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고장의 어제와 오늘 |
금천구(衿川區)는 서울특별시 서남쪽에 위치하고, 면적은 13.1㎢로 서울시 전체면적의 약 2.1%에 해당되며, 지정학적 측면에서 볼 때,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경수간의 관문으로서의 지대한 역할을 하는 요충지역(要衝地域)이라 할 수 있다. 금천지역은 약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지역이였지만, 자치구(區)로서의 탄생은 지난 1995년 3월 1일 구로구에서 분리되면서부터였다. 금천구를 둘러싸고 있는 인접 지역과의 경계를 살펴보면, 동쪽으로는 관악산을 끼고 관악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고, 서쪽으로는 안양천변을 따라 형성된 경기도 광명시와 경계를, 남쪽으로는 안양시, 북쪽으로는 구로구의 일부지역을 접경으로 하고 있다. 조국 근대화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1965년부터 1974년까지 6단계에 걸쳐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공업단지인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는 금천구 가산동에 제2, 제3단지가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공단의 영향으로 밀집주거지역이 많이 있으나(43.5%) 대부분 준공업지역(35.7%)으로 되어 있는 산업활동, 특히 중소기업이 밀집되어 있어 산업재 부품 생산활동이 활발한 전형적인 도시 지역이다. 금천의 진산(鎭山) 금주산(衿州山, 347m) 정상에 올라 금천지역을 바라보면, 마치 삼태기 안에 마을이 들어앉아 있듯 포근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자리잡고 있으며, 또한 도형상으로 볼 때는 오른발을 힘차게 내딛는 신사화(구두)를 연상케 하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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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문화자원 |
역사적 사건과 현장 역사에서 볼 때 금천지역은 한강유역을 무대로 정치세력이 등장한 최초의 국가인 진국(辰國)과 마한(馬韓) 그리고 초기 백제의 영향하에 있었다 하겠다. 이들은 끊임없는 세력 다툼에서 유이민 집단을 통해 발달된 철기문화의 혜택을 받아 한강 유역 이남에 마한·진한·변한 3한 연맹체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때 오늘의 경기·충청·전라지역을 중심으로 마한이 형성되었는데, 마한은 54개 성읍국가의 연맹체이다. 그러나 마한 속의 백제(伯濟)는 정치세력이 날로 강하여 마한 연맹체의 54개 성읍국가를 통합해 마침내 고대국가의 백제(百濟)국을 건설한 후 3세기 중엽 고이왕 27년(260)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국토를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5세기경 고구려 장수왕(413∼491)은 백제로부터 한강이남 죽령까지 땅을 빼앗고는 현재의 금천 지역의 이름을 ‘잉벌노(仍伐奴)현’ 이라고 하였다. 잉벌노라는 글자는 우리말로 ‘넙널노’라는 뜻이고 이는 광야지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길게 뻗어 나가는 땅’이라는 뜻에서 얻어진 순수한 우리말의 지명이다.
이후 통일신라 시대인 경덕왕 16년(757)에 곡양현(穀壤縣)으로 개명되었다가 고려 태조 23년(940)에 금주현(衿州縣)으로 개명되었고, 조선 태종 13년(1413)에 금천현(衿川縣)으로 개명되었다. 이어 정조는 즉위 19년(1795)에 사도세자 능(현륭원)으로 전배차 수원으로 능행할 때, 금천현의 행궁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는데, 이 때 382년간 사용해왔던 금천현의 관아명을 시흥현(始興縣)으로 개명하였다. 시흥이라는 이름은 원래 고려 성종 14년(995) 금주현 관아명의 별호로 널리 사용했던 이름이기도 하다. 오늘날 금천구의 모체는 시흥군 동면이 중심이 된다. 고종 32년(1895) 당시의 동면은 관아가 있던 곳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구로구, 영등포구, 관악구, 동작구, 안양시, 광명시 일부의 넓은 지역을 관할하였던 중심지역이었다. 그 후 1963년 1월 1일부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속하였다가, 1980년 4월 1일 구로구로 분구되었고, 다시 1995년 3월 1일 금천구로 탄생되어 시흥동, 독산동, 가산동의 행정동을 두고 있다. 이 지역의 명물인 수령 1,000년(고려 성종 14년, 995년)된 은행나무 3그루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제1차 시흥 농민 봉기 1898년에 일어난 제1차 농민 봉기 사건은 당시 정치체제의 문란에 따른 지방관리들의 탐욕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하겠다. 시흥 농민 봉기는 8월 23일 시흥군 읍내(현 금천구 시흥동)에서 발생했다.
