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회상]
나는 하루종일 집에서 2008베이징올림픽 게임에 열중하며TV를 보고 있었다.
스포츠 강국이라고 여기는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4위라는 상위그룹을 유지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관람할 수 있었으며, 오늘은 탁구와 배드민턴의 메달 색깔을 고르는 중요한 경기였다.
그중에서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띄는 선수가 있었으니 남자는 이용대, 여자는 당예서다.
화순군 화순읍 삼천리에서 태어났다는 이용대! 이제 나이 21살의 어린나이이며, 고향이 화순이다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경기를 볼 수 있었다.
본래 이용대는 ‘뚱보’란 소리가 듣기 싫었던 초등학생이었다. 살을 뺄 요량으로 배드민턴 라켓을 잡은지 1년 만에 몰라보게 홀쭉해졌으며 집에선 운동을 그만두라고 했으나 소년은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짜릿한 셔틀콕의 맛에 중독됐기 때문이었으며, 5학년 때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배드민턴 신동이 나왔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며, 급기야 이용대는 ‘셔틀콕 황제’ 박주봉의 최연소(16세) 국가대표 기록을 갈아치우며 중학교 3학년(15세)이 되던 해 태릉선수촌의 막둥이가 됐고, 스무살 청년이 된 지금 세계 정복을 꿈꾸고 있다.
한국 셔틀콕의 에이스로 우뚝 선 이용대(20·삼성전기)가 바로 그 소년이다. 최근 열린 독일오픈(혼합복식)과 전영오픈(이하 남자복식), 스위스오픈을 잇따라 석권한 이용대를 19일 태릉선수촌에서 만났다.3주 간의 유럽투어로 지친 탓인지 윗입술은 터져 있었고 오른쪽 다리는 근육통 탓에 불편해 했다.
긴 해외원정을 마치고 귀국한 18일 오후 이용대는 선수촌으로 직행했다. 짧은 휴가를 꿈꿀 법도 했다. “늘 있는 일인데 중3 때 처음 태릉에 와서 보니 막막했고 주위를 둘러보니 감옥 같기도 하고, 나이 많은 형들 보면 웃지도 못하고 숨도 제대로 못 쉬었는 거죠. 하지만 이젠 여기가 내 집 같다며, ”1년에 200일 이상을 이곳에서 보내는 선수촌 6년차의 여유가 묻어났다.6년 전에는 체조나 수영을 제외하면 선수촌에서 또래를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이젠 이용대보다 어린 선수들도 꽤 생겼다.
주니어 무대에서 ‘용대 불패’로 통했던 그는 2007말레이시아오픈 슈퍼시리즈 남자복식 3위에 이어 2007코리아오픈 슈퍼시리즈 남자복식 우승으로 성인무대에도 연착륙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해 4월 손가락 부상 이후 좀처럼 성적을 내지 못했다.“그땐 어렸죠.4강만 올라가면 흥분해서 실수하기 일쑤였고 (복식파트너인) 정재성 형하고 호흡도 잘 안 맞았어요. 여섯살이나 차이가 나 좀 어려웠거든요.”
하지만 ‘통과의례’는 오래가지 않았다. 올초부터 새 파트너 이효정과 호흡을 맞춘 혼합복식, 정재성과 짝을 이룬 남자복식 모두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 베이징올림픽 메달 기대를 한껏 부풀린 것.“스타일을 많이 바꿨어요. 톱랭커들의 실력은 백지장 차이라 한 번 분석당하면 끝이거든요. 이번 유럽투어에서 가진 것을 다 보여 줬으니까 올림픽에선 또 다른 전략으로 나가야겠죠.”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외모로 배드민턴 선수로는 보기 드물게 오빠부대를 끌고 다니는 ‘꽃미남’ 이용대의 헤어스타일은 몇년 째 그대로다. 이유가 걸작이다.“너무 짧으면 자고 일어나면 ‘까치집’을 짓잖아요. 이 정도면 안 씻고 물 좀 묻힌 뒤 그냥 훈련에 나가도 그만이거든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내성적으로 보이는 첫 인상과는 많이 달랐다. 경기 전 긴장을 푸는 그만의 비법도 독특했다.“쉬겠다고 혼자 누워서 음악듣고 마인드컨트롤하고 그러면 괜히 몸만 굳어요. 동료들이랑 카드놀이 하면서 웃고 수다 떨고 장난치는 게 최고예요.”
이제 막 화려한 비상을 시작하는 이용대의 꿈이 궁금했다.“3회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는 것이 첫째 목표입니다. 금메달을 한 개라도 따야죠. 첫 출전한 베이징올림픽에서 따면 더 따고 싶은 욕심이 날 것 같은데요.”라며 활짝 웃었다.당당히 대한민국의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화순출신은 아니지만, 또 한명의 선수가 눈에 띄는데 탁구 여자 국가대표인 당예서다.
중국 출신의 당예서는 지난 2001년 대한항공의 훈련 파트너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2007년 한국으로 귀화를 선택했다. 중국 청소년 대표를 경험했지만 국가대표 문턱에서 번번히 좌절을 경험한 당예서는 중국의 반대를 극복하고 한국으로 귀화한 뒤 `스매싱` 하나로 버텨왔다.
탁구 하나를 바라보고 달려온 당예서는 베이징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6전 전승으로 `오성홍기`가 아닌 `태극기`를 가슴에 품었다. 꿈을 이룬 당예서는 지난 5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일본 오픈에서 `왕년의 탁구 여왕`이자 자신과 청소년대표 시절 한솥밥을 먹던 세계랭킹 4위 왕난(중국)을 4-3(11-5 11-7 10-12 11-8 8-11 7-11 11-2)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자신의 진가를 확인시켰다.
생애 첫 올림픽에서도 당예서는 당당했다. 스페인, 호주와의 예선 1, 2차전에서 단식 2번 주자로 나서 쉔 얀페이(스페인)과 상 스테타니 쉬(호주)에 각각 3-0으로 완승을 거뒀다. 예선 3차전 일본전 부터는 1번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실력은 변함이 없었다.
당예서는 일본의 `에이스` 후쿠하라 아이를 3-0으로 누르며 4강을 견인했다. 싱가포르와의 4강전에서 펑찬웨이에 0-3으로 패한 당예서는 종합 1-2로 뒤진 상황에서 4번째 단식 주자로 나와 왕유구를 3-0으로 꺾으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린 동시에 상처입은 자존심도 지켰다.
결승 진출에 실패한 당예서는 마지막 남은 동메달을 위해서 평정심을 유지했다. 동메달 결정전 플레이오프에서 가오준(미국)에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역전승을 거뒀고 동메달 결정전 승리까지 승승장구했다.
중국언론과 경기장을 가득 메운 중국 관중들의 야유를 꿋꿋히 견뎌낸 당예서는 그토록 원하던 올림픽 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진한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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