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사다마 好事多魔 [좋을 호/일 사/많을 다/마귀 마]
☞좋은 일에는 방해되는 것이 많다.좋은 일에는 흔히 탈이 끼어들기 쉬움, 또는 그런 일이 많이 생김.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이 따른다거나 좋은 일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 [동]호사다방(好事多妨: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이 따른다./ 호몽부장(好夢不長:좋은 꿈은 오래 가지 않는다)
[내용]魔는 磨라고도 쓴다. 이 말이 사용된 예로는 중국 청(淸)나라 때 조설근(曹雪芹)이 지은 《홍루몽(紅樓夢)》에 "그런 홍진 세상에 즐거운 일들이 있지만 영원히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물며 또 '미중부족 호사다마(美中不足 好事多魔:옥에도 티가 있고, 좋은 일에는 탈도 많다)'라는 여덟 글자는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순식간에 또 즐거움이 다하고 슬픈 일이 생기며, 사람은 물정에 따라 바뀌지 않는 법이다"라는 구절이 있다.또 금(金)나라 때 동해원(董解元)이 지은 《서상(西廂)》에 "참으로 이른바 좋은 시기는 얻기 어렵고, 좋은 일을 이루려면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眞所謂佳期難得, 好事多磨)"라는 구절이 있다. 좋은 일이 오래 계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호몽부장(好夢不長:좋은 꿈은 오래 가지 않는다)과 같은 의미이다.<네이버백과>
[예문] ▷ 호사다마라고 덕산댁은 복남이를 낳고 산후 조리가 잘못되었던지 얼마 후 중풍에 걸려 몸져눕고 말았다.≪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1988년 3월 29일,둘째 아이를 임신했던 그녀는 묘목을 등에 엎고 모래 언덕을 넘어가다가 발을 헛디뎌 언덕 아래로 구르고 말았다. 등에 진 나뭇가지가 온몸을 찔러댔다. 그게 사단이 돼 엄마 뱃속에서 9개월간 살았을 뿐 세상 구경도 해보지 못한 아이는 황량한 모래 언덕에 묻혔다.<2006 부산일보--사막에 숲이 있다> |
■ 호시탐탐 虎視耽耽 [범 호/볼 시/즐길 탐/즐길 탐] ▶ 플래쉬 보기(출처-전국한문교사모임)
☞호랑이가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노려본다는 뜻으로, 공격이나 침략의 기회를 노리는 모양. 또는 어떤 일에 대비하여 방심하지 않고 가만히 정세를 관망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출전]《주역》
[내용]글자의 뜻으로 보아 '眈眈(탐탐)'이 옳고, '耽耽(탐탐)'은 그 속자(俗子)로 봄이 옳을 듯하다. 《주역》의 육십사괘에 '이()’라는 괘가 있다. '이()’란 아래턱을 가리키는 말로, '기른다'는 의미가 있다. 그 괘형은 두 양(陽)이 상하로 있고, 사음(四陰)이 가운데 끼어 있는 형상으로 마치 사람이 입을 벌린 모습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것을 구성하는 팔괘(八卦)의 괘덕(卦德)으로 보더라도 음식을 먹을 때, 턱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과 비슷하여 음식으로 사람의 몸을 기른다는 의미에서 '기른다'는 뜻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이괘의 효사(爻辭)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전이길 호시탐탐 기욕축축 무구(顚吉 虎視耽耽 其欲逐逐 无咎;거꾸로 길러지는 것도 길하다. 호시탐탐하여 그 욕심을 쫓아가면 허물이 없다.)" 이괘는 인간세상의 계급에 비유하면 천자를 보좌하여 천하의 만민을 기르는 대신의 지위에 상당한데, 음유(陰柔)로 힘이 부족하여 혼자의 힘으로는 천하의 만민을 기르기는커녕 자기의 몸을 기르는 일조차도 불안하다. 그러므로 아래 지위에 있는 백성의 도움과 위에 있는 천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위에 있는 사람이 호시탐탐하여, 위엄이 있고 사납지 않은 태도로 정중하게 행동하면 아랫사람도 감히 깔보지 못하고 또한 그를 받들게 될 것이다. 또 사람에게 길러짐을 구할 때는 그 욕심을 따라서 끊임없이 하면 일이 성취되고, 이렇게 하여 이미 위엄을 갖추고 사람에게 길러짐을 구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으면 허물을 얻지 않게 되는 것이다.<네이버백과>>
