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서곡(棲哭)
김선화
빗소리엔 소식이 묻어온다. 보슬비 내리는 날이면 오랜 벗이 다가와 귀엣말을 할 것 같고, 소낙비 내리는 날이면 정애에 겨운 이가 다짜고짜 달려와 와락 안겨들 것 같다. 그리고 굵은 빗줄기가 사나흘 이상 이어지는 날이면 안팎의 걱정거리들이 여과 없이 고개 들어 고요의 뜰에 크고 작은 여울을 만든다.
봄비 부슬거리는 날,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가 격앙되어 있었다. 웬만해선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동창생인지라 수상쩍은 마음에 급히 찾아갔다.
재봉틀을 돌려 가계를 꾸려가는 친구는 여전히 반 지하공장에서 실밥을 몸에 묻히고 있었다. 머리가 희끗해지도록 단칸방 신세를 면치 못한 처지이다. 그래 뵈도 서울 중심부. 몸담고 있는 작은 건물이 그들 부부의 빌딩이다. 아래층엔 다락 달린 봉제공장을 꾸미고, 위층엔 살림집 규모를 갖추어 지금껏 지내오고 있다. 크게 벌지는 못해도 부지런히 일하여 남매를 대학공부 시키는 부부의 소박한 모습은 구순하니 유해보여서 좋았다.
그런 친구가 몹시 당혹스러워 한다. 일찍이 홀로 되어 식솔들을 건사해 온 시어머님이 그만 극약을 드셨다고. 다행히 빨리 손을 써서 회복중이긴 하나, 자식들 앞에 극단적 행동을 보인 어른에 대해 놀라움을 누르지 못한다.
사연인즉, 노모를 모시고 사는 쪽은 맏이였다. 결혼 초부터 자녀들이 출가할 때까지 맞벌이를 하며 함께 살았다고. 그러는 동안 고부간에 쌓인 감정이 산을 이루었던 모양이다. 벼르고 벼르다가 곪은 상처를 맏며느리가 터트리고 말았는데, 요(要)는 어머님과 따로 살아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모는 체면이 우선이었다. 시집와 이제껏 터를 이루고 살아온 동네에서 다 늙은 80줄의 몸으로 어떻게 따로 나느냐는 주장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봐도 응당 그럴 법한 지론이다. 체면에 살고 체면에 죽는 우리들 어버이세대에 있어 남의 이목이 가장 큰 문제이지 않은가. 얼마나 암담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을까.
친구는 이때처럼 깊은 한숨을 내쉰 적이 없다. 당장 시어머님을 모실 수 없는 단칸방살이가 그저 한스러울 수밖에. 그나마 어른이 몸은 성하시니 독립시켜 드릴 수는 있는데, 장남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고정된 틀에서 티끌만치의 양보도 없어 방법이 묘연하다 하였다. 나도 별달리 신통한 해결책을 내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서 왔다.
그 후 며칠, 연일 장대비가 쏟아진다. 하늘의 걱정이다. 체면을 저버릴 수 없는 어머니들의 핏빛 눈물이다. 그 진액이 속울음 속에 묽어질 대로 묽어져 하염없이 흐르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가슴에 숯검정을 안고 살아가는 숱한 자식들의 애증이며, 이들을 지켜보는 제3자의 안타까운 마음이다.
나도 한 가문의 며느리로서 녹록찮은 시어머님을 받든 적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극명하게 드러냈던 것이 그분의 특색인데, 맏며느리와는 한시도 함께 있길 거북해하여 홀로 본댁을 지키셨다. 한 해에 대수술이 세 번이나 이루어진 겨울날, 들판 외딴곳에 사는 맏이내외가 큰맘 먹고 가슴을 열어 모시기로 했다. 하지만 어머님은 고작 1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엄동설한 속에 훠이훠이 눈길을 가로질러 본댁에 드셨다. 홀로 텔레비전을 보다가, 경전을 읽다가, 화투패를 떼다가 하며 끝까지 당신의 보금자리를 뜨지 않으셨다. 씨족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이웃의 시선이 고울 리 만무했지만 그쯤의 눈총에 아랑곳하는 분이 아니었다.
더러 냉기가 도는 방바닥을 만지며 “꼭 이러고 싶으셨어요?” 하면, 어머님은 빙그레 웃으며 “냅둬라, 극락이 따로 없다” 하셨다. 거추장스러울 것 없이 당신 놀고 싶을 때 놀고, 눕고 싶을 때 눕는 곳을 최고로 치신 어른…. 그때만 해도 나는 사람관계를 왜 거추장스럽다고 여기는지가 의문이었다. 그러면서 알 듯 모를 듯한 그분의 심정을 조금은 떼어놓고 이해했다.
그런데 세월이 몇 해 더 흐른 이즈음에는 알 것 같다. 내 시어머님이 선택하신 길이 어떠한 길이었는지를. 앞으로 나도 언젠가는 시어머니가 될 터인데, 그때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미리 생각해 보게 된다.
누구나 거쳐야 하는 삶의 여정. 그 기울어가는 인생길에서 ‘체면중시 형’이 되어 안으로 상처를 키울 것인가. 마음 가는 곳을 우선으로 치는 ‘극락 형’이 되어 대 자유를 선언할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한 단계 더 초월하여 이쪽저쪽을 고루 아우르는 ‘배려 형’이 되어 총기 있는 노년을 영위할 것인가. 이왕이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길보다는 이성에 밝은 배려형의 길을 가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심신이 건강하여 영육간의 추를 바로 놓을 수 있는 길 말이다.
한데 근래에 들어 자주, 고독을 등에 지고 화투패를 떼시던 시어머님의 영상이 되살아난다. 찻잔 대신하여 경전 한 권을 찻상에 받쳐놓고 극락이 따로 없다던 일갈이 제법 근사하게 나를 잡아끈다. 사람의 진정한 행복은 ‘정신적 자유’라는 시공간에 깃을 내리고 있지 않은가. 등잔 하나 밝혀둔 황토골방에 들어서라도 무한대의 정신적 활동이 이뤄진다면 육신이 사해(四海)를 넘나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개굴개굴 개 굴…. 아직도 밖엔 빗소리 요란하다. 고부간에 안섶 열어젖힌 친구네가 그저 걱정이다.
첫댓글 제목이 좀 어려웠어요. 옥편을 찾아보니 울음이 깃들어 있다는 뜻이네요.
참 가슴이 아픈 글이었어요.
너무 공감이 가네요. 나 또한 비켜가지 못할 길이네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고민에 빠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