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철도의 역사
1899년 9월 18일 오전 9시 경인선 개통 이후, 일제는 한국에
1905년 경부선,
1906년 경의선,
1914년 호남선과 경원선,
1931년 장항선,
1942년 중앙선을 잇달아 개통했다. 해방이 되기전까지 일본은 우리나라 철도를 독점적으로 운영해 식민지 착취와 침략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우리나라의 철도사 전반부는 일제 침략과 애환이 깃들어 있는 근대사의 생생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1899년9월18일 노량진에서 증기 기관차가 엄청난 굉음을 토하며 제물포를 향해 힘찬 질주를 시작하면서, 천지를 진동시키며 기적을 울리던 증기기관차는 사라지고 한국철도가 눈부신 발전을 하며 오늘날 KTX가 시속 300k/h 위용을 자랑하며 일일 생활권시대로 접어들었다.
- 1899.09.13 궁내부 내장원에 서북철도국 설치
- 1899.09.18 경인선(노량진 ~ 제물포) 33.2km 개통
- 1900.07.05 한강교량 준공
- 1905.01.01 경부선(서울 ~ 부산) 개통
- 1906.04.03 경의선(서울 ~ 신의주) 개통
- 1906.07.01 통감부 철도관리국 설치
- 1914.01.11 호남선(대전 ~ 목포) 개통
- 1914.08.16 경원선(용산 ~ 원산) 개통
- 1925.10.15 서울역사 준공
- 1929.12.25 충북선(조치원 ~ 충주) 개통
- 1931.08.01 장항선(천안 ~ 장항) 개통
- 1936.12.16 전라선(익산 ~ 여수) 개통
- 1939.07.25 경춘선(성동 ~ 춘천) 개통
- 1942.04.01 중앙선(청량리 ~ 경주) 개통
- 1943.02.01 철도국을 교통국으로 개편
- 1946.01.01 교통국을 미군정청 운수부로 개편
- 1946.05.20 경부간에 특급 해방자호 운행
- 1948.08.15 정부수립으로 운수부를 교통부로 개편
- 1955.12.31 영암선(영주~철암) 전통
- 1963.08.20 서울교외선(능곡 ~ 의정부) 개통
- 1963.09.01 교통부로부터 외청인 철도청으로 독립
- 1965.09.18 경인선(영등포 ~ 인천) 복선 개통
- 1966.01.19 고한선(예미 ~고한) 개통
- 1966.11.09 경북선(영주 ~ 예천) 개통
- 1967.08.31 증기기관차를 디젤기관차로 대체
- 1968.02.07 경전선(진주 ~ 광양) 개통
- 1969.02.10 경부선에 관광호 운행
- 1971.09.15 철도청 컴퓨터도입 가동
- 1972.03.17 전기기관차 도입
- 1973.06.20 중앙선(청량리 ~ 제천) 전철 개통
- 1973.10.16 고한선(고한 ~ 황지) 개통
- 1974.06.20 태백선 전철(제천 ~ 고한) 개통
- 1974.08.15 수도권(서울-인천/구로-수원)전철개통
- 1974.08.15 경부선 새마을호 운행
- 1975.12.05 영동선(철암 ~ 북평) 전철 개통
- 1977.01.27 수도권 CTC 완공
- 1978.03.30 호남선(대전 ~ 익산) 복선 개통
- 1978.12.09 경원선(용산 ~ 성북) 전동차운행 개시
- 1980.10.17 충북선(조치원 ~ 봉양) 복선 개통
- 1981.10.01 새마을호 승차권 전산 발매
- 1981.12.23 경부 복복선(영등포 ~ 수원) 전철 개통
- 1983.12.13 대전철도차량정비창 준공
- 1985.11.15 호남선(익산 ~ 정읍) 복선 개통
- 1986.07.12 최신 유선형 새마을호(서울 ~ 부산) 운행
- 1986.09.02 경원선(성북 ~ 의정부) 복선 전철 개통
- 1987.07.06 전후동력형 새마을호(서울-부산)운행
- 1987.09.22 광양제철선(광양-제철소) 개통
- 1988.01.26 철도박물관 개관
- 1988.07.12 한일 공동승차권 판매 협정 체결
- 1988.09.06 호남선(익산-송정리) 복선 개통
- 1988.09.12 서울역 민자역사 역무 개시
- 1988.10.25 안산선(금정-안산) 개통
- 1988.12.23 중앙선(제천-영주) CTC 전철 개통
- 1989.03.25 서울역 민자역사 개관