[예문] ▷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 적들은 호시탐탐 침략의 야욕을 불태웠다. ▷ 일본의 조야(朝野)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현안으로 해서 바다 서쪽을 호시탐탐하고 있었다.≪유주현, 대한 제국≫ ▷ 나 사장의 눈길은 쥐덫에 걸린 쥐를 놀려 먹듯이 정 없이 즐겁고 호시탐탐해 보였다.≪박완서, 오만과 몽상≫ |
■ 호연지기 浩然之氣 [넓을 호/그럴 연/기운 기]
☞넓고 큰 기운. 공명정대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도덕적 용기. 사람이 올바른 길을 가고 올바른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마음속에서 자연적으로 움직이는 지극히 평화스러우면서도 광명정대한 정기
[출전]『孟子』 公孫丑篇
[원문]難言也 其爲氣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天地之間 其爲氣也 配義與道 無是也 是集義之所生者 非義襲而取之也 行有不慊於心 則矣.
[내용] : 맹자가 제(齊)나라에서 제자 공손축(公孫丑)과 나눈 대화다.“선생님이 제의 대신이 되어서 도를 행하신다면 제를 틀림없이 천하의 패자(覇者-제후의 우두머리)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도 아마 동심(動心-책임을 느껴 마음을 움직임)하실 것입니다.”“나는 40이 넘어서부터는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없네.”“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맹자는 그것을 용(勇)이라 말하였다. 심중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어떠한 것이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대용(大勇)이라 하였다.
“선생님의 부동심과 고자〔告子-맹자의 논적(論敵-맹자의 성선설 부정)〕의 부동심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고자는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은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는 소극적이다. 나는 알고 있다〔知言〕. 거기에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있다. 지언(知言)이란 피사(?辭-편협한 말), 음사(淫辭-음탕한 말), 사사(邪辭-간사한 말), 둔사(遁辭-피하는 말)를 가려낼 수 있는 명(明)을 갖는 것이다. 또 호연지기는 평온하고 너그러운 화기(和氣)를 말하며, 기(氣)는 매우 광대하고 강건하며 올바르고 솔직한 것으로서 이것을 해치지 않도록 기르면, 천지간에 넘치는 우주 자연과 합일하는 경지다. 기는 의(義)와 도(道)를 따라 길러지며 이것을 잃으면 시들고 만다. 이것은 자신 속에 올바른 것을 쌓아 올림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예문] ▷ 산수가 뛰어난 곳에서 마음껏 즐기며 호연지기를 기르다. ▷ 아차산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할 수 있는 '고구려기념관'을 건립하여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에게 호연지기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2006 뉴시스> |
■ 호유기미 狐濡其尾 [여우 호/젖을 유/그 기/꼬리 미]
☞처음에는 쉬워도 나중에는 곤경에 빠짐,준비가 없으면 일을 추진할 수 없음 [출전]『전국책』 [내용]여우는 머리가 가볍고 꼬리가 무겁기 때문에 꼬리를 얹고 물을 건너는데 중간에 힘이 빠져 고리를 물에 빠뜨리면 익사하거나 물을 건너지 못한다는 속설 |
■ 호접지몽 胡蝶之夢 [오랑캐 호/나비 접/어조사 지/꿈 몽]
☞장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꿈/. 물아일체의 경지-물아의 구별을 잊음/만물일체의 심경/인생의 덧없음을 비유/꿈. [동]莊周之夢(장주지몽),
[출전]『莊子』, 齊物篇 [원문]昔者莊周爲胡蝶 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然周也 不知 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내용] 장자(莊子)의 만물제동(萬物齊同) 사사에는 우리가 대소(大小), 미추(美醜), 선악(善惡), 시비(是非) 등의 대립되는 가치관에 있어서 그 하나는 좋다 하고 그 하나는 나쁘다고 하는데, 장자는 그것은 우리가 도를 도로써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 것일뿐 실제에 있어서는 무차별임을 주장하였다.
