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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의 시지프스- 희곡작가 장 쥬네(Jean Genet, 1910-1986)
프랑스 연극에 있어, "장 쥬네"(Jean Genet, 1910-1986)는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는 죽는 날까지 아웃사이더의 자세를 견지했으며, 그의 연극미
학은 동시대에 활약했던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 외젠 이
오네스코(Eug ne Ionesco, 1912-1993), 로베르 뺑제(Robert Pinget, 1920-) 등
의 부조리 연극론의 담론을 공유하고 있다.
<부조리 연극>이란 무엇인가? 2차 대전 후 파리는 온갖 부조리가 횡행했
다. 정신적 공허감이 파리의 공기를 뒤덮었으며, 시민들은 여전히 전쟁의 후
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간이 가진 이성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모든 것
이 어수선하게 돌아갔다.
이러한 불합리한 현실에서 타자와의 소통이 가능하지 않는다는 명제 하에서
출발한 연극이 부조리 연극이다. 뿐만 아니라 '부조리연극'은 전통을 거부하
고, 단편적인 에피소드의 나열과 의미 없는 단어들의 주절거림 등의 실험적
인 작법들을 그들 자신의 연극 언어로 상정했다.
따라서 '쥬네'를 비롯한 부조리연극의 극작가들은 논리가 아닌 비논리, 이성
이 아닌 감정, 구조가 아닌 구조의 해체를 선언하였다. 20세기 전반기의 프랑
스철학계를 지배했던 앙리 베르그송(Hanri Bergson, 1859-1941)이 "의식의
직접 소여에 관한 시론(Essai sur les donn es imm diates de la conscience,
1889)"이란 저서에서 밝혔듯이, 언어는 그리고 그 언어를 둘러싼 의식의 표피
물들은 사유의 꼭지점 위에 하나의 원을 그리면서 회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본문엔 "윤곽이 뚜렷하게 정해진 어휘는 인간들의 제반 인상들 중
에서도 안정감 있고 보편적이며 따라서 비개성적인 내용을 저장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때에 따라서 생각들 가운데서 가장 덜 개성적이거나 거리감
이 있는 생각만을 표현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쓰여 있다.
즉 언어의 붕괴, 그리고 사고의 해체를 선언한 새로운 연극의 주창자들인
이들은 부조리 연극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서로 다른 개성들을 가지고 있었
다.
이를테면 이오네스코 연극은 초현실주의적인 성격이 강하며, 뺑제의 연극이
환상주의가 두드러진 특성이 있다면, 장 쥬네 연극은 잔혹극과 제의 연극적
인 성격이 나타난다. 이들은 1950년대 프랑스 연극의 전위임과 동시에 현대
연극의 새로운 조류로 등장했다.
이른바, 누벨바그(Nouvelle vague)의 시대였다. 한가지 특이한 사실들은 쥬
네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프랑스인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베케트는 아일랜
드인이며, 이오네스코는 루마니아인이었다.
1947년 4월 19일 루이 주베(Louis Jouvet)라는 배우이자 연출가에 의해 파
리 아테네극장에서 "하녀들"(les bonnes)이란 제목을 가진 연극이 초연 되었
을 때, 당시 프랑스 연극계는 이 작품을 충격적으로 받아 들였다. 이 작품을
쓴 사람은 당시 파리 교도소에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 중이던 30대 중반의
남자였다.
이 사람의 이름은 "장 쥬네". 1910년 파리 근교의 자선병원에서 창녀의 사생
아로 태어났으며, 고아원에서 자라고, 7살 때 중부 모로 지방의 한 농부에게
입양되었으나, 그의 나이가 10살이 되었을 때, 절도범으로 소년원에 수감되었
다.
이후 거의 20년 간을 매춘, 거지, 도둑, 동성연애자로 전유럽을 떠 돌다 스
페인국경에서 절도범으로 강제 추방 당했던 장 주네는, 악명높은 외인부대에
들어갔다가 탈영을 감행하고 또다시 예의 그 범죄의 세계에 몸을 담근다. 그
러다 그의 나이 26세 때, 파리고등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장 쥬네.