- 1989.09.18 회원카드제 새마을호 승차권 판매
- 1989.10.16 고속전철 국제 심포지움 개최
- 1989.11.28 익산-여수 199.3km 선로 개량공사기공식
- 1989.12.29 사당-금정 15.7km 과천선 기공식
- 1989.12.30 철도공사화 추진
- 1990.01.13 관광열차운행(서울-경주-백암온천) 개시
- 1990.01.22 영월시가지 철도이설 기공식
- 1990.02.26 분당선 32.2km 착공
- 1990.03.15 태백선 새마을호 운행
- 1990.07.18 영등포 민자역사 역무시설 일부 개관
- 1990.09.12 중부지역 집중호우, 영월강교 유실 등 피해
- 1991.03.15 지축-일산간 21.1km 일산선 복선전철 기공식
- 1991.05.04 영등포 민자역사 개관
- 1991.05.31 본청 ~ 지방청간 유선통신망(PCM 방송단국) 설치
- 1991.08.10 경부선 무궁화호 장대열차 운행개시(8량 -> 16량)
- 1991.11.23 경인복복선 기공식 및 영등포 구로간 3복선 개통식(부평역)
- 1991.11.25 장항선 새마을호 열차운행
- 1991.11.29 경인선 소사역 및 부개역 기공식
- 1991.12.10 전라선 새마을호 열차 1왕복 증설운행
- 1992.03.02 안산선 고잔역 영업개시
- 1992.04.13 철도차량 256량 리스계약 체결
- 1992.06.21 서울교외선 레저열차 운행개시
- 1992.06.30 경부고속전철 기공
- 1992.07.10 경부선 전구간(서울 ~ 부산) CTC 개통
- 1992.08.28 신연무대역 준공
- 1992.09.01 경부선 태극실 전용열차 운행
- 1993.01.15 과천선(금정 ~ 인덕원) 부분 개통
- 1993.05.20 새마을호 열차 개표와 집표 생략
- 1993.06.05 대전 EXPO기념 승차권 발매
- 1993.07.01 의왕 컨테이너 내륙 통관기지 (ICD) 개장
- 1993.10.01 열차내 이동무선 공중전화 설치 운용
- 1993.12.10 무궁화호.통일호.비둘기호열차 전 정차역 집표생략
- 1993.12.17 서울역문화관 개관
- 1994.01.10 안산선공단역 영업개시
- 1994.02.08 철도물류협회 발족
- 1994.03.18 과천선 군포전철 변전소 준공
- 1994.04.27 경인선 신설역명제정(구일, 소사, 부개, 간석, 도원)
- 1994.05.09 철도공사 설립준비단 발족
- 1994.07.28 한국 철도산업기술 연구원 발족
- 1994.08.01 수인선 8개역 폐지
- 1994.08.01 P.C통신 이용 철도정보 안내개시
- 1994.08.16 장애인용 객차운행
- 1994.08.21 서울교외선에 주말 증기기관차 관광열차운행
- 1994.09.01 분당선(수서 ~ 오리)전철 18.5km 개통
- 1994.10.01 대구, 광주에 전기사무소 신설
- 1994.11.21 기적소리 봉사센터 및 국민제안창구 설치
- 1994.12.01 경부고속철도 운영준비단 설치
- 1995.02.16 경인선 구일역 준공, 영업개시
- 1995.03.28 성북역 남부역(선상역) 영업개시
- 1995.03.29 분당선 선릉 ~ 수서간 6.6km 착공
- 1995.05.04 안양역 민자역사 착공
- 1995.05.08 철도청 구내 자동착신전화(DID) 운용개시
- 1995.07.18 조흥은행에 철도승차권 자동발매기 운용개시
- 1995.10.01 충북선 청안천 붕괴, 열차탈선 전복사고
- 1995.11.20 철도청「토요일전일근무제」실시
- 1995.11.20 철도 및 지하철 운임 요금 조정(새마을5%,무궁화.통일.비둘기 16%, 전철 10.6%)
- 1995.12.06 국유철도의 운영에 관한 특례법 제정
- 1995.12.27 광주 도심철도개량사업 기공식
- 1995.12.31 수인선 협궤열차 고별 운행
- 1996.01.30 일산선(지축∼대화 19.2Km)개통
- 1996.02.01 철도 심볼마크 변경
- 1996.03.28 경인선 부개역(보통역)영업개시
- 1996.04.01 경의선 행신역(간이역)엽업개시
- 1996.04.20 부산 6부두 착발 직통 컨테이너열차 운행
- 1996.11.27 (주)파발마 설립
- 1996.12.02 경의선 42개 비둘기호열차 통일호 승격
