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3일부터 1월8일까지 중국의 중전 여강 곤명 등 운남성 일원을 둘러보고 오는 5박6일 일정으로 중국을 다녀왔다. 작년에 다녀온 백두산과 북경여행에 이어 세번째 중국여행이다. 1월 3일 부산을 출발하여 상해에 도착하였다. 상해에서 버스로 홍구공원으로 이동하였다. 홍구공원으로 가는 도중에 강건너에 우뚝 선 동방명주를 보았고 홍구공원에 도착했다. 이 곳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립투사 윤봉길의사의 유적이 있는 곳이다. 또 이 곳은 윤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곳이기도 하다. 기념관안에서 만난 윤의사는 젊고 잘 생긴 청년의 모습이다. 아까운 나이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로운 사람이다. 먼 이국 땅에서 우리의 독립투사를 만나니 감회가 깊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아픈 기억이 떠오르며 억울함과 분노가 치민다. 홍구공원에는 많은 중국인들이 산책도 하며 춤도추고 체조를 하며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이런 공원 안에 윤의사를 기리는 매정과 기념관이 있어 다행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로 갔다. 이 곳은 일제강점기 때 독립투사들이 임시정부를 만들어 우리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1926년부터 윤봉길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직후까지 청사로 사용하던 곳이다. 그 이후에 임시정부는 점점 더 중국의 내륙으로 옮겨갔다. 광복을 맞기전에는 중경에 임시정부를 설치하였다.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외부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1월4일 상해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우리는 상그리라라고 불리는 중전으로 떠났다. 중잔 공항에 내리니 약간 어지럼증을 느꼈다. 이 곳이 고산지대라 그렇단다. 해발 3300m의 산간분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미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지평선'에서 고요한 평원지대를 묘사하여 샹그리라라고 불리게 되었단다. 중전은 운남성과 사천성, 서장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곳에서 처음으로 고산증을 경험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겨울이라 황량한 시들은 초원지대로 되어 있지만 봄이되면 초원에 푸른 싹이 돋아나 드넓은 초원지대를 이루기 때문에 이곳에 사는 장족들은 대부분 가축을 키운다고 한다. 그리고 우기가되는 여름이 되면 이 곳은 초원의 낮은 곳은 호수로 변한단다. 때묻지 않고 청정한 이런 곳을 상그리라라고 부른단다. 이지럼운 증세를 견디며 납벽해의 초지에 흩어져 있는 소떼들을 보고 한가로움과 평화로움을 느낀다. 버스는 우리를 라마교사원인 송찬림사로 데리고 갔다. 송찬림사는 작은 포탈라궁이라고도 한다. 우리의 불교 사원과는 절집의 모습부터가 좀 다르다. 지붕위에 얹어진 수레바퀴모양과 양 옆에 양두마리가 있는데 이것이 티벳라마교의 표식이다. 이곳의 승려들을 라마승이라고 하고 수행하는 방법도 좀 달랐다. 송찬림사 앞에는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있었고 다음로 갈 벽탑해 등정을 위해 산소통을 구입하라는 가이드의 권유에 따라 각자 산소통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산소통을 너무 많이 마신 사람들은 호텔에 내려와 심한 두통으로 고생해야 했다. 괴롭지만 그래도 몸이 스스로 적응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다. 벽탑해는 해발 약 3700m의 높이에 있는 호수다. 호수 주변으로 초원지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발판을 놓아 사람이 다니게 하였다. 물빛은 하늘과 가까운 영향인지 하늘빛을 닮아 있다. 맑고 차가운 물이 가득한 호수를 보며 그래도 고산증을 조금은 잊어 보았다. 내려 올때는 하는 수 없이 말을 타고 내려 왔다. 말타기가 겁이나서 올라갈 때는 걸어서 갔다. 숨이 차오르지만 천천히 그리고 간간히 쉬어 가면서 벽탑해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말을 타고 내려 왔다. 다시 우리는 장족들의 마을로 가서 그들의 삶을 체험했다. 오늘은 무척이나 힘들었고 몸은 괴로웠지만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다. 오늘 이밤을 지나면 우리는 아래로 내려가기 때문에 고산증에서 벗어 날 수 있겠지 기대하며 눈을 감아 본다. 그러나 머리 속은 윙윙거리고 허공에 붕 떠다니는 느낌에 쉽게 잠들것 같지 않다.
