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의 세계정벌에서 어떻게 세계를 그렇게 빠른시간에 그렇게 넓게 정복 할수 있었을까? 의 의문을 풀어 보려한다.
징기즈칸이 몽골제국을 통합한것이 1207년 이었고, 금나라를 정벌하다 죽은 해가 1227년 이므로 징기즈칸의 해외원정은 약 20년간 이루어진 것이다.
그 넓은 영토를 다 다닌것은 아니고 멀리 서쪽으로 나간곳이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옛지명으로는 호라즘 이라는 곳이다. 징키즈칸은 몽골의 남쪽을 주로 서요 (지금의 티벳 중국의 간쑤성)와 금나라 정도와 싸우다 사망한다. 서쪽 부분은 징키즈칸의 아들이나 동생들에게 맞겨
침략을 시킨다.
그당시만 해도 중동과 서양 보다는 몽골의 지금의 중국, 남쪽지역이 군사력도 강했고 문명도 발달 했다는 이야기 이다.
내가 할 이야기는 칭기즈칸의 역사 이야기를 할려는것이 아니고,
칭기즈칸 군대의 침략이 그리 멀리 그리 빨리 성공했냐는 것이다.
첫째. 칭기즈칸의 성공이유는 1인 독재 체제를 공공히 했다.
몽골 부족을 통합하면서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부족은 철저히 몰살시킨다.
자신을 배반했던 타타르족을 정복하고서 수래바퀴 보다 큰사람은 모조리 죽인다.
수래바퀴의 키는 평균 9살 남자아이의 키였다고 한다.
그렇게 초토화 작전을 펴면 자신에게 충성할 사람만 남는다.
둘째. 외국군 정복지의 인력을 철저히 이용한다. 적군이 항복을 하면 항복한 적군은
아군이 된다. 군대는 수평적 관계로 장교와 병사의 처우가 평등했고 외국군에게도 평등했다.
적군이 항복을 하면 자동 몽골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몽골에서 멀리가면 갈수록 몽골인의 병사 비율은 낮아지고 외국인의 비율은 높아진다. 약탈한 전리품은 병사 장교 할것없이 똑같이 나눠 가진다.
당시 몽골군이 된다는 것은 지금의 변호사 나 의사가 되는것과 비슷했을 것이다.
농사나 짓고 가축 이나 치는것 보다 승률 높은 군에 껴서 돈 버는것이 낫다고 몽골 병사들은 생각 했을 것이다.
그러다 죽으면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고 죽었겠지만.....
셋째. 정복국의 종교와 문화를 건들이지 않는다.
종교와 문화를 건들이면 필사적으로 싸우고, 싸움은 오래간다.
다종교 국가에서는 한쪽 종교 편을 들어 내분을 유도 했다.
넷째. 쓸모없는 땅은 그냥 지나친다. 티벳지역과 러시아 알타이지역과 코카서스 산맥 지역등이 그랬다.
다섯째. 몽골군은 산악지형과 바다지형에서의 전투가 부진했다.
●종교지도를 바꿔버린 징기즈칸.
징키즈칸은 침략 대상의 다종교 국가에서는 대세 종교의 편을 들어 줌으로서 소수종교파의 말살을 돕게 된다. 그 결과로 지금의 신장위그르 지역이 불교와 이슬람간의 대결지역 이였는데 이슬람편을 들어 줌으로서 불교가 말살을 하게된다. 티벳 지역은 불교가 대중화 되었으므로 불교가 그대로 남았다.
지금의 이란 지역은 조로아스터교가 대세 였는데 몽골이 지나가고 나서 이슬람이 대세로 굳어진다.
지금의 간다라지역,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의 접경지역은 불교와 힌두교가 대중종교 였었는데 몽골군이 지나가고 나서 일칸국 지역으로 편입 됨으로서 이슬람지역으로 바뀌게 된다.
●칭기즈칸의 어린시절
칭기즈칸이 9세때 아버지 예수게이는 타타르족의 독살로 죽음을 맞이 한다.
예수게이는 본처와 후처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예수게이는 후처를 본처로 삼았다.
후처의 큰아들 칭기즈칸은 아버지가 죽자 가족의 가장이 되었다.
