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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현대시조 봄호 계간평>
感性的인 작품의 內容과 言語의 斬新性
박 영 교
(시인․ 한국문인협회 이사)
2010년(庚寅年) 한 해가 빠르게 지나갔다. 사람들은 작년 한 해의 악몽 같은 현실과 뼈아픈 일들이 생기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신묘년(辛卯年)을 맞이했을 것이다.
우리 문단에도 참신한 인물이 선출되어 한국문단을 더욱 탄탄한 발전의 길로 이끌어 갔으면 하는 것이 한국문인협회 회원들의 바람이다. 새롭게 출범하는 문단 운영진도 문단 외적인 포지션뿐 만아니라 문단 내적 성장 즉 좋은 작품을 잉태, 출산, 발표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리라 믿는다.
시조는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이다. 우리 민족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시조 한 수쯤은 가볍게 창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러나 그런 일은 단시일 내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랜 기간 동안 많은 노력이 뒷받침되고 우리 시조를 배우려는 의지가 있어야만 좋은 작품을 출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선언(先言)해 둔다.
2010년 현대시조 가을, 겨울 합병 호에 실린 작품 중 계간평에 언급할 수 있는 작품은 單首 時調選에 발표된 박영규 작품 단풍 외 3편, 小詩集의 최희선 작품 다이어트 외 6편, 전학춘 작품 가을 바다 외 8편, 현대시조단에 발표된 41명 시인의 작품들이다.
單首 時調選에 발표된 박영규 작품
쉬어가자
애걸하는
새 한 마리 외면타가
바람한테 딱 한 번
회초리 맞았었지
그 일로
빨간 멍 지어
가슴까지 스밀 줄은.----------<단풍> 전문
박영규의 작품 <단풍>에 나타난 내용 속에는 조금은 억지스런 데가 있지만 작품의 전반에 표출된 에스프리는 좋다. 이 세상은 혼자서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이 내포되어 있다. 사람들은 남에게 베풀어 줄 줄도 알아야하고 어려운 이웃과 지나가는 타인을 배려해 줄 수 있는 심적 여유를 가져야 된다는 생각과 그런 어려운 이들을 외면하면 그 뒤에는 자신의 일로 되돌아옴을 넌지시 알려주는 작품이다.
함께 발표한 작품 <춘란>은 한 사물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오래도록 길게 가지면서 즐길 줄 알아야한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소시집(小詩集) 최희선 작품
가볍게, 날개 단 듯 버선발로 올라서면
165에 100근이던 60년대 표준 몸매
방앗간 저울 위에선
박꽃이던 내 어머니
십여 년 암세포에 영혼까지 쫓기다가
웃음도 빼앗기고 기억마저 혼미해져
그토록 낭창하던 몸
들국화가 되었다가
깃보다 더 가볍게 절로 되는 다이어트
더 이상 참지 못해 짚불처럼 사위어도
영원한 치자꽃으로
그 암향을 피우는데
얼마를 더 줄이려고 허기와 다투는가
나날이 변해가는 여심의 꿈 어쩌랴만
가녀린 코스모스들
향기없이 하늘댄다.----------------------<다이어트> 전문
최희선 작품<다이어트>를 읽어보면 어머니의 다이어트를 통해 현 시대의 말 못할 정도의 가혹한 다이어트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4수 1편인 이 작품은 첫수에서는 박꽃 같던 내 어머니, 어머니의 60년대 표준 몸매였던 것이 둘째 수로 넘어오면서 십여 년간 암 투병을 하면서 웃음을 잃고, 영혼까지 쫓기다가 기억까지 혼미해진 어머니는 까칠한 들국화 같은 몸이 되었다가 셋째 수에서는 절로 다이어트가 되는 내 어머니, 짚불처럼 사그라져가는 그는 은은한 향기를 발하는 치자 꽃향기 같다고 하였다.
마지막 수에서는 요즘 여자들의 몸매를 통해 다이어트를 하여 허기와 싸우다가 거식증으로 건강을 잃어버리는 여심의 잘못된 꿈을 고발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 것을 최희선 시인은 ‘가녀린/ 코스모스들/ 향기없이 하늘댄다.’로 표현하고 있다.
