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 3국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은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나라다. 지리적으로는 발트해를 사이에 두고 핀란드 스웨덴과 마주하고 있으며 폴란드, 베라루시, 러시아와도 맞닿아 있다. 이런 지리적 여건으로 인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들로 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들이다.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세계 1차 대전 후 독립이 되었으나 2차대전 후 소련방에 편입되었다가 1991년 민주국가로 독립하게된 나라들이다. 세 나라 모두 노래와 음악을 사랑하여 19세기 후반 부터 대대적인 노래축제를 열었고 1989년 8월 23일 에는 세 나라의 200만명이 손에 손을 잡고 인간띠를 만들어 민주화 의지를 세계에 알리기도 하였다. 그 때 만든 인간띠는 에스토니아의 탈린(Tallinn)을 시작으로 라트비아의 리가(Riga)를 거쳐 리투아니아 빌뉴스(Vilnius)까지 사람들은 손을 잡아 640km에 이르는 인간사슬을 만들었고, 노래를 부름으로써 소련에서 벗어나 결국 자유를 얻어낸 민족들이다. 우리는 발트 3국을 다니며 인간띠 사슬의 삼각점인 발자국을 찾기로 하였다. 모스크바에서 9시30분 비행기로 탈린으로 왔다. 비행시간은 1시간 30분 소요되었다 11시 20분에 가이드와 만나 탈린 시내로 이동하였다. 시내로 가는 도중 5년마다 노래대전이 열리는 곳으로 갔다. 광장에 들어서자 큰 동상이 우리를 맞았다. 그동상은 작곡가라고하는데 누군지는 생각이 안난다. 아래쪽으로 큰 무대가 보인다. 이 무대에서 노래대전이 열린다고 한다.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곳 크루즈가 정박하는 터미널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당 마샤(러시아어로 마리아)에서 샐러드, 생선스테이크, 그리고 후식으로 커피를 마셨다. 탈린이라는 말은 '덴마크의 도시'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덴마크의 지배를 받다가 은화 1톤에 독일로 넘겼다고 한다. 스웨덴 ,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1918년 에스토니아 독립전쟁으로 러시아로 부터 독립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슬픈 역사를 가진 탈린이지만 중세사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탈린의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올라있다. 점심 식사 후 우리는 탈린의 구시가지투어에 나섰다. 먼저 톰페아 언덕으로 갔다. 톰페아 언덕(Toompea)은 탈린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칼렙의 부인' 린다'가 돌을 떨어뜨려 생긴 언덕으로 리보니아 시절에 봉건영주와 주교들이 주로 무역과 장사를 하며 살던 신분이 낮은 사람(평민)들을 내려보며 살던 장소이기도 하다. 그 평민들이 살던 지역인 시청 광장주변은 저지대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은 1229년 독일기사단이 최초로 요새를 건설한 탈린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언덕이라고 하기에는 낮은 야트막한 구릉이라고 해야하나......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다보니 정상에 다왔다고 한다. 그 정상이 해발 50m정도 밖에 안된다고 한다. 잔디밭이 잘 조성 된 길을 따라 가다보니 작은 교회가 하나 나왔다. 이 교회는 내려오는 길에 들러기로 하고 중세시대의 망루이며 포탑(키예크 옌 데 쾨크)인 '부엌을 들여다 보아라' 으로 갔다. 망루를 지키는 병사들이 아래 민가의 부엌까지 들여다 봤을 만큼 망루가 높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탈린의 구시가지 전경을 볼려면 이 망루를 올라야한다. 꼬불 꼬불 나선형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층층이 공간이 나오고 원형탑 사방으로 난 포사격 구멍과 전망창이 있어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힘겹게 맨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전망창을 통해 내려다 본 구시가지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교회의 첨탑도 보이고 꼬깔지붕을 인 성곽의 망루도 보인다. 빨간색과 초록의 숲이 잘 어울린다. 망루에서 내려와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채의 건물안으로 들어가 관라하고 아래쪽에 위치한 하녀의 탑도 들어가 보았다. 내려가는 길에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의 교회를 둘러보았다. 이제 우리는 본격적인 구시가지 투어에 들어갔다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로 1시간 30분 비행끝에 우리는 에스토니아의 탈린에 도착했다.
5년마다 열리는 노래대전의 무대
작곡가와 함께
북유럽 크루즈선이 들어 오는 곳
금요일에는 핀란드에서 많이 들어 온다고 한다.
핀란드는 술값이 너무 비싸 주말을 탈린에서 술마시며 보내려고 온다네요.
그리고 돌아갈땐 쇼핑백 가득 술을 사간다고 하네요.
아무리 술이 비싸도 술쇼핑하러 이웃나라에 오다니 ㅋ ㅋㅋ
어디서 본 듯한 리무진이네요.
지난해 쿠바에 갔을때 구 소련의 낡은 차들을 올드 카 투어로 활용하던데. . . .