◈제2차 시흥농민 봉기(1904. 9. 14) 1904년에 일어난 제2차 농민봉기 사건은 개항 이후 열강들의 이권 침탈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일본이 철도 부설을 위해 노역자들을 강제 모집하는 데서 항쟁이 발생되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시찰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으나, 일제의 36년간의 강점과 침탈로 조국의 산업은 폐허가 되였다. 이 시기인 1949년에 이승만대통령은 조국 근대화의 역군이었던 대한전선 시흥공장을 시찰하여 생산을 증대시키고 품질의 질을 향상토록 독려함으로써 다른 산업현장에까지도 고무적인 역할을 하였다.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강희(姜曦) 조선시대의 문신이며 본관이 금천이고 자는 희지, 호는 독산이다. 강감찬 장군의 후손으로 세종 2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의 벼슬에 이르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그의 호가 독산으로서 독산 지명과 관계가 있다고 적혀 있다.
◈안순환(安淳煥, 1871∼1942) 1909년경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39번지(동아일보사 자리)에서 유명한 명월관을 개점하고 이후 태화관, 식도원 등을 경영했다. 민족 정기를 되살리는 데 뜻을 두어 기미독립선언 때는 33인 민족대표가 그가 경영하는 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도록 주선하였다가 문을 닫게 되었다. 그 후 민족정기를 되살리려고 금천구 시흥동 169-53 일대에 녹동서원을 세우고 후학을 길러냈으며 이어 단군전을 건립하기도 하였다.
◈박시창(朴始昌, 1898∼1986) 독립 운동가이자 군인이다. 상해임시정부의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의 맏아들로 1923년 중국 황포군관학교를 나온 뒤, 근 20년간 중국군 장교로 중·일전쟁에 참가하였다. 해방 후 한국군으로 복무하다가 1959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후 금천구 시흥동에 거주하면서 1976년 제5대 광복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내 고장의 문화유산 ■유형문화재(시지정) ◈한우물(天井) 통일신라 석축지, 조선시대 석축지, 제343호, 시흥 2동 산 83-1
한우물 전경 ◈순흥안씨 양도공파 묘군 제74호, 시흥 4동 126-1
■문화재자료(시지정) ◈석약사불 좌상 제8호, 시흥 2동 234
◈1,000년 된 은행나무 3그루 제1-20, 시흥 5동 292
1,000년의 수령을 지닌 은행나무 ◈600년 된 향나무 제1-21, 시흥 5동 230
◈600년 된 느티나무 2그루 제8호, 시흥 2 234
■비지정문화재 ◈석구상(전 해태상)
◈통일신라시대 건물 터
◈3층 석탑 시흥 2동 230-40
◈양석 시흥 2동 240-20
◈선정비 시흥 본동 898
◈안순환 묘비명 시흥 4동 169-53
◈녹동서원 터 시흥 4동 169-18
◈시흥현 관아 터 시흥 5동 831
◈시흥 행궁 터 시흥 5동 926
◈동면 사무소 터 시흥 1동 118-90
◈반유구 화역 터 시흥 1동 145
◈흥선대원군 별장 터 시흥 5동 220-2
◈장택산 별장 터 시흥 5동 산80
◈금양잡록 저술 터 시흥 4동 54-2
◈시흥 도당제 터 시흥 5동 406 뒷산
◈독산 도당제 터 독산 1동 1009
◈시흥초등학교 터 시흥 1동 109
◈병사 터 시흥 4동 823
◈정3품 묘터 시흥 5동 424
◈시흥향교 터 시흥 2동 263
■명소 ◈금주산 시흥 2동 산 83
◈시흥계곡 시흥 5동 73
◈호암산성 시흥 2동 산 83-1
◈칼바위 시흥 2동 93-2
◈용바위 금주산
◈각시바위 금주산
◈팽이바위 금주산
◈호암바위 금주산
◈부엉이바위 금주산
◈병풍바위 금주산 〈주 : 금주산은 암산이므로 기암괴석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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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생활문화자원 |
전통생활민속 ◈다리밟기(踏橋) 정월 대보름날 다리밟기 놀이는 고려 때부터 성행하였다고 하지만 금천에서는 정조(1795)가 수원 능행차 시흥현 행궁으로 행차할 때, 주민들이 농악(풍물놀이패)으로 임금을 환영해 맞이했다 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매년 풍물놀이를 앞세운 다리밟기 놀이가 성행하였다 한다. 다리밟기는 석교 → 흙다리 → 발소다리를 오가는 신명나는 놀이이다.
