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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法廷
북부지원의 김 동찬 판사의 피살소식은 사법계는 물론 사회전체의 대단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이곳 성동 구치소도 예외가 아니다.아니 오히려 그 관심의 정도는 다른 어느 곳 보다도
높았는데 대체로 그 관심들은 김 판사의 죽음에 대한 동정론보다 그의 양형스타일에 대한 불만과 불평들이
그의 죽음에 대하여 동정하기보다는 잘 되었다는 분위기속에 일부 그의 관할권외의 이를테면 동부지원이나, 성남지원에서 재판이 계류 중인 수용자들이 현직판사를 살해한 영웅(?)적인 쾌거(?)에 대하여 범행 방법 이나 살해동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설왕설래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곧 잡힐 것이다, 라는 구릅과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구릅으로
양분되어 나름대로 그럴듯한 논리로 갑론을박하며 내기를 하고 있었다. “ 곧 잡힌다. 에 소시지 열 개다.” “아냐 훈제 닭으로 하자” 이렇게 그 소식은 무료한 감방 안에 한동안 화제가 되었고 신문을 들척이며 경찰수사에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9동 하**방에 터줏대감 윤기철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아침운동을 끝내고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형님3단독에 죽음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시지요?” 보리알 라민호가 익살스럽게 묻는다. 낄곳 안 낄곳을 구분하지 못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천방지축이라 보리알이라는 별명을 얻은 라 민호였다.
윤 기철이 라 민호의 질문에 관심 없다는 듯 “난 관심 없어 그렇게 극성스레 악착을 떨더니 제명 단축했잖아?"
잘 죽은 거야 자업자득인지 몰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실형을 때렸는데” 그는 좌중에 동의를 구하듯 방안을 둘러보며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방은 2.2坪의 작은방으로 제각기의 사연을 간직한 미결수들이 재판이 끝날 때 까지 다섯 명 혹은 여섯 명이 최소한의 공간에서 인간의 기본권인 자유가 박탈된 채 생활하고 있는 이른바 미결감옥이다.
펄펄 날것 같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자유를 가압류 당하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미결수들이 있는 곳이다.
선입견을 버리고 본다면 이들은 죄인이 아니다. 따라서 모두 억울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비록 관에서 지급하는 수의를 걸치고 관식(官食)을 하고는 있지만 누구도 이 들을 죄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구치소 미결 감방 작은2.2평의 공간에서 나름대로 질서를 만들어 가며 살고 있는 이 방의 터줏대감이라는 소위 이 세계에서 말하는 절대권위의 의 빵 장 윤기철의 말에 누구도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어떤 경우라도 살인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원한(?) 에 찬 수용자들에겐 고소한 일이라고 생각 하는 그들이었다.
"똥찬 놈이 제대로 걸린 거지 씨벌놈이 무조건 때려 버리니 잘 죽었지" 여기 사람들은 죽은 김 판사를 똥찬 놈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죽은 자에 대한 예의를 몰라서가 아니다. 그의 재판스타일에 질린 사람들의 원망이 그의 이름을 빗대어 부르는 별명이다.
경찰은 이 사건을 전과자와 관련지어 원한문제로 보고 그에게 원한을 가졌을 과거의 조직들을 망라한 광범위한 수사를 벌리고 있었다.
"좆도 씨발 또 방이 넘쳐나겠군"
이제 이 구치소도 조폭들을 비롯한 각종 전과자들이 넘쳐 날것을 직감하는 그들이다. 현직 판사의 죽음보다 그로인하여 무더기로 구속되어 구치소가 넘쳐나면 그들의 잠자리가 불편해 진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 기철은 철창 밖으로 보이는 교회의 뾰족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또한 악명 높은 3단독 김 판사에 의하여 법정 구속되었다.
당연히 김 판사에게 좋은 감정일 수가 없었다. 이곳 수용자들의 반 정도는 모두 자신이 무죄이거나 자신의 형량이 죄에 비하여
과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게 현행법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불평이 높을 수밖에 없다.
“씨발 어떤 놈 들이 만들었는지 無錢有罪 有錢無罪 참 명언이여, 3단독은 무조건 때려 조지고, 법정구속하면 어마뜨거라 하고
변호사 몇 백 아니 몇 천주고 사고 오 판사는 집행유예 때리면 지들 끼리 꿩 먹고 알 챙겨 노나먹는 겨 ”
전주출신의 키다리 아저씨 김재철이 한마디 거든다. 이처럼 맑고 투명해야 할 사법계도 이런 불신 속에서 그 신뢰감과
엄정함을 잃어가고 있는 게 요즘 세태인 것을 어쩌랴. 이 같은 불신의 벽은 점점 두꺼워 갔으며 적어도 이들에게는
그것이 정설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가끔 거물급정치인들이 수감되어 오기도 하지만 판, 검사가 비리에 연루되어 이곳에 오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들에게는 괘씸죄가 적용되지 않는 한 영원히 무소불위의 무서운 판결의 망치를 소유한 막강한 신적인
존재로 믿는 이곳 수용자들인 것이다. 그런 작은 신이기도 한 현직 판사의 죽음은 세상의 동요와는 별개로 화제가 되고 있었다.
“내가 나가면 손 좀 봐주려고 했는데 어떤 친군지 참 대단해”
항상 문 앞에서 묵묵히 책만 읽고 있어서 책벌레란 별명이 붙은 상혁이 읽던 책을 덮으며 말 했다.
