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리석은 수필은 아우의 영 앞에 주는 제문을 대신하여 여의고 석 달 되는 날 그 날 하루의 일기로 쓴 것입니다.
이 책의 인세 수입은 무기한으로 그 전부를 배재 고등학교 [정상 장학회]에 바칩니다.
마음을 다하여 이 글을 쓰고 다시 엎디어 생전에 내 아우를 지도해 주신 여러 스승님과 같이 놀던 모든 동무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지은이)
머리말(1936년)
우리 문단의 중진인 노산 이은상(鷺山 李殷相)선생이 그 사랑하는 아우 정상(正相)군을 여읨에 다다라 가슴에 핀 그리운 정과 인생 무상의 탄식을 참지 못하여 붓을 들매 또한 자자구구이 그의 간곡한 진정이 실려 나와 마침내 이 책을 이루었습니다. 저자의 아우 정상군은 1916년 3월 4일에 경남 마산(馬山)에서 영남 교육계의 선구자이신 남하 이 승규(南荷 李 承奎)선생의 넷째아들로 태어나 본교 5학년에 재학중이다가 졸업을 눈 앞에 두고 1935년 11월 23일에 20세로써 아까이도 꺾여 버린 소년입니다.
그러나 그의 나이는 어렸지마는 그 품은 뜻과 포부는 컸습니다. 형에게서 타 쓰는 적은 학비를 존절히 쓰고 남겨, 이웃 집 더 가난한 아이의 보통 학교 월사금을 당해 준 일도 있었고, 뿐만아니라 앞으로 큰 돈을 만들어 가난한 학생들을 돕겠다는 뜻을 세우고 푼푼이 모아 가던 돈이 7원 3전. 이 돈이 그의 유언과 함께 본교로 들어왔을 때 우리의 가슴은 형언할 수 없이 애닯았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서울 공덕동 교회 안에 야학교를 세워 가난한 아이들에게 학용품까지를 주어 가면서 춥고 더운 날을 가리지 않고 밤마다 밤마다 성심성의로 그들을 가르쳤으니 이를 어찌 소년의 생각과 행동이라 이르겠습니까. 어진 교육가의 집안에 이러한 자식이 있음은 또한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렇듯 아까운 아우를 잃어버린 노산 이 은상 선생은 불타는 사랑과 정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천지의 무상과 인생의 생사를 울며 노래하였고 그리하여 진리를 찾으러 성현의 경전을 더듬으며 또 스스로 묵상을 거듭했습니다. 그 해박한 지식과 그 고상한 이상을 아름답고 능란한 문장으로 엮어 낸 이 수필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순결한 사랑에 잠기게 할 것이요 그리고 거기서 위로와 안심을 얻게 하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고 정상군의 갸륵한 뜻을 버리지 못하여 우리 배재학교 안에 [정상 장학회](正相 獎學會)를 설립하고 지은이로부터 이 저서의 인세 수입을 무기한 기증 받아 이것으로써 모이는 돈을 쌓아, 가난한 학생들에게 학비를 보태는 향기로운 사업을 해 보려는 것입니다.
사회의 유지 여러분께서도 이 사업이, 갈수록 빛나지도록 성원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1936년 11월
고 이 정상군의 1주기를 몇 날 앞두고 배재 고등 보통 학교
교무주임 장 용 하
[정상 장학회]를 다시 일으키며 (1965년)
고 이 정상(李 正相)군은 30년 전 배재의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학교에서 학업을 닦는 이외에, 혹은 야학교를 세워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또 혹은 어려운 동료들을 위해서 모든 걱정을 같이 나누며 남을 돕는 일이라면 전력을 다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다가 특히 그 당시 일제의 탄압 아래 자라면서도, 남달리 민족심에 불타는 사상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동료 중에 일본 동경으로 가서 고학하는 어느 친구와 독립 정신을 논하는 서신을 교환한 일이 발각되어, 그 때문에 용산 경찰서에 구속되어 있으면서, 석 달 동안이나 말할 수 없는 악형을 당한 끝에 병을 얻어, 그 길로 입원 치료하다가 끝내 건지지 못하고, 졸업을 몇 달 앞두고서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다가 그는 형님에게서 타 쓰는 학비를 절약해 가며 뒷날 가난한 학생들에게 학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으로 푼푼이 모아 가던 돈이 있어, 그는 마지막 눈을 감으며 유언으로써 그 돈을 본교로 보내니, 교복 주머니에 알뜰히도 싸 넣어 둔 돈이 7원 2전이었습니다.
그 당시 본교에서 교편을 들고 계시던 선생님들은 그 돈을 받아 쥐고 어느 누구도 감격하여 눈물짓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물질로서의 돈만이 아니라, 그의 인격이요 사상이자, 배재의 교육 정신의 결정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얼마 지난 뒤에, 그의 맏형 되는 우리 문단의 거성이신 노산 이 은상(鷺山 李殷相)선생이 사랑하는 아우를 잃고 그 애닯은 정을 붙일 곳 없어 [무상](無常)이란 장편 수필을 쓰게 되었고, 그래서 그것을 출판해서는 그로부터 생기는 인세수입을 본교에 기증하기로 하므로, 본교에서는 비로소 [정상 장학회] (正相 獎學會) 이름으로 본교 안에서 작은 규모로나마 장학 사업을 벌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사회 유지들이 기부금을 보내 주시기까지 해서 본교에서는 얼마 동안 장학 사업을 계속한 일이 있기도 했으나, 때는 차츰 일제 말기에 이르러, 밖으로는 정치적 탄압, 안으로는 재정적 궁핍 등으로 부득이 장학 사업이 중단되고 말았던 것은 여간 유감스런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문득 헤아려 보니 해방된 지도 어느덧 20년이 지났고, 이군이 세상을 떠난 지는 꼭 30년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무상합니다. 그 장학 사업마저 무상하게도 계속되지 못한 것이 고인의 영 앞에 얼마나 민망스런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그는 분명히 애국자의 가문, 교육가의 가문에서 올바른 가정 교육을 받기도 했거니와, 다시 그 위에 우리 배재의 교육 정신 속에서 자라난 배재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신을 뒷 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그것이 스스로 더 민망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교에서는 [정상 장학회]를 다시 일으키기로 하는 동시에, 이 수필집의 인세 수입은 30년 전의 약속 그대로 지은이로부터 무기한 기증 받아, 그 수입을 토대로 하고 본교 안에서 가난한 학생들을 기르는 장학 사업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더구나 이 [무상]수필은 30년 전에 우리 독서계에 그야말로 폭풍을 일으켰던 글이었거니와, 과연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유려한 문장과, 철학적 결론은 오늘뿐 아니라 언제나 이 혼탁한 세대에 큰 감동력을 가진 높은 교양서이기도 하므로 많은 애독자를 얻게 되리라 믿거니와, 그와 함께 이 갸륵한 일의 경위를 살피시고 여기에 순수한 성금을 던져 주시는 많은 유지들이 나와 주시기를 충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인세를 기증해 주신 이 은상 선생과 또 제자(題子)해 주신 고 이 정상군의 은사 민 태식(閔泰植)선생과 장정을 맡아 주신 정 완섭선생께 감사를 드립니다.
1965년 9월 일
배재 중 고등학교
교장 송 수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