그가 감옥에서 쓴 처녀장편소설 "꽃의 노트르담"과 "사형수"란 시가 당시
파리에서 간행되던 문예잡지 현대(Les Temps Modernes)와 원탁(La Table
ronde)에 실린 것을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가 우연한 기회에
접하고서 매료되었으며,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2)와 장
콕토(Jean Cocteau, 1887-1963)가 그의 소설에 매혹되어 결국 법원에 그의 사
형선고를 종신형으로 감원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그의 문학적 재능은 뛰
어난 것이었다.
60년대 프랑스연극계를 모로코태생의 스페인 희곡작가인 페르난도 아라발
(Fernando Arrabal, 1932-)의 시대라고 했을 때, 50년대 누보 떼아뜨르
(Nouveau T tre, 신연극)의 시대는 장 쥬네의 시대였다.
그의 첫 희곡 작품은 "사형수 감시"(Haute Surveillance)란 제목의 희곡이었
지만, 첫 번째로 공연된 작품은 "하녀들"(Les Bonnes)이란 세 개의 시퀀스로
나뉘어진 단막극의 작품이었다. "하녀들"이 초연된 1947년의 연극은 그 시대
관객들과 비평가들에게 하나의 충격이긴 했으나, 그 이상의 반향은 없었다.
단지 인상적이었다는 것이 하녀들이란 연극에 관한 비평가들의 견해였다.
그러다 1961년 장 마리 세로(Jean Marie Sereau)의 연출에 의한 연극이 희곡
작가 "장 쥬네"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966년 리빙 시어터(Living Theatre)에 의한 연출은 이 희곡 작품에
관한 관심을 증폭시키게 하였다.
이후 많은 극단들이 앞다투어 장 쥬네 희곡을 공연하였으며 이 중에서도 아
르헨티나 태생의 연출가로 뉘리아 에스페르(Nuria Espert)란 극단을 이끌며
공연하던, "빅토르 가르시아"(Victor Garcia)가 가장 독창적인 연출력으로 장
쥬네 연극의 새로운 창조를 선 보였다고 평가 받았다. 우리는 하녀들이란 희
곡작품을 장 쥬네 연극의 출발점으로 보고 이 작품을 문학적 텍스트로 분석
하려 한다.
*솔랑주(Solange)와 클레르(Craire) 두 자매는 하녀이다. 그녀들은 대부루조
아인 마님(Madam)을 모시고 마치 종처럼 혹은 가구들처럼 살고 있다. 검은
하녀 복장을 늘 착용해야 하고, 퀘퀘한 냄새가 나는 부엌과 다락방이 유일한
생활공간이다.
마님은 하녀들을 인간이라기보다 물체처럼 취급한다. 마님 앞에서 두 자매
는 절대 순종의 자세로 자신들을 위장하지만, 내심으로는 마님, 자신들의 삶,
나아가 부당한 사회를 무섭게 증오하며 복수를 꿈꾼다.
두 자매는 마님이 외출한 틈을 타서 번갈아 마님과 하녀 역활을 하며 마님
놀이를 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막이 오르면, 마님의 안방에서 이제
막 마님 놀이가 시작되려고 한다.
마님처럼 화장을 한 '클레르'는 하녀들의 고무장갑을 가지고 놀고 있는 솔랑
주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어서 마님의 옷을 입히라고 호령한다. 그렇게 시작
된 마님 놀이에서 마님(클레르)은 표독하고 독선적이며, 하녀들을 구역질나는
물체처럼 마구 다룬다. 또 하녀(콜랑주)는 짐승처럼 굽신거리고 때로는 증오
로 으르렁거리면서도 모든 모멸을 감수한다.
그러나 마님 놀이 사이사이에 하녀들은 문득 자신의 고착 관념, 즉 마님을
살해하고픈 욕망과 마님에 대한 선망, 하녀들 사이의 변태적 욕정을 분출함
으로써 연극 놀이는 무의식적 광기들로 얼룩진다.
한편 솔랑주와 클레르의 대사에 간간히 섞여 나오는 현실의 이야기는 두 자
매가 마님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님의 정부인 나리(Monsieur)를 절도범으로
고발했다는 것, 그래서 구속된 나리를 석방시키기 위해 마님이 외출했다는
것, 두 하녀는 주인들(나리와 마님)이 당할 불행과 몰락에 대한 기쁨으로 흥
분해 있다는 것 등의 정보를 알려준다.