◈시흥 도당제 시흥도당제는 탑골주민들이 음력 7월 1일을 제일(祭日)로 맞아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祭儀) 목적을 두었다. 그 규모는 작고 참여 인원 역시 작아졌다고는 하나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시흥 5동 406번지 뒷산에서 연례적으로 행사하는데 제수로는 쇠머리를 비롯하여 술과 떡이며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부정이 있으면 안된다고 믿고 있다.
◈독산 도당제 도당제를 지내던 곳은 독산 1동 1009번지 주변으로서 300년의 수령을 가진 업나무를 신목으로 삼고 산신 할아버지, 산신 할머니 또는 도당 할아버지, 도당 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제일은 음력 3월 상순과 10월 상순에 택일했으며, 제주는 10일전부터 앉은 당주 1명, 선당주 3명 등 4명을 마을 토박이 중 부정이 없는 40~50대로 생기복덕(生氣福德)을 보아 선정하였다.
◈글자맞추기 놀이 이 놀이는 서당에 다니는 아이들의 놀이로 예를 들면 ‘영흥군’하고 소리치면 다른아이가 ‘영’자나 ‘군’자가 들어있는 ‘영동군’ 또는 ‘영천군’하고 글자 이어가기 놀이이다. 이런 식으로 단어를 찾아 운을 띄우면 그 운대로 글자를 맞추어 소리치며 노는 놀이이다.
◈풀싸움놀이 풀잎 또는 풀 줄기를 뜯어 서로 엇갈리게 하고 당겨 끊어지면 지는 놀이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풀잎에 맺은 이슬 방울을 서로 맞대어 한쪽으로 흡수되면 지게 되는 놀이도 있고, 길목 긴풀을 서로 매어 놓아 발길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놀이도 성행하였다.
◈연싸움놀이 연싸움은 겨울철에 즐기는 놀이이다. 연을 띄워 서로 연줄을 비벼 연줄을 끊게 하는 놀이이고, 또 연에다 자기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 넣고 연줄에 불을 붙여 연줄이 끊어져 높이 날면 그 해 무병 장수하고 모든 행운을 얻었다는 주술적 행사 놀이이다.
◈비석치기놀이 비석치기 놀이는 납작한 돌을 멀리 세워놓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넘어뜨리는 놀이이다. 즉, 세워놓은 돌을 넘어뜨리기 위해 발등에 얹어 놓고 그 앞에 가서 툭 내려놓을 때 서로 부딪쳐 넘어 지거나 또 가슴, 이마, 머리, 손 등등 다양한 위치에 돌을 올려놓고 세워진 돌을 넘어뜨리는 아이들의 놀이이다.
구전설화 ◈호압사 창건 설화 태조가 조선을 개창하고 궁궐을 세울 때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하여 밤새 궁궐이 타 없어지고, 다시 세워 놓으면 밤사이 비바람으로 무너져 집을 지을 수가 없었다. 태조는 몹시 초조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어렴풋이 잠든 사이에 반은 호랑이요, 반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괴물이 나타나, 눈에 불길을 내뿜으며 기세 당당히 궁궐을 무너뜨리려 가까이 다가왔다. 이에 놀란 태조는 벌떡 일어나면서 “괴물을 향해 활을 쏘라”고 큰소리로 명령하였더니, 수백 발의 화살이 괴물을 향해 쏟아졌다. 그러나, 괴물은 소나기 퍼붓듯 쏟아지는 화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궁궐을 삽시간에 송두리째 무너뜨리고는 관악산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태조는 이 괴이한 일에 침통해 하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노인의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한양은 비할 데 없이 좋은 도읍지로다.” 태조는 의아해 하면서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나 노인은 “그건 아실 것 없소”라고 말하고는 “장군께서 심려하고 있는 것을 덜어드릴까 하여 왔소”라고 하였다. 그 노인은 이어 말하기를 “저 멀리 한강 건너 남쪽 산봉우리를 보라”고 가리켰다. 태조는 달빛 속에서 노인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다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앗! 호랑이다. 저 호랑이를 한 산봉우리가 한양을 굽어보고 있다” 하고 그제서야 금주산 호암봉을 발견하고는 노인에게 “저 산봉우리의 호랑이 기운을 누를 방도를 가르쳐달라”고 하였다. 노인은 “호랑이는 꼬리를 밟으면 꼼짝을 못하는 짐승이니, 저 호랑이 형세를 한 산봉우리 아래 절을 세우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이다”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이튿날 태조는 이곳에 절을 짓게 하고는 호압사(虎壓寺)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조선건국 설화가 담겨있는 호압사 ◈칼바위 설화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쳐들어와 주민들을 핍박하자, 우리나라 장수가 나서서 일본장수와 칼바위 끝에서 턱걸이 내기를 하였다. 즉, ‘일본장수가 턱걸이 100번을 하면 주민들은 저항하지 않을 것이며, 그러하지 못하면 싸우지 않고 물러가라’는 내용의 내기였다. 내기는 시작되어 턱걸이 횟수가 더해 갈수록 주민들과 우리나라 장수는 초조했다. 쉴 사이 없이 턱걸이를 하고 있는 일본장수가 마침내 99번을 끝내고 100번째 턱걸이를 하려는 순간, 힘이 다 소진되어 바위 밑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후 일본군들은 싸우지 않고 물러갔다. 이것을 지켜본 우리나라 장수가 긴장이 풀리고 기쁜 마음에 그 자리에서 칼바위 밑으로 오줌을 누었는데, 그 오줌 줄기가 얼마나 세차고 강하였는지 오줌 줄기가 닿은 바위 한 가운데가 움푹 패였었다고 한다. 그 후 주민들은 이 바위를 칼바위 밑에 있는 팽이바위라고 부른다.
