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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명시낭송클럽 원문보기 글쓴이: 나라솔/송태준
이우걸 시인의 「꽃」
조동화(시인)
이우걸 시인은 1946년 경남 창녕군 부곡면 부곡리에서 한학을 하는 아버지 이광화 씨와 어머니 차진순 씨 사이의 8남매 중 일곱 번째로 출생했다. 1953년 부곡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팔 부상으로 자퇴했으며, 1954년 재입학하여 1960년 졸업했다. 이후 부곡중학교를 거쳐 1966년 밀양세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7년 경북대 사범대학 사회교육과에 입학하여 같은 해 육군에 입대했으며, 1970년 제대와 동시에 경북대에 복학했다. 이듬해 학보에 발표된 작품 「엽서」, 「코고무신」 등에 대한 김춘수 교수의 격려로 문학에 뜻을 굳혔고, 1972년 손병현, 이동순, 이현우 등과 동인지 『선실』을 창간하여 2집까지 펴내는 한편, 대구 ‘전원다실’에서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1973년 이영도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시학』을 통해 「이슬」, 「지환」, 「편지」, 「설야」, 「도리원 주변」 등의 작품으로 3회 추천을 완료한 후 바로 <낙강>에 가입하는 한편, 동인지 『현대율』 동인으로 활동했다. 1974년 경북대를 졸업하고 1976년 이광자와 결혼, 아들 남중을 얻었으며, 그 이듬해에 첫 시집 『지금은 누군가 와서』(학문사)를 펴냈다.
1979년 딸 혜진이 출생하고, 1981년 시집 『빈 배에 앉아』를 상재했으며, 1982년 김교한 시인과 함께 <마산시조문학회>를 결성했다. 1983년 윤금초, 박시교, 유재영 등과 사화집 『네 사람의 얼굴』(문학과 지성사)을 펴내고, 여기 실린 작품 「비」로 제2회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1984년 시조평론집 『현대시조의 쟁점』을 펴내고, 바로 다음해 마산시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1988년 시집 『저녁 이미지』(동학사)를 펴냈다. 1989년 시조평론집 『우수의 지평』(동학사)을 상재하는 한편으로 <마산시조문학회>를 <경남시조문학회>로 개칭, 그 회장이 되고, 1990년 성파시조문학상을 받았으며, 1991년 11회 정운시조문학상을 수상함과 아울러 『현대시조 28인선』(장석주와 공편, 청하)을 펴냈다.
1994년 경상남도문화상(문학부문), 1995년 제14회 중앙시조대상을 잇달아 수상하고, 1996년 <경남시조문학회> 회장을 퇴임, <마산문인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1998년 시조 산문집 『나는 아직 안녕이라고 말할 수 없다』(이행수와 공저, 영언문화사)를 펴냈다. 2000년 창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 및 창신대 문예창작과에 출강하는 한편으로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이우걸 시집 『그대 보내려고 강가에 나온 날은』 (태학사)을 간행했으며, 이 해에 경남문학상 및 이호우시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1년 시조평론집 『젊은 시조문학 개성읽기』(작가)를 펴내고, 2002년 경남시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3년 《서정과 현실》을 창간하는 한편으로 시집 『맹인』(고요아침)을 상재하고, 밀양공고 교장, 경남문인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이 해에 한국문학상을 수상했다.
2004년 시선집 『지상의 밤』(시선사)을 펴냈으며, 1006년 오늘의 시조회의 의장에 취임하는 한편 경남문인협회 회장에 재선되었다. 그는 교육자로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어 진해고, 김해대천고 등의 교장을 거쳐 2007년에는 밀양교육장이 되었고, 2008년 오늘의 시조회의 의장을 연임하는 한편 가람시조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9년 시집 『나를 운반해온 시간의 발자국이여』(천년의 시작)를 간행했다. 2010년 경남문학관장에 취임했고, 2011년 김상옥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에 당선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Ⅰ
꽃들은 보충질문처럼 조금씩 열려 있다
벌들은 그 문을 잘 알고 드나든다
친수성(親水性) 잎들이 빚은 신록 같은 이 아침.
Ⅱ
스스로는 알 수 없는 생의 유한 때문에
항상 웃고 있지만 슬픈 바코드다
꼭 한 번 맞고 싶었던 이 절정의 순간에도.