두 손을 호호 불고 언 발을 굴리도록
추위가 혹독하여 저리 고운 꽃빛일까
북향한
그 꽃잎 속에
담겨있는 깊은 사모
그 태에 반한 바람 휘파람을 마구불어
고고하게 감춘 눈물 가지 끝에 간직한 채
그 꽃잎
떨어진 흔적엔
새움 하나 트고 있다.------------------<목련, 그 후> 전문
최희선의 작품 <목련, 그 후>는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목련 가지 끝에 고고하게 감춘 눈물로 목련을 노래하고 있으며 꽃이 떨어진 흔적 뒤에는 새로운 움이 트고 있음까지 언급한 작품이다. 시인이 보통 목련을 표출할 때에는 혹독한 추위를 견딘 뒤에 인내의 소산으로 흰 꽃을 나타내면서 그것이 학 같다든지, 등불, 또는 소복한 여인으로 비유하는 것이 일반 상례이다. 최희선 시인은 꽃잎 속에 감추고 있는 깊은 사모, 고고하게 감춘 눈물로 나타낸 뒤 새움이 트는 상황의식을 나타낸 것이 한 걸음 더 나아간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소시집(小詩集) 전학춘 작품
둥근 가마솥에 끓어오르는 팥 동지죽
붉고 하얀 살들이 울룩불룩 화산인데
주걱에 둥둥 굴려나오는
커다란 새알심 하나 ---------------<피겨의 김연아> 전문
소시집에 발표된 전학춘 작품 아홉 편 중 <피겨의 김연아>만 언급한다. 시조 작품은 원래 단형시조가 제격인데 그 단수 안에 하고 싶은 생각을 다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연시조로 구성하는 것이다.
발표된 전학춘의 소시집 속에는 4수(首) 이상의 시조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는데 엄밀히 따져보면 정형율격을 넘어선 시조형태의 작품도 찾아볼 수 있어 지지(紙誌)에 발표할 때에는 깨끗하게 점검해서 발표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현대시조에서 보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수, 2수, 3수까지는 지루하지 않게 잘 읽히는데 4수(首)가 넘어가는 작품이면 호흡이 좀 길다고 생각한다.
위의 작품 <피겨의 김연아>는 작품을 읽어보면 김연아에 대한, 이를테면 은반의 여왕, 꽃 같은 춤, 아름다운 몸매 등 여러 가지 등을 써서 김연아를 표출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을 읽어보면 전연 그렇지 않고 동지팥죽 쑤는 말만 잔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전학춘 시인은 이 한 작품으로 소시집 전 작품을 대변한다고 해도 좋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김연아에 대한 상징적 표현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둥근 가마솥을 하나의 얼음의 은반을 상징하면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중장은 우리가 동지팥죽을 쒀봐야 알 수 있는, 끓기 위해 울룩불룩 표면 위를 솟아오르는 표현이다. 그 붉은 팥죽색깔 중에 주걱에 굴러 나오는 커다란 새알심 하나를 김연아에 비유한 상징성이 깊은 작품을 만나게 된다.
현대시조단 작품
작품 <수박>, <비누>---김 전
그대가 가슴을 두드리고 두드려 봐도/
설익은 내 마음을 보일 수가 없어요/
그대가 그물로 엮어 나를 낚는 이 하루
말라버린 젖줄 위 칼끝으로 짓누르면/
하늘을 열어놓고 사르르 눈을 감아/
그대의 입술 속에서 보름달로 뜨겠어요----------<수박> 전문
더러운 곳 찾아가며 하얗게 빛을 내고/
어두운 곳 찾아가서 더러움 걷어내며/
하이얀 목화송이로 달려가고 싶어요------------<비누> 첫째 수
김 전 작품 <수박>과 <비누> 두 작품을 읽으면서 적어도 김 전 시인과 같이 작품들이 항상 고른 수준으로 발표해 주는 시인이 드물다. 작품을 읽어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이미지 창출 그 스몰스텝이 알맞게 나열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의 시적 연륜과 시 창작의 아픔이 작품 속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전자의 작품 <수박>은 쉽게 읽혀지면서 이미지 구성의 스텝을 무리 없이 표현하고 있으며 우리가 수박을 사가지고 와서 입에 들어갈 때까지의 과정을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이 잘 나타내 주고 있는 작품이다. 후자의 작품 <비누>도 우리 생활 속에서 삶의 한 부분 같이 표현하여 독자로 하여금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구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작품 <이순신 장군의 칼 ․ 50>, <이순신 장군의 칼 ․ 51>--- 리창근
리창근의 작품 연작시조 2편은 작품의 내용면에서는 더 없이 좋고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하며 내용을 터득할 수 있겠으나 시적 감동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시조는 시이어야 하면서 시적 감동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시조의 종장처리 문제, 시적 감동과 감정의 문제, 등을 좀 신경 써서 표출시켰더라면 더욱 훌륭한 서사시로서 값어치가 돋보였을 것이다.