얼마 전 현직 대학교수가 법원판결에 불만을 품고 현직판사의 출근길에 석궁으로 저격 한 사건이 있기도 했던 만큼 법조계의 반응은 심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성하고 좀 더 신중하게 법집행을 하겠다는 목소리보다 빨리 범인을 잡아 중형을 선고해서 법의
존엄함을 보여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흥분하고 있었다.
미결감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 번 사건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재판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가 더 큰 관심일 수밖에 없었다.
당장 윤기철만 하더라도 오래 동안 지지부진하던 재판이 드디어 이달 15일에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나저나 선배님은 이번엔 출소하시겠지요?
군의 후배이며 현재 모 유기농 회사의 사장이기도 한 양 수병이 물었다. 기철은 군대식으로 그를 양수병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했다.
“확신을 어떻게 하겠어? 저 자식들 마음 내키는 대로지.”
“그래도 변호사가 장담을 한다니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공소장도 변경되고,”
“나도 기대는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법원이 초비상이니…….”
“선배님 먼저 출소하시면 밖에서 한번 뵙고 싶은데…….의논드릴 일도 있고”
“그래 한번 만나야겠지? 이게 어디 보통 인연인가? 허구 많은 곳 그 많은 인간들 중에서 우리가 이 좁은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아마도 너희들과 깊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 일게야”
기철은 창밖을 응시한 채 독백 하듯이 중얼 거렸다.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 못 되었는지 모르는 채 기철이 이곳에 수감 된지도
벌써 5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길고긴 법정 다툼에 끝이 보이고 있었다. 이젠 더 이상의 연기 없이 최종 결심만 남겨놓고 있으면서 출소를 거의 확신하고 있는 터였다. 출소만 하면, 이 억울한 옥살이에 대하여 반듯이 밝혀내리라. 그리고 기철은 심호흡을 한번하고 벌렁 누워 버렸다.
남산 중턱
왜정 때 친일파들이 모여 살았다는 후암동 언덕을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힘겹게 오르고 있다. 베이지색 반팔 점퍼에 감색 바지를 입었고 옆구리에 낡은 가죽가방을 끼고 있었다. 한참을 곧바로 걷던 노인은 하늘을 찌를 듯 높은 담장을 바라보며 길 건너 가로수 옆에 주저앉아 높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송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주변의 집들과 어울리지 않는 노인을 흘깃 거리며 지나쳐 간다. 노인은 낡은 가방에서 오래된 서류 같은 것을 소중하게 꺼내 들여다보면서
이따금 주위를 세밀하게 살피고 있었다. 노인이 들여다보는 것은 오래된 지도였는데 노인은 그 지도를 가지고 집을 찾고 있는 듯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던 노인은 버스 승강장에서 내리는 사람을 보더니 반색을 하며 손을 번쩍 들어 자신의 위치를 확인
시켜준다.
“여기요! 윤 선생 여기” 노인은 어색한 억양으로 방금 버스에서 내리는 50대 중반의 사내를 불렀다. 버스에서 내린 사내는 지난주에 출감한 윤 기철 이었다. 기철은 천천히 걸어서 노인에게로 다가가면서 손목시계를 쳐다본다.
“오래만입니다. 영감님 아직 점심전이시죠?”
“아직 밥 때가 덜 돼서?”
“좀 이르기는 하지만 뭐 좀 먹지요”
“우선 여기 앉아 봐요?” 노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먼저 쪼그리고 앉는다.” 기철은 노인의 옆에 앉으며 노인의 손에 들려 있는 낡은 지도를 들여다본다. 노인이 약도를 손으로 짚으며 높은 담장이 쳐진 집을 가리키며 말한다.
“지난 몇 달간 이 지역을 이 잡듯이 돌아 다녔지만 저 집이 틀림없는 것 같소”
기철은 노인의 손에 들려 있는 지도와 주위의 지형을 살피면서 말했다.
“이 약도로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이것이 60년이 넘었다고 해도 저 노송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을 겁니다.”
“여하튼 한번 돌아보지요.”
두 사람은 높은 담장을 끼고 걷기 시작 했다. 한참을 걸어 다시 제자리로 돌아 왔을 때는 거의 한 시간여가 소요 되었다.
“이건 아주 대 저택이군요?” 기철이 말했다.
“내 기억과 이 지도를 근거로 계산해 보았는데 저 노송에서 어른 걸음으로 10보 에서 12보 쯤 이면 저 정문에서 우측으로 20m
정도의 담장 밑일 것 같소.” 노인이 조심스레 그러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 했다.
“그러니까 영감님은 중국에서 저 집을 찾기 위해 나왔다는 말입니까?”
“맞소, 그리고 마침내 저 집을 찾았지요. 아니 저 노송을 찾아냈지요.”
노인은 자랑스럽다는 듯 가슴을 펴고 기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저 집의 담을 넘었고, 그래서 주거침입으로 구치소엘 들어 왔고요?”
“그 다음은 윤 선생이 아시는 바 대로입니다.”
“자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어디 가서 요기를 하면서 얘기하십시다.”