이곳은 광고용으로 사용하네요
탈린에 도착하여 먹는 첫 식사는 이곳 MASHA(마리아)레스토랑
야채샐러드, 스프, 생선과 감자가 있는 메인요리,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과 커피가 나왔다
탈린항 근처는 이런 카페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보도 불럭에 그려진 이 그림은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경고문 입니다.
툼페아성으로 올라가는 길
하녀의 탑
원통형 망루와 달리 사각형 탑에 각진 지붕을 얹은 모양이.
14세기 후반에 세웠는데 독특한 모양이어서
구시가지 저지대에서 금방 눈에 띄여 '매게데 토른(언덕의 탑)'이라고 불렸는데
19세기에 비슷한 발음의 '하녀'를 뜻하는 독일어로 와전됐다가 이젠 아예 '하녀의 탑'을
의미하는 에스토니아어 'Neitsitorn'이 됐습니다.
전면은 뜻밖의 모습을 하고 있다. 1960년대까지 사람이 살던 아파트였고
예술가들의 스튜디오로도 쓰였다가 1980년대 초반 카페가 됐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매표소 입구의 쇼핑샵
"KIEK IN DE KOK(키엑 엔 데 쾩)" 이라고 적혀있네요
톰페아 성이 있는 언덕 중간에 15세기 경 지어진 높이 38m, 지름 17.3m, 두께 4m인
포탑 겸 망루는 당시 병사들이 민가 부엌까지 훤히 볼 수 있는 높이라 해서
유머 있게 "부엌을 들여다보라"는 뜻의 독일 북서부 지방 말로
독일어인 "KIEK IN DE KOK(키엑 엔 데 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원래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있는 성채 망루에 붙은 이름이었다가
한자동맹 교역이 활발했던 탈린과 폴란드 그단스크 망루에도 붙었다고 한다.
같은 이름의 망루가 세 나라, 세 도시에 있는 셈입니다.
총 6층으로 되어있으며 외부에는 포사격 구멍과 전망 창이 나 있으며
수많은 전투를 치른 역사를 가진 방어 탑이다.
중세기사단의 갑옷
한 층 더 올라가자 바닥에 탈린 구시가지 성곽에 선 26개 망루-포탑들을
미니어처로 재현해놓았다.
망루로 올라가는 계단과 포사격 구멍
3층 공간의 전시물
전망창으로 내려다 본 구시가지 전경
옛 군인들의 모습
포와 포를 쏠때 필요한 장비들
카페가 만들어져있는 4층(?)누각
멀리 망루가 줄지어 서있는 왼쪽 작게보이는 첨탑과 돔 지붕이 보이는 교회가
에스토니아 정교회 주님의 축일교회이다
알렉산드 넵스키사원의 첨탑도 보인다
힘들게 올라온 가파른 나선형계단을 다시 내려가야한다.
넘어지면 안되니까 조심 조심!
쇠 난간이 달려있어 내려가기가 그나마 수월했다.
툼페아성(Toompea Castle)
"최고봉"이라는 뜻의 고지대 톰페아
탈린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언덕으로, 주위 도시보다 20~30m 높게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폭 400m, 길이 250m의 고지대이다.
1219년 성은 발데르마르 2세가 이끄는 덴마크의 십자군이 점령하였다.
성을 공격했던 덴마크 왕이 신으로부터 받았다는
흰 열십자에 붉은 소가 그려진 덴마크 깃발을 성위에 세웠다고 한다.
이후, 독일,스웨덴, 러시아 등이 이곳이 점령하기 시작하여 1889년까지 툼페아 언덕,
이 지역은특별한 권리를 지녔다.
툼페아 언덕 지역은 1878년 탈린의 저지대(시청광장을 주변으로 평민이 살았던 곳)와
합쳐지게 되었다. 현재 이 툼페아 언덕의 툼페아 성은
핑크아르누보 양식으로 20세기에 세워진 건축물로, "최고의 머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에스토니아의 국회(Riigikogu)로 사용되고 있다.
툼페아 성 지역은 서쪽 성벽, 톨 헤르만 타워가 있는 중세 요새등 유적지역과
짜르의 통치 시대를 대표하는 정부 기관 건물이 들어선 지역으로 특히,
1920년대 툼페아 성 광장에 세워진 에스토니아 현 의회인 리이키코쿠가 들어서 있다.
건축물의 재료는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 중 하나인 석회암으로 제방을 쌓았다.
성곽 모퉁이에 있는 파랑,검정, 흰색의 삼색 깃발이 휘날리는 피크 헤르만 타워를 볼 수 있다. 헤르만 타워는 독일어로 '거대한 장병'이라는 뜻으로,
전설 속의 위대한 중세 영웅 ‘헤르만’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이다. '키다리
헤르만’이라 불리는 이 탑은 높이 48m로, 톰페아 성에서 유일하게 건축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옆에는 19세기에 세워진 알렉산드르 네브스키 성당이
러시아제국 당시의 차르의 권력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