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신춘문예 분석, 80년대 생, 20대 대거 등단
시는 전통문법으로의 회귀, 소설은 경향 찾기 힘들 만큼 다양
문학계 봄은 1월부터 시작된다. 매년 1월 1일 대다수 신문사는 신춘문예 당선작과 당선자 소감, 인터뷰를 싣는다. 영상시대라고 하지만 신춘문예 응모 열기를 구경하다보면 '우리 문학의 미래가 밝다'는 낙관적 전망을 하게 된다.
2011년 주요 일간지에 당선된 신춘문예 작품과 당선자 특징을 분석했다. 80년대 생, 20대가 대거 등단했다. 70~80년대 당선자 다수를 차지했던 서울예전-중앙대 문창과 출신은 이제 고려대, 서강대, 이화여대와 한예종 출신으로 교체됐다.
2011 신춘문예 공통점은?
전국 단위의 종합일간지에서 신춘문예를 공모하는 신문사는 모두 7곳이다. 한국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세계일보, 문화일보 등이다. 시와 단편소설을 기본으로 희곡, 평론, 시조, 동화, 동시 등을 추가로 공모하는 곳이 많다.
매년 11월이면 이들 신문사 문학담당 기자들은 비명을 지른다. 신문사 주최의 문학상 심사와 시상식이 몰려있는데다, 신춘문예 원고가 말 그대로 '쏟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신문사마다 차이를 보이지만, 대략 응모자 수는 수천 명 단위다. 일례로 2011년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는 시 710명, 소설 384명, 희곡 91명, 동시 191명, 동화 175명이 응모했다. 열기가 이러하니,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 '문학의 종언'은 우리나라에서 시기상조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는 2505명이 응모했고, 조선일보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응모 편수는 각각 7327편, 4484편에 이른다.
문학이 사회의 반영이다 보니, 응모작들은 해마다 특정 경향을 보일 때가 많다. 일례로 미래파가 유행했던 2, 3년 전만해도 난해한 시들이 신춘문예 응모작에 상당수를 차지했다.
올해 시 부문 응모작들에서는 난해한 실험시가 퇴조하고 전통적 문법의 작품이 늘어났다. '전통적 문법으로의 회귀'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신춘문예 투고 원고들의 특징이다.
한편 소설은 청년백수, 칙릿, 다문화가정 등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이 몇 년간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환상성을 모티프로 차용한 작품이 많은 것도 최근 응모작들의 특징으로 꼽혔다. 그러나 올해 소설 부문 응모작들은 소재나 구성, 방법에서 딱히 경향성을 찾기 힘들 만큼 다양해졌다.
그렇다면 어떤 작품이 신춘문예에 당선될까? 신춘문예 심사위원은 매년 교체되므로 신문사별로 특정 경향을 갖고 있진 않다. 시와 소설로 한정한다면 신춘문예 심사는 거의 대부분 예심과 본심으로 나눠 진행된다. 예심은 10~15년차 중견 작가가, 본심은 20~30년차 원로작가가 심사를 담당한다.
따라서 문예지 신인공모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작품이 '낙점'될 가능성이 높다. 문인들은 문청(文靑)들에게 안정된 작품이라면 신춘문예를, 개성적인 작품이라면 문예지 공모전에 도전하라고 추천한다.
전국 수석이 "교과서로 공부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뻔한 대답이겠지만, 안정된 문체와 구성, 여기에 신인의 패기가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신춘문예가 시작된 1920년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하다. 올해 일간지 신춘문예를 심사한 선배들의 조언에 귀 기울여 보자.
'자기 문장을 지닌 시를 찾으려 했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뤄진 많은 시들에서 피상적인 시선을 발견하곤 했다. 피상성은 문장의 연마로는 탈피되지 않는다. 사유의 치밀함이 필요하다.' (시인 김소연)
'투고된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너무나 안일한 방법으로 소설을 시작하는 작품이 많다는 것이었다. 소설의 시작은 이야기의 시작이지 주인공 하루의 시작은 아니다. 다양한 직업을 다루는 작품들도 많았지만 그 이야기들이 대부분 소재에 머물러 있었다. 특이한 소재를 찾는 일보다 우선 인물에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소설가 윤성희)
고대, 동대, 서강대 강세
서울예전과 중앙대 문예창작과가 신춘문예 당선자를 대거 배출한 시절이 있었다. 김승옥(1962년 한국일보), 최수철(1981년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서울대-신춘문예 출신 작가들도 문단에서 한 몫을 차지했다. 이 구도가 최근 고려대, 서강대, 동국대 등으로 바뀌었다.
