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安瓚)
1派12世-찬성공파
자(字) 황중(黃中)
?∼1519(중종 14)
주부(主簿) 훈도(訓導) 의관(醫官) 의학교수(醫學敎授) <신의神醫>
?∼1519(중종 14).
조선 중기의 의관(醫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황중(黃中).
1517년(중종 12)12월 전의감(典醫監) 안당(安瑭)의 천거로 전의감주부가 되었고, 다음해 의학교수로 천거되어 의원생도를 교습하였다.
1519년에 기묘사화 때 화를 입은 유림들의 신원을 상소하였다가 장류되어가던 도중 연서역(延曙驛)에서 죽었다.
조광조(趙光祖) 등과 교분이 두터웠고, 두통을 앓는 어느 환관(宦官)을 낙상으로 진단하는 정확한 의치(醫治)를 보여 신의(神醫)라 불릴 정도였으며,
산수화에도 능하였다.
安瓚 醫師。精於理學。士類取以爲友。變作。杖竄。李沆又拿鞫流外。卒于延曙驛。
【성 명】 안찬(安瓚)
【생몰년】 ?∼1519(중종 14)
【본 관】 순흥(順興) 안(安)
【자·호】 황중(黃中)
【시 대】 조선 중기
【성 격】 의원
?∼1519(중종 14).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황중(黃中)으로 조선 중기의 의원이다.
의술과 성리학에 정통했으며, 중종 12년(1517) 전의감제조(典醫監提調)안당(安瑭)의 천거로
전의감의 주부(主簿)가 되었고, 이듬해 의학교수(醫學敎授)가 되어 생도의 교육을 담당했다.
그는 의술에 뛰어나 한때 환자의 두통(頭痛)을 보고 이는 낙상(落傷)이라 하고 약을 써 효험이 있었기 때문에
신의(神醫)라는 평을 들었다.
조광조(趙光祖) 등과 교분이 두터워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화를 입은 유림(儒林)들의
신원(伸老)을 상소했다가 장류(杖流)되어 가던 도중 연서역(延曙驛)에서 죽었다.
산수화(山水畵)에도 능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人物考, 槿域書畵徵
의사 안찬 전(醫師安瓚傳)
의사 안찬(醫師安瓚)은 의술에 정통하고 이학(理學)에 더욱 정(精)하니 선비들이 벗하였다. 죄에 연루되어 장배(杖配)되었는데 연서역(延曙驛)에서 죽었다.
척언(摭言) : 의원 안찬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의서(醫書)를 널리 보아서 의술이 매우 정묘하였고 이학에는 더욱 정하였다. 증세에 따라 시약(施藥)하고, 이치를 참작하여 막힘이 없었다. 남의 질병을 들으면 비록 옛 처방에는 없는 것이라도 병으로 인해 생각을 일으켜 다스리는데 효험을 보지 않는 것이 없었다. 병을 묻는 자가 그의 문전에 몰려들었고, 살려낸 사람도 매우 많았다. 한 남자가 새벽에 나들이를 갔다가 도중에 갑자기 두 눈이 붙어서 스스로 눈을 뜨지 못 하였고, 손으로 만져 보면 아교칠로 붙인 것 같았다. 그대로 장님이 되었으나 모두 병의 원인을 몰랐다. 안찬이 풀이하기를, “눈은 폐에 속한 것인데, 폐가 병들었기 때문에 눈이 닫힌 것이다.” 하면서 폐를 치료할 약을 가르쳐 주었다. 그 사람이 그 약을 먹었더니 얼마 아니 되어 눈이 점점 떠지며 평상시와 같아졌다. 또 한 여인이 하루는 음문이 갑자기 아프더니 얼마 후에는 소와 말의 털과 같이 누렇고 검은 것이 서로 섞여서 음문에서 물처럼 솟아나며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 것이었다. 안찬이 풀이하기를, “털이란 것은 혈(血)의 나머지이다. 혈이 병든 까닭으로 이런 괴이한 일이 있는 것이니 먼저 혈을 다스리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그 사람이 약을 받아 먹었더니 오래지 않아서 털이 그치고 평상시와 같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의술이 정하고 식견이 원대하여 용렬한 의원으로서는 미칠 바 아님을 탄복하였으니, 대저 병을 치료하여 사람을 살리는 것이 대부분 이와 같았다. 이러므로 한때 중하게 여겨졌고, 진신(縉紳)들도 모두 그와 교유하였는데, 같은 계급의 사람은 매우 꺼리고 미워하여 원수같이 여겼다. 기묘년 변이 일어났을 때에 찬성 이항(李沆)이 대사헌이었는데, 안찬이 당인(黨人)과 교제하였다는 이유로 잡아와서 국문하였다. 수일 동안 형장을 받은 다음 하루는 외지로 유배되었는데, 연서역에 이르러 죽으니 사람들이 모두 애석하게 여겼다. 편작(扁鵲)과 창공(倉公)이 모두 의술로 이름이 세상에 높았으나 마침내 앙화를 받았으니, 명예를 다투어서 서로 도모하는 것은 사(士)라는 무리도 그러한데 하물며 딴 기술이리오. 안찬의 죽음도 괴이하다 할 것이 없다고 하겠다.