작품 <소금밭에서>, <바보 안경>---윤성의
바닷물은 얼마나
공덕을 쌓은 걸까
활활 타는 불볕에
다비식을 치르니
사리가 수북이 쌓여
햇살 속에 반짝인다.-----------<소금밭에서> 전문
내 안경은 바보다
먼 것은 잘 보면서
코앞의 글자에는
까맣게 눈감는다
나이는 내가 먹는데
왜 제가 망령인가
우주너머 먼별은
더듬는 밝은 눈이
늙은 부모 아픔은
까마득히 못 보나
고약한 세상인심을
안경이 닮나보다. ------------- <바보 안경> 전문
윤성의 작품 <소금밭에서>, <바보 안경>을 읽어보면 너무나 확연하게 작품을 표현하고 있다.
먼저 작품 <소금밭에서>는 소금물을 염전에서 활활 타는 땡볕(불볕)에 물을 증발 시키는 작업을 다비식으로 비유하면서 남는 흰 소금을 사리로 비유 표현한 것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얼마나 공덕을 쌓아야 이루어진다는 것도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바보 안경>을 통해서는 어떻게 읽어보면 동시조풍의 느낌을 얻을 수 있으면서 재미있는 표현에 독자들이 매료될 것이다. 특히 종장처리를 매우 잘하고 있는 느낌이다. 첫수 종장인 ‘나이는/ 내가 먹는데/ 왜 제가 망령인가.’ 이런 표현이라든지 오늘의 세상인심을 반영하는 둘째 수 종장인 ‘고약한/ 세상인심을/ 안경이 닮나보다.’ 등의 종장표현으로 시적 마무리를 자연스럽게 잘해내고 있다.
작품 <가을만찬>, <韓半島 戀歌>---柳 善
가을은 기척도 없이 빨간 불길로 다가와서/
젊음을 흔들어 버린 곱게 물든 오색 빛깔/
황혼 녘 찬란한 잔치 이산 저산 다 벌이데,
시리도록 푸르던 둘레를 한참이나 떠나/
이제야 가을 향연에 말석으로 초대받아/
풍성한 차림새 앞에 어떤 몸짓이야 할까.
껄껄껄 웃으면서 술 한 잔을 기울일 때쯤/
단풍잎 누가 불러 땅 쪽으로 나려지는가/
우리네 만찬 끝나면 저와 다름 아닌 것을.-------<가을 만찬> 전문
오천 년 기침소리 그 가난한 신음에도
핏대가 불끈 일고 심장이 벌떡였는데,
아직도 피멍든 산하山河 중병 앓는 겨레여.
얼마를 가다려야 얼마를 더 걸어가야
바람(望)은 밝아지고 하늘은 높푸르러지나,
자꾸만 흔들리면서 낮아지고 넘어진다.
바람(風)이 잦아들면 문득 돋는 지난 아픔
그 어둔 나날을 발바닥으로 문지르듯
그렇게 일월 보냈고 울컥울컥 울었었다.