Ⅲ
언젠가 일궈야 할 나만의 영토를 위해
상처만큼 더 깊숙이 문신을 새기며 산다
향 깊은 목숨일수록 억센 가시 세우며.
Ⅳ
유통기한 지난 것들은 사체처럼 부식한다
전율과 응혈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받은 명 곱게 익혀서 씨앗으로 남기기 위해.
―이우걸 「꽃」 전문
보다시피 이 시조는 「꽃」이라는 한 제목 하에 네 수의 시조를 나열하고 있다. 그러니까 유재영 시인의 「가을 은유」 경우처럼 전체적으로 연시조의 모양새를 유지하면서 단수로서의 성격도 잘 살린 경우라 할 수 있다. 즉 Ⅰ,Ⅱ,Ⅲ,Ⅳ의 각 수가 「꽃」이라는 제목에 잘 집중하면서 아울러 각 수가 독립된 단수로서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이우걸 시인은 1973년 등단한 이래 공저를 제외하고 개인 시집만 꼽아도 총8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따라서 전체 작품의 형태를 분석해 보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므로 여기서는 편의상 텍스트 「꽃」의 출전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최 근래 시집인 『나를 운반해온 시간의 발자국이여』에 수록된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여 그 전체적인 형태적 특성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이 시집에는 총 66수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것을 형태별로 분석해 보면, 단수가 12수, 두 수로 된 연시조가 40수, 세 수로 된 연시조가 13수, 네 수로 된 연시조가 1수라는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로 미루어 시인이 가장 선호하는 형식은 두 수로 된 연시조이며, 그의 시조를 쓰는 호흡 역시 유장하다기보다는 비교적 짧은 축에 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텍스트로 선정된 작품이 두 수로 된 연시조나 세 수로 된 연시조가 아닌, 단 1수의 분포를 보이고 있을 뿐인 네 수의 연시조로 된 작품이라는 사실은 매우 이채로운 점이라 하겠다.
먼저 작품의 내용면을 살펴보면, ‘Ⅰ’은 ‘친수성(親水性)의 잎들이 빚은 신록이 유난히 밝은 아침에 꽃들은 흡사 보충질문처럼 피어 있는데 벌들이 그 향기의 길을 따라와 드나든다.’ 정도가 될 것이다. ‘친수성’이라는 말이 하필 쓰이고 있는 까닭은 아마도 물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표현이 분명하고, ‘꽃들은 보충질문처럼 조금씩 열려 있다’는 것은 시인이 보고 노래한 꽃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꽃이라기보다는 내부를 여간해서는 잘 살필 수 없는 주둥이가 좁은 통꽃이 아닌가 한다.
‘Ⅱ’는 ‘스스로는 알 수 없는 삶의 유한함 때문에 꼭 한 번 맞고 싶었던 이 절정의 꽃 피는 순간에도 꽃은 항상 자신의 숙명에 따라 웃고 있지만 잠깐 피었다가 스러지는 슬픈 기호일 따름이다.’ 정도의 풀이가 될 것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단어는 ‘바코드’라는 단어이다. 참고로 ‘바코드’ 의 백과사전 풀이를 보면, ‘컴퓨터가 읽고 입력하기 쉬운 형태로 만들기 위하여, 문자나 숫자를 흑과 백의 막대 기호와 조합한 코드를 말한다. 광학식 마크판독장치로 자동 판독되며, 상품의 종류, 도서 분류, 신분증명서 등에 사용된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렇다면 꽃이 왜 슬픈 바코드가 되는가? 그것은 십중팔구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꽃의 숙명(宿命) 때문일 터이다. 여기에 이르러 꽃의 정체는 더 이상 불가해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바로 모든 유한한 생명들의 대유다.