노인은 중국 연길외곽의 작은 마을 왕청 현에서 친지를 찾겠다고 고국에온 조선족으로 이미 이곳에 들어온 지 6개월이 되었다고 했다. 영등포 신림동일대 조선족 밀집지역에서 작은 쪽방을 얻어 생활 하면서 이 저택을 찾아 헤맸다는 이야기를 구치소에서 들은바 있었다. 기철이 이 노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집이 있다는 왕청 현 이라는 지명 때문이었다. 왕청은 수년전에 기철이 그의 조카들을 찾아 갔던 곳으로 지금도 그 곳엔 연로한 집안 형수와 조카들이 살고 있었고, 또 몇몇은 그의 초청으로 국내에 들어와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기철은 이 노인을 남 다르게 생각하기도 했다. 구치소 9동하 6방에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수용돼 있었는데 그 때 무슨 집을 찾다가 확인하기 위해 그 집엘 들어갔고 그것이 주거침입이 되어 잡혀왔다고 했다.
성씨가 왕이라고 해서 기철은 그를 왕 영감이라고 불렀다. 연길시 외곽의 왕청 에서 왔다는 왕 씨 노인은 3개월여를 구치소에
있는 동안 찾아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기철이 이 노인이 있던 6방에 여러 가지 먹을 것들을 챙겨서
보내 주었고 왕 노인은 그런 기철에게 늘 고마워했다.
“윤 선생 내가 나가면 윤 선생에게 꼭 신세를 갚을 거요. 우리 밖에서 만납시다.”
왕 노인은 그렇게 말하곤 하더니 기철이 출소하기 2개월 전에 출소했다. 그런 노인이 기철이 출소하기 일주일 전 쯤 편지를
보내왔다. 아주 중요하게 의논할 일이 있으니 출소한 후 일주일 쯤 지나서 오늘 만난 곳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기철은 출소한 후 신림동에 사는 왕청 에서 온 조카 현호를 만나 왕 노인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뜻밖에 그는 현호 아버지 그러니까 기철의 6촌
형님인 병용의 친구라는 것이었다. 이미 작고한 형님의 친구라는 이 의문의 왕 노인이 그토록 찾으려 했던 집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하는 진한 호기심이 생겼다. 또 얼굴도 본일 없는 6촌 형님 병용에 관해서 알고도 싶었다.
그들은 작은 감자탕 집 구석진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었다. 점심시간이 일러서인지 주로 술을 파는 집이여서 인지 가게는 한산
했다. 기철은 감자탕 작은 것을 주문하고,
“영감님 혹시 윤 병용을 아십니까?” 기철이 물었다.
“아니 윤 선생이 병용일 어떻게 압니까? 기철은 문득 왕 노인의 발음이 경상도 사투리와 강원도 그리고 함경도 지방의 억양과
비슷하다고 생각 했다.
“하하 그 분이 우리 6촌 형님이 되십니다.”
“이런 우연 이 있을 수 있나? 세상에 이런 인연이 있다니......”
왕 노인은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며 신기해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병용인 내 동무 라요. 어려서부터 같이 컸지요. 왕청 엔 아직 그 가족이 있는데”
노인은 기철을 쳐다보면서 말 했다.
“알고 있습니다. 수년전에 내가 다녀왔습니다. 여기 아이들도 몇 나와 있고요”
“저런! 저런!” 왕 노인은 감탄을 섞어가며 이 기묘한 인연을 신기해했다.
“언제 시간 나면 그 애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나저나 출소해서 어디 있었습니까?”
“나야 뭐 먼저 있던 곳에 있었지요.”
“돈도 없을 것 아닙니까?”
“아직은 좀 남았지만 겨울엔 좀 걱정이긴 한데…….”
“그럼 되었습니다. 내가 계실 곳을 마련 해 드릴 테니”
“염치없지만 신세를 또 져야 하겠군요.”
“난 병용 형님 얼굴도 모릅니다. 해방 전에 고향에 다녀갔다고 하는데 난 너무 어렸지만 누님이 늘 병용형님 이야기를 하더군요. 형님 친구 분이면 형님이나 다름없으니 신세라고 생각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자탕이 나옴으로서 둘의 대화는 잠시 끊어졌다.
“술 한 잔 하시겠습니까? 아주머니 소주도 한 병 주세요.”
기철이 왕 노인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 소주를 주문했다. 기철은 왕 노인의 잔에 술을 따라주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우선 한잔 하세요” 기철과 왕 노인은 술잔을 들어 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마신다.
“술은 죽은 병용이가 잘 했는데……. 난 조금 밖에 못해요.”
감자탕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비우면서 그들의 대화는 한 동안계속 되었다.
“그런데 저 집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겁니까?”
“윤 선생은 보물을 믿습니까? "노인이 반문했다.
“보물? 글쎄요. 요즘 세상에 그런 뜬 구름 같은 일이 있겠습니까?”
“역시 믿을 수 없지요? 아닙니다. 이상할 것 없지요.”
