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23일, 목요일, La Paz, Hotel Torino (오늘의 경비 US $25: 칠레: La Paz 버스표 14,000, 택시 1,000; 볼리비아: 숙박료 40, 저녁 32, 택시 8, 환율 US $1 = 칠레 600 peso, 볼리비아 8 boliviano) 칠레의 다음 도시 Iquique로 가기 위해서 아침 일직 버스 터미널에 나왔다. 3일 동안 날씨 좋은 Arica에서 푹 쉬어서 몸 상태가 좋아졌다. Arica는 칠레 최북단의 도시로 원래 페루의 Puno에서 볼리비아의 La Paz로 갈 계획이었는데 볼리비아에 정변이 일어나서 국경이 폐쇄되어 대신 Arica로 왔다. Arica에는 별로 할 것이 없는 곳이지만 고된 여행을 하다가 잠깐 쉬고 가기 딱 좋은 곳이다. 버스 터미널에서 Iquique행 버스표를 사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문득 Arica에서 3일 쉬는 동안 볼리비아 소식을 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소문을 해보니 지난 3일 동안에 정세가 호전되어서 이제는 볼리비아에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서도 볼리비아 수도 La Paz에 가는 버스가 있고 아침 9시 반 버스가 곧 떠난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서 버스표를 바꾸고 (25% 손해보고) La Paz 행 9시 반 버스에 올랐다. La Paz 도착은 오후 5시경이니 호텔에 해지기 전에 들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나 바닷가에서 또 4,000m 고지로 올라간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더구나 이번에는 0m에서 4,000m까지 7시간 만에 올라가니 더욱 그렇다. 일단 가보는 수밖에 없다. 아침 9시 반에 버스가 출발해서 잠시 태평양 해안을 북쪽으로 달린 후에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서 Andes 산맥을 향해서 계곡을 끝없이 오른다. 계곡 가운데에는 푸른 농촌이 자리를 잡고 있고 계곡 양쪽은 경사가 급한 거대한 모래 산이다. 비가 오면 꼭 허물어져 내려올 것 같은데 그렇지 아닌 모양이다. 푸른 하늘, 하얀 모래 산, 녹색의 농촌 색깔들이 잘 어울린다. 그렇게 두어 시간 달리니 고도 4,500m의 황량한 고원 지대가 나오고 일본의 후지산 비슷하게 생긴 눈 덮인 화산 Volcan Sajama가 (6,542m) 앞을 가로막고 그 밑으로는 제법 큰 호수가 둘러싸고 있다. 볼리비아 국경에 도착하니 출국, 입국 수속이 짐 검사도 없이 뚝딱이다. 한가한 국경이라 별로 문젯거리가 없는 곳인 모양이다. 볼리비아 비자는 30일 밖에 안 준다. 더 필요하면 나중에 연장하란다. 국경을 넘어서 La Paz로 가는 동안에 버스 안에서 점심을 준다. 흰쌀밥, 군 감자, 군 고기, 야채 한 가지의 간단한 도시락인데 먹을 만했다. 몇 시간 더 달려서 La Paz 근처에 왔다. 고도가 약 4,000m인데 황량한 고원 풍경이었다. 나무는 하나도 안 보이는데 그래도 물은 어디서 나오는지 여기저기 밭이 보인다. 아직 철이 일러서 그런지 밭에는 아무 것도 자라는 게 안 보인다. 가는 길에는 그 동안의 정세를 말해주듯이 도로를 바리케이드로 막아놓았던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La Paz는 4,000m 고원지대에서 400m 정도 계곡으로 내려가서 있었다. 고도가 약 3,600m 정도이고 세계에서 수도로서는 제일 고도가 높은 곳이란다. 그래도 계곡에 위치해서 400m 위에 있는 고원지대에 비해서 바람도 덜 불고 추위도 덜 하단다. 인구가 약 200만이니 볼리비아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이 이곳에 사는 셈이다. 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돈을 조끔 바꾸려고 $20 지폐 셋을 냈더니 둘은 좀 낡아서 낮은 환율로나 바꿔줄 수 있단다. 미국 같으면 아무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는 돈인데 이곳에서는 문제가 된다. 택시를 타고 정해 놓은 호텔로 갔는데 호텔이 바로 정부청사 (국회, 대통령 관저, 경찰서) 옆에 있어서 지난주에 호텔 근처에서 총격전이 있었다고 택시기사가 알려준다. 정말 경찰서 건물 벽은 총알 자국으로 가득하고 유리창은 다 깨져 있었다. 지난주에 데모대원 80여 명이 죽고 대통령은 미국으로 망명하는 걸로 정변이 끝났단다. 그러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닐 것이다. 데모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거라면 데모 많이 하는 남미, 중미, 멕시코는 천국이어야 하는데 그 반대이니 말이다. La Paz는 영어로 "The Peace" 인데 별로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호텔이 마음에 든다. 위치도 좋고 (배낭 여행객에게는 시내 중심 위치가 최고다) 방도 널찍하고 발코니가 길 쪽으로 나 있어서 방이 밝고 거리 구경도 할 수 있고 거기다가 싸서 좋다 (40 boliviano, 약 6천원). 방 앞길은 조그만 길이라 별로 시끄럽지 않고 길 건너는 성당 벽이라 프라이버시도 좋다. 성당 벽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있고 구멍마다 비둘기들이 살고 있다. 호텔 아래층에는 아담한 음식점이 있고 그 옆에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 단점은 방안에 전기 플러그가 없어서 전기 기기를 (전기 포트, 배터리 충전기 등) 쓸 수가 없는 점이다. 가끔 싸구려 호텔들은 그렇다. 건물이 오래돼서 그럴 수도 있고 전기료가 비싸서 일부러 없애 버려서 그럴 수도 있다. 꼭 전기를 써야할 때는 사무실에 가서 부탁해서 써야하니 불편하다. 길에서 데모하는 소리가 나서 발코니로 가서 내다보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 수십 명이 데모를 하고 있었고 그들을 제지하려는 경찰들과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촬영을 하는 TV 카메라도 보인다. 아직도 데모 할 것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시민들 표정은 언제 문제가 있었냐 하는 것 같았다. 당장 사는 것이 급하니 데모 같은 것은 금방 잊어버리나 보다. 저녁식사를 하러 밤에 나가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걷기조차 힘들다. 어쩌면 동대문 시장 길이나 명동 길을 걷는 것 같았다. 중국 음식점을 찾아서 식사를 했다. 한국의 울면 같은 것을 먹었는데 싸고 (10 boliviano, 약 1,500원) 맛있었다. 이렇게 볼리비아 여행 첫 날을 보냈다. 여행지도 La Paz로 타고 간 버스, 좀 오래된 버스지만 벤츠 버스라 좌석은 편안하고 점심도 주었다 볼리비아 가는 길, 모래 산 가운데로 난 칠레 계곡, Andes 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농사를 짓는다 화산 Volcan Sajama (6,542m) 화산 밑 호수 총탄 자국으로 가득 한 La Paz 경찰청 건물 벽, 정변은 데모대원 80여 명이 죽고 대통령은 미국으로 망명하는 것으로 끝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