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회 총회 특집-대한민국과 한국교회 그리고 우리 교단 읽기
“이것이 정치다”
이것은 정치다. 정치는 윤리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항상 윤리적으로 정치하지 않는다.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 그러나 그 승리가 항상 정의롭지는 않다. 사건을 쫓으면 천박해지고 사람을 따르면 비참해진다. 그러므로 반드시 사조(思潮)를 읽어내야 한다. 그 사조를 읽어내는 자가 큰 정치를 할 수 있다.
정치가 신학을 결정하는가 아니면 신학이 정치를 결정하는가. 많은 이들은 신학이 정치를 결정한다고 믿으나, 실상은 정치가 모든 신학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지난 100년 동안 총대들이 총회로 모여 4박 5일간 성경과 헌법 그리고 결의라는 형식의 거룩한 정치행위를 거행한다.
이것은 정치다. 정치는 퍼포먼스이다. 예장통합 특별사면위원회는 9월 12일(월) 특별사면 선포식 퍼포먼스를 갖고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레마선교회 이명범, 그리스도인들도 지옥 간다는 장로교 이단 변승우, 귀신론 김기동을 이단에서 특별사면한다는 빅 이벤트를 끝냈다. 정치는 이벤트다. 정치 이벤트는 종종 절차가 생략되고 뒤바뀐다. 특별 사면 대상자들이 회개했기에 이단에서 해제된 것이 아니라, 이단에서 해제한다고 하니 거저 감사했을 뿐이다. 신학은 회개하라고 요구하지만, 정치는 입장 표명과 결단을 요구한다. 그래서 정치 특히 이단 해제 정치는 이벤트다.
국가법에서 사면은 두 가지가 있다. 일반사면은 ‘특정 범죄의 종류를 지정’해 그 죄목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모든 사람에게 형 선고 자체를 소멸시켜준다. 특별사면은 형을 선고 받은 사람 가운데 대통령이 특정인을 지정해 그 벌을 면해 준다. 즉 일반사면은 특정 범죄에, 특별사면은 특정인에게 행하는 사면이다.
예장통합의 이번 사면 퍼포먼스는 범죄한 ‘특정인’을 특정했기에 특별사면이 맞다. 그러나 예장통합 특별사면위원회의 보고를 제101회 총회에서 채택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특별사면 받은 자가 속한, 그들의 이단 집단들도 자신들도 무흠하다며 축포를 터뜨리고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예장통합 특별사면의 논리대로라면 ‘귀신론 이단 김기동’은 특별사면을 받았다. 하지만 김기동이 속한 성락교회와 김기동의 아들 이승현 그리고 그와 관련한 모든 단체는 특별사면과는 관계가 없다. 같은 논리가 박윤식과 변승우 그리고 이명범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정치다. 정치는 신학을 뛰어넘는다. 예장통합의 이번 특별사면 이벤트는 우리 교단 한기총복귀추진위원회에 맞선 정치적 결단이라는 시각이 있다. 우리 교단은 제100회 총회에서 한기총복귀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한기총 복귀를 시도했다. 한국교회 대표적인 연합기관인 한기총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기총이 먼저 이단들을 쫓아내야 우리 교단이 복귀할 수 있다는 입장과 우리 교단이 한기총에 복귀해서 이단들을 내쫓고 한기총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정치적 결단과 신학적 견해가 맞서 발목이 잡혔다. 대표적으로 지난 8월 18일(목) ‘류광수 다락방 관련 공청회’에서 이단 해제에 반대 의사 표출이 그것이다.
그러는 사이. 예장통합이 한 발 앞서 ‘이단 특별사면’이라는 발 빠른 정치적 결단으로 대처했다. 우리의 정치적 결단에 신학적 견해에 막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예장통합은 신학적 견해를 뛰어넘는 정치적 결단으로 이단 해제 퍼포먼스를 이루어낸 것이다. 이것은 정치다. 정치는 기 싸움이다. 기 싸움의 제1법칙은 선점이다. 전문용어로 ‘선빵’이다. 우리 교단은 항상 기 싸움 즉 선제공격에 늦다.
그렇다. 우리 교단과 이단사이비피해대책위원회의 신학적으로는 류광수, 김기동, 박윤식도 이단 해제가 안 된다. 그러나 정치는 할 수 있다. 예장통합 이대위도 신학적으로는 이단해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결국 정치적으로 이단 해제에 동의했다. 그러므로 정치는 신학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항상 신학적으로 정치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교회 연합 활동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항상 신학적으로 정치하라고 가르친다면, 한국교회는 행동하고 책임지는 정치와 정치가는 항상 비난받고 입만 살아 있는 무책임한 도덕선생들만 차고 넘칠 것이다.
이것은 정치다. 정치는 도덕 선생들이 낄 자리가 없다. 우리 교단 대표적인 목회자 연합체인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이건영 목사, 교갱협)가 제101회 부총회장 후보에 관한 공개질의서를 총회선관위에 냈다. 그런데 교갱협은 교단 정치에서 손 떼기로 하지 않았는가? 자꾸만 정치적 질의하지 말고 현실 정치로 복귀하라. 교단 정치권들이 손에 피 묻히며 정치하는데, 교갱협이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으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다들 목숨 걸고 목회하고 또 정치하고, 생계 위협 받아 가며 기사 쓰고 있는데. 고갱협은 어째서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돈가스 먹으려 하는가.