마침내 하녀들의 광기와 살의가 절정에 달해 하녀(솔랑주)가 마님(클레르)의
목을 조를 때, 마님의 귀가 시간을 알리는 자명종이 울린다. 여기까지가 첫번
재 시퀀스에 해당하는 마님 놀이이다.
두 번째 시퀀스가 시작되기 전 마치 막간물처럼 하녀들의 공포와 사드-마조
히스트적인 광란의 장면이 벌어진다. 그 사이 구속에서 풀려난 나리의 전화
가 걸려오는 바람에 자신들의 범행이 탄로날까봐 공포에 떨면서 하녀들은 서
로 때리고 학대하다가도 서로 애무하고 끌어안는다.
정부인 나리의 투옥으로 상심해 있는 '마님'은 귀가하여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은 물건들과 클레르의 얼굴에서 지워지지 않은 연지를 발견하고 의아해한
다. 나리의 석방소식을 모르는 마님은 하녀들에게 옷을 나누어주겠다고 선심
을 쓰고, 그 동안 클레르는 부엌에서 수면제를 다량 투입한 보리수차를 가지
고 나와 마님에게 마시도록 은근히 강요한다.
그러나 잘못 놓인 수화기 때문에 하녀들은 나리의 석방소식을 마님에게 이
실직고하지 않을 수 없다. 보리수차를 마시려던 마님은 환성을 올리며 나리
를 찾아 무대를 뛰쳐나간다. 마치 노래부르듯 마님이 도망간다라고 말하면서.
그 대사는 보리수차로 마님을 독살하려던 하녀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 갔음
을 조롱하듯 들린다.
세번째 시퀀스에서 솔랑주는 방안의 물체들을 잘못 정돈하고 항상 서툴러서
놀이나 실수의 흔적들을 남기는 '클레르'를 심하게 모욕한다. 그리고 범행이
발각되기 전에 서둘러 도망가자고 재촉한다. 그러나 클레르는 도망갈 곳도,
해결책도 없다는 절망을 드러낸다.
두 하녀 사이에는 거의 발작적인 애증 관계가 펼쳐지고 그 동안 억눌러왔던
광기들이 폭발한다. 불안과 광기가 교차되면서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 클레르
는 관객의 면전에서 다시 검은 하녀 복장 위에 마님의 흰 드레스를 입고 마
님의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언니 솔랑주를 하녀로 다루면서 다량의 수면제가 든 보리수차를 가
져오도록 명령한다. 주저하는 솔랑주를 다그쳐 보리수차를 받아든 클레르는
마님처럼 우아하게 보리수 차를 마시고 쓰러질 때 막이 내린다.
*신현숙-20세기 프랑스연극. p,209-210(문학과 지성사,1997)
희곡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축은 두 자매와 마님과의 관계, 그리고 두 자매
의 관계와 서로 얽혀 들어가는 데 있다. 마님을 부러워하며 동시에 증오하는
클레르와 솔랑주는 마님 놀이를 통해서 의식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지만
결극 자기파괴의 행위로 말미암아 비극적으로 끝나게 된다.
여기서 마님 놀이란 억압받고 있는 욕망에 대한 그들 자신의 투영이며, 또
한 그것은 흉내내기에 다름 아니다.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와 이미지의 중첩
은 마님과 솔랑주와 클레르의 사이에 반사되고 있다.
심리학자 "자끄 라깡"(Jacques Lacan, 1901-1981)에 의하면 거울영상은 이
중자아를 의미한다고 했다. 라깡의 초기이론에 해당하는 중요한 개념으로써
상상계(the imaginary)와 상징계(the symbolic)가 있다.
1946년 여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제 14회 국제정신분석회의에서 발표
된 논문에 처음으로 모습을 선 보인 라깡의 욕망이론은 "정신분석경험에서
드러난 주체기능 형성모형으로서의 거울단계"(Le stade du miroir comme
Formateur de la fonction du Je, telle qu'elle nous est r v l e dans
l'exp rience Psychanalytique' , in crits)라는 다소 긴 제목을 표제어로 가진
학술논문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 논문에서 라깡은 약 6개월에서 8개월정도 된 아기는 자신의 거울이미지
를 인지하고 거기에 반응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아기는 처음으로 자신을 인
식하게 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서이다.
