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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한 방
케니 지의 감미로운 쎅스폰 소리가 방안에 가득차 있었다. 콧노래로 멜로디를 따라가며 의정은 거울 앞에 앉아서 거울을 통해 비치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뜯어보았다. 어디로 보나 이제 그의 얼굴에서 이의정이라는 22세 남자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앞에 나타난 얼굴은 밤의 세계에서 ‘주리’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어여쁜 여자일 뿐이었다. 오똑하게 솟은 코는 불과 두 달 전에 수술을 해서 세운 코였고, 그 새로운 코 하나만으로도 그의 얼굴은 전보다 훨씬 여성스러웠다. 원래 여성스럽게 생긴 그의 이목구비였지만, 그의 코가 좀더 높아지고 갸냘퍼지면서 이상스럽게도 그의 전체 윤곽이 달라보였다. 이제는 그전의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지금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었다.
보라색 진한 아이섀도우를 이미 바른 부위에 덧바르고 다시 거울을 뚫어지게 보았다. 오른쪽 왼쪽 번갈아보며 전체의 화장 조화를 점검하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엷은 미소와 함께 입술을 앞으로 쏙 내밀어 거울에 비치는 ‘주리’를 향해 입맞춤을 띄웠다. 그리고 짙은 보라색 립스틱을 천천히 입술에 바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너가 이렇게 예쁜 여자가 될 줄은 정말 몰랐어, 주리. 너는 누가 보아도 여자야.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야. 처음에는 정말 이렇게까지 내 자신이 변할 줄 몰랐어. 정말 꿈에도 몰랐어. 날이 갈수록... 난 나를 알 수가 없어.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점점 알 수가 없어지지만 슬퍼하고 싶지는 않아. 나에게도 밝고 화창한 날이 올 거라는 것을 믿고 싶어. 어차피 내가 택한 길이라면 후회보다는 만족을 하고 싶어. 그리고 열심히 돈을 벌고 싶어. 그 징글맞은 돈을 왕창 벌고 싶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거울 옆에 놓인 단발머리 가발을 조심스럽게 들어 그의 머리에 사뿐히 덮어씌웠다. 그리고 다시 거울을 보았다. 이제 완전히 이의정은 사라졌다. 거기에는 싸롱 ‘불나비’에서도 제일가는 ‘정주리’라는 여자가 그를 마주보며 활짝 웃고 있을 뿐이었다.
화장대에서 일어나더니 옷장을 열었다. 옷장에는 다양한 색깔의 여성복이 단정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검은 색 투피스를 꺼내어 침대에 곱게 눕혀놓고, 이번에는 화장대에 달린 서랍을 열었다. 첫 번째 서랍에서 검은 색의 슬맆을 꺼내고, 곧이어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거기에는 온갖 색깔과 모양의 속옷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가장 위에 놓인 분홍색 팬티와 같은 색의 브래지어를 꺼내고, 한쪽 옆으로 정돈된 스타킹 중에서 검은 색을 집어 침대에 가볍게 걸터앉았다.
화장복과 붉은 색 팬티를 벗더니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달린 초라하게 찌그러진 남성의 상징물을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정말 기능을 제대로 할지도 의문스러운 그의 물건이 힘없이 처져 가랑이 사이에 끼어 있었다. 아직 단 한번도 그것을 사용해본 적이 없이, 그 물건은 쇠퇴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그렇게 숨기고 여자행세를 하다보니 이제는 제 기능도 잊고서 자연스럽게 가랑이 사이에 끼어 있는 불쌍한 물건. 아무리 몸을 꼭 죄는 드레스를 입어도 그 부분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그의 성기는 정말 초라하게 걸려 있었다. 그러나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처럼 슬프거나 가슴이 아린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저 초라하게 처져 있는 그 상징물이 눈에 띄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여자로서 완벽함을 갖추기 위해서는 불필요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언제고 제거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팬티를 얼른 집어 들어 입었다. 그의 처량하게 보이는 물건을 얼른 감춰버리고 싶은 듯한 행동이었다.
