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Mongol, Mongolia)
☛면적 : 1,565,000㎢(남한면적의 15.6배)
☛인구 : 약 300만명
☛한국에서 울란바트르 비행시간 : 3시간35분 정도
☛수도 : 울란바트르
몽골과 몽고는 같은 나라이며 영어와 한자의 발음차이이다.
징기스칸과 푸른 초원의 나라 몽고, 시베리아와 중국 대륙 사이에 위치해 있는 몽골은 정식 명칭은 몽골리아(Mongolia)이며, 흔히 '몽골'로 불립니다.
몽고(蒙古)라는 이름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북방 민족으로부터 전쟁에 시달려 온 중국 사람들이 몽골을 비하하기 위해 우매할 몽(蒙)과 옛 고(古)를 사용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따라서 몽고라는 한자명칭은 비하의 의도가 담긴 명칭이고 정식명칭은 몽골입니다.
나도 학교시절에는 “몽고”라고 역사선생님한테 들어왔지만 나쁜 의도가 있었네요.
국토에 비해 인구가 작은 것은 기후적인 악조건과 과거 한때 남자의 40%가 독신 라마승에 달했던 라마교의 영향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몽골은 동아시아의 내륙국으로 가장 큰 도시는 수도인 울란바토르고, 정치 체제는 의회 공화국이다. 1991년 민주주의 체제로 변경되었다. 1,564,116㎢의 넓은 면적으로서 카자흐스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내륙국이나, 인구는 약 300만명으로 적다.
13세기 칭기즈 칸이 몽골 제국을 건국했으며, 칭기즈칸의 손자이자 몽골 제국의 제5대 칸인 쿠빌라이 칸 시절에는 국호를 원으로 개칭하고, 이후 명나라가 중원을 탈환하게 되어서 몽골 초원지대로 물러났다. 이후 1688년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 복속하여 외몽골로 불렸다. 1911년 제1차 혁명을 일으켰으나 1920년 철폐되었고, 러시아의 10월 혁명에 영향을 받아 1921년 제2차 혁명을 일으켜 현재의 형태로 독립하였다. 북쪽으로 러시아, 남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에 접하여 있다
고대로부터 몽골 초원에는 흉노, 돌궐 등 여러 유목 민족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1206년 칭기즈 칸의 몽골 부족이 초원을 통일하고 역사상 영토가 2번째로 넓었던 대제국 몽골 제국을 건설했다. 14세기 말에 몽골 제국이 몰락하자 몽골 초원에는 다시 여러 부족이 나타났다. 몽골과 중국 명나라를 차례로 정복한 청나라의 강희제(재위 1661년 ~ 1722년)는 몽골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몽골을 내몽골과 외몽골로 분리시켰다. 만주족의 발흥 과정에서 내몽골은 부족들이 일찍 후금과 연합을 이룬 지역, 외몽골은 후에 복속한 지역이다.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외몽골은 기회를 잡고 그 해 12월에 혁명(제1차 혁명)을 일으켜 자치를 인정받았다. 1913년 티베트와 우르가(울란바토르)에서 몽장 조약을 체결하였고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나자 1920년에 국민당이 외몽골의 자치를 철폐시켰으나, 그 해에 반중국·민족해방을 목표로 몽골 인민당이 결성되었다. 1921년에 담딘 수흐바타르가 혁명군을 조직하여 제2차 혁명을 일으켜 독립하였다. 현재 내몽골은 중화인민공화국 내의 영토이며, 외몽골은 1924년 11월 26일에 중화민국으로부터 독립을 받은 뒤에는 현재까지 독립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1924년 11월 26일에는 정부 형태를 군주제에서 인민 공화제로 고쳐 국호를 몽골 인민 공화국으로 정하고, 세계에서 2번째로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 후 소련의 영향력이 강화되었으며, 몽골은 중소 국경 분쟁 발생시 소련을 지원하였다.[3] 1990년 초에 민주화 혁명이 일어났으며, 1992년 2월 13일에 복수 정당제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 헌법을 채택하였다. 또한 계획 경제 체제를 폐기하고 시장 경제 정책을 도입하였다.
