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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26. 목
spectral music
스펙트랄 뮤직은 컴퓨터 작업과 연관돼 있어 내겐 학습과 관련해 다소 어려움이 있으나 우선 관련 글귀들을 통해 학습해보고자 함이니 일단 자료들을 좀 수집해 그 study를 약간 진행해 보고자 함이다. 기실 전자음악을 공부한 이들이 그 어법과 기술및 효과를 역으로 기악성악음악 작곡에 그대로 역차용하고, 미니멀 양식을 창조한 이들 역시 그 과학적 기술적 법칙들을 그대로 기악및 성악 작곡에 역차용했 듯이 컴퓨터 작업을 통해 도달했던 스펙트랄 어법 역시 그대로 기악 성악으로 역차용이 이뤄졌으니 어디까지나 전자음악 컴퓨터음악 혹은 과학적 기술적 지식들에 숙달돼 있지않다 하더라도 스펙트랄 음악의 기법들과 양상들, 그 양식은 족히 학습이 가능하다 보고 study를 한번 진행해보고자 함이다. 역시 또한 음악사의 최신 경향이기도 하기 때문에.
스펙트랄이라는 용어가 말하듯 이는 배음렬과 관련된 사항이다. 배음렬에 관해서는 음악이론 기초에서 언급되고, 하지만 세세한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좀 골치 아픈 내용이 있으니, 즉 배음렬은 애시당초 존재했던 물리자연음향현상이나 이가 발견된 것은 아마 고대나 중세가 아닌 근대 과학의 태동시기에 맞물려 있고 따라서 이 근대과학의 한 결실인 음향학 연구의 결과 배음렬 현상이 연구됐을진대(사실 음향학 발견과 배음렬현상연구는 근대과학 태동기와 맞물려있으나, 배음렬현상의 발견에 대해서는 아마 피타고라스가 적어도 제1,2,3배음까지는 인식했을테니 어느정도 발견했다고 보고싶으나, 냉정히 말해서 계속되는 배음체계를 인식하진 못했을테니, 결과적으로 배음렬체계의 발견은 근대과학으로 넘어가지않나 싶다.), 음악이론 분야에서는 그러나 고래로부터 변천돼 오던 여러 조율체계가 이미 상존해 있고, 이 조율체계와 배음렬 간, 즉 피타고라스 음계, 순정율, 가온음 조율, 평균율 조율의 상호 불일치 문제 등을 우선 간과하더라도, 이 기존 음계 체계와 배음렬 현상의 상호 연관 및 간섭이 언제 태동될 수 있었는가의 문제 역시 우선 접어두고, 단지 배음렬 현상만을 우선 언급하고자 함이다.
음계 이전에 음정이 인식됐을 터고 (이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음정 개념 이전에 음계가 먼저 존재해왔을 수도 있으니 아예 음계만 따라 노래했었을 수도 있고 음정 개념이 굳이 필요치 않았을 수도 있었을테니...), 피타고라스 역시 협화음정을 자연 현상의 조화로 즉, 수학적 비례로 인식을 했고 그 결과 완전 5도, 완전4도, 완전 8도의 협화음정을 2:1, 3:2, 4:3 등의 진동수 비로 인식했으며, 이 협화 불협화 음정의 인식은 시기가 진행함에 따라 점차 확대돼 /12.27.금. 3도, 6도 음정 역시 협화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런데 배음렬에 의하면 첫 두음 간 관계가 바로 옥타브, 그 다음 관계가 완전 5도, 그 다음이 완전 4도다. 이어 장3도, 단3도 등이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는 진동하는 현의 물리적 특성들을 조사했고, 수학적 비율로 분할되는 그것의 자연적 배음들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배음렬의 첫 세 배음들의 비 -음계의 주요 음정들인 옥타브, 5도, 4도- 가 발견됐다. 피타고라스는 플라톤에서 뉴턴까지의 사상가들에 의해 당연히 여겨지던 우주의 신성한 화성적 구조를 반영하는 음악의 명성과 과학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통합했다. 그러나 음악적 권위들은 조율체계에서 피타고라스의 수들의 거룩한 신성성이 영원한가 아니면 인간 귀의 판단인가로 논쟁됐다.