뜨겁게 더 뜨겁게 활활 타는 잉걸불에
달구고 벼리면서 천만 년을 짚어보면
언제나 희비喜悲 속에서 한반도는 해가 뜬다.-----<韓半島 戀歌> 전문
오랜만에 柳 善의 작품을 대하는 것 같다. 柳 善의 작품 <가을 만찬>은 우리 인간의 삶을 가을 만찬에 접목시킨 작품으로 인간의 왕성한 삶이 끝나면 단풍잎이 낙엽으로 변하여 땅 쪽으로 내려지는 것과 같이 우리네 만찬도 끝나면 단풍 만찬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라고 반문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柳 善의 다른 작품 <韓半島 戀歌>는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작품이다. 오천 년 역사의 그 가난함에서 벗어나기까지 어려운 고비를 넘고 산하는 중병을 앓는 겨레, 우리 민족과 국가는 그 얼마를 기다리고 시련을 이겨내야 밝아지고 높푸르러지려는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들을 보면서 그 옛날 한국전쟁의 쓰라린 과거들이 울컥울컥 터져 올라오는 것이다. 지난날을 짚어보면 우리나라는 언제나 희비(喜悲)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柳 善의 작품들은 대부분 호흡이 긴 작품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내려가도록 작품을 이끌어가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추석‘2010’>, <청개구리>---허 일
뚝, 그친
매미소리
그리도 애끓더니
파초는
나래 찢긴 황새인 양
초초한데
차례상
저리 밀치고
물 퍼내는 후손들.-----------<추석‘2010’> 전문
뚝, 그쳤다
자옥한 고요-
톡, 물 퉁기는 소리
언뜻
말간 하늘
한 파람 무지개 섰다
소나기
지나간 자리
청개구리 한 마리.---------------<청개구리> 전문
허 일의 작품 <추석 ‘2010’>과 <청개구리>는 두 작품 모두 단형시조로서 상황의식만 제시한 작품으로 내용이 아니라 감성(感性)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구성된 작품이다.
전자 <추석 ‘2010’>는 상황을 봤을 때 추석을 맞이하여 비가 억수같이 와서 매미소리 뚝 그치고 나서 집안에 넓은 파초 잎들이 그 빗살에 찢어지고 시름이 겨운데 범람한 빗물로 인해 차례도 올리지 못하고 집안에 스며든 물 퍼내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는 후손들을 안쓰럽게 생각하는 시이다.
후자 <청개구리>는 소낙비가 내린 후에 그 소나기는 뚝 그치고 고요함이 이어지고 있는 중에 나뭇잎 끝에서 혹은 나뭇가지 끝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말간 하늘 뒤편에는 오색 무지개가 서고, 소나기 지나간 자리 나뭇가지 끝 풀잎에 앉은 풀잎색깔의 청개구리 한 마리를 볼 수 있는 시인의 눈이 필요한 것이다.
허 일의 작품은 단수시조 이면서도 그 작품의 깊이가 예사롭지 아니한 상황의식을 만들어내고 있어 자칫하면 독자들이 건듯 읽고 넘어가기가 싶다. 좀 꼼꼼히 읽어야 그 속에 숨어있는 상황을 찾아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작품 <갈잎을 주워들고>, <호박꽃>---이대전
갈잎을 주워들고 그대 안부 묻는다
뜯기고 할퀸 상처 얼룩진 가슴 안에
곱게도 물든 마음을 다짐인 듯 숨겼네.
세월 가고가도
끊어지지 않을 인연
바스락 소리 불러
그리움의 현을 켜고
그 소원
못 닿아 우는
아픔마저 삭이느냐.
생각 밖 우연으로 언젠가 만나는 날
기억은 아물 해도 네가 나를 안다 하면
설레는 추억의 날개 홰를 치며 울 것이다.----<갈잎을 주워들고> 전문
농담 삼아 물어 본다 호박꽃도 꽃이냐고
삐죽이 내민 혀끝에 묻어있는 생의 이력
유난히 커더란 벌이 쉴 새 없이 찾아든다.
주름진 웃음 속에 여직도 끼는 살아
늡늡한 자궁 안에 마지막 쏟아놓는
찐득한 생의 여한이 흥건하게 고였다.
꺼칠한 살갗인데 탱탱한 속살 깊이
마지막 남은 정염 갑갑한 듯 스멀대고
생목숨 지울 수 없어 독한 향기 뿜는다.---------<호박꽃> 전문
이대전의 작품 <갈잎을 주워들고>, <호박꽃> 두 편을 읽어보면 제목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이나 누구나 작품을 잘 요리해서 나타낼 수 없는 것이 흔한 소재의 단점이다.
