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정신이 깨졌다 우리 정신을 살리려하니 그게 뭔가 했더니 우리의 농민 예술이더라.
정말 애국자고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은 농민들뿐이란 말이야
글깨나 하고 돈 있는 사람은 ........... 이더라
그래서 이 농민예술 이것을 지켜야 되겠다.
한국 무용하는 분이 농민예술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지만 서양 무용한 임성남이나 이런 사람은 오히려 농민 예술을 높이 평가해 동아 콩쿨에서 중임이하고 정숙이 누가 먼저 드라 당선이 된거야
그런데 지금 우리가 우리가 이미 없어 우리엄마가 어디 있어 내 엄마가 있지 우리 학교가 어디 있어 내학교만 있지 우리나라가 어디 있어 내 나라만 있지
우리가 깨지지 않고 남아 있는 곳이 어딘가면 탈에 솟대에 농민예술인 굿에 남아있어
우리 음식 중에 가장 중심이 뭐야 간장 된장이야 집에 쌀은 없어져도 간장 된장은 남아 끝까지..
바다의 정령 소금하고 땅에 정령 콩하고 합을 하면 정녕 짝짝궁을 하면, 결혼을 하면, 그 자식은 간장 된장이 되아.
그런데 지금 보는 거, 듣는 거, 먹는 거, 모든 뿌리가 짤라 졌어 지금.
그 속에서 우리문화를 한다고 하는데... 우리문화는 다 깨졌는데 중앙에 핵심이 깨졌는데 주변에서 다 우리문화 한다고 야단법석이야.
내가 지금 헐라고 하는 것은 지금 80년 동안 할려고 했는데 아직 안됐는데..
할머니가 그랬어 이리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여자가 수줍어서 입에 손 갖다 대고 머리 흔들면서 여자가 부끄러워서 이러잖아.
요 리듬이... 그 모양 그걸 잘하면 장구 잘 친다고 할머니가 그랬어
할머니가 나를 무등을 태워놓고 장고는 잘 굴리면 잘 굴리면 명수라고 그랬어
따구구궁따 궁따 구구구궁따 궁기닥궁따 저정거리 잖아 간지럼 살살이 여보게 장구는 굴리는 것이 명수네 칠라 말고 욀라 말고 ...
장구 치는 사람이 장구를 굴려 치면 무등 타고 있던 나는 그 음악에 맞춰 저절로 흔들어지는데
그때 몸에 베었던 것이 여기 저 글씨에 나오고 여그 이 그림에 나오고 해요.
어렸을 때 농민예술에서 내가 느꼈던 것이 오늘날 뭔가 되지 내가 장구 배운 일이 없어
내가 국악 배운 일이 없지 무용 배운 적 없어 숙대 무용선생 했어.
누구한테 설장구 배왔다 이거 아니야.
내가 우리 설장구를 지켜야 되것다 할려고 할 때가 장고를 만드는 추기동이라는 사람이 있어.
이 사람이 목순데 장고를 파서 자기가 메고 장구한번 쳐 추기동 이 사람이 정읍의 제일 먼저 설장구가 이 사람이야.
설장구 본바닥은 여기 남원 온정리 임진왜란때 도공들이 붙잡혀 간데 그 동네가 제일 먼저 시작한덴데 정읍에 가서 꽃을 피웠는데
그때 추기동이가 목수고 장고 만들고 장고 치고 제일 잘해.
그다음에가 이정범이 김병섭 전사섭 전사종 근데 누가 제일 잘하냐면 이 사람이 제일 잘해
그런데 김병섭이를 사람이 제일 알고 있어 왜냐 이 사람은 벌어먹을 라고 남원에 가서 남원 여성 농악단도 갈치고 그래서 이름이 났는데
이 사람은 갈치러 돌아다니지 않아.
전사종이는 무당이야 요리 조리는 장구를 같이 안쳐 쌍놈들이라고 안쳐.
그러니까 자기 일가들끼리 시장에서 치고 그러고 돌아다녔단 말이야 먹고사는 수단이었으니 순수하지 않았다고 같이 안쳐.
서울에 누가 먼저 올라오느냐에 의해서 유명해지는데 이정범이가 제일 늦게 올라왔어
요거이 이름이 뭐야.
요거이 궁굴채야 궁굴채 궁채와 궁글채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
장구 파는 사람이 요거이 귀찮으니까 돌아가지 않게 만들고서 궁채라고 바꾼거야.
궁채는 한번 치는거지만 궁글채는 굴러 가야돼 요것이 굴러야 돼.
굴르는 소리하고 때리는 소리하고 때리는 소리는 드럼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