물리적 현상으로서 소리(sound)는 20세기 후반동안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의 상상력을 지배해왔다. 배음렬작곡가학파보다 더 이에 사로잡혀온 자들은 없다. 그 설립자 중 하나인 루마니아 개척자 Horatiu Radulescu에 따르면 Spectrality는 주술에 관심있는 작곡가나 유령처럼 차려입기 좋아하는 작곡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대신에 그것의 배음렬에 나타난 "소리의 깊은 구조"를 탐구하는 것을 포함한다. 라둘레스쿠의 제목 중 하나처럼 "음악보다 더 오래된...음악"에 대한 추구는 다른이들 중 크세나키스와 슈톡하우젠에 의해 예상됐다. 이 지점까지, 서양 작곡은 선율, 화성, 리듬 -미탐사된 소리의 내적 특성을 나타내는 음악- 을 통해 한정된, 음들의(tones) 언어를 오랬동안 말해왔다. 그것이 스펙트랄리즘이 도전하는 이 구상(conception신념)이다. 필수적으로 스펙트랄리스트 아이디어는 단일 소리 하나(one single sound)는 또한 하나의 공명 음향 복합체(a resonant acoustic complex)다 라는 것이다.
60년대 동안, 전위 작곡가들은 음렬주의 복잡성(serialist complxsity)의 구속복을 거부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라이히, 릴리, 글래스의 미니말리즘이 생기게 했다. 유럽에서 슈톡하우젠의 소리의 내적 특성에 대한 탐구는 사운드 스펙트럼 분석에 열중하고 있는 일단의 작곡가들에 영향을 줬다. 70년대 중반까지 라둘레스쿠, 제라르 그리세이와 트리스탕 뮤레위는 스펙트랄리즘이라고 알려지게될 음악 양식을 생산하고 있었다. spetres와 apparitions(둘 다 유령이라는 뜻이고 spectral에도 유령의, 유령같은 뜻이 있다.)의 함축은 불행이다; 이 음악은 하모닉 스펙트럼을 연구 대상으로 하고, 그것은 유령 같고 신비할 뿐만 아니라 귀에 거슬릴 수 있다. 미니멀리스트들처럼 스펙트랄 작곡가들은 음렬주의의 수학적 추상화(관념)들을 거부하게 됐다. 카이야 사리아호는 "그리세이의 음악과 트리스탕 뮤레위의 음악이 실제 소리나는 결과보다 관념(추상화) 혹은 어떤 지적 게임에 더 기초했던 음렬 화성 구조와 어떻게 완전히 다르게 울리는지"에 의해 감명받았다. 미니말리즘과 스펙트랄리즘은 둘다, 형식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의 재료들을, 유명하게는 선율을 중화시켰다, 그러나 다른 방식들로 더 아주 다를 수는 없었다. 배음렬주의자들은 최소주의자들에 대한 하나의 생경한 관심인 모더니스트 프로젝트를 진격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비록 배음렬주의가 음렬주의 복잡성에 대항하는 하나의 반응으로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대다수 청중들은 그것을 많은 방식들에서처럼 바로 집합체(complex)로 간주하려 했을 것이다./12.28.토
최소주의자들처럼, 배음렬주의자들 -Saariaho와 Jonathan Harvey같은 2세대 인물들 뿐만 아니라, 설립자들 자신들 또한- 은 순수한 원래 비전으로부터 떠나갔다. 그러나 정확히 그 비전이 뭐냐? Hugues Dufourt는 "musique spectrale"를 언급하는 기사를 하나 썼고, 그 꼬리표는 저술가와 기자들에 의해 뽑혔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꼬리표들을 증오한다, 그리고 스펙트랄 작곡가들도 예외 없다. Radulescu는 "spectral music"보다는 차라리 "작곡의 spectral technique"를 언급한다, 그리고 Grisey는 "Spectralism은 음렬음악이나 혹은 심지어 조성음악 같은 ...하나의 시스템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태도(attitude)다. 그것은 소리들을 모든 방향들에서 쉽고 임의적으로 교환할 수 있는 죽은 대상들(objects)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탄생, 일생, 그리고 죽음을 갖는 살아있는 대상들 같은 존재로서 고려한다." 라고 주장했다. 그리세이는 음악의 기본 단위는 페이지 위의 음표가 아니라 소리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리를 "살아있는 대상들"로서 취급한다는 것은 뭘 의미할까 -Radulescu가 "sound plasma"로서 언급했던 것? 소리들을 그 자신들로 내버려두려는 존 케이지의 욕구의 하나의 메아리가 있다, 그러나 비록 직관이 넘겨받아야 한다고 해도, 스펙트랄리스트들은 동등하게 소리 자체의 과학에 관심이 있다. Radulescu는 스펙트랄 기법들을 "피타고라스에 대한 (2000년 후의) 하나의 개념 반응(conceptual reply)으로서, 그리고 자연 공명에 가장 가까웠던 힌두와 비잔틴 음악 둘의 직관들의 하나의 실현으로서" 묘사했다./단상213