벌써 2년 동안 매일같이 반복되는 작업이지만 이제 이렇게 여장을 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처음 이 길로 들어섰을 때와는 달리,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이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술집생활에서는 벗어나고 싶었지만 여장을 하고 곱게 화장을 하며 변해가는 얼굴을 지켜보는 일은 여전히 신비감과 황홀함을 더해주었다. 남자로 살 때보다 돈벌이도 더 좋았고, 훨씬 더 좋은 대우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로서는 커다란 매력임에 틀림이 없었다. 더구나 표일을 알게 되고 그리고 어느새 그에 대한 정이 사랑으로 인식이 되면서 더욱더 여자로서 표일을 만나고 싶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여자로 가꾸는 일에 몰두했다. 또한, 불나비에서 술을 따르고 아양을 떨며 돈을 버는 일도 점점 싫증이 나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표일의 여자가 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도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표일을 언제까지 속일 수 있을지도 문제였고, 스스로도 그와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갈등에 휩싸여 지내는 날이 더 많았다. 자기가 완벽한 여자였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는 더욱 자신을 여성의 세게로 몰고 갔다. 그 노력은 그와 함께 이런 생활을 하는 현구나 상진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는 나날이 이 세계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 열성도 단연 앞서는 것이었다. 비록 지금은 조금씩 싫증이 나는 술집 일이지만, 여자로서 지낸다는 것의 신비감이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만은 무인할 수 없었다. 그렇다. 처음 이런 짓을 할 때 제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이의정이라는 남자는 이미 오래 전에 없어진 것이었다. 비록 가꾸어지고 만들어진 가짜 인물이기는 하지만, 현재는 ‘정주리’라는 요상한 이름의 술집여자로 존재하고 있었고, 또 그런 것이 싫지 않았다. 이제는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조차 스스로 거부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만큼 병적으로 여성적인 취향을 추구하고 있었다
침대 옆의 램프 테이블 위에 있는 마일드 세븐을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그의 가늘고 길다란 손가락 끝에 매달린 담배가 진보라 입술 안으로 슬그머니 밀려들어갔다가 곧 나오더니 입에서 연기가 몽글몽글 새어나왔다. 눈에 연기가 들어가 그는 짙고 길다란 속눈썹을 여러 번 깜빡거렸다. 담배를 재떨이에 올려놓고 스타킹을 집어 들어 조심스럽게 털 하나 없이 매끈하고 새하얀 다리를 검은 스타킹으로 능숙하게 감싸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촉감이 기분 좋아 눈을 스르르 감고 그 감촉을 감상했다. 처음에는 얼마나 어색했고, 또 얼마나 많이 구멍을 내었던 것이던가. 그러나 이제는 아주 능숙하게 입을 수 있었고, 그 촉감을 즐기는 순간이 너무나 행복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스타킹을 다 신고 나서 다시 담배를 집어 한 모금 깊숙이 빨았다. 문득 어제 저녁에 그를 여관으로 굳이 데려가려다가 결국 실패한 윤 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모 기업체의 수출부장으로 있다는 그는 불나비에 올 때마다 의정을 여관으로 데려가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이었다. 어제는 윤 부장이 멀쩡한 것 같아 교묘하게 빠져나왔던 것이다. 마지 못하는 척 따라갈 때는 윤 부장이 몹시 취해서 제정신이 아닐 때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직 의정의 비밀을 모르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담배를 보며 윤 부장을 문득 떠올린 것은 윤 부장이 하던 말 때문이었다.
--주리, 넌 정말 기가 막히게 키스를 잘해. 난 너 때문에 우리 마누라가 목석처럼 보일 정도야. 도대체 어떤 식으로 그렇게 훈련을 한 거야? 그렇게 담배를 피우면 키스도 잘하게 되는 건가?
의정은 다시 한번 씨익 웃으며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담배를 피우면 키스를 잘하게 되냐구? 자기는 담배를 안 피우나? 후후후후, 어리석은 사람...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게 술을 퍼마시고 회사 돈이나 펑펑 써대는 불쌍한 인간. 나보다 더 못한 인간이 자기라는 것을 그 사람은 알고 있을까?