- 1996.12.11 경원선 월계역 남부역사 영업개시
- 1996.12.12 경원선 도봉역 남부역사 영업개시
- 1997.02.20 영동선 전철 개통
- 1997.03.13 요일별 탄력운임제 실시
- 1997.04.01 철도박물관, 서울역관 개관
- 1997.04.30 소사, 신길역 영업개시
- 1997.05.26 한,중 공동승차권 발매협약 조인
- 1997.06.16 경원,교외선 통근형 통일호 열차 운행
- 1997.10.01 서울전자통신 사무소 개설
- 1997.10.10 경원선 복선전철 건설 기공식
- 1997.10.20 중앙선 복선 전철 기공식
- 1997.10.30 철도청 인터넷 홈페이지 개설
- 1997.11.19 동대구-청천간 철도 이설공사 기공식
- 1997.11.26 세계 최초 냉동 냉장 컨테이너 열차운행
- 1998.01.07 독산역 영업개시
- 1998.03.01 직원의소리(VOE) 제도시행
- 1998.04.20 신형 장애인용 객차 운행
- 1998.04.27 고객중심 경영혁신 기획단 현판식
- 1998.05.01 열차 운전 실명제 시행
- 1998.05.25 철도혁신 1백대과자 선포식 및 실천다짐대회
- 1998.07.11 화차회송료 수수제도 폐지
- 1998.07.15 철도고객서비스헌장 선포식
- 1998.07.16 장애인 도우미제 운영
- 1998.07.31 철도청 정부대전청사 시대 개막
- 1998.09.25 새마을호열차 특실 '깨우미(Train Call) 서비스' 도입
- 1998.10.15 철도운임조정 및 서비스 개선
- 1998.10.29 접객직 제복 품평회
- 1998.12.13 환상선 눈꽃 순환열차 첫 운행
- 1998.12.15 새마을호 자유석 및 자유이용권 제도도입
- 1999.01.29 경인복복선전철 1단계 개통(구로-부평간,14.9km)
- 1999.03.04 철도고객봉사실 원스톱 민원체제 구축
고객중심경영혁신기획단의 고객의소리, 총무과
민원행정 영업국 PC통신 등의 3원화된 민원접수창구
를 일원화
- 1999.05.18 전라선 개량 1단계 개통
임실,금지-압록,구레구-동순천 간 64.3km
- 1999.06.01 열차운행 다이어 전면 조정
노후화된 통일호 무궁화호로 승격, 노선별 열차운행 시각 통일
- 1999.07.20 '복합수송열차(CarRail)' 성북-강릉간 첫 운행
- 1999.09.14 '사이버객차(CYBER TRAIN)'와 '바둑객차' 운행
- 1999.09.15 '99년 고객만족 경영대상'에서 철도청 전사부문 '대상' 수상(한국능률협회 주최)
- 1999.09.18 외국인전용패스(KORAIL PASS, KR)발매
- 1999.09.18 한국철도 100주년 '철도의 날' 기념식 김종필 국무총리 외 각계인사 2천여명 참석
- 1999.11.12 5급승진심사 다면평가 첫 실시
- 1999.12.01 신용카드 기차표 예약 실시
- 1999.12.01 일본식 철도용어, 어려운 한자 등 쉬운 우리말고 개정
- 1999.12.22 제25회 전국품질경영대회에서 철도청 품질경영상 수상 (한국표준협회 주최, 기획예산처와 산업자원부 후원)
- 1999.12.31 새천년 맞이 '해넘이 및 해맞이 열차' 성황 운행
- 2000.09.06 철도서비스아카데미 개관
- 2000.09.18 외국인전용패스(KR PASS) 일본 판매 개시
- 2000.10.10 인터넷홈페이지에서 각종 민원서류 발급
- 2000.11.07 제2회 5급승진 다면평가에서 첫 내부승진 여직원 나옴
- 2000.11.14 비둘기호 열차 마지막 운행(정선선 증선-구절리)
- 2000.12.01 경부·호남선 2개 노선 새마을호 열차에서 안동
간고등어 등 지역특산품판매(12.22일 전노선 새마을호 확대)
새마을·무궁화호 일부 객실 휴대폰 사용금지한 '조용한 객실' 지정
경춘선 열차운행 전면 개정(열차운행횟수 증설, 노후 통일호 열차→도시통근형 통일호 교체 등)
- 2000.12.21 철도사상 첫 특별승진 실시(4급 1명, 5급 5명의 승진예정자 선정)
- 2001.01.01 철도박물관 한국철도신문에 민간 위탁경영
- 2001.02.05 철도물류정보 웹사이트 개설
- 2001.02.28 철도청 '- 2000행정서비스헌정 평가'에서 대상 수상