최근 몇 년간 '고대파'란 유행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시와 평론에서 고대 출신 문인들이 강세를 보였다.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 중 고려대 출신이 5명으로 가장 많았다. 신철규(조선일보 시) 씨를 비롯해 강은진(문화일보 시), 허진(서울신문 평론) 씨가 국문과 대학원 과정에 있거나 수료했다.
서강대와 동국대 출신 등단자는 각 4명. 박인성(경향신문 평론) 씨와 노대원(문화일보 평론) 씨는 서강대 국문과 출신, 정재민(동아일보 중편소설) 씨는 이 대학 컴퓨터학과 출신이다. 백수린 씨는 서강대 불문과 석사를 수료했는데, 같은 과 교수인 소설가 최윤의 제자다.
2008년 8명의 등단자를 배출해서 눈길을 끌었던 동국대는 올해 4명의 등단자를 배출했다. 한국일보 소설부문에 당선된 라유경 씨를 비롯해 김슬기(조선일보 희곡), 권민경(동아일보 시), 송정양(동아일보 동화) 씨 모두 문예창작과 학부 혹은 대학원 출신이다.
한국일보 희곡 부문에 당선된 김성배 씨를 비롯해 한예종 출신 등단자 3명은 모두 전문사과정(일반대학 석사에 해당)을 졸업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3명 모두 학부는 다른 대학을 나왔다.
'문학계 세대교체'를 방증하는 걸까?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를 나이별로 분류해보면 80년대 생, 20대가 가장 많다. 올해 최연소 등단자 중 한 명인 라유경(한국일보 소설, 1987년생) 씨를 비롯해 16명이 1980년대 생이다. 한국일보 희곡으로 등단한 김성배 씨를 비롯해 1970년대 생은 모두 11명이었다.
올해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 중복 수상자는 없다.
'고맙습니다'의 어원을 찾아서
당선자들이 쓴 소감에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부분을 눈 여겨 읽다 보면 신춘문예를 더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다. 가족을 제외하고 '고맙습니다'가 향한 주체는 대부분 스승인 바, 당선자들의 소감문만 보아도 현재 국내 문학계의 계보가 그려진다.
"삶의 진실을 보는 눈을 달아주신 하일지 선생님, 쓰는 자의 소명이 깃든 마음을 달아주신 김사인 선생님, 기어코 써야만 하는, 쓰고 또 쓸 손을 달아주신 윤대녕 선생님. 세 아버지들 덕분에…"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된 차현지 씨의 소감문이다. 차 씨는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출신이고, '세 아버지들'은 이 학교에서 문학창작을 가르친다.
"문학에 관심을 갖게 해주고 방향을 제시해준 우찬제 선생님에게 감사하고…"
경향신문 문학평론에 당선된 박인성 씨의 인터뷰에 이런 말이 있다. 서강대 국문과 출신의 박 씨는 같은 과 교수인 우찬제 평론가를 사사했을 것이다.
올해 소감문 중, 눈에 띄는 두 편이 있다. 동아일보 중편소설에 당선된 정재민 씨, 문화일보 단편소설에 당선된 서현경 씨의 소감문이다. 둘 다 "소행성 문우들과 박상우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소행성 B612'는 소설가 박상우 씨가 운영하는 온오프라인 소설합평 모임. 소설가 박혜상('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조영아(한겨레 문학상)를 비롯해 몇 년간 신춘문예 당선자를 꾸준히 배출하며 입소문을 탔다. 소설가 이순원 씨가 운영하는 소설합평 모임과 문예지 <서정시학>이 운영하는 문화아카데미 등도 문청을 위한 합평 모임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