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교회 거지교인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목사님 이명호목사님!!
지금은 다 철거되어 녹지로 되어있지만 1974년경에 교회에서 동북쪽으로 바라보이는 국사봉 기슭, 성대시장에서 올라오면서 보이는 정면부분은 판자촌이 빠곡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지금 동아아파트에서 교회로 오는 주변의 요즘의 판자집보다 훨씬 못한, 상수도시설도 없는 말그대로 판자와 루핑만으로 지은 집들이 있었고 그곳에서 몇몇 성도님들이 사셨고 많은 이방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교회앞으로 지금 반찬가게하는 연립까지 아무런 건물이 없는 공터였고 지금 교회 정문에서 성대산업뒤쪽까지 건물이 없어서 교회에서 창문으로 바라보면 판자촌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빤히 보였습니다. 주일학교가 끝나면 학생들이 우르르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을 눈빛으로 전송하곤 했습니다.
특별히 절기 때가 되면 당시 주일학생들에게 작은 백설기덩이를 하나씩 나누어줬는데 교회에서 먹는 학생들은 하나도 없었고 다들 집에 가져가서 식구들과 같이 나누어 먹으려고 들고 갔습니다. 평소에도 판자촌에서 오던 학생들이 있었지만 절기 때면 떡을 나누어 준다는 사실을 알고 절기 때만 나오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절기 때 예배가 끝나고 유리창너머로 그들이 가는 것을 보면서 옛날 저희 어머님은 육이오 사변을 인공 때라 하셨는데 인공 때 빨치산들이 마을에 내려왔다가 국군토벌대가 오면 자루에다 먹을 것을 빼앗아 가득 담아 자루에 메고 산으로 떼지어 우루루 급하게 도망쳤다는 말씀과 같이 도망치는 것은 아니지만 떡덩이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산으로 가는 계단을 가득 메우고 집으로 빨리 달려가서 식구들과 나누어 먹고자 하던 모습에서 당시의 어려웠던 형편이 지금도 가슴 아프게 생각납니다.
당시 교회 앞에 살던 어떤 이방인이 우리교회를 거지교회라 했듯이 당시 주일학생들 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옷차림도 요즘 전라도 사투리로 거시기 했습니다. 정장은 커녕 오직 주일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옷은 한 벌이었고 여름에 양발은 사치였습니다. 당시 어르신들의 형편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러다 76년 2월에 입대를 했고 간혹 휴가를 나올 때마다 변하는 교회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주일학생들의 옷차림이 바뀌고 교사와 성도님들의 옷차림이 매번 업그레이드가 된 것입니다. 제대로 된 직장에 다니던 분이 없었던 분들이 어였한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고 월세에 살던 분들이 전셋집으로 옮기시고 나주에는 집을 사고...
일년 사계의 변화가 뚜렷하듯이 일년 단위로 휴가 올 때마다 성도님들의 영육간의 형편이 나아지는 것이 확연히 보였습니다. 당시 주일학교 찬송은 너무도 은혜로웠고 새벽예배나 낮예배나 저녁예배나 참석하는 인원수가 전부 같을 정도로 목사님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 주셨습니다.
이렇듯 거지교회 거지교인들이 점점 부자교회 부자교인으로 바꾸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교사들은 지금은 목사님과 사모님이 되시고 장로님 권사님이 되셨습니다.
당시 거지교인이란 소리를 들었던 우리는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복을 받았는지...
우리 목사님이 얼마나 우리를 자식같이 사랑해 주시고 우리를 위해 성전을 떠나지 않고 눈물로 복을 빌어주셨는지를 말입니다.