2019. 12. 29. 일
스펙트랄리즘만이 이 고대/원시와 근대의 역설적 연합(인간 귀의 판단이냐 혹은 피타고라스의 수들의 거룩한 완전성이 영원하냐의 역설, 논쟁)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크세나키스의 미분음들(microtones)과 미끄러지는 음 덩어리들(sliding sound masses)의 탐색은 스펙트랄리즘에서 메아리된다, 그러나 그의 "텍스처 음악(texture music)"도 리게티의 것도 -스펙트랄리스트들에 의해 역시 인용됐지만- 모두 체계적으로 harmonic spectrum(배음렬)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 순정율같은 다른 조율 체계의 지지자들인 미분음 작곡과 배음렬주의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것은 장단조 조성 체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대신하려 시도했던 음렬 체계 역시 기반하고 있는 평균율의 하나의 거부 혹은 수정이다. 평균율은 옥타브를 12 동등 반음들 -관습적으로 조율된 피아노에서 희고 검은 건반들- 로 나누고 조성을 가능하게 변화시키기 위해 음정들을 약간 왜곡하는 하나의 인공적 체계다. 스펙트랄 작곡가들은 자연 배음렬에 더 가까운 어떤 것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한다. 모든 음표와 음은 그자신의 배음렬(harmonic series)이나 배음들의 스펙트럼(spectrum of overtones)의 가장 낮은 음이거나 기본음인데, 그걸 평균율이 자신이 통일성으로 몰아가느라고 왜곡한다. 어떤 의미에서 배음렬 작곡가들은 기본 음들로 돌아감을 통해 쇤베르크의 무조 혁명을 뒤집고 있다 -역설적으로, 만일 다른 조들을 통한 그것의 전조가 아니라면, 배음렬주의는 조성음악의 한 조 중심으로 당김을 메아리칠 수 있다.
배음렬주의자들은 음렬주의가 너무 추상적이고, 자신을 조율 음계의 12음들로 한정시키는 데 있어 또 역시 너무 보수적인 걸 알았다. 미분음 굴절들을 사용하는 Harry Partch와 Lou Harrison (그리고 아마도 Terry Riley)같은 작곡가들은 그리세이의 "소리의 자연, 기본적으로 조율되지 않은" 에 대한 헌신(신념)에 동의하려할 것이다. 순정율(Just Intonation)은 자연 배음렬을 따르려 시도했던 La MOnte Young과 Lou Harrison의 선호에 의해 사용된 하나의 조율 체계다. 그러나 스펙트랄리즘의 미분음주의로의 흥미는 조율체계보다는 음색에 관한 것이다. 선율은 높은 배음들에 있는 아주 작은 음정들에 매료됨을 위해 경시된다.
드비시, 바레즈, 메시앙, 불레즈같은 프랑스 작곡가들은 직감적으로 색깔colour을 효율적으로 사용했고, 스펙트랄리스트들은 이 접근을 체계화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영향은 에드가 바레즈인데, 그리세이는 그를 "우리 모두의 할아버지"라고 묘사했다. 비록 바레즈가 전통 관현악 악기들의 사용에 있어 평균율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는 그에게, 그가 1950년대 작품들 Deserts와 Poeme Electronique에서 개척했던 전자 악기들을 예상하는, 글리산도들을 창조하도록 허용하는 사이렌들을 포함하여, 전통 관현악 울림을 전복시키기 위해, 타악기의 배터리들을 사용했다. 바레즈의 음악은 '화성=음색', 그리고 '선율=리듬' 이라는 스펙트랄리스트 원리들을 구현한다. 색깔 혹은 음색은 다양한 음고들의 하나의 조합으로서 보여진다; 전자적으로 리듬은 색칠된 음들을 생산하도록가속될 수 있고, 그래서 리듬은 역시 음색이다. 그러나 배음렬주의자들은 하모닉 스펙트럼(협화 배음렬)에만 흥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들은 음악적 음들 뿐만 아니라 소음 -인하모닉 스펙트럼(불협화 배음렬)을 야기하는- 또한 분석한다. Jonathan Harvey가 언급했듯이: "많은 배음렬주의자는 사용한다... 복잡한 배음들로 만든 왜곡된 음들, 혹은 소음들을. 당신은 타악기들에서 그리고 다수의 일상 소리들에서 그것들을 얻는다... 그래서 '소음'과 '음악적 음' 간 날카로운 분할은 더이상 없다."
