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2012년 임진년 새해가 온 대지의 생명체들에게 그 넉넉한 에너지를 골고루 나눠 줍니다.
우리 부녀는 생업이 그리 바쁘지 않고, 아이가 겨울방학이라서 아이와 약속하였으나 차일피 미뤄왔던 서유럽여행을 동탄으로 이사온지 불과 일주일만에 부랴부랴 서둘러서 파리행 KE901편에 몸을 실으므로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장장 15박 16일의 서유럽 패키지여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무려 13시간 끝에 파리 샤를 드골공항에 발을 내디뒨 우리 일행은 공항에 마중나온 현지가이드의 인솔하에 전용버스로 호텔에 가서 방을 배정받아 짐을 풀고 간단히 샤워를 마친 뒤 장시간 비행기 내에서 쪼그라졌던 몸을 펴고 침대 위에서 잠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시차가 7시간이라 새벽 두세시경에 눈을 뜨게 되는 밤이었습니다. 호텔의 식당에서 그 유명한 파리의 뻣뻣한 바켓트와 우유로 간단히 요기하고, 34명의 우리팀은 첫날 파리시내 투어에 나섰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첫번째로 개선문으로 향했습니다. 마침 파리는 출근시간이라 도로사정이 좋지는 않했지만 버스를 개선문 앞에 정차를 하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그 후 인증샷을 위해 잠시 일행들은 흩어졌습니다.
이 개선문은 오스테를리츠 전투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이 1806년 승리를 기념하여 건축가 샬그랭에게 명하여 30년 만에 완성된 높이 49.54m의 웅장한 건축물이나 애석하게도 본인인 나폴레옹은 이 문의 완성을 못보고 장례행렬의 주인공으로 이곳을 지나갔다고 합니다.

출근시의 개선문 전경

일년 내내 꺼지지 않는다고하는 무명용사 불꽃

루브르 박물관으로 통하는 유리 피라미드 매표소
우리 일행은 몽마르트르에서 내려온 후 세계 최대의 미술관이라고 프랑스인들이 자부하는 루브르박물관을 관람했습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벌써 관람객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이곳저곳에 가이드를 중심으로 단체관람객들이 모여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은 시간이 여의치 못한 관계로 박물관내에서도 가장 으뜸인 밀로의 비너스상과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날개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위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모나리자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날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포츠상품 나이키의 심벌이 여기 조각상의 날개선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합니다.
1863년 에게 해의 사모트라케 섬에서 발견한 헬레니즘의 조각의 대표적인 걸작품으로 뱃머리에 내려 앉으려는 승리의 여신 니케 혹은 나이키)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아쉽게도 발견 당시 두상은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밀로의 비너스
이 조각상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각상으로 1820년 에게 해의 밀로스의 아프로디테 신전 부근에서 한 농부가 밭갈이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높이 2m의 거상으로 관능적인 자태와 포즈로 보아 헬레니즘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관람당시 수 많은 관광객으로 옴짝달싹할 수 없어 좀 떨어진 데서 아이를 배경으로 사진에 담는 것으로 갈음해야 했습니다.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된 귀중한 보석으로 치장한 프랑스왕의 왕관


몽마르트르언덕
이 언덕으로 올라가는 경사가 높고 긴 계단은 그동안 운동을 했는가 않했는 가를 시험하는 코스같았습니다. 나는 나이 티를 않내려고 주변을 의식하며 가빠오는 숨을 새기면서 젖먹은 힘을 다하여 올라갔습니다. 주위에 거리의 화가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준다는 테르트르 광장으로 통하는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 봤습니다. 관광객의 애타는 마음을 모르는 양 비가 오락가락하여 거리에는 인파가 한산한 모습이었지만 곳곳에 기념품가게가 늘어서있고, 화랑도 간혹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나, 거리의 화가는 그 모습을 아쉽게도 찾아 볼 수 없는 일기 불순한 날이었습니다.