기철은 말없이 왕 노인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쳐다보았다. 각진 얼굴에 고집스러워 보이는 한 일자 눈썹 온갖 풍상을 겪었다는
듯 굵게패인 주름과 약간 쳐진 볼은 젊었을 때 힘깨나 썼을 것 같은 다부진 인상이었다. 현호의 말대로라면 허튼 소릴 할 사람은 아니었다. 한국전쟁 때 중공군으로 병용 형님과 함께 참전했었다는 것도 현호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이 거짓말 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나도 내가 목격 했지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 기철은 대답대신 왕 노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실은 내가 한국전쟁 때 어린나이에 중공군 병사로 참전하게 된 것도 이 집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을 시작한 왕 노인의 말은 기철로서도 믿어야 할 지 웃고 넘겨야 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집안 형님이 살고 있는 곳에서 살았다는 사실과 어려운 여건에서 구치소 생활을 하던 한 조선족 노인의 딱 한 사정을 알고 좀 도와주었고, 그 인연으로 오늘 여기서 만난 이 노인의 믿지 못할 이야기는 황당하기도 했고 한편의 동화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기철은 자신도 모르게 왕 노인의 소설 같은 이야기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무리 인구가 많은 나라이고 땅덩이가
크다고 해도 작은 동네에서 비슷한 나이 또래인 것 같아 물어본 6촌 형의 친구였다는 우연과 그 병용형의 막내아들 현호가 서울에 있는 동안에 만난 왕 노인과의 만남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절묘했다. 실은 기철은 그 동안 현호를 통해 왕 노인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알아보았고 자신의 아버지와 절친했다는 얘기도 이미 들어 알고 있었음으로 우선 왕 노인의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1945년 해방이 되기 2 년 전 8월의 어느 날 밤 왕철은 열 살 난 아들과 함께 주인의 부름을 받고, 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안채로 들어갔다. 안채에는 만주 전선에서 돌아왔다는 일본헌병복장의 장교와 주인 내외가 무슨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 그들이 들어가자 이야기를 중단했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헌데 저 녀석은 왜?”
“혼자 있기 무섭다고 해서…….” 왕철은 뒷머리를 긁으며 비굴할 정도로 연신 허리를 굽실거렸다.
“사내 녀석이 무섭긴 쯧쯧 그건 그렇고 자네”
“예 분부하십시오.” “인사드리게 이쪽은 내 처남이야 당분간 여기 머물며 집을 중축하는 작업을 하게 될 거야
빈틈없이 도와주도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요. 전 왕철이라고 불으시면 되는 구 먼요” 왕철은 주인의 말대로 헌병복장의 사내에게 깊숙하게 허리를 꺾어
인사했다. 헌병복장의 사내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왕철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알겠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인부 열 명만 구해오도록 하게”
왕철 에게 명령했다.
“무슨 일을 하시려는지 무슨 인부를......”
“응 저 정원에 소나무 옆쪽에 방공호를 만들어야 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른 분부가 없으시면,”
“가봐 그리고 착오 없도록 하고” “예 그럼 편히 쉬십시오.”
왕철은 주인 앞을 물러나와 그가 거처하는 대문 옆 청지기 방으로 물러났다.” 무슨 일인지 오래 동안 청지기로 있던 사람이 갑자기 낙향하면서 아내를 잃고 어린 아들과 근근이 살아가던 왕철이 이집의 청지기 겸 머슴으로 입주한지도 일 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집 안주인은 총독부의 고위 인사의 외동딸로 그 고위층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이집에 들어오면서 주인내외와의 조건은 집안의 문제를 함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먼저 있던 청지기 내외도 그것을 지키지
않아 쫓겨났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했었다. 왕철은 이집에 입주하면서 먹을 것 걱정 없이 살고는 있었으나 아들 용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벌써 열 살이나 되었으나 이곳에 오기 전 까지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녔기에
학교엘 보내지 못했다. 주인집에서는 내년 쯤 되면 학교에 보내 주겠다고 해서이 집의 온갖 일을 혼자 도맡아 해오고 있는 터였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를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다음 날부터 이 대 저택 정원에서는 주인의 처남이라는
젊은이의 지휘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분재처럼 멋진 작은 소나무는 화초 가꾸기를 좋아 한다는 이집 안주인이 거금을 들여 일본에서 들여왔다고 했는데 하필이면 공사 현장이 소나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어서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소나무에서 오른 족으로는 두꺼비 형상의 큰 바위가 자리하고 있었고 어린 왕용은 그 바위위에서 인부들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한창 뛰어놀 나이지만 이 거대한 저택의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가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쩌다 심부름 가는
아버지를 따라 밖에 나가도 함께 놀아줄 친구는 없었다. 자연히 왕용의 말벗은 아버지뿐이었다.
모처럼 인부들이 십여 명 들어와서 걸쭉한 농담을 하면서 떠들썩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어이 꼬마야 그 나무 밑에 물주전자 좀 가져 오너라”
“네” 왕용은 그렇게 아저씨들의 심부름도 하고, 해주 댁이 새참으로 내오는 일본식 우동을 맛있게 먹곤 했다.
공사는 제법 규모가 있어서 여러 날 계속 되었다. 땅을 깊이 파서 시멘트로 두껍게 벽을 치고 큰 방을 두 개씩이나 만들었다.
방 크기에 비해서 문이 너무 적다고 생각할 만큼 문을 작게 만들었다. 지하실이기에 창문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방이 두 개였지만 연결되어 있어서 밖으로 출입할 문은 하나 뿐이었다. 그것도 어린 왕용이 드나들 정도로 좁고 작았다.