1924년부터 1991년까지는 소련의 지원을 매우 많이 받은 공산주의 국가였으나 소련이 해체된 후 1992년의 선거를 통해 공산주의를 사실상 폐기하였고 대신 민주공화제를 채택, 총리와 대통령의 권한을 나눈 정치제도로 확립된 이원집정부제로 연임이 가능한 4년 임기의 대통령을 국민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헌법을 채택하였다. 나차긴 바가반디 대통령에 이어 2005년부터 남바린 엥흐바야르 대통령이 정권을 이양받았으나 2009년 몽골 대통령 선거에서는 빈곤층의 지지에 힘입어 민주당의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 전 총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첫 정권교체를 이룩했으며, 2017년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과거 삼보 선수로 활동한 경력을 갖고 있던 할트마긴 바툴가가 결선 투표 끝에 승리하여 두번째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2017년 7월 10일부터 취임함으로써 현재는 동거 정부가 수립되었다.
===위키백과===
몽골의 고대 역사
중국 본토의 북쪽, 만주의 서쪽, 시베리아의 남쪽, 신장 성(新疆省) 동쪽에 있는 지역으로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뉜다.
13세기 칭기즈 칸의 통솔 아래 세력이 커지기 시작하여, 중국 대륙과 유럽 지역을 통치하는 대제국을 이루었다. 그 후 세력이 차차 약해져 중국의 지배를 받아 오다가 1921년 혁명을 일으켜 독립하였다. 농업과 목축업이 발달하였고 양모, 피혁 등을 수출한다. 수도는 울란바토르(Ulan Bator)이고 면적은 1,565,000㎢이다.
몽골(Mongolia)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항상 징기스칸(Genghis Khan)장군, 고비사막을 떠도는 낙타, 대초원을 질주하는 야생 말과 같이 야성적이며 이국적인 광경이 떠오른다.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다. 모스크바보다 더 춥다. 1월 평균 최저 온도가 영하 27도라 한다.
겨울의 추위는 수도 울란바토르 등지에서도 -40℃로 내려가는 일이 많다.
한국과 몽골의 역사적 관계속에 이런 일화가 있다.
몽골(대원대몽골국=원나라)에서는 해마다 고려에 공녀를 차출해갔다. 그런데 공녀의 명단에 기황후가 있었다.
1333년(충숙왕 복위 2) 고려인 내시 고용보의 추천으로 고려인 기황후(奇皇后, 1315년 ~ 1369년)가 황태자궁에 배치되고, 원 혜종의 눈에 띄게 되어 승은을 입게 된다.
원 혜종의 총애를 얻어 귀빈으로 책봉되고, 1339년 혜종의 뒤를 이어 황제로 등극하는 아들 아유르시리다르를 낳았다.
그녀가 제2황후로 되면서 친정아버지와 할아버지, 증조부에게 왕(王)의 작위가 추증된다. 아버지 기자오(奇子敖)는 처음에 영안왕(榮安王)으로 봉하고 후에 추봉하여 경왕(敬王)이고, 할아버지 기관(奇琯), 증조부 기홍영(奇洪潁) 시호는 미상이다.
징기스칸의 부인 중 발해 사람이 있는 것과, 원나라의 황제 순제(順帝)의 황후인 기황후가 고려 사람이라는 것을 보면, 고려인을 준몽골인으로 대접해줬기 때문에 황후자리에 까지 오를 수 있었다.
몽고와 한국의 언어가 비슷하여 같이 생활하면 1년안에 서로 소통할수 있다 합니다.