먼저 작품 <갈잎을 주워들고>는 갈잎의 특성을 잘 잡아서 그것에 대한 감성적 어감을 잘 살려내고 있다. 첫수 중장과 종장에서 잘 드러내 주고 있으며 둘째 수(首)에서도 중, 종장에서 거침없이 잘 드러내어 표출하고 있음을 본다. 셋째 수 중, 종장에서는 이 작품의 하고 싶은 말을 잘 찾아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셋째 수 종장은 못 닿아 우는 아픔을 삭이다가 그 소원이 닿는 날 ‘설레는/ 추억의 날개/ 홰를 치며 울 것이다.’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작품 <호박꽃>도 우리가 흔히 보면서 첫수 초장 후반부와 같이 말하지만 작품을 빚는 데 사용해서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호흡이 긴 작품을 만들어 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3수 1편으로 빚어낸 작품 <호박꽃>을 잘 읽어보면 사람들이 흔히 말은 할 수 있지만 남이 잡아내지 못하는 꽃의 특징을 잘 잡아내어서 작품화 하고 있으며, 겉으로 보는 것 보다 실속 있는 것에 대한 말을 할 때 보통 쓰는 언어 표현을 작품으로 승화시켜서 독자들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작품 <11월>, <겨울 초입에서>---고두석
한 장 남은 달력 앞에 솔직히 부끄럽네/
하루하루 여닫으며 무심코 찢어버린/
네 작은 숫자 하나도 붙들지 못한 내가.
너하고 동거해온 머리숱 같은 날들/
언젠가 흘러버릴 세월인줄 알면서도/
그 많은 숫자 밑에다 밑줄질만 했구나.----------<11월> 전문
지나간 줄 알았던
바람 한 줌 스치더니
내 속에 들어와서
똬리를 틀고 있네
올가을 돋아난 상처마다
냉이 서려
춥다. -----------------------------<겨울 초입에서> 전문
고두석의 작품 <11월>, <겨울 초입에서>를 읽으면 우리가 달력 한 장을 남겨두고 느껴지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아무것도 한 일 없이 한 해를 보내는 부끄러운 마음이 고두석 시인이 이 시(詩)로써 대변해 주는 느낌을 얻게 된다. 달력의 숫자에 동그라미를 쳐 놓고도 잊어버리고 흘려보낸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강물처럼 흘러갈 세월인 줄 알면서도 그 숫자 밑에 밑줄을 긋고, 또는 동그라미를 치고, 세모나 네모를 해놓고도 그냥 흘러 보낸 날들은 얼마일까?
작품 <겨울 초입에서>도 우리가 무심코 지나면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들면 겨울 초입에는 그것이 내 안에 들어와 감기가 되더니 급기야 다른 것으로 유입되어 오래도록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이런 상황을 아주 쉽게 표현하여 작품화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과수원에서>, <숲속 아파트 아침>---유준호
성숙을 기다리는 수줍음이 설렌다./
간절한 눈짓들이 사랑으로 승화된다./
마지막 은총을 받아 전신이 팽팽하다.
통통한 볼 붉히며 붉은 미소 흩는다./
제 무게 제 느끼며 가지 휘어 매달린다./
스며든 하얀 햇살에 속살이 빛난다. -----------<과수원에서> 전문
푸른 책 펼쳐놓고
세월을 읽는 아침
아파트 층층마다 부딪쳐 깨진 햇살
어둠도 산산 조각나
유리 날(刃)로 번뜩인다.
젊은 까치 부리 닳게
애정 펴는 깍깍 소리
밥솥을 달각거리며 쏴하고 오르는 김
창 안팎 파고 들앉는
그 눈짓들 선선하다. ----------------<숲속 아파트 아침> 전문
유준호의 작품 <과수원에서>, <숲속 아파트 아침>은 그 내용이나 시조의 형식적인 면이나 모두가 신선하다. 좋은 작품을 대하면 마음과 기분이 매우 좋은 것을 필자자신도 스스로 느낀다.
유준호의 작품<과수원에서>는 2수 1편으로 구성하면서 각장을 한 문장처럼 피리어드를 찍고 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장과 장 사이를 내용이 이어지도록 배려하고 있어 일종의 실험의식이 다분히 깔려있는 작품이다.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힘이나 내용의 터치문제도 아주 자연스러우면서 무게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후자의 작품 <숲속 아파트 아침>도 숲속에 자리하고 있는 아파트의 입지조건을 상황의식으로 떠올려 잡으면서 2수 1편으로 구성하여 해가 떠올라 와 햇살이 퍼지기전에 일어나는 아침의 모든 상황을 가급적 시차를 둬가면서 작품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세월의 아침/ 아파트 층층/ 유리창에 부딪는 햇살/ 어둠이 산산조각/ 햇살이 유리 날/ 까치 소리/ 밥솥 김 오르는 소리/ 김/ 눈짓, 등이 그것이다.