덜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한 영향은 이탈리아 작곡가 Giacinto Scelsi인데, 1950년대 동안 발달한 그의 성숙 스타일은 음고, 리듬, 강약의 최소 변주들에 집중하고, 단일 음을 깨부순다 -분명히 그는 정신병원에서 쉬지않고 여러시간 동안 한 음을 때리고 그것이 사라지도록 두면서, 피아노를 연주함에 의해 우울증을 스스로 고쳤다. 그러나 더 직접적 선도자는 슈톡하우젠이다. 슈톡하우젠이 1950년대와 60년대에 작곡했던 전자음악 고전들은 어떻게 우리가 하나의 조화로운 소리 -예를 들어, 피아노에서 때려진 한 음- 로서 듣는 것이 일련의 개별 배음들로 해체될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1968년부터 성악 작품 Stimmung에서 슈톡하우젠은 배음들을 제 9 부분음까지 사용했다. 그것은 그의 산물에서 단 한 번 있는 것이지만, 스펙트랄리즘의 설립자들은 주목했다.
그의 전자음악에서 슈톡하우젠은 소리의 분석을 추구했고, 스펙트랄리즘은 종종 전자음악 작곡 -주파수들이 절대 정확성으로 측정될 수 있고, 스펙트럼은 매우 정확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과 동맹한다. "당신은 스펙트랄 작곡가가 되기 위해 컴퓨터나 전자음악에 흥미를 가질 필요가 없어."라고 카이야 사리아호가 언급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종종 함께 간다, 왜냐면 당신은 새로운 종류의 소리들을 창조하는데 흥미가 있으니까..." 역설적으로, 그러나, 스펙트랄리즘의 두 설립자 Grisey와 Radulescu는 거의 철저하게 전자음악을 회피했다. 그리세이는 작곡가들에게 전자 악기들의 고의적 진부화가 대처할 수 없는 어려움들을 만든다고 믿었고, 어떻게 "만약 당신이 전자음악 한 곡을 쓴다면, 당신은 끊임없이 그것이 연주홀에 여전히 가용하게 만들기 위해 체계를 갱신하도록 강요받는지."를 -예를 들어, 언젠가 아주 흔한 Yamaha DX-7가 이미 구식이고 곧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설명했다. 그러나 크세나키스처럼 그리세이의 오케스트라는 "전자적electronic" 소리를 내고, 그는 그가 "전자음악 스튜디오에서 기악어법으로 끌어낸 원리들"을 응용했다고 썼다.
당신은 소리의 특성이 작곡가보다는 과학자들이 조사해야하는 -그리세이의 L'Itineraire 그룹에 의한 초기 스펙트랄 작품들은 연구실험실의 분위기를 갖는다- 어떤 것이라고 걱정할지 모른다. 더 호전적으로, 왜 자연적(natural)인 것에 대한 주장이 예술적 미덕의 보장을 제공하는가? 그러나 사실 과학적 이상은 다양한 방식에서 소리죽여져왔다. 스펙트랄리스트들은 평균율을 버리기보다 확장해왔고, 이상적 순수 음고에의 가장 가까운 1/4미분음이나 1/6미분음 접근을 종종 사용했다; 그리세이와 뮤레위 그리고 심지어 라둘레스쿠는 실제 순수 음정들 만큼 순수 음정들의 조율된 근사치들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미 주목했듯, 배음렬은 스펙트랄리즘의 단지 부분이다; 이 작곡가들은 또한 뒤틀린 스펙트럼들, 인하모닉(불협화) 스펙트럼들(소음)에도 관심있다. 스펙트랄적 접근은 계속해서 현대 작곡에서 아방가르드를 위한 하나의 근본적 자원을 제공한다. 스펙트랄리스트들로 대개 생각되지 않는 주요 인물들 -George Benjamin, Magnus Lindberg, James Dillon같은 작곡가들- 의 음악은 스펙트랄리즘에 의해 영향 받은 반면, 영국 작곡가 Julian Anderson같은 젊은 지지자들은 계속해서 그것의 통찰력들을 걸치고 있다.
관련 음악가들: Edgard Varese, Giacinto Scelci,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James Tenney, Horatiu Radulescu, Gerard Grisey, Tristan Murail, Garth Knox, Claud Vivier, Jonathan Harvey, Kaija Saariaho, George Friedrich Haas, James Dill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