“꿈 속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던 사람이 아침에는 슬픈 일이 생겨 통곡하는 수가 있다. 또 꿈 속에서 통곡하던 사람이 아침에는 사냥을 하면서 즐길 수도 있다. 그런데,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꿈임을 의식하지 못하여 꿈 속에서 꿈의 길흉을 점치기도 하나 깨어서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이는 꿈과 현실의 차이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꿈이 현실이 아니고, 현실이 꿈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는 주장이다.
“예전에 나는 나비가 된 꿈을 꾼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기꺼이 날아 다니는 나비였다. 아주 즐거울 뿐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장주(莊周)임을 조금도 지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꿈에서 깬 순간 분명히 나는 장주가 되었다. 대체, 장주가 나비 된 꿈을 꾸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장주와 나비는 별개의 것이건만 그 구별이 애매함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사물이 변화하기 때문이다.”도(道)의 세계에서 보면 만물이 다 제일(第一)하다. 장주도 호접이고 호접도 장주라. 꿈도 현실이고 현실도 꿈이다.
장자는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성은 장(莊), 이름은 주(周)이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불안한 시대를 살았던 그는 인간의 참 자유가 무엇인지를 사유하게 되었고, 그 자유를 추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그 결과 물(物)의 시비(是非)·선악(善惡)·미추(美醜)·빈부(貧富)·화복(禍福) 등을 구분짓는 일이 어리석은 일임을 깨닫고, 만물은 결국 하나의 세계로 귀결된다[物我一體]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제창하였다. 호접지몽이라는 고사에 이러한 생각이 비유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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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중천지 壺中天地 [병 호/가운데 중/하늘 천/땅 지]
☞항아리 속의 하늘이라는 뜻으로, 별천지(別天地)·별세계·선경(仙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또는 술에 취하여 세속을 잊어버리는 즐거움이나 장소가 극히 협소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동]호중지천[壺中之天],일호지천[一壺之天][유]무릉도원[武陵桃源],別天地,선경[仙境],이상향[理想鄕]
[출전]『後漢書』 [내용]이 말은 한대(漢代)의 선인(仙人)인 호공(壺公)이 하나의 항아리를 집으로 삼고 술을 즐기며 세속을 잊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로, 호천(壺天)·호중천(壺中天)·호중천지(壺中天地)·일호지천(一壺之天)이라고도 한다.
《후한서(後漢書)》 〈방술전(方術傳)〉에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후한 시대에 비장방(費長房)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여남현(汝南縣)의 시장에서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비장방은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시장 한 모퉁이에서 영약(靈藥)을 파는 약장수 할아버지가 한 분 있었는데, 이 할아버지는 언제나 가게 앞에 항아리를 하나 놓아 두고는, 시장이 파하면 얼른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시장 사람들은 아무도 그것을 눈여겨보지 않았으나 비장방은 너무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되어 그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를 항아리 속으로 안내했다. 항아리 속에는 훌륭한 옥으로 만든 화려한 저택이 장엄하게 솟아 있고, 그 저택 안에는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와 함께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고 나서, 다시 항아리 밖으로 나왔다. 이 약장수 할아버지는 하늘에서 지상으로 유배된 선인(仙人)인 호공이었다. 뒤에 호공이 용서를 받아 천계(天界)로 돌아갈 때, 비장방도 그를 따라갔는데 선술(仙術)을 익히는 데 실패하여 지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비롯하여 ‘호중지천’은 별천지·별세계·선경을 의미하게 되었다. 항아리의 입구가 좁은 데에 연유하여 장소가 극히 협소함을 이르는 말로도 사용된다.<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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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세무민 惑世誣民 [미혹될 혹/세상 세/속일 무/백성 민]
☞세상을 미혹되게 하고 백성들을 속이다.