자신과 동떨어져 있는 신체상 완벽한 이미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행위는
부족을 욕구로 바꾸어 놓는데, 이 욕구가 증폭되어지는 과정 속에서 아기는
자아의 획득을 시도한다고 한다.
이와같이 완전한 자기현존(self-presence)을 향한 자기도취적인 열망의 단계
를 라캉은 상상계라고 정의했다. 분열된 자아의 상태, 클레르와 솔랑주는 두
사람의 복수형이면서 또 한편으론 한사람의 단수형으로 보여진다.
극이 중반에 다다르면 솔랑주와 클레르의 관계는 마님과 하녀의 관계로 전
환되고, 여기에 마님에 대한 선망과 증오는 나리에 대한 올가미를 씌우게 되
고 마침내 이 올가미는 그들 자신의 올가미가 된다.
마님(클레르)과 하녀(솔랑주)는 두 자매의 일그러진 자아로 대변되는 것이
다. 이 두 자매는 서로의 모습 속에서 숨겨진 욕망을 본다. 그 욕망은 그것이
현실에서 가능하지 못한
욕망이기에 더욱 커진다.
연극에서 클레르와 솔랑주는 한 사람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들은 동일
한 욕망 안에 스스로 갇혀 있다. 그 욕망과 현실과의 거리감이 그들에게 마
님 놀이를 하게 만들고 있다. 그들은 어수룩하고 또한 바보스러운 우리들 자
신의 모습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두 자매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억누를 수 없는 마님에의 동경과 증오이다.
이 뒤틀린 의식은 두 자매의 마님 놀이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율배
반적인 성격을 하녀들에게 부여함으로써 연극은 부조리극의 지점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장 주네는 이 두 자매와 마님을 통해서 당대의 모순을 극명하게
비추고 있다.
그 모순이란 다름 아닌 전쟁 직후의 혼란한 사회상이며 부루조아와 프로레
타리아로 대립되는 당대의 정치적 병리현상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되어진다.
솔랑주와 클레르는 근친상간에다 동성애를 하기도 하며, 이들은 음모를 꾸미
기도 한다.
그러다 그 음모가 탈로 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외부로 향한 칼은 방향을
돌려 자기파괴적인 행동으로 치닺는다. 두 자매의 의식세계는 안과 밖의 구
분이 없다.
이 말은 현실과 환상이 두 자매에게는 구분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두 자
매에게는 환상이 현실이 되며 현실이 환상이 된다. 그리고 그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극작가 자신이 서 있다. 장 주네의 연극미학은 이렇듯 혼돈된 세계에
대한 자기 발언에서부터 시작된다.
마님과 나리는 중산층계급의 허영과 이중심리를, 솔랑주와 클레르는 프로레
타리아계급의 자기분열을 암시하는 것이다. 주네는 이 연극에서 세계에 대한
모든 부조리는 인간의 욕망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적 일탈행위가 자기부정의 모순으로, 사회병리현상으로 전도된다는
것이다.
동시대의 자연과학자 조르쥬 깡기옘(Georges Canguilhem, 1904-1995)이 그
의 저서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에 관한 몇 가지 질문를 위한 시론"(An
Essay on Some Problem Concerning the Normal and Pathological, 1943)에
서 "규범은 위반을 통해서만 그 자체로서 인정된다. 기능은 와해에 의해서만
드러난다. 생은 자연히 부적응, 실패와 고통을 통해서만 의식과 과학에 떠오
른다"라고 밝히고 있다.
깡기옘은 생은 결코 멈추지 않는 초월적 원동력이며 불안정, 무규칙, 비정상
그리고 병적인 불건전으로 특징 지워지는 생명에너지의 광포한 흐름으로 파
악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이라는 존재는 삶이라는 수레바퀴 속에서 하나의
응축되어진 사물이며 그 존재에 대한 의식의 목동으로 상정할 수 있다. 그
목동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목동일 수도 있고, 헤겔
(Georg Frederic Hegel, 1770-1831)의 올빼미일 수도 있다.