‘Ⅲ’은 ‘언젠가는 일구어 남겨두고 떠나야 할 자신만의 세계 구축을 위해 큰 꿈을 가진 목숨일수록 내적 성숙을 위한 자기방어의 벽을 세우며 상처보다도 더 깊숙이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확립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정도의 풀이를 할 수 있을 듯하다. 목욕탕에 가 보면 상당수의 문신(文身)을 새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문신의 종류도 제한이 없다. 용, 호랑이, 고양이, 잉어, 거북이 등의 문신이 있는가 하면 나비, 꽃, 거미, 벌 등의 문신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문신들은 유전자 변이(變異)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즉 피부에 아무리 깊고 짙게 새긴 무늬도 F1으로의 형질의 전이(轉移)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품 속에 나오는 ‘문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바대로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꽃들은 피어서 충매화든 풍매화든 꽃가루 수정을 거쳐 씨방 속에 씨앗이라는 미래를 간직한다. 꽃들이 속수무책으로 져도 흡사 불사신처럼 1년 뒤에 다시 피어날 수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문신의 의미는 최종 넷째 수에서 마침내 그 확실한 정체를 드러낸다.
‘Ⅳ’는 ‘유통기한 지난 것들은 사체처럼 부식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받은 명 곱게 익혀서 씨앗으로 남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한 생명의 전율과 응혈이 그 안에 담겨 있다.’라는 풀이가 가능할 것이다. ‘유통기한’은 생명들이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활동기간이다. 그 기간이 지나면 모든 꽃들은 종언(終焉)을 고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꽃들이 속절없이 그냥 무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자신과 똑같은 개성을 지닌 씨앗을 위해 살 떨리는 전율과 피 맺히는 노력을 쏟아 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형질을 쏙 빼닮은 씨앗을 남기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있어서 그가 남기고자 하는 씨앗은 무엇일까? 물론 시인도 사람이니 일차적으로는 그가 낳은 아들딸도 씨앗의 범주에 들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시인에겐 아들딸 말고 그 자신의 분신이 하나 더 있다. 그가 쓰는 작품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앞서 셋째 수에서 보류해 두었던 문신의 의미는 보다 분명해진다. 그것은 누구의 것과도 결코 비슷하지 않은, 그 자신이 쓴 작품들의 현란한 개성(個性), 바로 그것임이 확연해지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내용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제재와 주제를 정리해 보면 제재는 제목 그대로 ‘꽃’, 주제는 ‘생명, 또는 개성 창조의 의미’ 정도가 아닐까 한다.
다음으로 이 작품의 기교면을 살펴보기로 한다.
Ⅰ에는 초장과 종장에 각각 하나씩의 직유가 보인다. 그 중 첫 번째 직유가 예사롭지 않다. ‘꽃’이 원관념이고 ‘보충질문’이 보조관념인데 단순한 은유 이상의 난해함으로 다가온다. 직유라고 해서 무조건 쉬운 비유가 아님을 이 대목은 잘 보여준다. 김수영의 「적」이라는 작품의 첫머리를 보면 “더운 날/ 적(敵)이란 해면(海綿) 같다/ 나의 양심과 독기(毒氣)를 빨아먹는/ 문어발 같다.” 라는 직유로 시작된다. 보는 바대로 이 직유는 ‘적(敵)’이라는 하나의 원관념에 ‘해면’과 문어발‘이라는 두 개의 보조관념이 겹쳐 있다. 그런데 이 직유는 이해가 결코 쉽지 않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유사성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꽃들은 보충질문처럼 조금씩 열려 있다”는 이 직유도 ’꽃‘과 ’보충질문‘의 유사성이 쉽게는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꽃은 보충질문이라기보다는 주 질문의 성격을 더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이 대목에서 잎들을 주 질문으로 상정하고 꽃들을 보충질문으로 비유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려나 이 직유는 일종의 ’이질적 사물의 폭력적 결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거리가 먼 것이다.
Ⅱ에는 중장에 멋진 은유 하나가 보석처럼 박혀 있다. ‘항상 웃고 있지만 슬픈 바코드다’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은유는 원관념이 본문에는 생략되어 있고 보조관념 ‘바코드’만 밖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제목과 Ⅰ의 초장에 원관념 ‘꽃’이 나타나 있어 이 비유는 그리 어렵지 않다.
