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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오른쪽)과 함께 한 한은영양(가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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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경 | 중증 1급 뇌성마비 한은영(만안초 3년)양이 지난 광복절에, 건강한 성인도 힘든 한강횡단에 성공해 화제가 되고 있다. 장애인으로서는 최초의 신화를 남긴 한양을 만나기 위해 안양2동 유원지 입구 경수 산업도로변에 위치한 안양시 장애인 종합복지관을 찾았다.
1층 체력단련 실에는 재활에 필요한 각종 운동기구와 문만 열면 수영장과 연결되었다. 시설을 둘러보고 있을 때 한 소녀가 어머니와 함께 탈의실로 들어갔다. 초롱초롱한 눈빛에 해맑은 미소 또래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한은영(11세)양이었다.
은영이는 수중치료를 받기 위해 들어선 풀에서 다이빙하듯 순간, 첨벙! 물에 뛰어 들더니 한 마리 물개처럼 자유롭게 물살을 가르며 멀어져 갔다. 수중 치료를 받는 사이 은영이 어머니 임영옥(46세)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영이의 출생
고혈압으로 건강하지 못했던 임씨는 심한 입덧 끝에 임신 8개월만에 1.76Kg의 은영이를 출산했다.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머물며 설상가상으로 심장까지 안 좋아서 장기간 약물투여까지 받았다.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이 지났을 때 1.5Kg으로 체중이 줄며 영양실조에 시달리게 되었다.
은영이가 생사의 기로에 있을 때 병원 측에서는 어머니 임씨에게 앞으로는 임신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말을 했다. 심적 부담을 느낀 은영이 아버지는 아이를 호적에 입적조차 거부한 채 모녀 곁을 홀연히 떠났다. 모녀는 석수동 곰팡이 냄새 진동하는 지하셋방에서 넋을 놓고 밤낮 없이 울었다.
일을 해야만 생계를 꾸릴 수 있었지만, 임씨는 욱씬욱씬 쑤셔대는 무릎관절의 통증과 온몸이 시리고 저린 산후 통으로 꼼짝 할 수조차 없었다. 눈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다보니 우울증 직전인데, 아이는 이상하게도 돌이 되어도 엎치거나 기어다니기는커녕 목조차 가누지를 못했다.
그저, 늦되는 줄 알았는데 주변에서 '병원에 가보라'고 귀띔해주는 이웃이 있었다. 임씨로서는 이야기해주는 이웃이 원망스러웠으나, 반신반의하며 병원을 찾았을 땐 청천병력 같은 '뇌. 성. 마. 비'였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했다. 아이를 들쳐업고 용하다는 의원과 약국을 찾아서 전국방방곡곡을 헤맸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임씨는 은영이를 보며 '태몽에 자라가 보이더니 평생을 기어다니며 살려고 그랬나' 하고 자책하며 긴 한숨을 쉬었다.
보다 못한 이웃들은 아이를 고아원에 보내고 새 출발하라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함께 죽어 버릴까. 아님, 고아원에 보내고 새 출발할까.' 온갖 생각으로 복잡할 때 아무 것도 모르고 방긋방긋 웃는 은영이를 보며 임씨는 도리질을 했다.
아이를 버리고 평생 가슴깊이 옹이를 간직하고 살 수는 없었다. 물리치료로 가정경제가 바닥이 나고 생계에 위협을 느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을 생각할 무렵, 동네사람들이 딱한 사정을 동사무소에 알리 며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되었다.
구세주! 안양시 장애인 종합복지관
생활보호자로 선정되며 4살 무렵 안양시 장애인종합복지관에 입교하며 재활치료를 받게 되었다. 뇌성마비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몸이 움직여 주질 않고, 자세를 바로 잡으려는 긴장감이 오히려 몸을 강직 시킬 뿐이었다.
여섯 살까지 말을 잘 못해 언어치료를 받으며 지퍼나 단추를 채우는 작업치료를 병행하며 고무줄 바지를 입고 늘, 어머니 등에 업혀 다녔다.
대소변을 가리기 시작한 7세 때 수중물리치료를 시작했으나, 은영이는 물이 무서워 울기 시작했다. 수중치료는 강직되어 돌아간 몸을 풀고 긴장감을 해소하는 데는 필수였기에 임씨는 수영을 배워 은영이를 꼬옥 안고 물에 들어갔다.
은영이는 엄마와 함께라면 무섭지 않았다. 모태의 양수처럼 편안하게 엄마와 눈을 맞추며 웃기도 했다. 땅에서보다 물 속에서는 몸이 잘 움직였지만 물에 뜨기까지 3년이란 기간이 필요했다.
꿈을 심어준 송문규 물리치료사와의 만남
은영이는 수영을 제일 좋아한다. 수영을 좋아하게 된 동기는 수중치료를 받으며 인연이 된 송문규(32세)씨와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준수한 외모만으로도 호감을 느끼게 하는 송씨는 열살 은영이에게 수중치료를 하면서 수영과 흡사한 동작을 가르쳤는데 곧잘 따라 했다.
바닷가에서 자란 송씨는 장애극복 차원에서 장애인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을 불식시키고자, 한강횡단을 생각해왔었다. 은영이는 연습 중 한번도 '못하겠다 거나 힘든다'는 말을 한 적이 없을 만큼 체력도 좋고 인내심이 강 한 아이였다.
'은영이라면 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주변에 협조를 요청했으나 많은 우려 속에 반응은 냉담했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는 없지만 발전도 없다.'고 판단 어머니부터 설득했으나 펄쩍 뛰었다.