작품 <故鄕 抒情 ․ 5>, <故鄕 抒情 ․ 6>---金光洙
문득 듣고 싶다
색미투리 발자국 소리
‘하이고 문딩아
이게 뉘고 얼매만고������
달려와
덥석 끌안고
글썽이던
순아,
그 말 --------------------<故鄕 抒情 ․ 5> 전문
흙 묻은 호미 놓고
땀 밴 웃옷 벗어 두고
느티나무 그늘에서
오수午睡에 깊이 든 이
꿈에선
어느 영토에
맹주로나 앉았을까. ---------<故鄕 抒情 ․ 6> 전문
김광수의 작품 <故鄕 抒情 ․ 5>, <故鄕 抒情 ․ 6> 두 편을 만난다. 오랜만에 만난 김 시인의 작품은 호흡이 짧은 단형시조 두 편이다. 오랜만에 대하는 작품이라 그의 얼굴을 보는 듯 반갑다.
전자 <故鄕 抒情 ․ 5>의 연작시조는 그 옛날 고향 어르신들이 잘 신고 다니던 색미투리를 신고 도포를 입고 팔자걸음을 걸으시던 옛 조상님들 아니면 고향 친지 어른님들을 그리워하거나 이웃 어른님들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시인, 다음은 중장에서와 같이 고향 말소리, 즉 고향 사투리, 친구들의 말소리, 친족들의 말소리가 그리워진다. 종장에서와 같이 아는 사람들을 만나 달려 와서 덥석 안고 회포를 풀던 그런 정겨움을 느껴봤으면 하는 시인의 바람이다. 시인의 서울 살이, 생존경쟁이 심한 깡마른 서울 살이에서 삶의 정겨움이 없는 그런 도시생활의 삶을 탈피하여 그 옛날 다정스러운 생활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바람인 것이다.
후자 <故鄕 抒情 ․ 6>는 어린 시절, 호미로 밭에 풀을 뽑다가 흥건한 땀 배인 웃옷을 벗어두고 큰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오수(午睡)에 들던 그 사람, 지금은 어느 영토에서 맹주로 앉아 있을까? 모든 것이 궁금한 고향의 사람들 그 인정을 그리워하고 있는 시인의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김광수의 고향서정은 그 때 그 나이에 있는 독자라면 어느 곳을 막론하고 똑 같은 서정이요 같은 인정일 것이다.
작품 <마중 물>, <경포 습지>---김기옥
한 바가지 물 그대는 소중한 생명의 끈/
펌프 안에 어울려 깊은 사랑 불어넣어/
밖으로
뽑아 올리는 힘
기적의 박수소리
삐거덕 삐걱삐걱 목 타는 갈증을 보며/
땅속 깊은 물을 불러 청간수 끌어올리는/
당신은
행복한 비밀
믿음 소망 맞이하는. ----------------------<마중 물> 전문
여름의 경포 늪엔 초록융단 바람 싣고/
물속에 생명들이 또박또박 여름일기/
동그란
파문으로 적어
갈대숲에 저장 하네
메꽃의 고운 악보 산책 나온 오리가족/
꼬물꼬물 우렁 각시 춤추는 소금쟁이/
수련의
수줍은 미소
여름날이 흥겹다. --------------------- <경포 습지> 전문
김기옥의 작품 <마중 물>, <경포 습지>를 읽어보면 눈으로 보는듯한 선명함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마치 김광균의 모더니즘(modernism) 시와 같은 느낌을 주는 듯하다.