보유 : 을해년에 안당 정민(安貞愍)이 전의서 제조(典醫署提調)로 되었다. 안찬을 천거해서 훈도(訓導)로 삼고 나이 젊은 의생(醫生)에게 《소문(素問)》ㆍ《난경(難經)》 등 의서를 배우도록 하니, 박세거(朴世擧) 등이 후일에 모두 명의가 되었다. 어떤 부인이 하루는 아침에 양치질을 하는데 혀끝에서 피가 줄줄 나와서 연일 그치지 않았다. 지혈(止血)약을 많이 썼으나 그치지 않아서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안찬에게 가서 물으니 안찬이 말하기를, “급히 용뇌 소합 향원(龍腦蘇合香元)을 복용하라.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구원하지 못한다.” 하였다. 그 사람이, “속병에는 반드시 그 소합 향원을 먹지마는, 피가 나와서 그치지 않는 것을 낫게 한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하니, 안찬이 풀이하기를, “혀는 심(心)에 속한 것인데 혈에 열이 있으면 끓는다. 지금 이 부인은 평소에 마음을 많이 썼으므로 심기(心氣)가 극히 더워졌고 피가 끓어올라서 혀로 막 나오는 것이다. 만약 피가 다하고 심이 허한 때에 사기(邪氣)가 틈을 타게 되면 구하지 못할 것이다. 심을 다스려서 열을 없애면 피는 저절로 그칠 것이다.” 하였다. 과연 네 개를 먹었더니 흐르던 피가 저절로 그쳤다. 의술이 정묘해서 증세를 묻고 시약하는 데 비록 간곡하게 성심껏 하였으나, 훈도하는 여가에 병을 문의하고 진맥을 받으려는 자가 문과 골목을 메워서 두루 잘 접응하지 못했고, 집은 비좁은데 객이 많아서 또 예모를 갖추지 못하니 헐뜯고 나무람이 다투어 일어났다. 경진년 정월 헌부(憲府)에서 처음에는 안찬이 방리 도약정(坊里都約正)으로 있으면서 형장을 남용했다는 죄목으로 잡아 가두었는데, 국문할 때는 당인(黨人)과 사귀어서 조정 일에 간여했다는 것이었다. 까닭에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묻는 대로 자복하였다. 정암(靜庵)과 같은 죄로써 형조(刑曹)로 넘겨졌고 결장(決杖)한 다음 용천(龍川) 배소로 떠나게 되어 드디어 구명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들 안자명(安自命)은 역관(譯官)으로 벼슬이 가선(嘉善)에 이르렀다.
[주D-001]편작(扁鵲) :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명의(名醫). 진(秦) 나라 태의령(太醫令) 이혜(李醯)에게 시기하는 바 되어 죽임을 당했다. 이름은 진월인(秦越人)이다.
[주D-002]창공(倉公) : 한(漢) 나라 사람. 이름은 순우의(淳于意). 태창장(太倉長) 벼슬을 했으므로, 창공이라 한다. 의술이 정통하여 사람의 생사를 알았으며, 문제(文帝) 때에 사람의 병을 치료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형을 당할 뻔하였다.