[예문] ▷ 절의 형편도 딱하게 되어 다소의 보시를 바라고 왔더니만, 상투 자르고 유학하시는 양반께서 혹세무민의 원흉인 양 몰아세우는 바람에 수모만 당하였소이다.≪박경리, 토지≫
▷ 예수가 바리사이파의 율법적인 전통의 많은 부분을 거부하고(마르 7:1∼23), 사람들을 그 무거운 짐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주어(마태 11:28∼30), 그들에게 율법의 보다 심오한 의미를 가르치고자(마태 5:20∼48), 형식적인 신앙을 통렬히 비난하고(마태 6:1∼18, 23:5∼12), 예수 자신으로부터 구원이 성취되리라고 가르친(마르 10:45) 사실 등은 바리사이파와의 갈등을 불가피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결국은 혹세무민(惑世誣民) 죄목으로 십자가에 처형되는 운명을 자초하였다. 이 갈등은 예수의 사망 후 초대 교회신도들과 바리사이파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 동학도 서학과 마찬가지로 불온한 사상적 집단이며 민심을 현혹시키는 또 하나의 사교(邪敎)라고 단정하고 탄압을 가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1863년에는 최제우를 비롯한 20여 명의 동학교도들이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로 체포되어, 최제우는 이듬해 대구에서 사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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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연일체 渾然一體 [모두 혼/그럴 연/몸 체]
☞사람들의 행동·의지 따위가 조금도 차이가 없이 한 덩어리가 되다.
[예문] ▷ 노사가 혼연일체가 되어 위기를 극복하였다. ▷ 베르그송에 있어서는 근대 실증 과학의 정신과 철학의 정신이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안병욱, 사색인의 향연≫
▷ 지(知)를 대상(對象)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다면 호(好)는 대상과 주체간의 관계에 관한 규정입니다. 그에 비하여 낙(樂)은 대상과 주체가 혼연히 일체화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知)가 분석적인 것이라면 호(好)는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낙(樂)은 주체와 대상이 원융(圓融)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낙(樂)은 어떤 판단 형식이라기보다는 질서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와 부분, 체(體)와 용(用)이 혼연(渾然)의 일체(一體)를 이룬 어떤 질서(秩序)와 장(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知)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호(好)는 대상을 타자(他者)라는 원천적 비대칭적 구조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知)와 호(好)를 지양(止揚)한 곳에 낙(樂)이 있다고 생각하지요.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고전강독의 관점에서 이를 규정한다면 “낙(樂)은 관계의 최고형태”인 셈입니다. 그 낙의 경지에 이르러 비로소 어떤 터득(攄得)이 가능한 것이지요.<신영복-성공회대 강의>中에서 |
■ 혼정신성 昏定晨省 [어두울 혼/정할 정/새벽 신/살필 성]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림-부모를 섬기는 자식의 바른 효행 [준]定省[유]온청정성[溫淸定省]동온하청[冬溫夏淸]조석정성 [朝夕定省]
[출전]『禮記』 [내용]이 말은 《예기(禮記)》의 〈곡례편(曲禮篇)〉에 나오는 말로 ‘밤에 잘 때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 안녕하시기를 여쭙는다.’는 뜻의 ‘혼정(昏定)’과 ‘아침 일찍 일어나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의 안후(安候)를 살핀다.’는 뜻의 ‘신성(晨省)’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부모에 대한 공경을 바탕으로 한 행위가 곧 효, 또는 효행이다. 이 효사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륜의 가장 으뜸되는 덕목으로 중시되었다. 즉 ‘효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라 하여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하며, 복종하고, 조상에게 봉제사(奉祭祀)하는 일이 의무화되면서 효사상이 사회규범으로 굳어졌다.
공자는 이러한 효에 대해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여 확고히 정착시켰다. 이 유교적인 효사상은 맹자에 와서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의무가 더욱 강조되었고, 한대(漢代)에 이르러 《효경(孝經)》에서 도덕의 근원, 우주의 원리로서 명문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효사상이 가장 중요한 도덕규범으로 정착되자 자연히 효에 대한 행동상의 규범도 많아지게 되었다. 일종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 먼저 부모를 대하는 얼굴가짐을 중시했다. 늘 부드러운 얼굴빛으로 부모를 섬겨 편안하게 해드려야 한다는 것으로,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하여 ‘색난(色難)’이라 하였다. 또 부모의 잘못을 보면 간언은 하되 뜻은 거역하지 않으며, 살아 계실 때에는 정성으로 모시고 돌아가시면 3년간 부모의 평소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고 지켜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평소 일상생활 중에서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를테면 저녁에는 잠자리가 어떤지 직접 손을 넣어 확인해보고 아침에는 간밤에 잘 주무셨는지 여쭌 다음 부모의 안색을 주의깊게 살폈으니, 이것이 바로 ‘혼정신성’으로 부모를 모시는 기본 도리였던 것이다.