김기옥의 작품 <마중 물>은 아직도 우리의 땅이 오염되지 아니한 상황 속에서 펌프를 박아 땅 속 깊은 곳에서 맑고 깨끗한 지하수를 얻는데, 그 펌프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 바가지 물을 먼저 부어서 땅 밑 물을 끌어 올리는 작업에 필요한 물이다. 땅속 깊은 물을 불러올리는 작업, 그 ‘마중물’로 인해 땅속 깊은 행복한 비밀스런 기쁨을 주는 그것,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져다주면서 우리들에게는 기쁨도 함께 안겨다주며 소중한 생명의 끈이 되는 것이라고 김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후자의 작품 <경포 습지>를 읽어보면 여름 경포 늪에 초록 융단을 깔아 놓은 것처럼 푸른 늪지의 생물들이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물속에는 모든 생명들이 뽀글뽀글 살아있음이 동그란 파문(波紋)으로 갈대숲이 자라고 있는 호수 가(邊)에까지 퍼져 나아가는 것을 시인은 여름 일기를 ‘동그란/ 파문으로 적어/ 갈대숲에 저장 하네’ 라고 아주 신선하게 표현하고 있다. 메꽃, 오리가족, 우렁 각시, 소금쟁이 등, 이를테면 꼭 여기에 등장한 동물만이 아니라 이것들은 대표적인 것이므로 다양한 동물들이 이 호수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표출하고 있는 작품이다. 거기에 수련의 미소까지 등장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작품 <採石場을 지나다>, <寒談 ․ 15>---선정주
採石場을 지나다
돌 깨는 소리를 듣는다
장단은 단조롭지만
魂을 부르고 있네
석수는 돌속에 담긴
산의 심장과 만난다.
집채만 하게 떠내고 용도따라 쪼개고
열조각 스무조각 갈라도 한결같은 살색이다
표정이 없다 못하리 내색 아니할 뿐
채석장을 지나다
산의 속살을 본다
물기까지 뽑아내고
피까지 다 뽐내고
수억년 다져진 적막
돌이 되는 것이리 ----------------<採石場을 지나다> 전문
어쩌면 가을 볕이
이리 지겨울 수가 있나
곡식도 성숙해 가고
과일도 볼 붉겠지만
내 전신 익을 것 없어
심이 민망해서 인가 --------------<寒談 ․ 15> 전문
선정주의 작품 <採石場을 지나다>, <寒談․15> 두 편이다.
우리가 작품을 읽어보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수많은 언어를 동원해서 구성하고 구사한 작품을 읽고 나서 왠지 허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할 때가 있다. 그것은 작품을 구상하는 언어가 꽹과리와 같이 요란한 소리로 표출하고 있어도 독자들의 마음을 감동 시키지 못하는 알맹이가 없는 허전한 느낌을 감출 길 없을 때이다.
선정주의 작품 <採石場을 지나다>는 독자들에게 주는 혼(魂)을 부르는 소리, 採石場에서 석수장이가 돌 깨는 소리를 들을 때 어느 산에서 옮겨왔던지 간에 그 산의 심장과 만나는 체험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둘째 수에서는 용도에 따라 여러 갈래로 쪼개고 갈라도 한결같은 살색,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지 그 돌조각 하나하나에 혼(魂)이 있고 표정이 살아있다는 것, 셋째 수에서는 수억 년 다져진 적막, 바로 그것이 산의 속살을 채석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신의 몸에서 물기와 피까지 다 뽑아 내고난 뒤 수억 년 다져진 적막, 이것이 산의 속살인 것이다.
작품 <寒談 ․ 15>에서는 가을볕이 곡식도 숙성해 가고 모든 작물을 익게 하며 과일도 붉게 익어 가는데 내 전신은 익힐 것이 없는 빈 쭉정이로 이 가을을 보내니 마음이 민망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작품은 시인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느끼는 겸손한 마음을 나타내거나 한 해의 삶에 대한 반성인지도 모른다.
이상에서 『현대시조』가을, 겨울 통합 호를 읽어보면서 두 편씩 발표한 현대시조단의 작품은 두 편 모두 언급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 해설을 하였다. 작품을 읽어보면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가를 확실하게 한 작품 중에는 내용에 너무 치중하여 언어의 감동은 사라져 버리고 낱말만 살아있는 그런 작품이 있는가 하면 어떤 작품은 감동은 있는데 무엇에 대해서 노래한 것인지를 알 수 없는 즉 시인 혼자만 알고 있는 작품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좋은 작품은 누가 언제 읽어도 ‘아! 그것을 노래하고 있구나.’ 라는 확신과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 누구도 말하지 아니한 것들을 잡아내고 감동을 함께 얹어 작품화한 것으로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으면서 참신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
첫댓글 좋은 시조들을 같은 시각으로 읽습니다. 깨우침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