또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칼 융(Karl Jung,
1875-1961)이 힘주어 이야기한 불특정 다수의 집단화된 무의식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주네의 목동은 무엇일까? 아니 주네 자신은 목동이 아니라 하이에
나였다.(단, 여기서 하이에나라는 말은 과거분사형이다. 그러니까 하이에나 였
었었다가 좀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그렇다. 쥬네는 목동이 아니라 하이에나였다. 그러나 쥬네의 하이에나는 꿈
꾸는 하이에나라는 데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만약 쥬네 자신이 그 사방
이 꽉 막힌 감방 안에서 글쓰기라는 행위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우리들에게
희곡작가 장 쥬네가 아닌 사형수 장 쥬네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 차이는 대단히 중요한 차이이며, 아주 엄청난 차이라는 데 필자는 주목
하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쥬네에게 있어 문학 행위는 자기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는 행위와 그 행위를 망각하려는 의식의 산물이라고.
그의 생애동안 단 한번도 초등학교를 비롯한 정규교육의 해택을 받지 못했
던, 장 쥬네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행위는 그리 만만한 행위가 아니었을 것이
다.
바다 건너 아메리카대륙의 말콤 엑스(Marlcom X, 1925-1965)가 감옥에서부
터 사전을 뒤적이며 알파벳과 그 의미를 하나하나 배워갔듯이, 장 쥬네 또한
프랑스사전을 옆구리에 끼고서 단어 하나하나를 익혀 갔던 것이다.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이 말이다.
언젠가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장 쥬네의 글쓰기의
욕망은 망각으로부터 시작되어진다. 그 잡지의 기자가 "당신은 스스로 인생을
어디로 인도하려고 하는 것입니까?"라고 물었고, 쥬네는 "망각입니다. 우리들
행동의 대부분에는 애매한 것이라든가 방랑자의 불확실한 상황이 따라다니게
마련입니다.
그 불확실한 상황을 뛰어넘기 위해서 우리들이 의식적인 노력을 한다는 것
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서 그 상황을 뛰어 넘으려 합
니다."라고 대답했다.
즉, 이 말은 사방이 막혀있는 감옥이라는 벽 앞에 있는 자의 심리적 박탈감
을 자기부정의 언어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글쓰기의 숨겨진 욕망을 밝견했
으며, 또한 도처에 절망이 깔려 있는 불안한 상황을 문학이라는 매개를 통해
서 세상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존재의 부조리를 깨뜨리려는
제의(Ritual)로써의 연극론이 탄생한 것이다란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
가 그 자신이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을 때, 그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행위로써 시를 썼던 것과 동일한 행위로써 주네는 그 자신의, 그러니까 내부
로부터의 고독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글쓰기( criture)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
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작품 '하녀들'에 관한 장 쥬네 자신의 견해를 들어봄으로
써 우리는 문제의 희곡작품에 좀더 핵심적인 접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이는 세계를, 즉 신들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들의 행위를 너무나도 정확하
게 묘사하는 부류의 연극의 우울함에 대해서 당시 이미 불만을 품고 있었던
나는, 하나의 차이를 만들어내서 그것이 낭송조의 어투를 가능하게 함과 동
시에 연극 위에 또 하나의 연극을 올려놓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이렇게 해서 등장 인물이라는 것을 없애 버리고-등장 인물이란 보통
심리상의 약속에 의해서만 성립되는 것이므로-그 대신 몇 개의 상징적 기호
를 획득하려고 했다. 그 기호들은 그것이 우선 의미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과
는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부여받는 것에
얽혀 있어서, 그 연결에 의해서만 작가를 관객과 결부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무대상의 인물을 그가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은유(m taphore)로 만
드는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 자끄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
가 은유에 관해 어떤식으로 해석하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데리다는 그의 저서 '백색 신화'(La Mythologie Blanche)에서 "은유. 이 단
어는 복수로만 쓰여진다. 만약 철학적 관점에서 은유가 단수로 가능하다면,
만약 우리가 그것들의 유희를 은유들의 집합이나 일군의 은유들로 환원할 수
있다고 상정할 수 있다면, 게다가 어떤 하나의 '중심적인' 혹은 '기초적인' '원
리적인' 은유로 환원할 수만 있다면 이제 더 이상 진정한 은유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직 진정한 은유를 통해서만 제대로 읽혀졌다는 것이
확인될 수 있다. 은유적인 것은 다양한 즐거움 중에서 구문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철학에 있어서도 자신의 의미와 역사 속
에서... 자신의 주제(존재의 의미와 진리)의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현존 속
에서 고갈되지 않는 하나의 텍스트를 야기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
다." 라고 밝히고 있다.