금주산 중턱 뾰족하게 돌출된 칼바위 ◈3층석탑 동네 아낙네들이 손이 귀해 근심될 때 와서 공을 드리면 득남하였다고 믿어 많은 주민들이 치성을 드렸다 한다.
주민의 종교생활 ■불교 ◈호압사 시흥 2동 234
■천주교 ◈시흥동 성당 시흥 3동 987-1
■개신교 ◈시흥장로교회 시흥 본동 841-25(외 200여개 소)
■단군교 ◈시흥단군교당 시흥 4동 818(1981년에 명도소송으로 철폐됨)
주민의 생활권역 우리나라 최초의 수출산업 공업단지 일부가 가산동에 있고 특히 제2공단 지역 쪽으로 우리나라 전 유명메이커의 대형 의류 판매점이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지역의 별미음식 독산 1동에 있는 (주)협진식품(소, 돼지 도축장)은 서울의 육류 공급은 물론 각지에서 신선한 육류를 먹고 사가기 위해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다.
소·돼지의 육류가 즐비한 협진식품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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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술문화자원 |
지역문화예술행사 ◈걷고 싶은 거리 시흥 5동 은행나무 앞길, 매년 가을 지역주민인 화가 동호인들의 작품 전시
◈산기슭공원 시흥 4동 산기슭공원에서 각종 문화예술의 장으로 개방, 활용되고 있음
지역언론기관 ■방송 ◈구로케이블TV 가산동219-6, ☎ (02)837-9573
◈금천유선방송 시흥 4동789-28, ☎ (02)806-0095
■지역신문 ◈구로금천내일신문 가산동151-32, ☎ (02)2611-1577
■생활지 ◈가로수 독산 1동 1000-16, ☎ (02)806-0028
■정보지 ◈영등포교차로 시흥 본동 870-30, ☎ (02)894-7733
■인터넷 ◈금천인터넷스트리트 시흥 3동 유통상가, ☎ (02) 6274-4474
문화예술교육, 연구기관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시흥 3동 산71, ☎ (02) 896-1093
지역문화예술 시상제도 ◈금천문학상 제2회 개최, 구민들의 문예창작활동 장려, 구청장 표창과 함께 시상품.
지역문화예술단체 ◈구립합창단 1995년 6월 12일에 구성하여 지휘자 1명, 반주자 1명, 단원 37명으로 활발한 활동, 서울시 주부 합창단 경연대회에서 대상 입상.
지역연고 예술인 ◈정진철(鄭鎭澈, 1908∼1963) 동양화가로 명성을 떨쳤던 정진철의 호는 ‘석하’라고 한다. 조선 미술인 전람회에 수차례 입선하였으며 명성여고, 덕성여고, 상명여고 등에서 교사로서 학생을 지도하면서 대학에 출강하기도 했다 한다. 특히 나비 그림의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어 별명을 ‘정나비’라고 불렀다 한다. 그는 시흥에서 생활하며 활동한 시흥의 대표적 화가이다.
◈박재홍(朴載弘, 1924∼1989) 대중가수로 널리 알려진 박재홍은 시흥본동에서 태어났다. 1947년에 「물레방아 도는 내력」, 1948년 「울고 넘는 박달재」등 700여 곡의 노래를 취입하였다고 부인이 전해 준다.