반대 1년만에 임씨는 송씨의 건실함에 "팔삭둥이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심장 치료까지 받은 아이가 지금까지 살았으니 감사할 일이지요"라며 "죽었으면 그 때 죽었을 아이였어요. 이런 기회가 흔한 것도 아니고 혹시 잘 못된다 해도 운명이지요." 마음 문을 열고 수락했다.
20일의 훈련과정
한강횡단을 목적으로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간 것은 20일도 채 되지 않는다. 수중물리치료를 위한 복지관의 따뜻한 물이 아닌 찬물에 적응시키기 위해 새벽 5시30분, 저녁 7시 30분부터 하루 두 차례 4시간씩 일반 수영장에서 맹훈련에 돌입했다.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시간을 선택했지만 "가로 걸친다며 다른 나인에 가서 하라"거나"강습료를 줄 테니 다른 수영장으로 가달라"는 따가운 눈총에 밀려 아는 선배를 찾아 부천까지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새벽에 은영이가 졸린 눈 비비며 "선생님 수영장 가요"라고 전화를 하면 송씨는 은영이 집까지 가서 차에 태워 깊이 2m의 물에서 혹독하리만큼 훈련을 시켰다.
한 팔에 꿈을 한 팔에 미래를
8월 15일 오후 1시30분, 서울 한강에 도착했을 때는 전날 내린 폭우로 누런 황토빛 급물살이 넘실대는 악조건에 날씨마저 추웠다. 긴장감이 감도는 여의도 유람선 선착장을 출발하여 배영으로 건너기 시작했을 때 은영이의 몸이 굳어지며 급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500m가량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은영이를 둘러싸고 있던 15명의 수상안전강사 들까지 버거워할 만큼 물살은 거셌다. 잠시 보트에 오른 은영이는 "하기 싫어요. 빨리 엄마 만나러 가고 싶어요"라고 울먹였다.
송씨는 은영이와 함께 한 2년만에 처음으로 싫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너무 고생시키는 게 아닌가 생각되어 목 울음을 삼키며 어떻게 해야될지 난감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은영에게 실패를 안겨줄 수는 없었다.
은영이는 다리가 아닌 팔만 움직이며 떠내려간 시점에서 다시 도전하며 급물살을 갈랐다. 일반인이라면 20분 거리인 1.3km넓이의 한강을 1시간여만에 완주, 지켜보던 50여명의 관계자들이 일제히 큰 박수를 치며 눈물 로 환호했다.
어머니 임씨에게는 딸이 물에 들어가 있던 한 시간이 천년만큼 긴 시간이었다. 은영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반대편에서 계곡 물만큼이나 차가운 체온을 느끼며 한강 물에 손을 담갔지만, 심장은 쿵쿵 고동치며 거칠게 뛰고 있었다.
마음이 따뜻한 장애인 어머니들
은영이가 맹훈련에 돌입했을 때 송씨는 체력보강을 위해 과자를 금하고 고기를 많이 먹이라고 당부했다. 뻔한 생활을 안타깝게 여긴 장애인 어머니들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기며 햄 소시지를 사왔다.
같은 장애를 앓는 애솔이 엄마는 과일이라도 먹이라고 지폐를 손에 쥐어주었고. 한강을 건널 때 수영복이라도 사 입히라며 5만원을 선뜻 내놓은 손길까지 이어졌다.
값싼 수영복을 입을 때 벌겋게 짓물렀던 은영이의 겨드랑이는 부드러운 수영복으로 바뀌며 상처가 아물어갔다. 은영이가 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한강을 건넜을 때도 머리 묶는 방울이며 필통을 사주며 격려했을 뿐만 아니라, 투혼을 불태우는 장면까지 눈물겹게 지켜보며 한강을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꿈의 나래를 펼치길 가슴 졸이며 빌었다.
은영이 어머니는 "복지관 어머니들은 대단해요. 똑똑한 분들도 많은데 자신의 꿈을 접고 장애아이를 위해 죽기까지 헌신해요. 멀쩡한 아이도 포기하는 부모가 있는데도... 우리 아이들은 작은 것조차 쉽게 못해요"라며 아픔을 애써 삼켰다.
희망을 알게 된 은영이
은영이는 수영을 제일 좋아하고 노래부르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일기는 매일 엄마가 불러 주면 곧잘 받아쓴다. 간혹 받침을 빼거나 빨리 불러주면 천천히 해달라고 귀염도 토한다. 학교에서는 특수반이라서 주로 놀이 위주의 교육이 진행되기에 임씨는 은영이를 석수동 선범 어린이집에 맡긴 지 4년째가 된다.
요즘 구구단과 숫자 덧셈 뺄셈에 한글까지 배운다. 이연 원장은 "은영이의 독선생이 되어 처음부터 직접 반복학습을 해왔는데 가로 세로 선을 긋기까지 1년이 걸렸다. 뇌와 손의 적응이 잘 안되어 사인펜을 쥐어주자 좀더 쉽게 적응했다."며 "날로 좋아지는 은영이를 보며 어머니 임씨는 대학 갈 때까지 책임져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한강횡단 후 이모저모
은영이는 한강 횡단 후 좋고 싫음을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장애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며 선망의 대상이자 신데렐라로 급부상했다.
은영이 곁에서 "언니~언니"하며 졸졸 따르는 아이들의 눈빛엔 미래를 향한 희망이 빛나고 있었다. 은영이는 컴퓨터와 피아노가 가장 갖고 싶은 품목1호다. 장래희망이 성직자라며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를 허밍으로 완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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