이 말은 겨울에는 따뜻하게[溫] 여름에는시원하게[淸] 해드리고, 밤에는 이부자리를 펴고[定]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省]는 뜻의 '온청정성(溫淸定省)'이란 말과 뜻이 통한다. 또 부모를 섬기기는 데,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서늘하게 한다는 뜻의 '동온하청(冬溫夏淸)'이라는 말도 모두 《예기》에 나오는 말로서 그 뜻이 서로 통하는 말이다.
[예문] ▷ 노인네가 어려지셔서 자주 남산 밑 첩며느리에게 가 머무시옵는데 혼정신성이 깍듯하고….≪한무숙, 이사종의 아내≫
▷ 오윤환(吳潤煥, 1872∼1946) 선생은 속초지역의 이름난 유학자로서, 호는 매곡(梅谷), 자는 성빈(聖斌)이다. 선생은 매일 의관을 정제하고 아침 문안을 올리는 등 조석으로 부모를 돌보는 혼정신성(昏定晨省)의 효행을 몸소 실천하셨다.<2006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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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로점설 紅爐點雪 [붉을 홍/화로 로/점 점/눈 설]
☞불로 벌겋게 단 화로에 눈을 뿌리면 순식간에 녹는다.사욕이나 의혹,번뇌가 일시에 꺼져 없어짐./도를 깨달아 마음 속이 탁 트여 막힘이 없음/크나큰 일에 적은 힘이 아무런 보람이 없음 [원]홍로상일점설 紅爐上一點雪
[예문] ▷ 아마조나스 오페라극장의 전체적 인상은 거대한 아마존과 싸우 느라고 나이보다 훨씬 늙어버린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비단 이 극장뿐만이 아니라 마 나우스는 도시 그 자체가 아미존에 뛰어든 이질적인 틈입자(闖入者)였습니다. 아스팔트는 뜨 겁고 선창의 쇠붙이들은 녹쓸고 있습니다. 마나우스는 비록 그 규모가 150평방km에 달하는 큰 도시이지만 7백만 평방km의 광활한 아마존 유역에 비교해 보면 그것은 실로 홍로점설 (紅爐點雪)에 불과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존과 싸우고 있는 마나우스와 아마존과 더불어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삶은 너무나 선명 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신영복 해외기행 <녹색의 희망 아마존>에서
▷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본분종사 전제차구 여목인창박 홍로점설 역여석화전광 학자실불가의의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임은 마치 장승이 노 래하고 불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 이듯 하여, 배우는 자가 참으로 생각하고 의논할 수가 없다 <원불교, 선가귀감(禪家龜鑑)중에서>
▷ 우는 상호가 눈앞에 보이기까지 하면 오주의 먹은 맘은 홍로점설같이 사라지고 미친 맘이 왈칵 내뛰었다.≪홍명희, 임꺽정≫
[참고]'붉은 화로 위의 한조각 눈'은 마치 무상하고 덧없음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선의 입장에서는 아주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화로를 불심, 불성에, 눈은 번뇌망상에 각각 비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열하게 타고 있는 화로 위에 한조각 눈을 놓으면 즉시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에게 갖춰진 불심, 불성의 달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다면 어떤 망상이나 분별심이 나타난다해도 순식간에 사라져 자취마저 없어진다는 의미이다. 화로와 같은 불심 앞에서는 한 점의 미망도 남김없이 태워져서 정무구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빛난다. 망상이 남김없이 소진돼 약간의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으로 '자취가 없다'고 하는데, 이는 철저하게 대오한 사람의 무애자재한 실천 수행을 가리킨다. 이 '자취를 없애는'것은 본래 갖춰져 있는 불성이 미망의 구름에 덮여 있기 때문에 어떤 것도 태워버릴 수 있는 열화같은 의지가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 '붉은 화로 위의 한조각 눈'에 대한 두 선사의 일화가 있다. 