기묘록 보유 상권(己卯錄補遺 卷上)
[醫師安瓚]
○醫師安瓚。精通醫術。尤精於理學。士類取以爲友。有一男子乘晩出去。兩眼皆合。以手揩之。如以漆接。仍作盲瞽。 瓚曰。眼者屬肝。肝受傷故眼閉。敎治肝之藥。未久漸開如常。又有女人陰門忽痛。有頃黃黑毛相雜如牛馬之毛。如水湧出。晝夜不止。瓚曰。毛者。血之餘。血受病。有此恠也。可先治血。其人受服。未久毛止。又有婦人。一朝漱口。自舌端血出淋漓。連日不止。多用止血藥。猶不止。罔知所措。問瓚。瓚曰。急服龍腦蘓合元。稍遅則不能救矣。血者屬心。而血得熱則沸。今此婦人多用心慮。心氣極熱。血沸湧出。妄行于舌。血盡心虛。客邪乘之。則不能救矣。治心去熱。則血自止。果服四丸。血卽止。人服其術精識遠。非庸醫所及。由是見重於一時。問病診脉者。塡咽門巷。不能周偏。毁譽交起。 人嫉如仇讐。大憲李沆。以交結黨人拿鞫。受杖一百流外。至延曙而死。人皆惜之。
지퇴당집(知退堂集) 知退堂集卷之十三 黃兎記事[下] 儒士 이정형(李廷馨)
안찬(安瓚)
○ 의술(醫術)에 정통하고 더욱 이학(理學)에 정밀하였다. 사류들이 다 벗으로 삼았다. 어떤 남자가 어두울 녘에 밖에 나갔다가, 문득 두 눈이 합쳐져서 손으로 문질러 보았으나 마치 칠(漆)로써 붙여 놓은 것 같이 되어 끝내 소경이 되었다. 안찬이 말하기를, “눈은 간(肝)에 속한 것이라, 간에 병이 들었기 때문에 눈이 닫혀졌다.” 하고, 간의 병을 치료하였다. 얼마 안가서 점점 눈이 열려서 평상시와 같이 되었다.
또 한 여자가 있었는데, 음부(陰部)가 문득 아프며, 좀 있다가 누른 색과 검은 색의 털이 함께 섞여 소나 말의 털과 같고 물이 솟듯 솟아 나와, 주야로 그치지 않았다. 안찬이 말하기를, “털은 피의 여분이라, 피에 병이 생기면 그런 괴상한 일이 있으니, 먼저 피를 치료해야 한다.” 하였다. 그 사람이 그 말대로 하였더니, 얼마 아니 되어 털 솟아나는 것이 그쳤다.
또 어떤 부인이 입을 양치질하다 혀끝으로부터 피가 질척하게 나와 연일을 그치지 아니하여, 지혈약(止血藥)도 많이 썼으나, 그래도 그치지 않아 어쩔 줄을 몰라서 안찬에게 물으니, 안찬이 말하기를, “급히 용뇌 소합환(龍腦蘇合丸)을 먹어라. 조금만 더 늦어지면 구하지 못할 것이다. 피는 심장에 속하는데, 피가 열(熱)을 만나면 끓는다. 지금 이 부인은 마음을 몹시 써서 심기(心氣)가 극히 뜨거워져서 피가 끓어 솟아올라 혀로 번진 것이다. 피가 다하고 심장이 허하여져 사기(邪氣)가 틈타 들어오면 구하지 못하리라. 심장을 다스려 열을 제거하면 피는 자연 그치리라.” 하였다. 과연 소합한 네 개를 먹였던 바 흐르던 피가 즉시 그쳤다. 사람들은 그 의술의 정묘함과 식견의 원대한 것이 보통 의원의 미칠 바 못 됨을 탄복하였다. 이로 인하여 한때 중요시 되어 병을 묻고 맥을 진단하려고 하는 자가 문간을 메웠다. 그러나 두루 주선하지 못하여 헐뜯음과 칭찬이 섞여 일어나 동배인(同輩人)이 질시하기를 원수 같이 하더니, 대사헌 이항(李沆)이 당인(黨人)들과 결탁했다는 것을 구실로 만들어 잡아다 심문하여, 매 1백 대를 맞고 외지로 귀양가는 도중 연서역(延曙驛)에 이르러 죽으니, 사람마다 애석히 여겼다.
