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준비 할 때 어떠한 논제가 채택될 지 몰라 다 준비해 보았습니다.
1. 선비정신은 공공선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정신이 중시되는 반면, 요즘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강조되며 봉사 정신이 소홀시 되는 경향이 있다. 이때, 선비정신의 공공선과 희생의 가치가 현대 사회의 개인적 권리 및 자유와 상충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상호 보완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저는 상호 보완적이라고 생각합니다.전 선비 정신으로 인한 개개인의 단합력이 올라가 사회를 유지하는 기능적 측면에서 선비 정신의 희생 가치를 높이 평가 합지다. 그리고 사회를 유지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다시 사회에 나오게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누군가는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해 사회에서 자유로이 쉼을 누리며 무직으로 살거나 아이를 안 낳거나(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한다고 보았습니다. 단적인 예시입니다.) 아파서 쉬는 등 자유를 지킴니다. 선비정신을 통해 이런 사람들은 그들이 내는 세금으로 자유와 권리가 존속됩니다. 실업자는 사회인이 되거나 여성은 출산 혜택을 보고 아이를 낳는 등 자유와 권리의 소중함을 맛보고 살다 이제 사회에 희생하며 살아가는 선비 정신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과거나 지금의 노동 혁명, 인권 운동, 시위 등은 희생을 중시한 이들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추구함을 통해 사회를 더 노동자에게 이롭게 바꾸었습니다. 이런 것들만 봐도 이 두 가치는 상호 보완적 성격을 가집니다.
2. (토론 주제)선비정신은 개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풍류 의식은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중시한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중 어떤 것이 더 우선시되어야 하는가? 예를 들어, 팬데믹 상황 속 정부가 공공의 안전을 위해 백신 접종과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할 때, 공공의 안전을 위해 사회적 책임을 우선시해야 하는가, 백신 접종을 거부하며 개인의 건강을 보호하는 등의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해야 하는가?
-이 주제에 답하기 전, 저는 질문을 다시 해석햏보고 싶었습니다. '우선되다'는' 가치있게 다루어져야 한다'를 뜻한다 해석했습니다. 즉, 현대 사회에서 가치있게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말이죠. 그렇게 해석해서 도달한 결론이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게 더 가치있고, 우선시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요즘 사회는 규율을 어기는 순간, 희생을 멈추는 순간 혼란스러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과거에 금 모으기 운동, 3.1운동 같이 개인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인식하고 이행하는 것(사회적 책임의 정의)을 해야 나라가 존속되는 건 역사적 사실입니다. 좁게 보았을 때, 우리가 누리는 자유로운 삶도 누군가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먹고, 대중교통 이용하고, 깨끗한 강의실을 쓸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 덕입니다. 그 직업인들의 시간, 재능, 이동의 자유 등을 희생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셈이죠.
선비 정신은 이익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희생하고, 외유내강하며, 강건합니다. 이들이 있기에 사회가 돌아가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세우는 사회는 혼란할 것입니다.
물론 개인의 원활한 생활 영위의 목적으로 많은 이들이 자신의 할 일을 선비 정신을 발휘해서 하면 국가가 잘 돌아갈 수 있습니다. 정치인의 이윤추구 목적(표심사기)으로 이용될 수 있지만 그것은 예외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존속과 자유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선 책임을 먼저 다해야 합니다. 책임을 다해야 자유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우리 문화 전통에서 풍류는 그저 놀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과의 균형까지 생각하였다. 놀이를 통해 즐거움을 얻으며 자연스럽게 학문적 탐구로 이어지는 놀이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본 것이다. 이를 토대로 하였을 때, 현대의 교육에서도 놀이의 긍정적 측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놀이와 학습의 경계를 허물어 풍류적 성격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동아 새국어사전 5판에서 현대의 놀이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노는 일, 유희'를 뜻한다고 하네요. 저는 놀이의 2가지 형태를 다루고 최종 의견을 다루겠습니다. 놀이의 형태에 따라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에선 스만트폰같이 중독성 있는 매체로도 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누구에겐 유희일 수 있지만 중독의 반열에 오르게 하기에 이것이 탐구로 이어지긴 어렵습니다. 물론 문맥을 보아하니 여기서 파악하려는 문제는 이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가능성 있는 이야기 입니다. 이 때의 놀이는 필요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놀이라는 기준의 상대성, 방대성) 그러나 이 놀이라는 게 중독성을 띄지 않고 숨바꼭질, 놀이터에서 하는 소꿉놀이같은 형태는 탐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시중의 많은 책들도(조사를 안 함..)이런 놀이의 여러 긍정적 효과 들이밀며 놀이를 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를 띤 놀이는 아이들에게 호기심과 탐구역량, 관찰력 증진 등의 효과를 줍니다.
아이작 뉴턴이 사과를 보고 중력의 법칙을 떠올렸고, 제가 어릴 때 꽃을 보며 쓴 보고서 덕에 관찰력이 늘었습니다. 자연 속 놀이는 이처럼 많은 사고의 확장을 줍니다.
첫댓글 "아인슈타인이 사과를 보고 중력의 법칙을 떠올렸고" → "아이작 뉴턴이 사과를 보고 중력의 법칙을 떠올렸고"로 수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ㅎㅎ변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