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동네 앞을 지날 때마다 한길에다 큰 현수막을 달아 내 이름을 나타내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보았으나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기차표를 살 때는 경로냐고 묻는 나이가 되니 그런 생각은 나지 않지만 고향교회에 가서 설교 한다는 일은 참으로 보람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가서 집회를 인도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참석한 분들 대부분이 할머니들이었는데 그 할머니가 도대체 누구인지를 모르겠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보니 내가 어렸을 때 바로 이웃에 살던 새댁 같던 분들이 호호 백발 합죽이 할머니가 된 것이다. 참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
함께 웃고 함께 울던 지난날의 그 모든 세월들, 이렇게 속절없이 늙어가는 삶임을 느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자손들이 객지에 나가서 모두 신앙생활 잘한다는 소식들을 들으니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있겠는가마는 어떤 가정은 교통사고로 자손이 어렵게 되어 교회에 나와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그런가 하면 처음 보는 노인들도 있었다. 타지에서 이사 온 분들이었다. 이 분들은 여기에서 돼지와 소를 키우는 분들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제역의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너무 감사하단다. 구제역이 바로 산 너머까지는 왔는데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은혜라며 감사하다는 진심어린 얘기들을 했다.
집회기간 중 하루는 식사대접을 하게 된 가정을 방문하였다. 식사 대접을 하는 할머니는 76세 되신 분인데 아주 꼬부라졌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셨느냐고 물으니 칠십이 넘으면서 우연히 그렇게 되었는데 어디 아픈데는 없다고 했다. 그분은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자손들의 구원을 위하여 시간마다 감사헌금을 올리면서 기도를 하더니 식사대접까지 하였다.
이 할머니 성도는 남편 서른아홉, 할머니는 서른여섯에 혼자되었는데 오히려 남편 없이 사는 삶이 편하고 좋았다고 고백했다. 남편이 어지간히 속을 썩였나보다. 시어머니가 딸만 딸만 나니 매일 아침 방망이로 우물의 얼음을 깨고 그물을 떠다 빌었는데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을 얼마나 버릇없이 키웠는지 자기만 알고 무능하고 참으로 어려운 생을 살았다고 한다. 하루는 시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어디를 며칠 갔다 올 테니 네가 매일 새벽 정한수를 떠다놓고 빌어라 해서‘어머니 그렇게 빌어서 그런 버릇없는 아들을 얻으셨습니까?
저는 그런 것 안합니다’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금의 담임목사님이 전도하여 늦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예수님을 믿으니 이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들뜬 마음으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다. 어느 젊은 아주머니가 남편과 열심히 나와 듣더니 은혜를 많이 받았다며 떠나오는 나를 배웅했다. ‘목사님! 언제 또 뵈옵나요?’하면서 인사를 하고 가더니만 또 왔다. 그리고는 내가 차로 떠나는 것을 보고야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한 주간을 지내는 중 하루는 그 동네 어느 큰 식당엘 갔다. 농촌이지만 식당이 퍽 큰 편이었다. 손님들도 꽤 많았다. 이 집 주인은 고향 땅에서 자수성가한 집이다. 그 근방의 땅이 모두 그의 땅이고 한우농장으로 얼마나 큰 부자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느냐고 물었더니 안 믿는다고 했다.
식당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부인이 와서 인사를 한다. 그런데 그 부인의 모습이 너무도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사도 잘되고 한우농장도 잘되어 부자는 되었으나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고 허리에는 의료보조기를 착용해야만 정상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불현 듯 드는 생각이지만 그렇게 부자로 사는 것만이 이 세상에 다는 아니잖은가?
그렇게 부자이면서 몸은 한없이 고달픈 것이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몸은 다 꼬부라져 소망이 없어 보이지만 은혜 받아 좋아하는 그 꼬부라진 할머니에게 소망이 있다고 믿는다.
다 꼬부라지고 백발이 되고 합죽이가 되고 했어도 그래도 예수님을 믿지 않던 옛날보다는 소망이 있어 보이는 고향 교회 성도님들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한 주간 퍽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