주요관광지 소개
1. 테를지 국립공원
몽골 여행자의 필수 방문 코스로서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70km 정도 떨어져있다. 몽골의 유명 여행지가 보통 수백km 떨어져 있는데 비해 테를지 국립공원은 몽골의 자연 모습과 경관을 가장 가깝게 볼수 있기 ?문에 몽골인 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몽골의 넓은 초원의 풍경과 바위와 숲으로 어우러진 산, 초원에서 볼 수 있는 유목민족의 가축과 몽골식 전통 게르 등 다양한 몽골의 매력적인 모습을 한데 모아서 볼 수 있는 여행지이다.
2. 간단사(간등사원)
17세기에 설립된 간단사는 라마불교 사원으로 정식명칭은 '간등테그친른 히드'이며 '완전한 즐거움을 주는 위대한 사원'의 뜻을 지니고 있다.
간단수도원은 몽골 라마교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27m에 이르는 금불입상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이 불상은 무려 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제작된 것으로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큰 불상이라 할 수 있다.
간단사 내에는 24미터의 불상과 몇 개의 작은 절 그리고 학승들이 공부하는 종교대학이 자리 잡고 있으며, 약 150 여명의 라마승들이 거주하고 있다.
3. 고비사막
초원을 달리던 기마민족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몽골. 몽골하면 떠올리는 곳이 바로 고비사막이다.
고비사막의 고비란 몽골어로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막이라고 해서 대부분 모래사막으로 이루어졌으리라 생각되지만, 모래사막보다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비사막 내에는 넓은 초원지대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고비사막은 원래 과거에 내해가 있던 곳이 침식과 건조로 이루어진 사막이라고 한다.
4. 자이산 승전 기념탑
자이산 승전탑은 몽골이 소련과 함께 연합국에 대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것과 몽골 사회주의 혁명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71년 몽골에 기증한 탑이다. 봉우리에 높이 세워진 이 탑은 울란바토르 시내 어디에서다 보인다. 탑이 있는 자이산은 울란바토르 시내와 톨 강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5. 나담축제 (Naadam festival)
나담은 '축제', '경기'란 뜻의 몽골어, 전국에서 몽골씨름, 말타기, 활쏘기를 겨룬다.
➡울란바토르 시내관광
⇒간단사원(Gandan Monastery)
간단사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원으로서 17세기에 설립되어 1930년도에 있었던 긴 종교적인 억압 속에서도 살아 남아 현재까지 몽골에서 유일하게 사원으로서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현재 대략 150명의 수도사(라마승)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종교적인 식전은 연중내내 일반에 공개되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복드한 궁전박물관
1893년부터 1903년까지 10년에 걸쳐 지어졌으며 2층 목조건물과 7개의 사원, 개선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는 몽골의 마지막 왕인 Javzan Damba Hutagt 8세가 사는 겨울 궁전이었으며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몽골에서 8번째의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았던 그가 사용하던 유물과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개장시간 : 10:00~17:00 (동절기 화,수요일 휴관)
⇒수하르트광장
중국으로부터의 해방을 쟁취한 Damdiny Sukhbaatar를 기념하여 1921년 시내 중심지에 만들어진 광장으로 시내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 관광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약속과 만남의 장소로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여러가지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광장을 중심으로 정부종합청사, 역사 박물관, 중앙우체국, 외무부, 울란바타르호텔, 국립오페라하우스, 몽골국립대학교, 자연사박물관 등이 균형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어서 시내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이면 쉽게 갈 수가 있다.
⇒자연사 박물관
수크바토르광장에서 북서쪽으로 한 블럭 떨어진 이곳 역시 방문해 볼 만한 곳이다. 이곳은 몽골의 지질, 동식물, 몽골 근대사 유물 등을 전시한다. 이 박물관에서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고비사막에서 발굴된 타르보사우러스(Tarbosaurus), 사우롤로퍼스(Saurolopus) 등 2구의 공룡뼈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이승 전승탑
울란바타르 시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산으로 둘러싸인 울란바타르의 가장 멋진 전망을 제공하는 곳이다. 자이승 기념탑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념하며 전쟁영웅과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초이진 라마사원
1904년에 완공되어, 1938년에 문을 닫은 후에 박물관으로 변경되었다. 중심 사원에는 강한 인상을 주는 독창적인 실크 상(象)과 가장 훌륭한 마스크가 전시되어 있으며, 또한 나무나 청동으로 된 가지각색의 신상(神像)을 볼 수 있다.