데리다의 말처럼 은유는 의식의 층위에 대한 또 하나의 체계이다. 그리고
그것은 설명하고 이야기하는 언어의 특성에 맞추어져 있기 마련이다. 장 주
네의 연극언어는 바로 이러한 체계에 대한 독백이며, 또한 주절거림의 반향
이다.
쥬네 자신은 "내가 극장에 가는 것은 무대 위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내가
결코 볼 수도, 꿈꿀 수도 없는 것 같은 그런 모습으로 바라보기 위해서이다.
또한 그 모습은 나 자신이 그렇다고 알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라는 말로 그
의 연극언어를 설명하고 있다.
쥬네는 연극을 통해 서양연극의 오랜 전통을 부정하고 그 자신의 독특한 체
험의 세계가 반영된 연극언어로 빚어내었다. 그것은 새로운 연극의 시대를
알리는 첫 신호탄이었다. 바야흐로 전위연극의 시대였으며 장 쥬네란 이름은
누보테아뜨르(Nouveau T tre)와 동의어였다.
그는 전 생애를 통해서 9편의 희곡과 약 4편의 장편소설, 그리고 1편의 발
레 작품을 남겼다.
그 중, 돌풍(Rafale), 스풀랜디드스(Splendid's) 이렇게 두 편의 희곡은 아직
까지 출판되지 않고 있으며, 사형수감시(Haute Surveillance), 하녀들(Les
Bonnes), 아담 미르와르(Adame Miroir),등의 1940년대 후반에 발표된 희곡작
품과 발코니(Le Balcon), 검둥이들(Les N gres), 병풍(Les Paravents)등 50년
대 중반의 희곡작품이 연극무대에서 연출되었다.
장 쥬네 연극을 보고 일군의 비평가들은 잔혹연극, 전위극, 혹은 반연극
(Anti-Th tre)이란 단어로 명명하고 있다.
그는 연극을 하나의 제의로써 파악하고 있었고, 여기에 더해 동양적인 명상
의 세계를 희곡에 집어 넣었다. 그의 희곡작품 중, 플레이야드상을 수상한 하
녀들의 서문으로 쓴 '뽀베르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연극적으로 말해 나는 미
사 의식 이상의 효과적인 것을 아직 모르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동양적인 것에 대한 동경과 전통적인 서양연극에의 혐오를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능동적인 상징이 깊이 얽히고, 그 상징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
으면서도 모든 것을 예감케 해주는 듯한 언어로 관객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
는 연극을 꿈꾸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런 쥬네의 연극미학에 프랑스정부와 우파들은 폭력으로 그의 연극이 상영
되는 것을 막으려 들었다. 이를테면 창녀의 집에 파리경시총감이 들락대는
줄거리의 "발코니"는 초연 이후, 4년간이나 공연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당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알제리 독립군을 주인공으로 설
정한 스토리의 "병풍"이란 연극을 초연한 국립국장(T tre de Fance)이 국회
예산위원회에서 국고 보조금 삭감을 당한 사실, 그리고 쥬네의 작품을 공연
했다는 이유로 극우파세력이 깡패들을 동원하여 위세트 극장을 에워싸며 실
력행사를 한 사건들에서 알 수 있듯이, 당대의 보수적 지식인들에게 장 쥬네
라는 범죄자가 프랑스연극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 눈에 아니꼽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평생동안 프랑스 시민권을 단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으며, 따라서 프랑
스 시민이 누릴 수 있는 어떤 권리도 영위하지 못했다. 그러나 장 쥬네는 그
의 문학행위를 통해 위선적인 지식인들에게 하나의 경고를 보냈다.
그 경고는 무산게급의 저항심리였으며, 그것은 유산계급에 대한 룸펜프롤레
타리아의 분노였다. 그 분노를 장 쥬네는 희곡에서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대
신, 상징과 알레고리를 통해서, 그러니까 은유의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연극계에 거대한 자취를 남겼으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 범죄자
로써의 장 쥬네보다는 희곡작가로써의 "장 쥬네"로 남게 되었다. 그 기억의
지속작용이 장 쥬네를 현대연극의 시지프스로 불리우게 하였다. 아방가르드
연극(avant-garde)의 사도로써 추앙 받고 있는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 1896-1948) 이후, 전위연극의 진정한 계승자는 바로 장 쥬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