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에세이
거기, 모성(母性)의 내안(內岸)
강 희근
사량도 내안(內岸)은 지극히 평화스러웠다. 윗섬과 아랫섬 사이 십리 정도의 거리가 내안인데 윗섬의 면소재지인 진촌이 유달리 그러했다. 진촌의 건너편 작은 마을들도 오손도손 평화로와 보였다.
내가 L시인을 앞세워 그의 고향 사량도를 두 번째 찾은 때는 4월말이었다. 배에서 차를 몰아 진촌 부두를 올라서면서 만나는 것이 평화로움이었다. 돌멍게 냄새가 달겨 드는 일이나 개불을 담아 놓은 허드레 그릇 언저리에 아직 닦아지지 않은 채 고기 비늘끼리 한떼로 밀리어 있는 얼룩을 예사로 보아 넘길라 치면 확실히 진촌은 평화로움이었다.
평화로움은 모성과 같은 것일까? 아무리 많은 바람이 해원을 휘몰아 쳐도 내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천혜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파도와 싸우며 땀으로 목숨을 비비던 어부들이 돌아오면 파도를 잊게 하고 따뜻한 양지의 젖꼭지를 그들의 입에다 물려 준다는 점에서 내안은 모성이다.
배 타고 오는 중에 L시인은 윗섬의 상징처럼 서 있는 옥녀봉에 담겨져 있는 전설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살고 있는 옥녀는 효심이 지극했다. 그런데 어느날 본능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가 딸에게 여자를 요구했다. 옥녀는 아버지가 제삿상에 오르는 삶은 계란 톱니빨 문양 같은 뒷산의 제일 험한 벼랑을 타고 오르면 꼭대기에 앉았다가 그 요구를 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벼랑을 타고 올라 여자 앞에 서고 말았다. 여자는 아버지를 안고 벼랑으로 몸을 날려 목숨을 끊었다.
가정에 어머니가 없는 모성 부재의 비극을 전설은 오늘까지 말하고 있다. 사량도의 놀라움은 전설의 모성 부재를 내안(內岸)이 대신 채워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뜻함, 자애로움, 어루만져 줌 등의 덕목이 무엇으로부터도 훼손될 수 없는 절대의 모성. 사량도는 그 위태롭고 슬픈 전설의 봉우리를 피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앉은 낮은 자리에서 든든한 모성의 바느질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가.
나는 프랑스 여행 중 모나코로 가는 길목에 있었던 향수 공장 근처의 바닷가 벼랑이 떠올려 졌다. 깎아지른 벼랑으로 바다를 향해 있는 봉우리 끄트머리로 집들이 석화처럼 붙어 마을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 위태롭게 여겨졌었다. 사라센 제국에서 오는 해적들의 분탕질을 피해 산꼭대기로 생활 근거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던 마을 사람들의 불편이 오죽했을까.
거기 비해 이 사량도의 내안 마을은 안도와 평화의 해방구이다. 여기서는 수평선은 없고 집채만한 파도가 이어지는 연옥도 없고 산 뒤에 산이 채찍으로 치는 겹겹 산악도 없다.
시인의 고향 옥암리는 진촌에서 시오리를 비포장 농로로 구불거리다가 치솟다가 아지랍게 내리막으로 가면 서쪽 벼랑 수십길 아래 해안 기슭에 놓여 있었다.
가파른 등어리 아래 반대 궁형으로 들어와 있는 바다를 발목에다 두고 일곱 집이 있었던 시인의 마을. 이제는 한 집도 없지만 창선도와 삼천포가 눈썹 넓이로 들어와 안기고 있었다. 그리운 뭍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옥암리 사람들이 다 떠나버린 것일까?
그래도 옥암리는 내안(內岸)처럼 따뜻하고 자애로와 보였다. 뭍이든 다도해든 앞에 있는 사물을 예외 없이 받아 들이고 있었으니.
내가 다녀온 사량도는 오늘도 해가 창선도 쪽으로 다시 질 것이다. 그러면 사량도의 모성은 어둠으로 들어가 어둠이 활동하는 크기와 넓이로 세상을 데워 놓고 다시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아침엔 우리도 모성으로 거듭 깨어나게 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