➡울란바토르 근교
⇒ 테렐지 국립공원
실제적으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몽골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 장소는 텔레지(Terelj)국립공원이다. 왜냐하면 울란바타르에서 1시간 정도의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짧은 기간동안 일정을 계획하고 온 관광객들이라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몽골을 몇 번이나 방문하는 관광객들이라도 두 세번씩 찾게 될 만큼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청록색 물감으로 칠해놓은 듯한 초원 위에 이곳 저곳 흩어져 있는 하얀 '게르'들, 목도 안 아픈지 땅만 보며 맛있는 풀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소떼, 양떼, 염소떼들, 주인을 태우고 힘차게 달리는 말들과 무척이나 게으르게 보이는 검은 야크들, 모든 것들이 청록색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과 같이 느껴집니다. 테렐지에서는 양이나 말들이 자동차를 피해 달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동차에게 서 있으라는 듯 유유히 넓은 길을 건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산 위에는 한쪽으로는 서울의 북한산을 연상케 하는 나지막한 돌산들이 푸른 초원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한쪽으로는 햇빛과 바람을 따라 줄을 지어 자라있는 나무들이 신비롭기만 합니다. 또한 8월 하순에서부터 9월 중순까지의 짧은 가을철에는 그 나무들이 빨갛게, 노랗게 변하여 더욱 장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테렐지로 가는 길에 왼편에 있는 거대한 거북바위는 여행객으로 하여금 그냥 지나 칠 수 없게 하고, 여행객들의 사진에 빠지지 않는 모델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거북바위의 등위에 올라가 놓은 곳에서 바라보는 테렐지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놀랍고 아름답습니다.
또한 역시 공룡화석들이 많이 발굴되는 나라인지라 가는 길에 커다란 공룡을 볼 수 있는데 초원 위의 공룡의 고대 몽골의 과거를 그리게 합니다. 테렐지에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설악산 계곡의 청수만큼 맑은 물입니다. 여름에도 밤에는 추운 날씨 때문인지 발을 담고 있기가 차가울 정도로 시원하고 맑은 물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호스타이 국립공원
테렐지에 이어 울란바타르 근교에 있는 호스테 국립공원은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110km 지점에 위치하며 자동차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세계적으로 희귀종인 몽골 야생말 “타히”를 볼 수 있으며 그 외에도 사슴, 멧돼지, 늑대 등의 많은 야생동물들을 볼 수 있다. 공원 내에는 고대 석인상도 볼 수 있으며 “멀척”이라 불리우는 모래언덕도 있어 짧은 기간 몽골을 여행하는 여행객들에게 매력적인 관광지이다. 공원 전체가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자연이 잘 보존된 곳이며 독수리, 매 등의 맹금류와 형형색색의 야생화도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주는 곳이다.
⇒만치르
만치르 역시 울란바타르 근교에 있는 경치가 무척 아름다운 곳입니다. 울란바타르에서 약 46km 떨어져 있는 이곳은 복드산 근처에 위치해 있어, 몽골의 산림을 마음껏 느끼실 수 있습니다. 소나무 숲을 거닐며, 바람 따라 풍겨오는 꽃 향기와 메아리 따라 들려오는 풀소리가 당신의 마음 속에 잃어버린 아름다운 추억들과 서정적인 모습들을 다시금 찾아 줄 것입니다.