한 예가 있습니다. 지금 임경재권사님 집에서 당곡중학교 쪽으로 조금 가면 모서리 이층집에 은석이네 슈퍼가 있었습니다. 당시 성대시장에 내려가서 사면 가격이 싸기에 어린 생각에 성대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오곤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조금 비싸더라도 성도님 물건을 사주는 것이라 타이르신 그 음성을 지금도 잊을 수 가 없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웁게도 그분들의 모습은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참 후에 예산에 주택을 새로 신축하는 중 응접실 전면을 스텐창틀로 설계가 되어 일부러 같은 교회 성도님께 설계도를 드리고 제작을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설계와 전혀 다르게 제작하였습니다. 도저히 그 건물에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그분께 다시 제작해달라고 말씀드리는 것을 마침 예산에 내려오신 목사님께서 들으시고 그냥 잘못 만들어 온 창틀을 받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를 손해 보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산에 가면 지금은 도로가 나서 없어졌지만 아리랑고개에 과수원이 있고 양계를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병원에 단골로 오시는 분이셨는데 알은 적게 낳고 사료만 먹어대서 경제성이 없는 닭들이 생겼다고 팔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당시에 500원은 지금의 물가가 많이 올랐다 해도 파격적인 싼 가격이었습니다. 역시 목사님께서 당시 내려오셨다가 그 말씀을 듣고 가난한 성도님들을 위하여 그 많은 닭을 손수 잡아가시던 일이 생각납니다. 가난하여 고기도 제대로 못 사먹는 성도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여기에 쓰기는 뭣 하지만 물론 닭 하면 또 떠오르는 것은 초창기 출산한 성도님과 어려운 성도님들에게 성대시장 생닭집에서 나오는 요즘의 좋은 말인 닭 부산물과 무우청, 당근잎 등에 대한 추억인데 지금도 이추억을 당시의 성도님들은 공유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목사님 삶 자체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셨고 연약한 우리를 위해 살아 주셨습니다. 이는 진천 등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다가 튀겨주신 튀김과 어죽 그리고 깊은 심산에서 갖은 산나물을 채취해서 육신의 건강까지 챙김을 받은 많은 성도님들이 증언이 있습니다.
목사님과 동행하며 참으로 행복했던 순간 순간들에서 배우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만 항상 제대로 못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가지는 아직도 목사님의 손놀림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 어찌 그렇게 빨리 그리고 깔끔하고 맵시있게 잘하시는지.... 이는 성도를 사랑하는 사랑에서 우러나는 지혜이자 그 만큼 손을 놀리지 않고 수없이 많은 일을 하셨기에 가능한 것임을 알기에 자연히 감탄하며 머리숙여 존경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목사님은 다윗이 환란당한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자신에게 나아오자 그들을 형제와 같이 끝까지 데리고 사셨던 것같이 또 예수님 주위에 모여든 죄인과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철없고 무지한 제자들을 끝없는 사랑으로 양육하심 같이 당시 우리를 아니 지금 모든 성도님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봅니다.
어느 땐가 예산에서 올라와 변함없이 교회로 철야기도 가시는 목사님을 모시고 교회로 올라가는 중 교회까지 2블럭을 걸으시면서 남의 집 대문 계단마다 한참씩 앉아 쉬어가시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거스리는 영혼을 위해 진액을 다 바치면서 기도하셔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갔지만 이것이 참 목자의 모습이요 예수님의 심장이라는 것을 어리지만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물론 한참 후에 다시 더 새로워진 부활의 진리를 파워풀하게 전하시고 육체도 강건해 지심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과연 십자가도의 죽고 부활이 이것이 구나하고 말입니다.
요즘은 목사님이 선포하시는 십자가도의진리는 날로 날로 새롭고 환란에 때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방주의 역사는 더 확실하게 다가오지만 한가지 걱정인 것은 목사님의 육체가 점점 연약해 지시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을 다 주님께 드리고 연약한 저희에게 주심임을 알고 있습니다만 한참 전에 국사봉 뒷면에 가득한 아까시아 꽃길을 그 향기에 취한채 모시고 걸은 기억이 항상 새로워 훗날 사막이 꽃동산되고 사자가 어린양과 같이 뒹구는 그때에 주님과 같이 목사님과 같이 거닐기를 소원했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술의 깊은 산길을 노루와 발마추며 걷기도 했는데 요즘은 운동을 제대로 못하심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제 거지교회라 하던 제일성민교회가 35년이 되었습니다. 그 교회가 이제는 십자가 도가 선포되는 은혜와 진리가 넘치는 교회와 아름답고 웅장한 예배당으로 부자교회가 되었고 당시 거지교인들이 목사님의 축복해 주심으로 영육간에 장성하고 넘치는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직도 주심만큼 또 기대하심만큼 드릴 수 없어서 한없이 죄송스럽습니다만 목사님께서 건강하게 오래 살아 주셔서 저희를 고쳐주시고 양육해 주시면 저희 모두가 많은 기쁘심을 드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목사님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목사님이 양육해주신 저희로 하나님나라의 방주인 서산중앙병원이 우뚝서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 35년 동안 너무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진정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 하늘만큼 땅만큼
첫댓글 목사님 좋은 글.. 감동이 있는 글 감사합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종류의 글을 많이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