다시 담배를 재떨이에 놓아두고 브래지어를 들었다. 그리고 슬픈 표정으로 가슴을 쳐다보며 손으로 가슴을 받쳐 들었다. 한웅큼 볼록 올라선 유방모양의 살덩이가 거울을 통해 보였다. 조금 올라서서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성인 여성들만큼 풍성한 유방은 아니었다. 호르몬만으로는 그런 유방을 갖기가 힘들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었지만, 아직 수술까지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런 유방이라고 하더라도 아예 이런 가슴이 없는 상진이나 현구보다는 백 배 나은 것이었다. 벌써 1년 넘게 약국에서 구해 스스로 주사하고 있는 여성호르몬제가 아직 큰 효과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체질적으로 맞는지 아무런 이상 없이 그 정도의 유방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위안을 하곤 했다. 더구나 초창기 때처럼 잔뜩 몽우리가 서서 한참 아팠던 기운은 이제 더 이상 없었다. 매일같이 가슴을 맛사지를 해주며 신경을 쓰기 때문이었다. 그 아픔이 가시면서 올라서기 시작한 가슴이라 주사약이 만들어낸 유방에 애착심마저 있었다. 의정은 낮게 한숨을 내쉬며 브래지어의 호크를 채웠다. 익숙한 솜씨였다. 아직은 내세우기 부끄러울 만큼 빈약한 가슴이지만 탄력 있는 컵이 달린 브래지어로 덮어버리자 제법 볼록한 유방모양이 되었다.
--이 가슴만 보기 좋게 불룩해지면 정말 여자다워질 텐데... 그렇다면 표일씨에게 가슴 정도는 허락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이 정도까지 자신이 여자에 가까와진 것만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꾸 여자로서의 완벽을 찾아 욕심이 생기는 자신에게 깜짝 놀랄 뿐이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 실크 슬맆을 조심스럽게 입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걸터앉으며 문득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현구와 상진이가 미장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출근을 할 생각이었다. 이제 제법 머리가 자란 세 사람은 곧잘 미장원에도 함께 가곤 했지만, 손재주가 뛰어난 의정은 혼자서도 자기의 헤어스타일을 가꿀 줄 알기 때문에 요즘에는 함께 행동하지 않는 편이었다. 대부분 자기의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출근을 하는 의정이었지만 귀찮을 때는 가발로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줄도 알기 때문에 굳이 미장원 출입으로 귀하게 벌어들인 돈을 쓰지는 않았다. 현구와 상진도 간혹 그에게 머리손질을 부탁했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된 미용장비가 없기 때문에 기초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할 수 없이 미장원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그가 다시 담배 하나를 다 피우고 났을 때에서야 두 사람이 돌아왔다. 의정은 문을 열어주며 두 사람의 머리 스타일을 유심히 보았다. 눈썰미마저 좋은 의정은 그렇게 해서 다른 기술을 배우는 것이었다. 상진은 목을 반쯤 가리는 정도의 머리카락을 안으로 구부린 복고풍 헤어스타일을 해서 그의 길쭉한 얼굴에 살을 좀 붙인 듯이 보였고, 현구는 반대로 넙적한 얼굴을 숨기려고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린 스타일이었다.
“어때? 괜찮지?”
그와 어린 시절부터 단짝이었고, 무작정 서울상경을 도모했던 현구가 의정을 보며 물었다. 화장을 아직 하지 않은 현구였지만, 가늘게 다듬은 눈썹과 그동안 맛사지와 피부미용제로 다듬은 고운 피부 때문에 머리 스타일에 따라서는 웬만한 여자보다 나았다. 더구나 의정처럼 목젓이 크게 발달되지 않아서 목소리도 허스키한 중성이었다. 그와 달리, 상진의 목소리는 예쁜 얼굴과는 달리 괄괄한 편이어서 가게에서도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몇 년 동안의 반복된 연습과 노력으로 그의 굵직한 목소리가 이제는 많이 죽었지만, 그는 가능하면 목젓을 숨기고 손님에게 시중을 들었다. 안전한 방법을 쓰는 것이 그들의 비밀을 지키기에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야야, 그게 그럼 얼마짜린데?”
상진이 현구를 핀잔하더니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벌컥거리며 마셨다. 현구는 심통난 여자처럼 상진을 흘겨보더니 의정에게 손가락을 세 개 펴 보였다.
“삼만 원?”
의정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돈을 제일 아껴쓰는 의정에게 삼만 원은 무척 큰 돈이었다.
“그래. 요즘 이 바닥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이래. 너야 아무렇게나 해도 예쁘지만 난 아니잖아.”