상해 홍구공원 매정 앞에서
노신공원(魯迅公園,루쉰꽁위엔 )이라고도 불리는 이 공원 안에는 노신의 묘와 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기념관은 노신의 고향인 소흥성의 건축 양식을 따라 지어졌으며,
기념관 안에는 작가의 필체가 담긴 원고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무덤에는 모택동이 직접 쓴 '魯迅先生之墓(노신선생의 묘)'라는 글자가 있다.
한국인에게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의거 현장으로 기억되는 곳으로,
최근에 윤의사의 항거를 기념하는 기념탑이 세워졌다.
매정(梅亭 : 메이팅)이란 이름의 정자가 세워져 있지만,
주위에 '윤봉길 의거현장'이라고 새겨진 비석만이 홀로 서 있어서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관광지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하기도 한다.
윤봉길의사의 시(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기 전 결의를 다짐하는 글이다)
윤봉길의사와 함께
상하이 홍커우(홍구) 공원에서 개최된 전승축하기념식에 물통과 도시락에 장착한 폭탄을 던져
상하이 파견군 시리카와 대장,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을 즉사시켰다.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제9사단장 우에다, 총영사 무라이 등에게는 중상을 입혔다.
거사 직후 체포, 12월 18일 가나자와 형무소로 옮겨져 19일 총살되었다.
농촌계몽을 이끌던 윤봉길은 1930년 3월 6일 ‘장부출가 생불환’이라는 편지를 남긴 채
독립운동의 길을 떠났다.
1932년 한인애국단의 이봉창이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투척했으나
실패했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 임시정부의 김구를 찾아가
민족의 광복을 위해 신명을 바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1946년 6월 30일 해방 후 첫 국민장이 엄수되었고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윤봉길의사가 사용한 도시락과 물통폭탄
상해임시정부가 있는 골목길의 풍경
상해는 날씨가 습하기 때문에 이렇게 빨래들을 나무장대에 걸어서 말린다.
상해임시정부 앞에서
대한민국상해임시정부청사
오늘날 우리가 임시정부청사로 알고 찾아가는 곳은 마당로(馬當路)에 있는 3층 벽돌집으로,
1926년부터 윤봉길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직후까지 청사로 사용하던 곳이다.
매우 낡고 도로 옆에 위치해 있어서 언뜻 보면 쉽게 지나쳐버릴 수도 있을만큼 초라하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다.
1층에서 짧게 비디오 시청을 하고 나면 2층과 3층의 전시관을 관람하게 된다.
전시관 내에는 당시 쓰였던 가구, 서적,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자료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 또한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건물 내에 작은 상점을 운영하여 청사 유지비를 마련하고 있는데,
우표, 악세사리, 장식품 등 기념품들을 팔고 있다. 전시실에서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상해에서 중전으로.... 중전공항에 도착하여
여기서 부터 우리는 심한 고산증세에 시달려야했다.
지금은 환하게 웃고 있지만 이 후의 사진을 보시면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가실거예요. ㅋ ㅋ ㅋ
중전공항에서 우리는 납벽해라는 중전의 상그릴라에 도착하여 기념사진 한장!
중전은 상그리라라고 한다.
샹그릴라라는 단어자체가 신비롭고 아름다운 산골짜기를 뜻하는
티벳어이며 직역하자면 푸른 달빛의 골짜기라는 뜻이다.
