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야라인을 타고 밤새 달려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도착한단다. 방이 씨사이드라 방안에서 바다가 잘 보인다. 방은 조금 좁지만 전망이 트여 견딜만 했다. 뷔페에서 5시에서 7시 반 까지가 우리 팀 식사 시간이라 조금 이른 저녁을 먹게 되었다. 대형 식당에 다양한 음식이 준비 되어 있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이용하는데도 조금도 불편함이 없다. 오히려 각국 사람들의 식성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대채로 연어요리를 즐겨하였는데 원래 연어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각종 샐러드와 야채, 비프, 닭요리 등으로 푸짐하게 식사를 하였다. 음료수도 마음껏 마실 수 있어 커피, 주스 등을 마시며 담소를 즐겼다. 7시쯤 일어나 방으로 가기에는 너무 빠른 것 같아 갑판으로 올라 갔다. 상 갑판이 12층이라 사방으로 전망이 아주 좋았다. 바람이 많이 불어 시원하다 못해 추위를 느낄 정도 였다. 갑판 주위로 매달려 있는 구명정을 보니 갑자기 세월호 생각이 났다. 먼저 간 꽃다운 아이들과 생명을 잃은 많은 희생자 들의 명복을 빌면서 다시는 그런 끔직 한 일이 일어 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판 위에서 보는 바다는 푸르다 못해 검게 보였다. 섬하나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는 약간 심심하다. 그래서 크루즈에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손님들의 심심함을 달래 주나 보다.
11층 갑판에 나와 찬바람을 피해 앉아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에 고사장 내외와 윤실 샘, 미스 박도 올라와 함께했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인지 4시가 못되어 잠이 깨었다.
잠깐 크루즈가 섬에 닿았다. 많은 집들이 있고 까페도 보이고 이른 시간인데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8월 1일 오전 9시 45분 실야라인은 우리를 스톡홀름 항구에 데려 놓았다. 가방을 챙겨 뭍으로 내려오니 10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오늘은 새로운 현지가이드 최여사와 만났다. 이제 우리의 스톡홀름여행이 시작 되었다. 제일 먼저 간 곳은 바사 박물관 이었다. 다리를 건너 도착한 이 곳은 스웨덴 왕실의 호화 전함 바사호가 전시된 곳이다.
구스타프 2세 때 (1625년~1628년)3년에 걸쳐 완성된 바사호는 1628년 8월 10일 첫 항해에서 이 곳에 침몰하는 운명을 맞았다. 이 전함이 침몰한 이유는 설계보다 더 많은 수의 포를 장전하였고 배를 화려하게 꾸미기 위한 금속 장식의 무게가 배 아래보다 위쪽이 과다하게 무거워 상아하중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에 출항하자 마자 때 맞추어 불어 온 돌풍에 의해 침몰하고 만 것이란다. 1956년 해양 고고학자 '안데스 프란젠'에 의해 발견 되었고 침몰 후 333년 만인 1961년에 인양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1962년 부터 계속 보호액을 뿌리는 직업을 하면서 1990년 현재의 박물관이 개관되게 되었다고 한다.
배의 총길이는 69m, 최대 폭 약 11.7m, 높이 52.2m 배수량 1210톤, 적재 대포 64문, 탑승 가능 인원 450명(군인은 약 300명)이었다. 배의 인양으로 17세기 당시의 목조품과 배 안의 조각상, 선원들의 유골과 유품들이 함께 발견 됨으로 인하여 17세기의 사회모습을 살피는데 좋은 자료가 되었다. 박물관은 총 7층으로 배가 만들어지는 모습 등 바사호와 관련된 많은 자료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특히 배의 선 수와 선미 등에 새겨진 수많은 조각품들은 그 당시 왕실의 화려함을 보여 주는 듯 했다.
전함의 측면에 포진 된 대포의 포문
이 것을 보면서 갑자기 칠천량 해전에서 침몰된 거북선을 지금이라도 인양하여 거북선에 얽힌 미스테리가 풀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사호의 모형도
'머구리'라고 하는 바닷 속에 잠수여 활동하는 잠수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 지도 앞에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외국 가이드
바사호 후미에 새겨진 화려한 왕실 문장과 조각상들
전시관에 비치되어 있는 지구의를 돌리니 우리 나라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