이것은 정치다. 정치는 나이를 뛰어넘기 힘들다. 초고령화 사회,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에서 정년 연장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아무런 대책 없는 정년 연장은 특히 한국교회에 재앙을 불러온다. 제101회 총회 헌의안 중에서 교회 직원 정년을 만70세에서 73세 혹은 75세로 늘리자는 안이 있다. 실험적으로 우선 73세로 하되 최소한 두 가지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 하나는 정년 연장은 단 한 번만으로 제한하되, 반드시 공동의회 ⅔ 결의가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연장된 정년기간 동안 목회자는 오로지 교회 목회만 해야 한다. 즉 지교회 당회장권만을 가지고 노회와 총대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제한돼야 한다.
이것은 정치다. 정치는 대안 마련이다. 총회 선관위가 부총회장을 확정하는데 매우 어려워졌다. 부총회장 후보들도 그리고 총회선관위도 시간을 너무 허비했기 때문이다. 김영우 목사의 조건부 총장직 각서로는 선관위와 총대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 정용환 목사도 돈 한 푼 쓰지 않는 깨끗한 선거운동을 자랑하는 시기도 놓쳤다. 두 후보는 마치 부총회장 도전에 포기한 사람들 같다. 그렇다고 총회선관위가 이 시점에서 두 후보를 내세워 총대들의 뜻을 묻기도 어려워졌다. 이제 남은 카드는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총회선관위가 두 후보의 자격 부여 여부를 총회석상에서 총대들에게 직접 묻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두 후보가 부총회장에 적합하지 않다는 총대들이 결정에 대비해 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즉 호남에서 그리고 중부에서 한 인물을 부총회장 후보로 준비해야 한다. 정치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다. 차선이 아니면 차차선이다. 차차선이 아니면 차차차선이다.
이것은 정치다. 정치는 어떨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공교롭게도 부서기 후보 두 사람의 출신이 영남과 호남이다. 두 사람의 근거지는 서울서북이지만 출신은 영남과 호남이다. 영남인들은 영남사람이, 호남인들은 호남사람이 부서기 선거에서 이긴다고 말한다. 때론 인물도, 이론도, 정책도 묻지 않고 자기 출신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두 후보는 표면적으로는 영남과 서북지역, 호남과 서울지역 후보이다. 그렇다면 결국 중부지역 총대들이 손을 들어주는 쪽이 승리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기 지역을 지키는 자가 최후 승리자가 된다는 선거 불패 전략이다.
이것은 정치다. 정치는 심는 대로 거둔다. 총회 임원 후보 정견발표회에서 위원장 백남선 목사는 “발람이 뇌물을 유혹을 버리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타락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결국 발람은 칼에 맞아 죽는다. 총회 개혁의 발목을 잡는 것이 돈이다. 그 검은 돈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그 돈을 준 사람의 앞잡이가 되어 총회가 지탄받아 왔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곧 끝난다. 하나님의 나라 세우는데 헌신하자.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탐심 때문에 하나님 나라 세우지 못하고 허물고 있다. 심는 대로 거둔다. 더 이상 검은 돈은 받지도 주지도 말자.”
이것은 정치다. 정치는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다. 제101회 총회 임원 후보자들이 정견 발표에서 유난히 강조한 것이 “총회결의준수”였다. 때문에 성경과 헌법 그리고 규칙과 결의에 승복하려는 건강한 임원 후보들이 제101회 총회를 섬기겠다는 선언이 우리 총회 미래이다. 그러나 총회 결의에 불복하고 국가법과 사학법에 기대어 서려는 자들에게는 미래는 없다. 총회결의를 뒤집으려는 그 어떤 논리도 법정투쟁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총회는 장로교 헌법과 총회 결의 그리고 정치 논리와 세력으로 정치하는 곳이다. 이러한 정치행위 결과가 어떠하든지 간에 깨끗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앞으로 우리 총회는 헌법과 총회결의를 지킬 의지가 없는 자들과 이에 저항하는 자들에게 더 이상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정치다. 정치에서 양 극단은 매우 위험하다. 좌측 끝에 친노 있고, 그 교주는 문재인이다. 우측 끝에 친박 있고, 그 바지사장은 반기문이다. 두 사람은 2017년 대선 필패 카드이다. 왜? 문재인은 따뜻한 남쪽보다 얼어붙은 북 정권을 더 좋아하고, 반기문은 남자와 여자보다 동성애자를 더 사랑하니까. 한국교회는 북 정권과 동성애자를 사랑하는 자들을 반대한다. 그러므로 대권을 꿈꾸는 자들이여! 2017년은 더불어도 아니고 새누리도 아니다. 문재인의 친노와 박근혜의 친박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얼씬거리면 시간이 아깝다. 그런데 철수는 어디 갔노? 철수하고 없네. 이제 희망의 이름을 나열하자. 대구의 유승민과 김부겸. 충청의 안희정. 경기도의 남경필. 제주도의 원희룡. 경상남도의 모든 빚을 갚은 홍준표와 호남의 중심 박지원. 그리고 혼자 힘으로는 그 어떤 일도 불가능해진 수도권의 김문수와 이재오가 힘을 합한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희망이 생긴다. 어느 날. 박지원이 부겸과 승민을 한 마당으로 불러 대선 경쟁을 성사시킨다면 크게 흥행한다. 2017년 겨울. 그렇게 탄생한 당은 친노도 친박도 아닌 제3의 당, 그 이름은 “희망당”이다. ‘통일희망’, ‘사회통합희망’, ‘세계평화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