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개
<지슬>은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제목은 감자의 제주도 방언이다. 오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어, 넷팻상을 비롯하여 네 개의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최고의 인디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 수상,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에서 황금수레바퀴상, 이스탄불영화제 특별언급상을 수상했다. 제주에서 2주 전에 먼저 개봉했고, 이후 전국 개봉하면서 현재까지 12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제주 4.3 사건
제주 4.3 사건 시발점은 1947년 3.1절 28주년 기념식의 경찰 발포사건이다. 당시 경찰의 대부분은 친일파였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도민을 억압했고, 이에 저항하던 데모대가 경찰서를 공격하자 이들에게 발포했다. 6명이 죽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제주지부가 개입하며, 1948년 4월 3일 350명의 무장대가 공격을 개시한 것이 4·3사건의 서막이다. 그해 11월 이승만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을 폭도로 여긴다’며 초토화 작전을 전개한다. 그리고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7년 7개월 동안 도민의 1/10인 3만 명이 죽게 된다. 영화의 배경은 초토화 작전이 시작된 1948년 11월이다.
영화가 제주 4.3 사건을 재현하는 방식
영화 <지슬>은 제주 4.3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그대로 사건을 재현하는 데 목적이 있진 않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고 난 제주 4.3사건 유족들은 실제와 많이 다르다고 평한다. 당시 토벌대의 잔혹함이나 제주도민이 느꼈던 두려움이 실제보다 약하게 묘사됐다는 것이다.
영화는 비극적 현대사의 사실적 재현을 포기한 대신, 그들을 기리고 기억하며 위로하는 제의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구성은 신위-신묘-음복-소지라는 제사의 형식을 따르고 있고, 흑백으로 처리된 영상은 매우 아름답다. 특히 도민이 토벌군을 피해 동굴에 모여 있는 장면은 숭고미까지 전해진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미장센이 못마땅했다. 제주 4.3사건이라는 당시의 참혹함을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해도 되는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영화라고 하지만, 끔찍했던 과거를 미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데 우연히 보게 된 한 제주 도민의 짧은 감상평으로 보고, 나는 내 입장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파서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사건을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줘서 행복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감독의 의도가 적중한 것이다.
고 중사와 서북 청년단, 그리고 개신교
영화에 등장하는 토벌대원 중 고 중사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늘 칼을 가지고 다니며 피의 광기에 젖어 있다.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고 중사가 한 할머니를 죽이면서 "나는 빨갱이가 싫어! 우리 어머니도 빨갱이가 죽였어!"라고 북한말로 말하는 장면이다. 언뜻 북한에서 왔는데 왜 빨갱이가 싫다고 하는지 의아할 수 있지만, 고 중사는 서북 청년단으로 설정된 인물로 보인다.
서북 청년단은 해방 이후 북조선에서 쫓겨난 지주 세력과 개신교인들로 구성된 반공 단체이다. 소위 서청이라고 불리는데, 70%가 개신교인들이었다. 이들은 제주도에서 이승만 초상화와 태극기를 강매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제주 4.3 사건이 터지면서 토벌대에 합류했다. 따라서 제주 4. 3 사건은 개신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다. 당시 제주 교회들은 이 사건을 방조했고, 서북 청년단에 합류한 개신교인들은 제주 도민을 폭도, 빨갱이로 몰아세워 무참히 짓밟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도종 목사가 한라산에 입산한 산사람들에게 기독교 목사이며, 미국의 스파이라는 죄명으로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개신교가 제주도를 이해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제주도는 일단 복음화 비율이 매우 낮은 곳이다. 평균 5~8% 정도 되는 것 같다. 전국 평균이 20%인 점을 고려할 때 낮은 수치다. 그 이유에 대한 개신교는, 제주도가 섬이라서 배타성이 강하고, 미신과 우상이 많은 지역이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옳지 않다. 제주도민들이 개신교에 대해 반감을 보인 것은 4.3 사건 당시 제주 교회들의 방조와 서북 청년단의 만행 탓이 크다.
개신교의 보수 진영은 여전히 이 문제를 회피하거나 심지어 윤색한다. 총신대 역사학과 박용규 교수는 “4·3의 혹독한 어둠 속에서 제주 기독교는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시대 제주 기독교는 참으로 지혜로웠다. 기독교는 우익의 입장이었지만 우익 단체에 가담하고 직접 좌익과 투쟁하는 선봉에 서지 않았다. 이도종과 조남수 그리고 강문호는 간접적으로 심정적으로 그들을 지원하고 협력하면서도 교회가 휘말리지 않도록 교육했다"고 <제주 기독교회사>에 기록하고 있다. 개신교가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은 오로지 선교의 관점만이 유효하며, 그 외의 모든 죄악상은 제대로 취급되지 않거나 미화된다.
주정길과 신의 심판
개신교가 제주 4.3 사건의 진상을 마주하지 않는 가운데, 영화는 주정길이라는 인물을 통해 무고한 생명을 학살한 토벌대원의 악행을 막아선다. 정길은 “이제 그만 죽이세요”라고 외치며 그가 따르던 김 상사를 솥에 넣어 불을 지핀다. 사실 정길은 영화 내내 무기력한 모습으로 물동이를 기어 나르는 당번병으로 나온다. 그는 사태를 관찰하며 인내한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심판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마도 감독은 정길을 통해 신의 개입, 신의 심판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참고: 제주어로 고구마를 감저라고 합니다. 감자는 제주어로 지슬 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