샹그릴라는 모두가 꿈꾸는 이상향의 세계처럼 평화롭고 아름답다.
이곳은 티벳족의 거주지역인만큼 소수민족인 티벳족이 50%이상 거주하고 있어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티벳 문화까지 한번에 만날 수 있는 관광지다.
연평균기온이 15도로 여행하기 좋을 뿐더러 항상 꽃과 풀들이 푸르게피어난다.
납벽해(납파해)
납파해는 계절 때는 호수인데 건기 때에는 목장으로 변한단다.
거친 벌판에 밀이나 보리를 건조시키는 건조대가 보인다.
초원의 반 정도가 호수라고 한다. 주민의 절반 정도가 가축을 키운단다.
잘 놀고 있던 소들이 갑자기 싸움을 시작했다
뒤에 있는 잘 치장하고 있는 말들은 손님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중전의 라마교 사원인 송찬림사 앞 들어가는 입구
송찬림사의 옆쪽 담장모습
송찬림사 올라가는 계단에서
서서히 고산증을 느끼는 우리 일행들..... 얼굴표정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ㅎ ㅎ ㅎ
라마교인 송찬림사는 티벳의 작은 포탈라궁이라고 불린다.
중국 서남쪽 운남(云南,Yunnan)성 디칭티베트자치주중전(迪慶,Diqing藏族自治州中甸)현에
위치한 송찬림사(松贊林寺)는 운남성에서 규모가
가장 큰 티베트 불교 사원으로 현재 스님 900여 명이 있다.
1674년5세 달라이는 청(淸)나라 강희(康熙)제의 허가를 받은 후에 직접 부지를 선정했고
사원의 신축을 지도했으며 "갈단•송찬림"(噶丹•松贊林)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북쪽에 자리잡고 남쪽을 향한 이 사원은 5층 티베트 양식의 건물이다.
역사상 이 절에 티베트 지역에서 유명한 고승이 많이 있었다.
해마다 음력 11월 29일이면 현지의 티베트 민중들은
신비한 분위기를 가진 송찬림사에서 '도신'(跳神) (탈춤) 위주인 격동절(格冬節) 행사를 개최한다.
출처:인터넷에서
라마교의 문양이 새겨진 휘장
라마승들의 모습
의식에 쓰이는 악기들
매일 이 악기로 연습하는 것도 수행의 한 방법이라고 한다
춤추는 라마승
벽탑해
해발 3539m에 위치하고 있는 산중의 호수이다. 물이 아주 맑고 푸른 빛이 난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 지대에 위치한 벽탑해. 이곳은 현지인들이 더 사랑하는 곳이다. 벽탑해라는 이름은 바다같이 넓은 호수 한 가운데 마치 탑같이 푸른 칩엽수들이 우뚝 서있는 것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벽탑해는 관광객의 접근이 힘들지만 원난성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방문할 정도로 풍경이 빼어나다.
이 곳 까지 우리는 어떤이는 말을 타고 나와 몇몇은 걸어서 왔다.
한 발짝씩 내디딜때마다 어지럼즐이 난다.
그래서 우리는 천천히 걸어갈 수 밖에 없었다.
현지 가이드가 힘들면 산소통을 사서 마시라고 했다. 아래 사진에 산소통보이죠.
그러나 이산소통을 열심히 마신 사람들은 나중에 호텔에서 심한 두통으로 고생을 했다.
몸이 스스로 적응 할 시간을 빼앗앗기 때문이다.......
저 작은 연두색통이 산소통이다. 100위엔 우리돈으로 약 10000원에 해당한다
웃어도 웃고있는 것이 아님. ㅋㅋㅋ
에구구...... 일어서는 것도 힘들어 ( 우리 일행 중 가장 어린친구임 ㅋㅋㅋㅋ)
아이구 왜이리 어지럽노.....( 이 분도 호텔에서 고통을 겪었다.)
벽탑해에서 내려와 찾아 간 장족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