- 2001.03.01 외국어(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 안내방송 무궁화호 확대 실시
- 2001.03.23 철도회원 '승차권 대금 인터넷 결재' 및 '바로티켓팅' 서비스 실시
- 2001.03.27 인천공항철도(인천국제공항-서울역) 기공식
- 2001.04.03 제22대 손학래 철도청장 취임
- 2001.04.05 새마을호(5호차 1~30호석) 어린이 동반객차 운영
- 2001.05.01 지역특산품 판매 무궁화호 확대
- 2001.05.08 새마을호 '어린이도우미제' 실시
- 2001.05.14 제25대 박철규 차장 취임
- 2001.05.21 익산보선사무소 신설
- 2001.05.22 중앙선 양수-원주 복선전철 건설 착공
- 2001.06.04 철도사상 첫 여성역장(부천역) 탄생
- 2001.07.10 호남선 송정리-다시 신선설 운행
- 2001.07.26 철도 관련 법령 인터넷홈페이지에서 공개
- 2001.07.31 호남선 전철화 사업(대전-논산 신도안) 조기 착공
- 2001.08.03 철도습득물 주인 찾아주기 서비스 실시
- 2001.08.10 경인선 백운역사 영업개시
- 2001.08.28 광주도심철도(효천-서광주-송정리) 11km 이설 준공
- 2001.09.01 철도 기관명칭 새로 변경(보선사무소→시설관리사무소 등)
서울역의 발자취를 찾아서
➡국유문화재 284 지정
➡서울역 신역사 2003년 건립
서울역은 대한민국 심장부와 같은 곳이다. 전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역은 경부선 KTX·경부선·경전선·동해남부선 새마을호·무궁화호 열차와 경의선 전철이 대부분 이 역에서 시·종착한다.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고 2010년 12월 인천국제공항철도가 개통되면서 서울역의 역할은 더 커졌다.
서울역이 갖고 있는 매력과 역사문화적인 가치는 아마 ‘문화역서울284’라는 간판을 걸게 된 구(舊) 서울역 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같다.
구 서울역사는 10년전 KTX(한국고속철도)가 개통되기 전까지 이용되었던 건물이었다. KTX 개통에 맞춰 신 역사가 세워지면서 구 서울역사는 국유문화재 284로 지정되어 현재는 문화전시공간으로 일반인에게 무료로 공개되고 있다.
한국의 최초 철도 경인선은 1899년 9월 19일 인천과 서울을 연결하는 노선이었지만, 개통 당시 한강 바로 앞인 노량진까지 운행되었다. 1900년 7월 5일 한강철교가 개통되면서 서대문역과 인천 제물포를 연결하는 경인철도의 남대문정거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자리잡게 된 서울역은 10평 크기의 목조 건물로서 처음에는 보잘 것 없었다. 국유문화재 284로 지정된 지금의 서울역사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은, 일제시기 서대문역이 시위 장소로 자주 이용됨에 따라 폐쇄되고, 남대문정거장을 1923년 1월 1일 경성역(京城驛)으로 역명을 바꾸고나서이다.
남만주철도회사(주)는 1925년 르네상스풍의 절충주의 양식으로 일본 도쿄역에 이은 동양 제 2의 규모로 지었다. 이후 만주 방면의 국제 열차를 취급하는 등 한반도의 철도 교통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남만주철도주식회사는 이 역이 일본 - 조선 - 만주를 잇는 국제적인 수준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일본 도쿄 - 시모노세키 사이는 일본 국철, 시모노세키 - 부산 사이는 부관연락선, 부산~신경(新京) 혹은 북경(北京) 사이는 직통 열차로 연결되며, 이 열차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연결되어 모스크바와 베를린까지 연결시키는 구상을 가졌다. 이러한 세계적인 교통망에서 경성역은 한반도의 현관이며, 식민지 경영의 관문이라는 역할이 부여되었다.
설계자는 도쿄 대학 교수이던 쓰카모토 야스시(塚本 靖)였다. 그는 도쿄역사를 설계한 바 있는 다쓰노 긴고(辰野 金吾)의 제자였다.