“자 오늘은 이만 하고 내일 또 합시다.” 감독을 하던 젊은이가 말했다. 음침하게 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는 밝고 상냥했다. 인부들은 이 일본인 젊은이가 임금을 후하게 줌으로 무척 고마워했으며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서슬 퍼런 관동군 헌병출신이라는 것을 왕철에게 귀 띰으로 알고 있었음으로 공손하게 대했다.
“내일은 그 동안 일한 임금을 모두 줄 테니 그렇게 알고 3일 후엔 함흥에서 들여오는 물건을 넣고, 그 길로 다시 함흥에 가서 물건을 실어 와야 하니 집에는 며칠 집을 비운다고 미리 말하도록 하시오.”
인부들은 그렇게 말하며 그가 전에 없이 상냥하게 따라주는 막걸리를 한 사발씩 받아 마시고 돌아갔다.
“왕 서방도 함흥엘 가야 하니 그렇게 알도록 하게” 사내는 왕철에게 말하고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
“아버지도 가는 거야?” 왕용이 물었다. “응 주인어른이 다녀오라시면 갔다 와야겠지.”
“난?” “너?” “응” “넌 해주 댁 아줌씨랑 있으면 되잖아.”
그것이 아버지와의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을 몰랐다고 했다. 그 날 이후 왕용의 아버지 왕철을 비롯한 인부들은 행방이 묘연해 졌다.
이 집을 찾아와 사람을 찾는 인부들의 가족을 달래기 위하여 집주인은 적잖은 돈을 내놓았다. 해주 댁 아줌씨와 함께 있던 왕용은 얼마간의 돈을 받아들고 일단 해주 댁의 고향이 있는 해주로 내려갔다.
“너희 아버진 아마 만주로 갔을 거야. 주인댁에선 폭격에 모두 죽었다지만 믿을 수가 없어…….”
그렇게 아버지를 잃고 해주 댁과 서로 의지하며 살아오던 왕용은 해주 댁이 이웃마을로 재가해 가자 만주로 갈 결심을 했다.
아버지와 함께 나갔던 인부 중에 한 사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와서 말하기를 만주에 있는 무서운 군부대에서 죽음 직전에 탈출
했다는 그는 정신이 온전치 못해 보였다.
헛소리처럼 중얼 거리는 그의 말을 유추해 보면 만주에 있는 악명 높은 731부대에 마루타로 잡혀있었다는 것을 짐작해 낼 수 있었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던 때였다. 그리고 그가 폭격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서 탈출해 올 때 까지 왕철이 살아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열 두 살의 왕용은 나이답지 않게 체격이 건장했다. 무작정 아버지를 찾아 떠나겠다는 왕용을 해주 댁은 말릴 수 가 없었다.
“용아! 잘 들어라. 네 아버지를 찾을지는 모르겠다만 이건 네 아버지가 남긴 것이다.”
고 하면서 누런 종이에 조잡하게 그려진 지도를 내어밀었다.
“이건?” 왕용이 물었다. 해주 댁은 행주치마를 들어 눈물을 찍어내면서 말했다.
“우리가 경성에 살 던 그 집이 있는 동네의 지도인 것 같다. 그리고 너 인부들이 일 하던 그 방공호 알겠제?” 하고 물었다.
“야” “거기 뭐가 있는 것 같다. 만주에 가서 아버질 찾지 못하거든 경성에 그 집으로 찾아가 봐라. 혹 네 아버지 소식을 알지도
모르니…….”
말없이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는 왕용에게 주먹 밥 몇 개를 쥐어 주며 해주 댁은 훌쩍 거리며 울고 있었다.
“야! 아줌 씨 나 가요.” 왕용은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얼른 그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해서 왕용은 천하의 외톨이가 되어 만주로 들어가게 되었고 60여년이 지나 백발이 성성한 몸이 되어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던 그 집 앞에 돌아 올수 있었다.
“그럼 영감님은 그 방공호에 무슨 보물이 있을 거라고 생각 하는 겁니까?”
이야기를 마친 왕 노인에게 기철이 물었다.
“아버지가 떠나던 전날 밤 커다란 군용트럭 두 대가 상자를 잔뜩 싣고 들어와 방공호로 만든 방안에 넣었습니다. 먼발치서 어린
내가 봐도 꽤 무거워 보였고, 새벽에 아버지가 떠나면서 방공호에 엄청난 물건이 있다고 했지요.”
왕 노인이 진지하게 말 하면서 아버지를 회상하는 듯 먼 하늘을 쳐다본다.
“그럼 그 물건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군요.”
“이것이다, 고 말 할 수는 없어도 뭔가? 중요한 것임은 틀림없을 겁니다.”
“지금 까지 그 물건이 있으리라고 확신 할 수 있을까요?” 기철이 다시 물었다.
“내 생각이 맞다 면 그럴 겁니다.”
“근거는요?”
다시 묻는 기철에게 왕 노인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앞에 소주잔을 들어 목안으로 붇듯이 털어 넣고 말했다.
그는 6.25가 반발하고 중공군이 참전했던 52년 열 아홉 살의 나이로 중공군에 입대하여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고 했다.