문 : 흰 칼날이 죽이려고 할 때 한구절을 말하라. 답 : 붉은 화로 위에 한조각 눈이다. 문 : 눈이 녹고 난 뒤에는 어떠한가? 답 : 비, 눈, 안개, 얼음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녹으면 한가지로 계곡의 물이다. 이 문답에서는 일체를 융화하는 고차원의 심경을 엿볼 수 있다. <碧巖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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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일점 紅一點 [붉을 홍/한 일/점 점]
☞ 여럿 가운데서 오직 하나 이채를 띠는 것. 많은 남자들 틈에 오직 하나뿐인 여자. 여러 하찮은 것 가운데 단 하나 우수한 것. [출전] ≪唐宋八家文≫ 〈王安石 詠石榴詩〉
[내용]온통 새파란 덤불 속에 핀 붉은 꽃 한 송이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봄의 색깔은 굳이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萬綠叢中紅一點 動人春色不須多)
온통 새파랗기만 한 푸른 잎 속에 한 송이 붉은 꽃이 활짝 피어 있다.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봄의 색깔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바로 이런 감동이다. 여러 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어 있는 것보다는 무성한 푸른 잎 사이로 어쩌다 피어 있는 한 송이 빨간 석류가 훨씬 사람의 눈과 마음을 끈다. 이와 같이 만록총중홍일점이란, 여성들의 사회 생활에 제약이 많았던 시절에 많은 남성들 사이에 홀로 끼여 있는 여성을 나뭇잎 속에 파묻혀 있는 꽃에 비유한 것이다. 이 시기에 남성과 자리를 같이 할 수 있던 것은 주로 기생들이었으니, 여기서 가리키는 것도 그럴 수밖에 없다. 오늘날에는 여러 남성 사이에 혼자 섞인 여성을 두루 가리킨다.<두산백과>
[원문]萬綠叢中紅一點 動人春色不須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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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광동진 和光同塵 [화할 화/빛 광/같을 동/티끌 진]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과 같이 함. 자기의 재능을 감추고 속세의 사람들과 어울려 동화함.
[출전]『노자(老子)』 [내용]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知者不言(지자불언)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言者不知(언자부지) 그 통하는 구멍을 막아 塞其兌(새기태) 그 문을 닫고 閉其門(폐기문) 그 날카로움을 꺾고 挫其銳(좌기예) 그 얽힘을 풀고 解其紛(해기분) 그 빛을 부드럽게 하여 和其光(화기광) 그 속세의 먼지와 함께 하니 同其塵(동기진) 이것을 현동(玄同)이라 한다. 是謂玄同(시위현동) |
■ 화룡점정 畵龍點睛 [그릴 화/용 룡/점찍을 점/눈알 정]
☞무슨 일을 하는데 최후의 중요한 부분을 완성함.[북한어]글을 짓거나 일을 하는 데서 가장 요긴한 어느 한 대목을 잘함으로써 전체가 생동하게 살아나거나 활기 있게 됨
[출전]『水衡記』 [내용]:「唐나라 때 장승요란 사람이 금릉 안락사에 두 마리 용을 그려 놓고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그러고는 매양 말하기를“눈동자를 그려서 넣으면 곧 날아서 가리라.”하니 사람들이 미친 놈이라 하였다. 그래서, 그 한 마리에 눈동자를 그려 넣으니 잠깐 사이에 우뢰가 일고 번개가 나더니 벽이 쪼개지면서 한 마리 용이 하늘로 올라가고 한 마리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것은 그대로 있더라.
[원문]張僧繇가 於金陵安樂寺에 畵兩龍호대 不點睛하고 每云‘點之면 卽飛去라’하더니 人이 以爲妄이어늘 因點其一하니 須臾에 雷電破壁하여 一龍이 上天하고 一龍 不點眼者는 見在하니라. ** 繇(우거질 요) 畵(그림 화) 睛(눈동자 정) 雷(우뢰 뢰) 電(번개 전) 壁(벽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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