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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율경(栗卿) |
생년 | 1717(숙종 43)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 후기 |
본관 | 순흥(順興)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안개(安鍇) |
역대 주요 인물
▲조선조
안관제(安寬濟) (교리(校理))
<국조 문과 방목>
안관제(安寬濟)
영조(英祖)35년(1759년), 식년시(式年試) 병과8(丙科8)
>>> 인적사항
생년(生年) 1717년, 정유
자(字) 율경(栗卿)
호(號)
본관(本貫) 순흥(順興)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諡號, 封號
>>> 가족사항
부(父) 안개(安鍇)
생부(生父)
조부(祖父) 안시상(安時相)
증조부(曾祖父) 안식(安烒)
외조부(外祖父) 이언경(李彦經)
처부(妻父) 김시엽(金始燁)
제(弟) 안겸제(安兼濟)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특별시(特別試)
전력(前歷) 통덕랑(通德郞)
> 국역조선왕조실록 > 영조 51년 을미(1775,건륭 40) > 11월26일 (기해) >
영조 51년 을미(1775,건륭 40)11월26일 (기해)
안관제를 교리로 삼다
양산 군수(梁山郡守) 안관제(安寬濟)를 교리(校理)로 특별히 임명하였다. 안관제는 역신(逆臣)과 결혼한 것 때문에 세상에서 버린 바가 되었는데, 갑자기 청선(淸選)의 자리에 임명되니 걱정하고 한탄하는 사람이 많았다.
> 국역조선왕조실록 > 영조 52년 병신(1776,건륭 41) > 1월4일 (병자) >
유신을 각도에 파견하여 유서를 선포하고 두루 살피고 오라 명하다
임금이 집경당(集慶堂)에 나아가 좌의정(左議政)·병조 판서(兵曹判書)·옥당(玉堂)을 소견(召見)하였다. 임금이 유신(儒臣)을 제도 찰민은사(諸道察民隱使)라 이름하여 유서(諭書)를 선포하고 두루 살피고 오게 하였는데, 기전(畿甸)은 유한경(兪漢敬)이고 관동(關東)은 이병모(李秉模)이고 해서(海西)는 임희우(任希雨)이고 관서(關西)는 안관제(安寬濟)이고 북관(北關)은 이회수(李會遂)이며, 삼남(三南)은 수의(繡衣)가 막 돌아왔으므로 그만두었다. 유서를 내려 도신(道臣)을 시켜 다섯 도(道)에 선포하되 유신이 유서를 가지고 가서 백성을 타이르며 농사를 보고 백성의 고통을 살피고 오게 하였다.
> 국역조선왕조실록 > 영조 52년 병신(1776,건륭 41) > 2월27일 (기사) >
어사가 가요를 써 넣은 것은 이상한 일임을 말하다
하령하기를,
“어사(御史)가 가요(歌謠)를 써 넣은 것은 매우 괴이한 일이다.”
하매, 이양정(李養鼎)이 말하기를,
“언서(諺書)로 입계(入啓)하려 한 것은 매우 놀랍습니다.”
하였다. 하령하기를,
“무슨 까닭으로 양사(兩司)에 통하지 못하였는가?”
하매, 이양정이 말하기를,
“유봉휘(柳鳳輝)의 손자와 혼인을 맺었으므로 통청(通淸)하지 못하였을 뿐이 아니고 바로 국자 분관(國子分館)이었습니다.”
하였다. 이때 안관제(安寬濟)가 관서 어사(關西御史)이었는데, 백성의 가요를 언서로 서계(書啓) 가운데에 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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