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상산김문(商山金門)”은 始祖이신 諱 需(高麗 甫尹)公 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11세에 이르러 11개 파로 분파하였는데 상서공파(尙書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문충공파(文忠公派), 상산군파(商山君派), 낙성군파(洛城君派), 제학공파(提學公派), 내원령공파(內苑令公派), 영중추공파(領中樞公派), 통사공파(統使公派), 시랑공파(侍郞公派), 상원파(祥原派) 이다.
시조 할아버님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를 이어오는 동안 우리 김문은 학문이 더욱 흥성하여지고, 시대적인 삶 속에서 충(忠)과 효(孝)를 몸소 실천하였다. 이러한 선조님들의 정신은 명현(名賢)과 고관대작(高官大爵)을 연이어 배출되게 된 초석이 되었다. 이에 세상 사람들은 우리 김문을 “명문”이라 칭하였다. “명문”은 일이백년의 학맥과 정신이 이어져 이룩된 것이 아니라, 수백 년이 넘게 이어져야 하니, 실로 시대의 조류 속에서 그 근본과 맥을 이어감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손들에게 확고한 전통을 전해주신 것은 타 성씨와는 확연히 다른 우리 김문만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김문은 타 성씨에 비하여 자손은 흥성하지 않았으나, 그 학문과 청렴함, 그리고 효(孝) - 제(弟) - 충(忠)은 익히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대저 충(忠)이라함은 국가에 대한 말이다. 나라가 망하려는 때 목숨을 다해 몸을 바쳐 나라를 구하는 것이 대충(大忠)이요, 적(敵)을 이롭게 하여 나라를 병들게 하는 자 역적(逆賊)이다. 정치를 잘하는 것이 충(忠)이요, 악정(惡政)하는 것이 불충(不忠)이며, 공사(公事)일에 봉사하는 것이 충(忠)이 되고, 일신의 영달만을 꾀하는 자는 불충(不忠)이라 하였다.
공민왕조(서기1359년) 홍건적이 내침하자 충(忠)을 다하여 나라를 구하신 분이 계시니, 문충(文忠)공 諱 득배(得培)공 이시다. 공께서는 아우 되시는 諱 득제(得齊) 公과 諱 선치(先致)공을 비롯한 일가 일족들과 함께 충(忠)과 효(孝)를 선조들에게 몸 받아, 선비의 도를 실천하여 나라를 구하시니, 세상 사람들은 문충공의 삼형제분을 “삼원수”라 칭하였고, 우리 김문을 충신지가(忠臣之家)라 일컬었다. 전국책(戰國策)에 이르기를 “충신은 효자 집에서 구한다.”「求忠臣於孝子之門」라고 하였으니, 부모에 효도함과 나아가 나라에 충성함은 그 근본이 하나인 것이라 하겠다.
또한 문충(文忠)공은 제자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柱)에게 그 뜻을 전하였고, 나라에 충성함과 부모에 효도함은 물론 제자를 바르게 일깨워 나라의 주석이 되게 하였으니, 실로 군자라 할 수 있다. 조선 초 청백리인 성현(成鉉)은『용제총화』에서 우리나라 75 명문거족을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 김문(김씨는 단 5본뿐)이 이에 속한 것은 고려와 조선, 아니 그 이전의 시대부터 문(文)이 흥성하고, 선비의 도리를 지켜 나아갔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역사 깊은 상주(尙州)가 우리나라 문향의 고을로 알려지게 된 것은 우리 선조의 학문이 뛰어남이라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며, 상주의 역사는 우리 선대의 역사와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 선조들은 학문(學問)과 사상(思想)면에서 확고한 철학과 학문적인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나라와 가정에서 가르침을 실천하신 분들이시다. 때문에 우리 자손들은 선조의 이와 같은 삶을 긍지로 여기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과거를 돌이켜 보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가꾸어 나아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는 과거의 좋은 전통은 계승하고 오류는 시정을 통해 한 층 더 밝은 미래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상님이 남겨 주신 전통과 정신을 이어 발전시켜 나아가야 함은 후손된 자가 반드시 지켜야할 도리라 하겠다. 