만주에서 만난 유일한 친구이자 두 살 위인 병용(기철의 6촌 형)과 함께였다. 그가 한국전에 참전한 이유는 오직 서울로 가기위한 수단이었고 병용을 대동한 것도 이런 내용을 알고 있는 병용을 설득해서였다. 그러나 서울에 들어가기 전에 병용의 심각한 다리
부상으로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 수십 년을 단 하루도 그 집을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중 국교가 정상화되고
왕래할 수 있게 되었으나 병용은 이미 타계해버렸다. 가까스로 여비를 마련해서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것이 6개월 전 공사장을 전전하며 옛 기억을 더듬어 남산 주위를 이 잡듯 뒤져 약도와 근사한 이곳을 찾아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서울의 모습에서 60여년의 세월은 글자그대로 상전벽해였다. 다행이 이곳 남산 중턱 의 이 집은 앞으로 도로가 거미줄처럼 생겨낫지만 그 때 그 집은 비록 신축되어 모양은 다르지만 어렴풋한 기억 저편에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는 그 문제의 소나무가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소나무의 위치가 정원 한 복판에서 담 쪽으로 밀려나 있었지만 틀림없는 그 소나무였다. 그는 확인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마침내 그 대 저택의 담을 넘었다. 있었다. 소나무 밑에 그가 어릴 적 놀던 그 두꺼비 형상의 큰 바위가 있었다.
그는 방공호를 만들던 곳에 약초를 채집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쇠꼬챙이를 찔러보았다. 수십 차례반복해보고 위치를 확인 했다. 무엇인가 원래의 모습대로 있다는 생각을 했다. 쇠꼬챙이를 담 옆에 숨겨두고 나오다가 순찰 중이던 경찰관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야간 주거침입죄로 3개월을 구치소에 있었고 그 곳에서 기철을 만나게 되었다.
“정리 좀 해 봅시다. 결론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저 저택의 높은 담장 안 소나무 아래 중요한 무엇이 있다. 그것은 수십 년이 지났으나 그 집 주인조차도 모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영감님 생각으로는 그것이 보물일 것이다. 뭐? 이런 것 입니까?”
“그렇지요, 맞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왕 노인은 확신에 찬 음성으로 고개를 주억 거리며 말했다.
“다시 한 번 가 봅시다. 그리고 방법을 연구 해봐야 할 것 같군요.”
그들은 작은 식당을 나와 저택의 정문 쪽으로 다가 갔다. 굳게 닫친 정문은 높고 우람했으며 양옆 기둥 어디에도 문패는 없었다.
기철은 높은 담 넘어 소나무 가지를 쳐다보았다. 이따금 골목길에서 나오는 고급승용차들이 있었지만 걸어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두 사람은 산책하듯 높은 담장을 끼고 왼 쪽으로 돌아 저택의 뒤쪽으로 나갔다. 담장이 좀 낮아졌다. 아니 낮아진 것이 아니라
지대가 높아 졌음으로 담이 낮게 보였다.
“여기로 내가 들어갔었지요.” 왕 노인이 가리키는 곳에 희미하게 흙이 묻어 있었다. 과연 저택은 저택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쌓아 올린 대리석 담이 저택을 경호하듯 둘러쳐 있었고, 담 안은 들여다 볼 수 없었으나 담 너머로 솟아오른 각종 나무들이
팔 벌려 숲을 이루고 있었다. 겨우 옥상만 보이는 집의 규모 또한 만만찮게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음........저곳에 막대한 보물이 있다고 해도 주인 몰래 잠입하여 작업을 한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도 그 문제가 고민스럽습니다. 윤 선생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생각해 둔 방법도 없다는 것으로 들리는 군요”
“지난번 맨몸으로 들어 갈 때도 쉽지는 않았는데…….”
“허허 그 때는 어떻게 들어갔었나요?”
“젊었을 때 힘께나썼지요. 군대에서 특수훈련도 받았구요.”
“하하 그래서 영감님이 나이 보다 근육이 단단했군요.”
“노동으로 평생을 살았는데 이 정도야 보통 이지요.”
왕 노인은 팔을 꺾어 알통을 만드는 시늉을 하며 천진하게 웃었다.
“우선 저 집이 누구의 소유인지 알아보고 방법을 찾아봅시다.”
그 날의 답사는 그렇게 끝났다.
“양 사장 전에 말하던 별장 말인데......”
“네 선배님!” “당장 사람이 들어가도 될까?”
“물론입니다. 아무 때라도 사용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그 곳을 좀 빌려야겠네.”
“그렇게 하시지요.” “고맙네. 언제 시간좀 내줘야 겠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기철은 바쁘게 움직였다. 우선 후배 양 사장에게 별장을 빌려 왕 노인의 거처를 마련해 주고, 지난주에 출감했다는 보리알 라 민호를 불렀다. 희미한 조명으로 지하 찻집은 한참이 지나서야 사물을 구별 할 수 있었다. 라 민호는 벌써 나와 뚱뚱한 여주인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여깁니다. 형님” 기철을 발견한 그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비록 지하였지만 넓은 공간을 차지한 찻집은 그들 을 제외하곤 손님이 없었다.
“왜? 이렇게 썰렁해” 기철이 말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예 그래서 찻집 때려치우고 한 건 해 볼까하고 마담을 꼬시는 중입니다.”
“너 아직 정신 못 차렸어? 그걸 또 하게 ” 눈을 부라리는 기철을 바라보며
“아유 형님 이러지 마십시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그리고 요즘 또 새게 나왔거든요.”
“안 돼, 그래도, 다른 것을 찾아봐야지.”
“그런데 형님 뭐 좋은 거 있습니까?” 기철은 대답대신 다시 물었다.