“그래도 삼만 원은 조금 비싸다.”
“그래도 이게 진희의 솜씨야, 야. 그 아이 실력 되게 좋아졌지 않니? 정말 세련되게 해주지 않았니?”
의정은 쓴웃음을 지었다. 진희는 현구의 비밀을 알고서 사귀기 시작한 현구의 애인으로, 조만간 돈을 벌어 함께 이 바닥을 떠나려고 하는 아이였다. 의정은 입을 삐죽이더니 현구를 재촉했다.
“얼른 화장이나 해. 난 벌써 준비 다 하고 나갈 생각이었어.”
“알았어. 밥은?”
“차려놓았어. 얼른 서둘러.”
상진은 어느새 밥상에 붙어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언니는 정말 먹성도 좋아.”
그들은 이미 몇 년에 걸친 연습 덕분에 무척 자연스럽게 언니니 동생이니 하는 호칭을 사용했다. 만에 하나 자신들이 남자라는 것을 손님이 알게되면 안되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서로를 부르는 것이라던가, 행동거지마저도 철저하게 여성을 흉내내고 있었다. 웬만한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은 철저한 연습을 해 온 것이었다.
“이렇게 먹어둬야 술을 마시지. 그리고 놈들이 추근대는 것도 이겨내고. 안그래?”
의정이 짧게 씨익 웃어보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식사를 하는 동안 그들이 입고 나갈 옷가지를 정리해줄 생각이었다. 세 명 중에서는 나이가 가장 어려서 이런 자질구레한 일은 알아서 도맡아 하는 편이었다. 그보다 한 살이 위인 현구는 시골에서 함께 자라서 친구처럼 지내지만, 상진은 그보다 세 살이나 많고 서울에서 만난 사이라서인지 깍듯이 형으로--사실은 언니로--대접하는 편이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공통점이 그들을 이런 쪽으로 몰고 온 첫 번째 이유였다. 첫째는, 세 명 모두 학력이 짧다는 점이었다. 국민학교 졸업과 중학교 중퇴라는 학력이 전부였다. 그나마 중학교 중퇴는 상진 하나였다. 변변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비애와 같았다. 둘째는, 세 명 모두 시골에서 올라와 이것 저것 밑바닥 생활을 거쳤다는 점이었다. 갖은 직업을 전전했지만 돈을 크게 벌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큰돈을 만져보고 싶어 결국에는 이런 짓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셋째는, 얼굴이 곱상하다는 점이었다. 화장을 하지 않고도 가장 여자처럼 생긴 것은 의정이었지만 다른 두 명도 화장을 하지 않아도 조금만 다듬으면 무난하게 여자로 보일 만큼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의정은 선천적으로 목소리가 여자아이 같았지만 현구나 상진은 조금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기본기가 있어서 목소리도 조금만 다듬으면 능히 남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이 지금은 무척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넷째는, 덩치나 키가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가장 큰 상진이 173 센티미터였고, 현구와 의정은 각각 170과 171 센티미터였다. 더구나 세 명 모두 마른 체구였다. 그동안 각자를 위해 옷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모두 돈을 크게 벌고 싶어한다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서울에서 고생을 하면서도 은행에 쌓인 돈은 별로 없었다. 의정이나 상진의 경우에는 특히 더했다. 시골집으로 매달 돈을 부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혐오스럽고 지저분하게 느껴지는 직업일지라도 이 생활로 몇 년만 고생을 해서 돈을 모아 자기들만의 장사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의정은 간혹 그들이 만나게 된 일이나 이렇게 희한한 직업을 갖게 된 것을 생각해 보지만, 참으로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의정이나 현구가 돈에 환장을 한 사람처럼 악착같이 일을 하다가 머리를 식힌답시고 모처럼 찾은 조그만 호프집에서 상진을 만난 것도 기구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상진의 꼬임이라고 해도 좋고, 그들의 욕심이라고 해도 좋았다.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오로지 돈, 그것 하나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궁극적인 목적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런 생각으로 이렇게 희귀한 일에 매달려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최소한 의정만은 흔들리고 있었다. 돈만이 아닌 또다른 무엇 때문에... 그래서 괴로와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생활을 떠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자신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더욱 원하고 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