安瓚
精通醫術。尤精於理學。士類取以爲友。有一男子。乘晩出去。忽兩眼皆合。以手揩之。如以漆接之。仍作盲瞽。瓚曰。眼者屬肝。肝受病故眼閉。敎治肝之病。未久漸開如常。又有女子。陰門忽痛。有頃黃黑毛相雜。如牛馬之毛。如水湧出。晝夜不止。瓚曰。毛者血之餘。血受病有怪也。可先治血。其人受服。未久毛止。又有婦人漱口。自舌端血出淋漓。連日不止。多用止血藥。猶不止。罔知所措。問瓚。瓚曰急服龍腦蘇合元。稍遲則不救矣。血者屬心。而血得熱則沸。今此婦人多用心慮。心氣極熱。血沸湧出。妄行于舌。血盡心虛。客邪乘之。則不能救矣。治心去熱。則血自止矣。果服四丸。流血卽止。人服其術精識遠非庸醫所及。由是見重於一時。問病診脉者。塡咽門巷。不能周徧。毀譽交起。同輩人疾如仇讎。大司憲李沆以交結黨人。拿致鞫問。受杖一百流外。至延曙驛而死。人皆惜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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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李若氷權磌宋好智宋好禮金匡復曺彦卿柳仁淑尹光齡權穡巴陵君璥詩山正正叔長城守儼嵩山正灇江寧副正祺醫人安瓚等三十六人上引見大臣六卿三司議之上意稍解曰旣罪之則趙光祖亦當知而改之今此窮治同類甚不可朋黨之言亦不可 |
國朝編年v06
龜峯與樽岩力爭璥巴陵君正叔詩山正辛巳被禍漾崇善副正祺江寧副正儼長城守善文李耔湖堂次野陰崖李淸參判李雅安瓚醫學敎授柳雲湖堂從龍大憲崔淑生湖堂盎齋李希閔李忠楗尹光齡梁彭孫湖堂松堂宋好禮削奪直之成世昌見相文瑾參
國朝捷錄v01 己卯諸賢
江寧副正祺削奪官爵安瑭金正國柳雲罷職韓忠流絶島巴陵君儆嵩山副正灇醫人安瓚遠配李長坤權橃尹衢李構金世弼追論鞫問罷職金安國申光漢鄭順朋柳仁淑李成童具
國朝人物志v1
중종 12년 정축(1517, 정덕 12)윤 12월 25일(병신)
이조 판서 남곤 등이 정청(政廳)에서 아뢰기를,
“전의감 제조(典醫監提調) 안당(安瑭)이 천거한 안찬(安瓚)은 의술이 정통하니, 주부(主簿)에 제수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그리하라.’ 전교하였다.
중종 13년 무인(1518, 정덕 13)3월 10일(기유)
동지사(同知事) 안당(安瑭)이 아뢰기를,
“의술의 해이함이 이때와 같은 적이 없습니다. 안찬(安瓚)이란 한 의원이 있으나 내의(內醫)가 아니기 때문에 성상께서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의서와 처방을 아는 것이 당시에는 이 사람에 비할 자가 없습니다. 그를 의학 교수(醫學敎授)로 천망하여 제수한 후에 의원 생도 중 가르칠 만한 자를 뽑아 가르쳐서 오래도록 폐지하지 아니하면, 본업에 정통한 자 또한 많이 나올 것입니다.
【안찬(安瓚)은 의관(醫官)으로서 의술에 능하였기 때문에 사람마다 모두 그의 이름을 알았으며, 무릇 병을 앓는 사람이 있으면 곧 가서 병세를 물었다.
선조 38년 을사(1605, 만력 33)11월 3일(계유)
상이 이르기를,
“중종조(中宗朝)에 안찬(安瓚)이란 의관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두통(頭痛) 앓는 것을 보고 바로 낙상(落傷)이라고 진단한 다음 약을 써서 즉시 그 효과를 보았다. 이는 참으로 귀신같다고 하겠다.”
안찬(安瓚)의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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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安子美
2 安永儒 安永麟 安永和
3 安孚
4 安珦
5 安于器
6 安頂 安牧 安愼
7 安瑗崇
8 安瑗 安祖同 安垂
9 安從約 安從禮 安從義 安從廉 安從信 安從儉
10 安玖 安璟 安琇 安理
11 安重厚 安謹厚 安寬厚 安敦厚 安仁厚
12 安琳 安理 安珪 安瑊 安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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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安處恭 ------ 安處儉 안자명(安自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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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安瓘 -- 安琠 安留 --------- 安瑞 --------- 安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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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安繼宗 安興宗安光宗 安應宗-安應國-安應慶 安應祚-安應禎 安應震-安應霖-安應雯 |
안찬(安瓚)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