“너 문 석천이 알지?” “알지요.”
“너 석천이 좀 데려와라.”
“석천 형은 왜요?” 민호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되물었다.
“어 시킬 일 이 좀 있어 그리고 표범이 언제 나오는지 알고 있니?”
“석천 형이 알고 있을 걸요”
“그래 내일 수원에 가서 석천일 곧바로 데리고 와”
“옛 썰” 민호는 익살맞게 경례를 부치면서 시원스레 대답했다.
기철은 별장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왕 노인에게 전화 하는 것을 잊지 않으며 매일을 분주하고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전우회 사무실로,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도 만나고 또 어떤 때는 부동산 중계 업으로 많은 돈을 모았다는 동창도 만나고 있었다.
그가 만나는 사람 중에는 자동차 렌터를 하는 조 사장도 포함돼 있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그는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북한강 상류를 굽어보며 온갖 나무들에 둘러 쌓여있는 양 사장 소유의 별장은 돌보는 이가 관리를 잘 해서인지 깨끗하고 아담했다. 기철은 정원 잔디밭에 운치 있게 놓인 원형탁자에 앉아 담배를 물고, 동네 어귀 커브 길을 돌아 검은색 승용차가 한가하게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양 사장이 승용차에서 내리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냐, 지금 막 왔어 많이 바쁘지? 앉지”
기철은 정원에 있는 원탁에 먼저 앉으며 종이컵에 담배를 부벼끄며 앉기를 권했다.
“예 공백이 있어서 회사에 할 일이 태산입니다.” 양 사장은 플라스틱 의자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사업은 여전하고?”
“그거야 뭐 전망이 좋으니 이번에 주식을 상정할 생각입니다.”
“잘 되었군 잘 돼야지”
쿵, 쿵 건물 뒤쪽에서 장작 패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장작을 팹니까?”
“아! 내 정신 좀 보게 자네 왕 영감 알지?” 기철이 물었다.
“그 중국서 왔다는 조선족 노인”
“그 사람이 지금 이곳에 묵고 있네.”
“아 그렇습니까? 뭐 이 별장은 어차피 선배님 마음대로 쓰시면 되는 일이지만,
왜?”
“돌아가신 내 육촌 형님의 친구였어, 앞으로 이곳에 사람이 좀 늘 것 같은데?”
“상관없습니다. 여긴 인적이 드물고 제일 가까운 집이 들어오실 때 보셨겠지만 저 아랫마을이니 막말로 사람이 죽어도 모를 겁니다. 허허”
“아주 맘에 들어, 저 뒤쪽의 밭이 양 사장 소유라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올해 그 쪽에 포도 농장을 만들 생각 이었는데…….”
“하세!” “네?” “포도 과수원을 만들자고”
양 사장은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듯 기철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곳에 양 사장 계획대로 포도과수원을 만들고, 이 앞에 저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이용해서 연못을 만들면 자금이 제법 많이
들어가겠지?”
“자금이야 문제될게 없지만 내가 시간이 없어서…….”
“걱정 말게 시간은 내가 남는 사람 아닌가?”
그 후에도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 졌다. 양 사장이 아랫동네에 나가서 한잔하자는 것을 다음으로 미루고 양 사장을
보낸 기철은 다시 별장을 둘러보고 왕 노인과 마주 앉았다.
“일이 좀 복잡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철의 말에 왕 노인은 말없이 기철의 어두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그 집에 대해 알아보고 있기는 한데…….” 기철은 말을 멈추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 저택의 소유자가 요즘 잘 나가는 정부 실세의 세컨드라는 겁니다.”
왕 노인은 가타부타 말없이 기철만 응시하고 있었다.
“일단은 그 집에 들어가야 확인을 할 텐데, 그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서 사람을 풀었으니 무슨 수가 나겠지요. 그보다 영감님은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중국에 피붙이가 있는 것도 아니라면서…….”
“이곳에 정착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데 길은 있는지요?”
“아 방금 다녀간 양 사장 회사의 고문 변호사에게 알아보도록 하지요.”
“윤 선생 나 일가나부랭이도 없는 혈혈단신이니 윤선생의 종살이라도 시켜주면 목숨 다할 때까지 충복이 되어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거두어 주시 라요.”
“아니 그럴 필요 없습니다. 종이라니요? 그런 말 하지마시고 예서 지내도록 하세요.”
“아닙니다. 보아하니 윤 선생 여러 사람을 거느리시는 분 같은데 나 같은 사람에게 일일이 신경 쓰는 것 좋지 않습니다.
허니 말도 편하게 하시고, 절 왕노(王奴)로 불러주세요.”
“그럴 수는 없지요." “그렇지 않으면 저 여기 못 있습니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생각다 못한 기철이 중재안을 내 놓았다.
“이렇게 하도록 합시다. 왕노(王奴)가 아닌 왕노(王老)로 부르되 공석에서는 말을 놓고 사석에서는 지금처럼 예우한다. 그
리고 왕노의 공식 직함은 이 별장의 관리인으로 한다.”
겨우 이렇게 합의를 하고 문제의 저택에 대해서는 기철의 뜻대로 하기로 했다.
