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언 -배수진-
1: 크루즈 여행
공 여사는 70이 넘은 나이에도 하이힐을 신고 다닐 만큼 건강했다.
외국영화의 키 큰 여배우를 연상시키고 쎈스 있고 교양 있고 사투리도 없는
서울 사람의 언어를 구사하는 달변가였다.
대화를 나눌 때도 언제나 주도권을 잡고 결론도 자신이 내리는 자신감이 넘치는
완벽 주의자였다.
그 완벽주의자의 모습이 싫어 떠나 버린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것에는 떠나버린
버스처럼 미련도 없는 공 여사였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지~”
부동산 컨설팅으로 부를 축척하였고 축척된 부를 노후의 삶에 멋지게 쓰는 멋쟁이여서
늘 친구들을 몰고 다녔다.
그런 반면에 공여사의 남편은 지병을 앓고 있었다.
그리 심한 편은 아니었으나 건강 염려증으로 이병 저병 조금만 의심이 가면
후배가 운영하는 종합병원을 찾아가 상담을 자주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요즘 들어 불안 초조로 아내를 조르는 날이 많아졌다.
“여보, 우리가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를 해야 될 것 같아서 그러는데
우리 노년의 행복을 위하여 마지막”
공 여사는 이미 그 뜻을 알고 있어 마지막이라는 말에서 말을 잘랐다.
“또 마지막여행 그 소리하려고요? 아, 됐어요.”
마지막이라는 말만 나오면 짜증이 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 여사는 그 말 좀 할 수 없느냐고
그렇게 예기를 했지만 남편은 그 말을 잊고 또 하곤 했다.
“여보,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 이제여행을 다니며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합시다.”
공 여사는 속으로 꾹꾹 눌러 참으며 아이를 달래듯 남편을 달랬다.
“여행? 그건 좋아요 근데 제발 ‘마지 막 마지막’ 그 말 좀 하지 말아 주세요~”
“여보, 알았어요, 마지막이라는 말은 실언이었네”
남편은 자신의 말이 실수를 인정하자 이때다 싶어 공여사의 말이 또 길어졌다.
그런 말을 다시는 하지 못하게 각인 시키려는 생각이었다. 매사 헛일이었지만.
“나는 할 일도 많고 이상이 높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나는70에 할 일 80에 할 스케줄이
빡빡한데 왜 자꾸만 죽는다는 말을 해요?
나는 죽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나도 모르게 죽었으면 죽었지 병들거나 죽는 날 알고
사는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계산하며 그렇게 비참하게 죽기는 싫어요.
나는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재미있게 살면서 아름다운 추억들은 많이 만들고 싶어요.”
남편은 한번 터지면 길어지는 아내의 말을 빙그레 웃음으로 끊었다.
“여보 추억 많~이 많이 만듭시다.”
공 여사는 그렁그렁 눈물이 맴돌았다. 말꼬리가 점점 느려지며 회상에 잠겼다.
“저는요, 인생 말년에 힘이 없고 맥박이 느려질 때 멀리 바다가 보이고 산이 보이는
정원 흔들의자에 앉아 지난날 아름답고 행복했던 일들을 회상하며 잠자는 듯
그냥 죽고, 아니지 가고 싶어요.....”
이쯤 되자 남편은 두 번째 실언을 인정하는 목소리가 되었다.
“알았어요, 마지막이라는 말은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제 절대로 안할게.”
공 여사는 마지막이라는 말이 무척 싫고 불쾌해서 종종 남편의 말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남편의 건강 나이가 자신보다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지병을 가진 남편의 처지가 되면 그런 생각이 들겠구나 싶은 마음이 갑자기 일어났다.
“여보, 당신이 원하는 크루즈여행 내가 인심한번 푹 썼다 갑시다.”
“여보, 무슨 일이야 당신이? 고마워 여보 알러뷰~”
공 여사는 즉시 여행사에 예약을 했다.
크루즈 여행의 부푼 꿈들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라 참을 수가 없어 친구들을 불렀다.
“아이들아 한번 모이자 우리 콘도로 와서 1박 하자”
언제나 부르기만 하면 달려오는 오랜 친구들의 오케이라는 대답에 공 여사는 한층 더 업 되었다.
“오케이, 우리는 공 여사님이 땡기면 오고 밀면 가는 성능이 아주 좋은 도르래지 뭐~ 푸 하하하하”
“저녁은 간단히 하고 내일 낮엔 횟집에서 알겠지?”
“알겠습니다. 공짜로 밥도 사 주시는 공 여사님 하하하”
공 여사는 저녁을 마치고 요즘은 비수기라 사무장을 두어 운영하는 콘도 황토 찜질방에 도착하여
사무장을 퇴근 시켰다.
남편은 아내가 즐거워하는 것이 기뻐 찜질방 불구멍에 장작을 더 넣으며 밖에까지
간간히 들려오는 아내와 친구들의 행복 담화를 들었다.
“아이들아 내말들어 봐라, 이번에 남편과 크루즈 여행을 가기로 예약을 했거든?
경비는 두 장 정도면 될 것 같아”
친구들이 부러움과 놀람의 눈으로 물었다.
“이천?”
써야할 때는 씀씀이가 큰 공 여사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 정도는 써야 되는 것 아니야?”
친구들은 맞장구를 쳐 주었다.
“하긴, 뱃삯이 오백정도면 두 사람이니까 천이고, 아냐 조금 모자랄 것 같은데 네 수준에는
한 장 더 써야 되는 것 아니야?”
경비 이야기가 대충 끝나가고 이번엔 타고 갈 배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 그러지 뭐~그리고 말이야 예약한 배가 14만 톤급으로 길이가 300미터에 폭이 40미터라고 해~”
친구들은 배도 부러웠다.
“우와~ 그러면 운동장 3개쯤 붙이어 놓은 것 같을 텐데? 부럽다 우린 언제 한번 가보냐 애들아 그치?”
“그래 공 여사가 부럽다, 아니 공 여사 남편이 부럽다 이렇게 멋진 아내를 두었으니 호호호.”
한껏 들뜬 공여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말이야 거기선 밤마다 연회를 여는데 그때 입으려고 드레스도 몇 벌을 준비 했다?”
“드레스까지? 하하하... 공 여사는 춤도 못 추는데?”
공여사와 격이 없는 사이의 친구들은 부럽기도 했지만 자신들도 부족함이 없는 풍족한 삶을
누리기에 이색적인 삶이 부러운 것이었다.
“아이들아 내 나이 70에 너무 야해서 입을 수 있을까 몰라~ 블랙, 레드, 화이트. 호호호....”
공 여사는 작은 가슴은 들어 보이며 농염한 포즈로 친구들을 한바탕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친구들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푸 하하하 너는 뭘 입어도 다 멋져 보여 굿이야~ 굿거리야 하하하”
공 여사는 최종 학력이 그들보다 낮은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이었지만 그들과 사회에서
어울려 사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친한 정을 오래 간직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