幢竿龍頭飾)을 비롯한 금동제당간이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어 그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현존하는 당간두식(幢竿頭飾)의 예는 나주동문외석당간과 담양읍내리석당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자는 팔각의 보개(寶蓋)와 보주(寶珠) 장식을 남기고 있으며, 후자는 금속제의 보륜(寶輪)이 이중으로 장식되고 풍경(風磬) 장식을 늘어뜨리고 있는데 현재 두 개가 남아 있다. 정상에는 삼지창(三枝槍)과 같은 철침(鐵針)이 솟아 있어 피뢰침의 인상을 주고 있다.
한편, 돌·구리·철제의 당간 외 목제당간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어 주목을 끈다. 담양읍내리석당간 옆에 세워져 있는 비문에 의하면 현존하는 석제당간은 1839년(헌종 5)에 중창한 것으로, 원래는 나무당간이었으나 큰 태풍으로 동강나 석제로 대치하였다고 한다.
보통 당간의 아랫부분에는 육중한 당간을 받치기 위하여 연화문을 조각한 받침돌을 놓거나 기단형식의 대(臺)로 받치고 있다. 또한, 당간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좌우 양쪽에 지주로써 당간을 지탱하여 주고 있다.
당간지주(幢竿支柱)
당(幢 : 불화를 그린 旗)을 걸었던 장대, 즉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우는 기둥. 돌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나 철제·금동제·목제인 경우도 있다.
기본형식은 두 기둥을 60∼100㎝의 간격으로 양쪽에 세우고 그 안쪽 면에 상대하여 간(杆)을 설치하기 위한 간구(杆溝)나 간공(杆孔)을 마련하고, 아래에는 간대(竿臺)나 기단부를 시설하였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당간지주는 기단부의 구조가 거의 파손되고 교란되어 있는 상태이다.
당간지주를 간구 또는 간공의 위치 및 형태·외형·장식 등에 의하여 분류하여보면 다음과 같이 몇 가지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간구·간공의 위치나 형태에 따라 구분하면 원형 또는 방형의 간공이 세 군데 관통되어 있는 것, 윗부분에만 간구가 있는 것, 윗부분에는 간구가 있고 그 아래로 2개의 관통된 간공이 있는 것, 윗부분에 간구가 있고 그 아래로 방형의 작은 간공이 1개 또는 2개 있는 것 등이 있다.
둘째, 외형에 따라 분류하면 一자형, 기둥의 바깥면 중간에 한 단의 굴곡을 주어 상·하부로 나눈 것, 기둥 바깥면의 두 곳에 굴곡을 주어 허리가 잘룩하게 보이도록 한 것, 그 밖의 특수한 형태 등으로 나누어진다.
셋째, 기둥에 새겨진 장식에 따라 구분하면 바깥면 모서리에 모죽임만 있는 것, 선문(線文) 또는 돌대(突帶:돋을띠무늬)로 장식한 것, 선문이나 돌대로 장식하고 그중 꼭대기의 사분원(四分圓)에 한 단의 굴곡을 둔 것, 그 밖의 특수한 모양을 가진 것 등이다. 이러한 당간지주의 형태는 시대가 흐름에도 큰 변화가 없고, 다만 각 면에 장식된 무늬와 기둥의 돌다듬기 수법만이 시대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정도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당간지주들은 모두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것이며, 그 이전에 조성된 예는 남아 있지 않다.
통일신라시대의 예로는 부석사 간지주(浮石寺幢竿支柱, 보물 제255호)와 숙수사지 당간지주(宿水寺址幢竿支柱, 보물 제59호)를 비롯하여, 기단부까지 완전하게 남아 있는 금산사 당간지주(金山寺幢竿支柱, 보물 제28호) 등으로, 각 부에서 세련되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827년(선덕왕 10)이라는 제작연대를 밝힌 명문이 새겨져 있는 중초사지 당간지주(中初寺址幢竿支柱, 보물 제4호)는 다른 당간지주의 편년을 고찰할 수 있는 기준자료가 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와 같이 안쪽 면을 제외한 각 면에 종선문(縱線文)을 조식(彫飾)하고 주두(柱頭)도 원호(圓弧)를 이루었으며, 간대와 기단 등 각 부분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무늬가 형식화 또는 약화되어 정교하지 못하고 돌다듬기도 고르지 않아 둔중한 느낌을 준다.
대표적인 예로는 만복사지 당간지주(萬福寺址幢竿支柱, 보물 제32호)·천흥사지 당간지주(天興寺址幢竿支柱, 보물 제99호)·춘천근화동 당간지주(春川槿花洞幢竿支柱, 보물 제76호)·홍천희망리 당간지주(洪川希望里幢竿支柱, 보물 제80호)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처럼 거대한 규모의 당간이나 지주가 조성되지는 않았다. 법주사의 당간과 같은 경우도 원래에 있었던 신라시대 당간지주에 당간만을 근년에 다시 만들어 세운 것이다. 조선시대는 대개 작고 낮으며 선문 등의 조식이 없는 지주에 목조의 당간을 세웠는데, 그나마 지금은 당시 중창한 여러 사찰에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부터 당을 세우기 위하여 사찰 앞에 설치되었던 건조물이면서, 한편으로는 사찰이라는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당간지주는 선사시대의 ‘솟대’와도 일맥상통하며, 일본의 신궁(神宮)이나 신사(神社) 앞에 있는 ‘도리이(鳥居)’와도 특히 관련성이 많은 건조물이라 할 수 있다.
<전국의 주요 당간 및 당간지주>
<철당간>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국보41호]
갑사 철당간(보물256호)
칠장사 철당간
법주사 철당간
금동당간용두(보물1410호)
<석당간>
나주 동점문밖 석당간(보물49호)
담양읍 석당간(보물505호)
통도사 석당간
부안 서외리 석당간
영광 단주리 당간지주
<당간지주>
안양 중초사지 당간지주(보물 4호)
김제 금산사 당간지주(보물28호)
남원 만복사지 당간지주(보물32호)
고령 지산동 용두사지 당간지주(보물54호)
영주 숙주사지 당간지주(보물59호)
경주 망덕사지 당간지주(보물69호)
춘천 근화동 용두사지 당간지주(보물76호)
홍천 희망리 당간지주(보물80호)
강릉 대창리 당간지주(보물82호)
강릉 문수리 당간지주(보물83호)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보물86호)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보물99호)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103호)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보물123호)
경주 삼랑사지 당간지주(보물127호)
공주 반죽동 당간지주(보물150호)
서울 장의사지 당간지주(보물235호)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보물236호)
대구 동화사 당간지주(보물254호)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보물255호)
아산읍 내포리 당간지주(보물537호)
홍성 동문동 당간지주(보물538호)
경주 남간사지 당간지주(보물909호)
경주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보물910호)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
고창 흥덕리 당간지주
공주 상신리 당간지주
괴산 외산리 당간지주
부산 범어사 당간지주
부여 무량사 당간지주
상주 복룡동 당간지주
서산 동문동 당간지주
성주 법수사 당간지주
안성 죽산리 당간지주
양주 회암사지 당간지주
영주 삼가동 당간지주
원주 법천사 당간지주
원주 봉산동 당간지주
울산 배잠사지 당간지주
해인사 당간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