이러한 연고로 비추어 볼 때 우리 선조님들은 기록의 소중함을 익히 아셔서, 일찍이 족보(族譜)을 편찬하여 가계(家系)의 소중함과 숭조정신(崇祖精神)을 일깨워 주셨고, 많은 유고(遺稿)를 전하여 후학들과 자손들에게 학문의 길을 열어 주었다. 이러한 선조님들의 유물은 현제에 우리의 자긍심이 되고, 문화 종족의 후예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자존심이란 인간을 지탱해주는 기둥과 같은 것이며, 긍지와 사명감을 잉태 한다. 따라서 씨족사가 담긴 족보(族譜)는 한 시조(始祖)로부터 시작하여 한 혈통의 자손만이 함께 할 수 있다. 그것은 종족의 정통성(正統性)을 이어감과 동시에 직계손(直系孫)과 지손의 분별을 두어 집안의 질서를 바로하고, 조상님의 음덕(陰德)을 기리며, 자존심을 지켜 나아감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에서 종족사(宗族史)와 고문헌(古文獻)의 연구는 현실적으로 쉽지 마는 않다. 예컨대 연구를 떠나서 이러한 문헌이나 종족사를 접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접하고자 하여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가닥을 잡을 수 없는 실정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뿌리에 관해 알고자하는 마음이 있다. 자신의 출신내력이나 선조에 관해 알려고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조상으로부터 육체와 정신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친들의 궁금증과 자신의 뿌리에 대한 정체성을 일깨우고, 신 개념(New Paradigm)에 입각한 새로운 문중발전의 일환으로 오랜 논의를 거쳐 여러 가지 정보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대종회 홈페이지가 비로써 탄생하게 된 것이다.
제작의 목적은 첫째는 옛 조상님의 숭고한 정신의 계승과 현대를 사는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며, 둘째는 정통성을 이어 우리종족의 뿌리를 튼튼히 하고 자손들에게 바른 정신을 심어주어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알아서 자아정체성 확립에 도움을 주고자 함이며, 셋째 젊은 종친들이 종사(宗事) 일에 참여해서 전통의 맥과 학문의 맥을 이어 나아가는 것이고, 넷째 종친의 단합과 결속을 다지고 인재를 발굴 육성하여 상산 김문의 제 2의 전성기 “르네상스”를 꿈꾸려 함이다.
정통성(正統性)이란 “정식 계승된 바른 계통의 자격이다.” 우리를 연결 짖는 중요한 고리이며, 혈족을 바로 알고, 혈통을 분명히 하는데 의의를 둘 수 있다. 그러므로 본 홈페이지에서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역사서나 선조께서 남기신 유고, 지방 향지, 족보 등에 기록이 현저한 자료만을 수록하였으며, 일부 역사적 검정이 없는 자료는 배제하기로 하였다.
이유는 “없는 것을 있게 할 수 없고, 있는 것을 없다 할 수 없음”이다. 일찍이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함이, 그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고 하였으니, 선비의 자손 된 자가 어찌 거짓을 기록할 수 있으며, 없는 조상을 만들 수 있겠는가? 때문에 순수한 자손 된 자의 도리를 행하여 누구에게도 부끄럼 없이 당당하길 바라며, 더 나아가 이것은 우리 김문을 지탱해 나아가는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상산에 터를 잡아 뿌리 내린지 어언 천여 년! 찬란했던 종족 역사와 선조의 업적을 기리고, 황량한 벌판 같은 우리 마음에 불을 지펴 숭조 정신을 주춧돌로 삼으며, 애족심을 기둥으로 하고, 가문의 자존심으로 대들보를 삼아, 상산인 모두가 기거할 집을 지으려하니, 우리 상산인 모두 동참하여 함께하면 조상님들의 보살핌과 음덕이 함께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혹여 과오를 범하거나 방향을 잃을시 여러 종친들께서 바로잡아 주시길 바라며, 항상 위의 네 가지 원칙을 기본으로 하여 문헌연구, 사적 발굴, 종족사의 연구와 정립에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며, 명실 공히 “상산자료실”의 역할을 수행함에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을 다짐 또 다짐하는 바이다. |
첫댓글 더 자세한 것은 대문에 상산김씨 홈페이지를 클릭해서 알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