“봄엔 저위에 밭에 포도나무를 심을 겁니다. 그러면 이곳에 젊은이들이 좀 드나들게 되고 다행이 방이 많으니 여러 사람 묵을 수가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 사람들 모두를 왕노가 관리해야 함은 물론이고 여기서 보고 들은 것들은 곧 잊어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잘 알았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 아직은 쓸모가 꽤 있습니다요.”
그랬다 몇 번을 볼 때마다 왕노는 기철을 놀라게 했다. 노인답지 않은 완력, 민첩성은 그렇다고 해도 눈치가 빠르고 재치가 있어 임기응변에 능했다.
기철에겐 별장형식의 거점과 왕노라는 충직한 심복이 생긴 것이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양 사장이 당분간은 부담할 테지만 많은 식구들을 거느리기 위해선 그리고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자금은 필수였다. 물론 그것을 계획에 넣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을 실천하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사실 눈만 크게 뜨고 다니면 눈먼 돈은 얼마든지 확보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해서는 정의를 실현해 보겠다는 그의 생각에
반(反)하는 일이고 그것을 강행한다면 그것이 곧 불의를 미화하기 위한 일 같아서 그 스스로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는 호수 앞산 너머로 사라져 가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조용하게 살고 싶었다. 전쟁 후 그를 황폐하게 만든 전쟁후유증으로부터 벗어나 기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했던가?
때로는 시장의 조무래기 양아치들에게 죽도록 맞으면서 참는 법을 터득하기도 했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불가사이 하게 그의 마음은 평정을 되찾았다. 그러기 위하여 그를 찾는 많은 지인, 친구들을 의식적으로 멀리
하고 살았다. 못난 자식 때문에 평생 마음고생을 하신 부모님에게 더 이상 불효를 할 수 없었던 그였다.
정신이 황폐해져 페인처럼 되어버린 외아들의 모습을 보다못한 아버지가 홧병으로 돌아가셨다지만 기철은 아버지가 스스로 삶을 접었다는 것을 30년이 지난 다음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알았다. 이제 어머니 마저 가신지도 다섯 해가 지났다.
“애야! 나 죽더라도 싸움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고향에서는 에미 얼굴봐서 널 봐 줬지만 여기선 에미 죽고 나면 아무도
널 지켜주지 못해, 알았지?” 어머니는 틈만 나면 그에게 그렇게 간곡하게 당부하곤 했다.
세상일에 초연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한때는 세상을 등지고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자신을 단련하고 마음에 수양을 쌓기도 했었다.
그는 군에서 살인병기로 만들어 졌다. 그리고 그렇게 길러진 그는 60년대 중반에 국제정 세와 맞물려 그 전쟁에 파견되었고,
그곳에서 때로는 홀로 또 때로는 팀원들과 함께 특수임무를 수행하면서 살인기술자로서 유감없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전장의 영웅이었고 뛰어난 전사였다. 그의 상급자들은 그의 눈부신 전공에 의하여 승승장구하며 양지에서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으나 그는 음지의 영웅으로 잊혀 갔다. 전쟁이 끝나고 비밀리에 귀국한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조금은 있었다. 그의 상급자들이 군에서, 또는 장군으로 예편해서 정, 관계에서 출세 가도를 달려오면서 측근을 통해 가끔
보내오는 금품은 그나마 그가 생활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는 했으나 들어 내놓고 그의 공적을 공식적으로 보상받을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전쟁 중에 수행한 임무가 은밀한, 비밀 임무였음으로 누구하나 그의 일을 거론하지 못했다.
그의 답답증이나, 서운함 들이 복합된 것은 그가 살기위해 임무 중 죽여야 했던 적들이 더 이상 적이 아닌 인간으로 꿈에 나타나 그를 괴롭히면서 불면의 밤을 보내게 됨은 그에게 참을 수 없는 괴로움으로 작용되고 급기야 전쟁후유증이란 정신질환으로 몇 번인가 정신 병원의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게 되었다.
겨우 마음에 안정을 찾은 지 몇 년 되지 않아 지난 번 일이 터졌고 그 일로 5개월여를 구치소에 수감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미 그의 나이는 50이 넘은 중년이 되어 있었다. 그는 구치소에서 새롭게 만난 사람들이 의외에 선량한 사람들이란 걸 깨닫고
있었다. 범법자라는 선입견만 버린다면 그들도 같은 선량한 사람들이였고, 더러는 그야말로 법 없이 살아갈 사람들이였다.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살기위해서 한 행동들이 법이라는 굴레 속에 얽혀 죄인 아닌 죄수가 되어 구치소라는 곳에 자유를
저당 잡힌 채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악질적이고 비도덕적인 상습범죄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본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무엇인가 잘 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집에 남겨둔 가족들의 이야기라든지 개개인의 사연을 듣다보면 그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곤 했던 기철이었다. 그렇게 5개월을 구치소에 갇혀있으면서 기철은 그가 살아온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중국 놈이 번다.” 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죄 같지 않은 죄로 구속되는가 하면 수천 수억의 국민의
혈세를 꿀꺽 하고도 멀쩡한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유전무죄(有錢無罪)무전유죄(無錢有罪)” 를 부르짖으며 형장에 이슬로 사라져간 막가파식 살인자들의 절규에 공감을 하기도 했다. 나라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상관의 명령이라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했던 그에게 돌아 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젠 아무도 그의 목숨을 건 희생과 전쟁영웅으로 그를 기억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