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27일, 화요일, Puerto La Cruz/Sata Fe Beach 버스 (오늘의 경비 US $15: 아침 4,000, 점심, 저녁 10,000, 버스 25,000, 환율 US $1 = 2,600 bolivar) 지난 7월 9일 Roraima 산 트레킹을 마친 다음에 베네수엘라를 떠나서 가이아나 3국 여행을 하고 브라질을 거쳐서 다시 베네수엘라에 들어왔다. 어제 밤 8시 브라질 Manaus를 떠난 버스는 아침 6시 반쯤 브라질 국경도시 Boa Vista에 도착해서 운전기사를 바꾸고 오전 7시에 다시 출발했다. Boa Vista는 2주 전 베네수엘라에서 가이아나로 갈 때 지나간 곳이라 낮이 익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 버스 터미널에 딱 하나뿐인 음식점에 가서 커피 물을 얻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한 시간쯤 달려서 조그만 길가 음식점에서 15분 동안 쉬는 동안 커피 물을 얻었다. 돈을 좀 내려하니 뜨거운 물 주는데 무슨 돈이냐고 하면서 안 받는다. 고맙다. 며칠 전 브라질에서 커피 물을 얻는데 2 real을 냈던 생각이 났다. 음식점에서 커피 물을 얻는데 “케로 아구아 켄치 - 뜨거운 물 좀 주세요.” 했더니 잘 못 알아들었는지 찬물을 준다. 내 옆에 있던 친구가 차를 만들어 마실 물이라고 설명을 해주니 그때야 알아듣고 5분 정도 걸려서 물을 끓여다 준다. 스페인어로는 “키에로 아구아 칼리엔테 - 뜨거운 물 좀 주세요.” 하거나 “키에로 아구아 이르비엔테 - 끓는 물 좀 주세요.” 하면 된다. 그런데 “칼리엔테” 하면 커피 타 마시기에는 덜 뜨거운 그저 따끈한 물을 주는 경우가 많아서 “이르비엔테”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후로는 항상 충분히 뜨거운 물을 얻을 수 있었다. “케로 아구아 켄치”는 포르투갈어인데 뜨거운 물을 달라는 것인지 끓는 물을 달라는 것인지 확실히 모르겠다. 이제 국경만 넘으면 포르투갈어를 다시 쓸 기회는 없을 것이니 이제 걱정할 것 없다. 버스 안에서 커피를 만들어서 비스킷과 함께 아침으로 든 다음에 버스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양치질과 면도를 하고 나니 깨끗하게 느껴졌다. 버스가 베네수엘라 국경을 향해서 신나게 달린다. 길이 좋은 모양이다. 안개가 자욱이 낀 가운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국경을 넘은 다음에는 해가 나오면 좋겠다. 국경에 도착해서 출입국 수속을 간단히 마쳤다. 2주 전 이 국경을 반대 방향으로 지날 때보다 더 간단했다. 남미에서 출입국 수속을 할 때 내 여권을 보고 대부분 경우에는 내 국적을 미국이 아니고 한국으로 생각한다. 여권에 큰 글씨로 "United States of America" 라고 쓰여 있는데 왠지 그것은 못 보고 내 동양인 모습과 여권에 있는 “Place of Birth: Korea - 출생지 한국"만 보고 내 국적을 한국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하는데 그래서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국경에서 환전상들이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브라질 돈 19 real 남은 것을 베네수엘라 돈 bolivar로 바꿨다. 1주일 전 Macapa ATM에서 500 real을 찾은 것 중에 단 19 real이 남았으니 아주 정확하게 찾았던 것이다. 미화를 좀 바꾸려고 환율을 알아보니 2,800대 1이란다. 2주 전에는 2,600대 1이었는데 그 동안에 또 오른 모양이다. 괜찮은 환율로 생각하고 바꾸려고 했는데 환전상이 다시 오더니 2,600대 1이란다. 금방 2,800대 1대 1에서 2600대 1로 내린 것이다. 수상해서 나중에 바꾸겠다고 하고 안 바꾸었다. 미국 젊은이 3, 4명이 나와 같은 버스에 탔는데 베네수엘라에서 돈을 바꾸는 제일 좋은 방법은 중국 음식점에서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남미에서 베네수엘라만이 유일하게 은행 환율과 시중 환율의 차이가 많이 나서 여행자들은 아무도 은행에서 바꾸지 않는다. 중국 음식점 사람들은 본국에 있는 가족에게 정기적으로 송금하기 때문에 항상 미화가 필요해서 좋은 환율로 바꿔준다고 한다. 그럴 듯한 얘기인데 미국 젊은이들이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알고 있는지 참 신기하기도 하다. 아마 배낭 여행자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퍼진 것인 모양이다. 베네수엘라의 첫 번째 도시 Santa Elena에 도착하여 환전상이 보여서 환율을 물어보았더니 2,300대 1이란다. 환전상끼리도 환율의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나는 것이다. 버스가 우리를 Santa Elena 버스 터미널에 남겨놓고 어디론가 없어진다. 한참 만에 버스가 다시 나타나서 Santa Elena를 떠났는데 책을 읽다가 한참 후에 창밖을 내다보니 3주 전에 2일 밤을 잤던 San Francisco de Yuruni를 지나가고 있었다. 