소나무와 낙엽송, 히말라야 삼나무, 미루나무, 자작나무 등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나무들이 비탈진 산등성이에 가득하고, 그 나무 숲에 숨어 있는 사슴, 멧돼지, 담비, 늑대와 여우들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만즈시르(Manzshir)라고 불리는 한 수도원에서는 매년 가을 불교의 의식적인 탈춤이 열리고 있어 때를 잘 맞추어 찾는다면 몽골의 또 다른 모습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위에서 서식하는 동물들의 박제와 동물의 모피, 나무와 여러 식물들, 광석, 무덤에서 발굴된 신비롭게 생긴 여러 종류의 유물들이 여러분을 몽골의 또 다른 세계로 모실 것입니다.
몽골횡단철도
-영업거리 : 2,215km
-궤간거리 : 광궤 1,520mm
-최고속도 : 75k/h
-구간 : 울란우데역-얼롄하오터역
중국, 몽골, 러시아 3국의 수도를 관통하는 노선으로, 시베리아 횡단철도 본선만큼이나 유명하고 여행자들이 타 보고 싶어하는 노선이다. 노선은 베이징 근교의 협곡지대와 몽골의 대초원과 고비 사막과 시베리아의 침엽수림 등 경치가 좋은 곳을 많이 지나고 바이칼 호, 울란바토르, 만리장성 등 유명 관광지도 많이 지난다.
궤간은 러시아를 따라 1,520mm이지만 중국 철도는 표준궤 1,435mm 궤간을 따르므로 몽골-중국 국경에서 대차를 갈아 끼우거나 환적해야 한다.
이 철도는 시베리아철도와 만나 모스크바를 거쳐 파리로 이어진다.
칭기즈칸의 생애
칭기즈 칸은(1162.4.16.-1227.8.25)은 몽골 제국의 건국자이자 초대 카안이다. 원래 이름은 보르지긴 테무진이다. 중국사에는 원(元) 태조(太祖)로 기록된다.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합한 군사, 정치지도자로, 몽골 제국을 성립시켜 몽골과 중국 지역을 비롯해 한반도에서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정복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칭기즈 칸은 1162년에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으나 1155년 혹은 1167년에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 현재 몽골에서 기념하는 칭기즈 칸의 탄신일은 1162년 11월 14일이다.[2] 테무진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록은 자세하지 않다. 칭기즈 칸은 그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타타르족과의 전투를 승리로 끝낸 직후에 태어났다. 전설에 따르면 그가 태어날 때 손에 고대 동방 사람들에게 생명을 상징하는 피 한 움큼을 쥐고 있는 등 여러가지 상서로운 징표들이 나타났다. 예수게이는 이를 길한 징조로 생각하여 패배한 타타르 군주, 테무 진 우게의 이름을 따서 자식에게 테무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3] 칭기즈 칸의 이름에 대한 또 다른 해석으로는 ‘테무진’이 ‘대장장이’라는 뜻임을 근거로 당시 유목민 사회에서 쇠가 중요했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4]
➡칭기즈 칸의 정복활동 및 정복지역.
무자비하고 잔인한 정복자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칭기즈 칸은 몽골에서 영웅이자 국부로 추앙받는다. 칸이 되기 이전에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몽골 연맹을 통합하여, 흩어져 있던 부족들에게 동질감을 형성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한 칭기즈 칸은 역설적으로 가장 넓은 지역에 전쟁의 처참함을 가져온 후에 가장 분쟁이 적은 평화의 시기를 가져왔다고 평가되고 있다.
서하와 금을 정복하고 중앙아시아의 호라즘 제국을 포함한 수많은 정복을 통하여 무수히 많은 나라를 합병하였다. 칭기즈 칸은 몽골 제국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기록을 남겼다. 몇 세기 동안 유라시아 대륙의 넓은 영토를 통치했던 몽골 제국은 몽골 제국에 의한 평화시대를 이루고, 인구학과 지정학적으로 큰 변화를 일으켰다. 몽골 제국의 영토는 현대의 몽골, 중국,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몰도바,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 이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 일부, 터키 일부를 포함하는 것이다.[5] 몽골군은 1260년 봄, 훌라구 칸의 부관인 키트부카의 지휘 하에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를 출발하여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까지 진출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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