12세 때 눈에 가시같았던 본처의 큰아들 이복형을 죽이고 20세가 되자 부족 점령에
나선다.
그는 항상 가족이외는 믿지 않았고, 자신에게 진심으로 항복한 사람만을 측근으로 삼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본 칭키즈칸은 평생을 배신을 염려하다 죽었다.
그후 1206년 몽골부족을 통합하고 막강해진 몽골군을 놀릴수 없어 시선을 해외로 돌린다.
● 칭기즈칸 그에게 협상이란 없다.
단지 항복이냐 저항후 몰살이냐의 선택지만 있었다.
그는 전술적으로 불리할때 협상을 했지만 그협상은 오래가지 않고 불리함이 사라졌을때
그 협상은 휴지조각이 된다.
●망구다이 전술
지구력 강한 몽골말을 바탕으로한 전술로서 처음에 기병이 돌진하여 적의 시선을 끌고
공격해 오는 적을 뒤돌아 후퇴를 거듭한다. 후퇴하면서 적의 추격의 기세를 늦추지 않기 위해 적의 화살의 사정거리 경계에서 후퇴하며 파르티안샷( 말을 타고 달리면 상체를 뒤로 돌려 화살을 쏜다) 을 날리며 적을 유인한다. 적이 지칠만한 거리에 아군을 매복시켜 놓고 추격하느라 지친적을 포위하고 화살을 날려 적을 전멸시킨다.
성벽 포위전에서는 성벽을 빙둘러 싸고 보급로를 끊어 몇달을 걸려 고사작전을 펴고 성안에 물과 식량이 다 떨어져 갈때쯤. 금나라에서 획득한 화포와 투석기 전술을 이용해 성을
점령한다. 이렇게 점령된 끝까지 저항한 성안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몰살한다.
●몽골군 평균나이는 18-23세
몽골군 평균나이는 18-23세 였다고 한다.
그나이는 갓 성인이 된 나이로 상부의 명령에 무조건 충성할 나이이다.
점령한 성안에 생명체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결혼한 병사나
나이 먹은 병사는 자신의 가족이 눈에 밟히므로 명령을 실행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전투에서 젊은 병사들은 돌격명령이 떨어지면 명령대로 무조건 돌격한다.
나이 먹은 병사들은 어떻게 살수있을까 잔머리를 굴려가면 적당히 한다. 불리하다
싶으면 도망간다.
뭣모르는 어린 병사들이였으니 시키는 데로 했던것이다.
한마디로 몽골군은 양아치 군단이였던것이지요.
요번 러시아 극장 테러범들도 23세 이하의 젊은이 들이지요.
젊은이들은 이렇게 돈 몇푼에 단순한 이념에 쉽게 넘어갑니다.
● 칭기즈칸 몽골군이 남긴것들.
몽골군이 서유럽을 점령하면서 유럽의 각국들은 동쪽에 강력한 나라가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닿는다.
몽골에 털린 나라들을 보고 유럽 각국들은 다른 약소 나라를 털어 먹는 방법을 깨달아
식민지 쟁탈전에 나서게 된다.
콜롬부스의 아메리카 발견도 약소국을 털어 재산을 축척 부국강병을 위해 시작된것이다.
칭기즈칸 몽골군이 그 깨달음의 멘토였다고 나 할까?
● 세계 최초의 택배 시스템.
몽골군은 30Km 마다 역참을 두었다. 그래서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소식이 역참을
타고 몽골 수도 카라코롬까지 48시간이내 도달했다고 한다.
헝가리 전투에서 벌어진 소식이 수도까지 전달되는데 48시간이면 정말 놀라운
속도이다.
거기다 전시의 획득한 노획물들이 자신의 고향까지 주소만 적어주면 병사의
고향 집에 까지 배달 되었다 한다.
●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시스템.
획득한 노획물들은 장교와 사병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나눠가졌다.
이러니 장교와 병사 모두 전투에 진심일수 밖에 없었다.
●몽골인은 유목민이다.
유목민의 식량은 가축을 잡거나 사냥을 해서 얻은 고기를 주식으로 한다.
유목민은 살생이 기본이고 어려서 부터 도축을 보고 실행해 보며 자란다.
아마 문화와 언어가 다름 이민족을 보면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몽골군은 전쟁에서 꺼리김 없이 살생을 했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