오른 쪽으로는 멀리 Gran Sabana의 이름 모를 tepuy 산들이 보인다. 내가 올랐던 Roraima 산과 그 옆에 있는 Kekunai Tepuy 산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쉽게도 놓쳤다. Tepuy 산은 영어로 “table-top mountain”이고 한국어론 “식탁 모양의 산”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다. 지금 미국 전 대통령 “아버지” Bush의 자서전을 읽고 있다. 그의 경력은 참 화려하다. 그는 미국 동부 Massachusetts 주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역시 미국 중부 Ohio 주의 부유한 집안 출신인데 Yale 대학을 졸업하고 동부에 자리를 잡아서 은행업으로 자수성가했다. 그리고 55세 때 정계에 입문해서 Connecticut 주 상원의원을 12년간 지냈고 한때 대통령 선거 후보 명단에도 올랐었다. Bush도 아버지를 본받아서 자수성가의 길을 걸었다. 아버지의 은행사업을 물려받지 않고 별 연고가 없는 텍사스로 가서 석유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자수성가한 후에 정계에 입문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해군에 들어가서 항공모함 전폭기 조종사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제대 후에는 Yale 대학에 들어가서 야구팀 주장을 했다. 현 대통령 “아들” Bush도 그의 아버지와 비슷한 길을 걸어서 3대가 모두 자수성가한 후에 정계에 입문하는 전통을 지켰다. Bush 자서전에서 가장 감명 깊은 대목은 Bush가 1942년 6월 미국의 명문 고등학교인 Philips Academy of Andover 졸업식 축사를 한 당시 미 국방장관이 “자네들은 미국의 최고 엘리트이니 입대하지 말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국가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졸업식이 끝난 후 Bush 아버지가 Bush에게 “저 친구의 말을 절대 믿으면 안 돼.”라고 했고 Bush는 “알았습니다.”라고 한 다음 며칠 후에 해군에 자원입대를 했다. 그때 그의 나이 18세였고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지 7개월쯤 되는 때였다. 당시에 대학생은 징집에서 면제되는 특권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전쟁 중에 Bush 부자와 같은 행동을 할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좀 씁쓸했다. Santa Elena를 떠난 지 4시간 동안에 세 번째로 검문을 받았다. 군인들이 버스에 올라와서 신분증 조사를 했다. 무슨 목적일까? 외국인들 여권은 무엇을 보는지 몇 페이지를 들추어보고는 돌려준다. 지금 밤 10시다. 버스는 달리고 있고 버스 안은 깜깜하고 승객들은 다들 자는지 조용하다. 버스여행은 피곤하다. 좌석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좌석이 뒤로 젖혀지기는 하는데 좌석이 내 체격에 맞지 않는지 불편하기만 하다. 몸이 계속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어제는 옆자리가 비어서 나가고 들어가기가 편했는데 오늘은 옆자리에 남산만한 흑인이 가로막고 앉아있어서 불편하기 짝이 없다. 얼굴에 보자기 같은 것을 씌우고 꿈쩍도 안 하고 잔다. Amazon 강 배 여행처럼 편한 여행이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Puerto Ordaz까지 표를 끊었는데 Puerto Ordaz에서 내리지 않고 이 버스의 종점인 Puerto La Cruz까지 갔다. 원래 계획은 Puerto Ordaz에 내려서 하루 밤 자고 Puerto Ayacucho-Merida-Caracas 길을 가려했는데 그렇게 하면 너무 피곤할 것 같아서 Puerto La Cruz에 내려서 그 근처에 있는 Santa Fe 해변에서 2, 3일 묵다가 Caracas로 가서 남미여행을 끝낼 생각이다. Puerto Ordaz에서 Puerto La Cruz 갈 사람들은 모두 내려서 버스를 갈아탄다. 나도 내려서 Puerto La Cruz 버스에 짐을 옮기고 버스에 오르니 빈 좌석이 안 보인다. 간신히 빈 좌석을 하나를 발견하고 잠깐 앉아있는데 누가 와서 자기 자리란다. 할 수 없이 제일 뒷줄로 가서 앉아있는데 또 누가 와서 자기 자리란다. 버스에서 내려서 버스회사 직원을 찾아서 정식으로 버스표를 다시 사려했더니 지금 있는 버스표의 목적지 난에 Puerto La Cruz라고 바꾸어 쓰고 자리를 하나 찾아준다. 그러나 역시 주인 있는 자리여서 쫓겨났다. 결국 15분 후에 떠나는 다른 버스를 타고 갔다. 새벽 4시 반경에 Puerto La Cruz에 도착하니 전 버스에 탔던 미국 젊은이들이 아침 5시에 떠나는 Santa Fe 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여행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