Ⅲ에는 중장에 ‘문신을 새기며 산다’라는 의인법이 보이고, Ⅳ에는 초장에 ‘사체처럼 부식한다’라는 직유 하나와 ‘전율’과 ‘응혈’이라는 은유가 보인다. 특히 이 은유는 Ⅲ의 꽃이 새긴 문신, 즉 그 자신의 독특한 형질이 Ⅳ에서 꽃은 부식하지만 씨방에서 씨앗으로 영글어 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외에도 이 작품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각 수마다 변화법 가운데 하나인 도치법이 적절히 사용되어 어순을 바꾸어 주면서 정형시가 가지기 쉬운 통사구조의 단조로움을 탈피하고 있다. 만일 이 도치법이 없었더라면 이 작품은 생각보다 훨씬 밋밋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것으로 선택한 텍스트에 대한 분석은 끝난 셈이다. 이제 이우걸 시인의 시조 전반에 관한 약간의 사족을 덧붙이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할 계제가 되었다.
우리가 주지하는 바대로 이우걸 시인은 민족시 시조에서 70년대 전반부를 빛낸 시인들 가운데 박시교, 유재영 등과 더불어 한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시인이다. 무작위로 신작 네댓 편씩을 받아 이름을 가리고 시인을 맞춰보라면 가장 쉽게 지은이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이 그가 아닐까 한다. 이것은 그의 시조가 그만큼 독특한 개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 기인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의 시조의 독특한 개성을 형성하는 요소는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첫째 그의 작품들이 걸친 현대적 의상, 곧 그의 시조를 이루고 시어들에 그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의 작품 한 편을 보기로 하자.
시계가 눈을 비비며// 열두 시를 친다// 반쯤 남은 커피잔은 화분 곁에서 졸고 있고// 과장은 혀를 차면서 서류를 읽다 만다.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의자들은 말이 없다// 창밖엔 클락션 소리 목 쉰 확성기 소리// 자세히 들여다보니// 벽에도 금이 가 있다.
―「사무실」 전문
이 작품은 그의 시집 『나를 운반해온 시간의 발자국이여』 제1부 첫머리를 장식한 작품이다. 이 시조에 사용된 중요 단어들을 살펴보면, ‘시계’, ‘커피잔’, ‘과장’, ‘서류’, ‘의자’, ‘클락션’, ‘확성기’, ‘벽’ 등인데, 이들은 하나같이 전통의 시조 작품들이나 다른 시인들의 작품들에서는 쉬 나타나지 않는 면면들이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진작부터 있어왔지만 전혀 새로운 천 조각들을 잇대어 이룩한 옷자락들이 낯설다. 시조에 사용된 시어로서는 가위 획기적이라 할 만큼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낯선 천, 낯선 디자인의 옷 한 벌이 그의 시로 하여금 다른 시인들의 시와는 전혀 다른 대립각을 형성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조의 독특한 개성을 형성하는 요소 가운데 둘째는 명징(明澄)한 비유에 있지 않은가 한다.
실로폰 소리를 내는/ 가을날의 기인 편지.
―「비」에서
져서도 잊혀지지 않는/ 내 영혼의/ 자줏빛 상처.
―「모란」에서
추억을 현상해 내는 미세한 필름이 있다.
―「기러기‧2」에서
담담히 나를 다스릴/ 떨켜 같은/ 손이 있을 뿐.
―「이별 노래」에서
돌아와/ 가슴에 닿는/ 깊은 올의 현악기.
―「봄비」에서
이 빛나는 비유들 역시 그의 시집 『나를 운반해온 시간의 발자국이여』에서 이리저리 눈에 띄는 대로 몇 개 무순으로 뽑아본 것이다. 다시 찬찬히 보니 네 번째 직유로 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은유다. 그런데 하나같이 독창적이면서 명징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비유들이 절로 탄복을 자아낸다. 우리가 잘 아는 바대로 새로운 비유는 그것을 만든 시인이 처음 사용하게 되지만 두 번 다시 그것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물론 다른 시인도 이것을 제 것으로 가져다 쓸 수는 없다. 개발자든 개발자가 아니든 두 번째로 쓰는 순간 이미 그것은 죽은 비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비유는 어디까지나 일회용이다. 남이 결코 도둑질할 수 없는 시인의 비유, 영원히 한 시인만의 자산으로 남아 있을 이것은 그래서 또한 시인 자신의 독특한 개성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출처] 이우걸 시인의 「꽃」 / 조동화|작성자 시조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