◈안옥희(安玉希, 1953∼1993) 탤런트로 명성을 얻은 안옥희는 시흥동 104번지에서 출생한 후 1971년 TBC의 드라마 「어머니」로 방송 연기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KBS 방송국에서도 열연하는 탤런트로 인기를 모으다가 TBC 인기대상 ‘인기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 1973년부터는 처녀희곡 「여우와 소」를 비롯하여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저 산 너머에 행복이」 등 다수의 작품을 써 1977년 월간 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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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광, 여가문화자원 |
관광시설 ◈노보텔 엠배서더 독산 4동 ☎ (02)838-1101
관광코스 노보텔 엠배서더 →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1,000년 된 은행나무 → 시흥계곡(산림욕) → 칼바위 → 한우물 → 석구상 → 호암산성 → 호암바위 → 호압사 → 3층석탑(600년 향나무) → 순흥안씨 양도공 묘군 → 산기슭 공원 → 서울시 구로 부녀복지관 → 구립 도서관 → 청소년 체육관 → 시흥 유통상가 → 협진식품 → 대형의류판매센터 → 한국수출산업공단
금주산 북쪽 바위군, 호랑이 얼굴이라 하여 호암 관광쇼핑 ◈협진식품(주) 독산 1동 105-7
◈대형의류 판매처 가산동 219
◈시흥 철재상가 시흥 3동 965
◈시흥유통센터 시흥 3동 984
관광안내소 ◈금천구 문화공보과 시흥본동 890, ☎ (02)890-2410
■여행사 ◈(주)경천항공여행사 독산본동 삼승상가 101호, ☎ (02)865-8877
◈(주)남수관광여행사 시흥동 839-40, ☎ (02) 802-9906
◈(주)진명전자 시흥동 993-4, ☎ (02)803-8281
◈(주)대기하나관광 시흥유통 1-227, ☎ (02)896-0640
◈효주여행사 시흥동 830-13, ☎ (02)892-8200
◈(주)소양여행사 독산동 286-8, ☎ (02)897-5599
여가시설 ◈청소년 체육관 독산 4동 372-1
◈시흥계곡 삼림욕장 시흥 5동 930
◈금천배수지 지상 체육·공연시설 설치 독산 3동 891
◈청소년 수련관 시흥 2동
◈금주산 등산로 ① 장택산 별장터 → 시흥계곡 → 병풍바위 옆 → 칼바위 → 한우물 → 석구상 → 찬우물 → 삼막사 → 호암봉(바위) → 호압사 → 시흥 2동 → 시흥 4동 ② 시흥 4동 → 호압사 → 호암봉(바위) 시흥 2동 → 찬우물 → 삼막사 → 석구상 → 한우물 → 칼바위 → 병풍바위 옆 → 시흥계곡
우거진 숲, 시원스럽게 흐르는 계곡물이 운치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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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문화시설자원 |
도서관 ◈금천구립 도서관 독산 4동 375-2 문교초등학교 옆에 위치한 공공도서관으로서 1999년 2월 26일에 개관하였다. 2,540㎡부지 위에 세워진 4,422㎡의 건물 안에는 열람석 497석과 서고능력 30,000권을 비롯하여 건설, 교통통계, 연보 등 행장자료 273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등 CD-Rom 352종, 「한국의 야생화」 등 비디오 테이프 77종을 비치해 놓고 있다. ☎ (02)863-9544∼6
신축된 금천구립도서관 전경 공연장 ◈산기슭공원 야외공연장 시흥 4동 791, ☎ (02)890-2410
◈우성극장 영화, 독산 3동 950-3
◈글로리아 연극(인형극), 시흥 5동 825
◈상명연극 연극(극단), 시흥동 한양아파트 단지
◈한국피리 음악연구회 국악(기타), 시흥3동 24-17
◈극단 느낌 연극(극단), 시흥4동 799-37
◈극동무용단 무용(현대), 시흥본동 904-1
◈극단 키드 연극(인형극), 독산4동 200-10
◈리치스 연주(연예), 시흥동 905-95
◈한빛어린이발레단 무용(발레), 시흥1동 789 한양쇼핑 지하
◈민속예술단 코리아엔젤스 무용(한국무용), 독산동 1023-24
◈사단법인 중앙국악관현악단 음악(국악), 시흥3 동 24-17
◈최인양 기타연주단 연예, 시흥 1동 987-4
◈이종옥가무단 연예(가무), 시흥동 882-61
◈김광일가무단 연예(가무), 독산동 163-19
문화원 ◈금천문화원 서울시 금천구 시흥1동 987-3 ☎ (02)896-8552∼3, FAX (02)896-8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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