경성역은 1922년 6월 착공되어 1925년 9월 30일에 준공되었다. 원래는 1923년에 준공 예정이었으나, 일본 간토 대지진으로 공사 기간이 연장되고, 공사비도 일부 감액되었다. 건축 규모는 대지 면적 70,083평에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6,631m²의 초대형 건축물이었으며, 동양 제1역은 도쿄 역, 동양 제2역은 경성역”으로 불릴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광복 이후 1947년 경성역은 현재의 역명인 서울역으로 개명하였고, 한국 전쟁을 거치며 대한민국의 최대 역으로 발돋움하였다.
1957년에는 서울역 서쪽에 경의선만 취급하는 서부역사를 신설하여 지역 주민들의 여객 이용을 도왔다. 1960 ~ 1970년대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여객 규모가 커져 기존 역사로는 감당하기 힘든 수송량을 보이게 되어, 서울 올림픽에 발맞춰 1988년에 서울역사와 서부역사를 연결하는 선상역사(한화그룹 계열 민자역사)를 준공하였다. 이 민자역사는 개장일 기준으로 한국 최초의 민자역사이다.
이후 KTX 운행이 가까워 오자 다시 신규 민자역사(한화그룹 계열)를 착공, 2003년에 현재의 역사를 새로 건설하여 2004년 4월 1일에 KTX를 취급하게 되었다.
[자료=위키백과사전]
3·1운동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1919년 9월 2일,
독립운동가 강우규 선생이 당시 남대문역이던 이곳에서 새로 부임해온 제3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졌다. 당시 나이 예순네 살의 노인이 직접 폭탄을 들고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폭탄이 빗나가 총독 암살은 실패했고, 하지만 무라다 육군소장, 혼마치 경찰서장 등 핵심인물들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보름 뒤에 붙잡혀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을 당했다.
정부는 강우규 선생을 기리기 위해 폭탄을 투척한 자리에 동상을 세웠다.
구 서울역인 문화역서울 284 앞 광장이다.
姜宇奎의사의 사형집행전 유언입니다.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언제든지 눈을 감으면 쾌활하고 용감히 살려는 전국 방방곡곡의 청년들이 눈앞에 선하다.” 이는 1920년 11월 29일 강우규 의사가 죽음을 앞두고 대한의 청년들에게 남긴 유언입니다.
강우규 의사
강우규(姜宇奎, 1855년 4월 20일 ~ 1920년 11월 29일)는 일제 강점기의 한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조선총독부 총독으로 부임해 온 사이토 마코토를 저격하였으나 폭탄이 다른 데로 떨어져 거사에 실패하였다.
평안남도 덕천에서 출생한 그는 어려서부터 한의학을 공부하여 1884년부터는 함경남도 홍원으로 이주하여 한의사로 인술을 베푸는 한편, 아이들에게는 성리학 학문을 가르쳤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국운이 기울어짐을 보고 만주 북간도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가 세력들과 연계하여 조선의 독립을 의논했고 4년 후 랴오허 현으로 이사하여 독립운동을 모의하였다.
1915년 요동의 랴오허 현(饒河縣)으로 옮겨가 거주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왕래하면서 독립운동을 꾀했으며, 요하 주변의 농토를 개간하여 한인촌인 신흥촌(新興村)을 건설했다. 1917년 지린 성 동화 현에 광동중학교를 세워 동포 교육에 전력하며 독립정신 고취에 힘썼다.
그 뒤 광동중학교와 신흥촌을 다른 한인 교포에게 넘긴 뒤 그는 국내에 잠입한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가입해 있던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노인단 지린 성 지부장이 되어 조선 총독을 암살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해 러시아인으로부터 수류탄을 구입하고, 허형과 함께 원산부를 거쳐서 경성부로 잠입했다.
1919년 9월 2일, 내외 정세와 총독의 동정을 살피던 중, 하세가와 요시미치의 후임으로 사이토 마코토가 임명되어 부임한다는 것을 알고, 사이토의 내한 당일 현재의 서울역인 남대문역에서 조선 총독으로 신임된 사이토 마코토를 폭살하기 위해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터졌으나 빗나갔고, 빗나간 폭탄으로 인해 수명의 구경꾼들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현장에서는 몸을 피했으며 거사 뒤 현장에서 빠져나와 오태영(吳泰泳)의 소개로 장익규(張翊奎), 임승화(林昇華) 등의 집에 숨어다니다가, 도피 중 독립운동 탄압으로 악명높은 총독부 고등계 형사인 친일파 김태석(金泰錫)에게 붙잡혀 9월 17일 수감되었다. 이후 총독부 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최종 판결에서 총독 암살미수혐의와 민간인 사상 혐의로 사형 구형,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하였다. 그는 체포되어 재판받고, 교수형 당하기까지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않고 당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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