사크레쾨르 대사원
몽마르트르 언덕에 위풍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는 건축물인데 밖에서 감상하고 안으로 들어가 성당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이사원은 참고로 한국어로 예수성심성당이라고 여행안내서에는 나와 있었습니다.
이곳은 파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조망이 뛰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어 연중연일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흰 대리석의 외벽이 인상적인데 처마 밑에 악귀를 쫓는 사나운 동물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이 성당은 프러시아 전쟁의 패배와 파리 코뮌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파리 시민에게 정신적인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하여 1876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40여년 만인 1919년에 완공했다고 합니다.
에펠탑의 발광


에펠탑의 야경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파리하면 먼저 에펠탑을 머리에 떠오를 것입니다.
우리 일행은 오후에 탑의 내부에 설치된 승강기를 타고 탑의 제1전망대까지 올라가서 휴계소에서 세느강이 흐르는 파리를 조망하며 잠시 쉬었습니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제2, 3전망대로 올라가는 기대를 아쉽게도 접어야 했습니다.
이 탑은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하여 공모작으로 선정되어 건축되었다는데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설계하기도 한 구스타브 에펠의 설계로 만든 철골제탑으로 막상 밑에서 위를 쳐다보니 거기에 소요된 리벳트가 어마어마하게 사용되었으리라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기적으로 탑의 부식을 막기위하여 도장을 한다고 하는 데 그것도 손작업으로 한다고 하니 입이 딱 벌어질 밖에 없었습니다. 박람회 때 한시적으로 세우고 행사가 끝난 후에 철거하기로 계획하였는데 역사의 고도인 파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건축당시에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는 데 현재에 와서는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파리의 명물이 될 줄 그 누구도 예측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역사의 한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상젤리제 거리
저녘이 되어 일정에 쫓기던 우리는 이 거리에서 모처럼 여유있는 자유시간을 갖게 되어 이곳저곳을 쏘다녔습니다. 마트를 찾아가 보니 생수를 세일행사를 하길래 한팩 사서 여행이 마칠 때까지 요긴하게 마셨습니다. 그리고, 기념품가게 등으로 기웃기웃 거리며 자유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거리는 에투알 광장과 콩코르드 광장을 연결하는 직선대로인데 가로수가 아름답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조명이 아직도 남아 있는 데 경기가 좋지 않아 절전하기 위해서 가로수를 장식한 조명시설도 그전과는 달리 화려한 것이 아니고 심플하게 꾸몄다고 합니다.
세느강의 야경

니스의 해변가, 비수기인 겨울철이라 한산했지만 지중해의 옥빛은 나그네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우리 일행은 전용버스로 수시간에 걸쳐서 남프랑스로 향했습니다. 디종을 경유하여 뮐루즈에서 하루를 묶은 후 스위스의 알프산과 루째른에서 관광을 하고, 이탈리아의 북부도시 밀라노에서 야간에 두오모와 빅토리오 엠마누엘레2세갈러리를 보고 이튿날 지중해에서 유명한 휴양지 니스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하루에 스위스,이탈리아,프랑스를 넘나드는 코스였습니다.
서유럽여행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경우라고 가이드가 말합니다. 서유럽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국가 연합체인 것이 실감이 간 하루였습니다.

파도가 쉴새없이 몰려오는 니스 해변가

야자수가 울창한 시가지광경

니스투어를 마친 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포즈를 취해줬다.
니스에 내린 우리는 시내에 점심을 마땅히 해결할 방도가 없어서 여행사에서 지급한 몇 유로를 지불받아서 자유롭게 점심을 해결하라고 해서 일행 대부분이 맥도날드로 가서 햄버거로 공복을 채웠습니다. 다행히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은 맥도날드에서 쿠폰을 받아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유료로 볼일을 봐야 한다고 합니다. 여행 중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정인 것 같습니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해변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벤취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앉아 담소하고 있었습니다.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유럽 각지에서 몰려 온 피서객으로 해안과 시가지가 발 붙일 틈이 없다고 하는데 겨울이라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니스로 마지막으로 하여 서유럽의 첫번째 나라인 프랑스여행을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전용버스는 다시 속도를 내서 바로 옆에 있는 환상의 도시국가 모나코로 향하여 산간도로를 따라 신나게 달려갑니다.
첫댓글 파리는 낭만과 젊음과 예술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으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