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주민(인디언) 선교...
과연 세계 최강대국, 최대의 선교국인 미국에 선교의 필요성이 있을까?
있다.
그것이 도심지이건 광야건... 초문명국 미국에도 선교의 필요성은 확실히 있다. 그리고 많다.
도시선교의 필요성은 차치하고...
미국 원주민들...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이 땅에 가장 먼저 정착한 이 땅의 주인들이었다.
물론 인류의 역사는 그들의 미대륙 독차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대륙 양보는 양보로 끝나지 않았다.
이들을 향한 백인 정부의 정책은 좋게 말해서 동화 정책(assimilation)...
그러나 실제로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식민정책을 넘어선 멸종 정책(genocide)이었으니...
수백 년의 일관된 식민정책 수행의 결과는
수적으로도 이천만(혹은 삼천만)의 원주민이 지금 이삼백만으로 줄어들었으며
공평과 정의를 주장하는 꿈의 땅 미국에서 아직도 엄청난 인종적,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교육적 차별에 시달리는 원주민들이 존재하고 있으니...
행복과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미국의 정치이념은 오직 이 땅을 침략해 들어온 세계의 모든 인종에게는 열려있지만 이 땅의 주인들에게는 철저히 허락되지 않는 모순된 현실인 것이다.
혹자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연방정부의 원주민 지원, 혹은 원주민 자신들의 실패 등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그 저변을 들여다보면 피해자로서의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제 36년의 식민 정책이 한국의 역사에 얼마나 엄청난 아픔을 남겼던가.
그것의 열 배, 스무 배를 생각한다면 그들의 아픔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신앙 외적인 문제들은 그렇다 치고 그들의 영적 상태는 어떨까?
백인 선교사들이 그들을 위하여 지난 백여 년간 일해왔다.
곳곳에 교회도 세웠다. (그중 어떤 것들은 대단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복음의 진수 보다는 (여느 선교의 과제이기도 하지만) "Square Church"로 대변되는 백인들의 문화를 강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Square Church는 둘러앉는 원주민 문화에 반해 일방적인 청취를 강요하는 네모난 교회, 즉 강단을 일방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회중석의 배열을 일컫는 말이다.)
게다가...
정말 헌신된, 원주민의 부모 같은 백인 선교사들의 사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백인들의 식민정책의 일환으로써, 혹은 그 앞잡이로서의 선교사들의 역할도 없었던 것이 아닌 만큼
암암리에, 혹은 노골적으로 원주민들의 반발이 심했던 것이 사실이고 보니...
현장에서 사역하는 백인 선교사들이 선배들의 사역을 실패로 규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며...
이것이 또한 한인 선교사들의 활동이 절실하게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로 현장 선교사들이 보는 현재의 원주민 복음화율은 종족별로 0.5%, 혹은 1% 미만.
원주민 공동체와 그 안의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아직도 medicine man(민방 주술사?)으로 요약되는 강력한 "전통신앙"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들의 신앙은 삶과 분리된 종교로서라기 보다 삶의 모습 그 자체인 만큼 그 삶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Traditional Religion이 아니라 Tradition 그 자체인 셈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미국의 많은 기성교단에서는 원주민 선교를 완료, 혹은 그들 자신의 문제인 것으로 간주하여 직접적인 활동이나 지원을 중단하거나 감소하는 상태다.
어느 선교지든지 나름의 필요성이 있을 것이고 그 필요를 위하여 많은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는 그 한편에
인륜적으로,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의 유전자(검은 머리 등)를 함께 나눈 그들의 삶과 신앙을 위한 사역이 필요함을 알 수 있을 것이며...
혹시 광야에서 "우리를 도와 달라"고 손짓하며 부르는 그들을 볼 수 있다면 여기에 한인 교회의 사명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