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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Matrix
장르 스릴러 / 액션 / SF
국가 미국
감독 래리 워쇼스키 / 앤디 워쇼스키
출연 키아누 리브스 / 로렌스 피쉬번 / 캐리 앤 모스
각본 래리 워쇼스키
1. 줄거리
평범한 사무직 노동자 토마스 앤더슨은 밤이면 컴퓨터 해커 네오로 변신한다. 정체불명의 여인 트리니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형사로 보이는 스미스 요원에게 체포된 그는 모피스란 위험 인물을 붙잡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요구를 거절하자 스미스는 네오의 몸 속에 모종의 괴물을 삽입하고 풀어준다. 트리니티는 그를 찾아와 세상을 지배하는 인공 지능 매트릭스에 대항하는 저항군의 리더 모퍼스에게 안내한다. 모피스는 매트릭스가 사람들에게 1999년(실은 이미 까마득한 과거이다)을 살고 있다는 환상을 주입해 그들을 다스리고 있지만 결국은 모두가 매트릭스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뿐임을 알려준다. 모피스 일행에 가담한 네오는 힘겨운 자아 각성 과정에 들어간다. 생명 유지 장치에 몸을 맡긴 네오의 의식체는 매트릭스가 구축한 시뮬레이션 일상을 돌아다니며 토마스 앤더슨일 때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 기술을 프로그램받는다. 모피스는 네오가 저항군이 오래도록 기다려온 구원자라고 확신한다. 동료 사이퍼의 배신으로 스미스에게 붙잡힌 그는 저항군 본부이자 인류의 마지막 보루인 시온의 소재를 알아내려는 스미스에 의해 고초를 겪는다. 구조에 나선 트리니티와 네오는 우세한 적과 맞서 무사히 모피스를 구출한다. 매트릭스 세력이 포위망을 좁혀오는 가운데 스미스와 맞붙은 네오는 스미스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그러나 트리니티가 생명 유지 장치의 네오를 끌어안고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네오의 의식체는 기적처럼 소생한다. 디지틀 네오는 스미스를 끝장내고 무사히 육체로 돌아와 매트릭스 세력을 분쇄한다. 트리니티를 포옹하며 구세주로서의 숙명을 받아들인 그는 잠든 세상을 깨워 반격에 나설 준비를 한다.
2. 시냅시스
2199년. 인공 두뇌를 가진 컴퓨터(AI: Artificial Intelligence)가 지배하는 세계.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그들이 만들어낸 인공 자궁안에 갇혀 AI의 생명 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되고 AI에 의해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당한다. 내용은 1999년의 가상 현실. 인간들은 매트릭스의 프로그램에 따라 평생 1999년의 가상 현실을 살아간다. 프로그램 안에있는 동안 인간의 뇌는 AI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인간이 보고 느끼는 것들은 항상 그들의 검색 엔진에 노출되어 있고, 인간의 기억 또한 그들에 의해 입력되고 삭제된다. 가상 현실 속에서 진정한 현실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꿈에서 깨어난 자들, 그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매트릭스 밖....
가상 현실의 꿈에서 깨어난 유일한 인간들이 생존해 있는 곳. 그곳엔 AI에게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인간으로 알려진 모피스와 그와 더불어 AI에 맞서 싸우는 동료들이 있다. 그들은 광케이블을 통해 매트릭스에 침투하고 매트릭스 프로그램을 응용해 자신들의 뇌 세포에 각종 데이터를 입력한다. 그들의 당면 목표는 인류를 구원할 영웅을 찾아 내는 것. 그들은 AI통제 요원들의 삼엄한 검색망을 뚫고 매트릭스 안에 들어가 드디어 오랜동안 찾아 헤매던 "그"를 발견한다.
"그"는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 토머스 앤더슨.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지만, 밤마다 "네오"라는 이름으로 컴퓨터 해킹에 나서는 "그"는 모피스로부터 조심스레 매트릭스에 대한 단서를 얻는다. 알 수 없는 두려움속에서 실체를 추적해 나가는 네오. 어느날, 매혹적인 여인 트린의 안내로 또다른 숨겨진 세계 - 매트릭스 밖의 우주를 만나게 된 네오. 꿈에서 깨어나 AI에게 양육되고 있는 인간의 비참한 현실을 확인하고 매트릭스를 탈출한다.
한편, 모스의 동료 중 사이퍼는 끊임없는 기계들의 위혐과 공격으로 인한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매트릭스 안의 가상 현실로 들어가기 위해 동료들을 배신하다. 네오와 모피스 일행이 매트릭스 안에 잠입한 사이, 사이퍼는 광케이블을 교란시켜 그들이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올 출구를 봉쇄해 버리는데...
3. 천형(天刑)에 갇힌 인류, 궁극의 세계를 향하여(이지훈)
<매트릭스 The Matrix>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말한다. “빨간 약 먹을래, 파란 약 먹을래? 파란 약을 먹으면 지금까지 살던 세계에서 그냥 살면 되지만, 빨간 약을 먹으면 지금까지 살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 가야만 해.” 제작자 조엘 실버가 여기에 답하듯 말한다. “당신은 이 영화를 그저 액션영화로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액션이 반복될수록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공상 과학 매거진 ‘Sci Fi’의 <매트릭스 2 리로디드 The Matrix Reloaded> 특집 기사는 “매트릭스란 무엇인가?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하라”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기사가 <매트릭스 2 리로디드>를 읽는 단 하나의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more'. 모피어스 역의 로렌스 피시번은 “<매트릭스 2 리로디드>는 영화가 구상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바꿀 것이다. 이 영화는 향후 25년간 만들어질 모든 영화들보다 앞서 있다”라고 말한다. 트리니티 역의 캐리 앤 모스는 “<매트릭스 2 리로디드>를 통해 당신은 삶 자체가 바뀌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당신에게 그런 체험을 안겨주기 위해서….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라고 터미네이터처럼 말한다. 아무래도 <매트릭스>의 2편 격인 5월 개봉작 <매트릭스 2 리로디드>(이하 <리로디드>)와 3편 격이며 실은 <리로디드>와 한 묶음이라 할 수 있는 11월 개봉작 <매트릭스 레볼루션스>(이하 <레볼루션스>)를 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파란 약을 먹고 액션 영화로 즐기며 이 영화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굳게 믿는 방법과 빨간 약을 먹고 생각을 거듭하며 이 영화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심해 보는 방법. 두번째 방법에 감히 도전하기 위해선 과연 얼마만큼의 정신적 무장을 해야 할까. <매트릭스 2 리로디드>는 아직 기자 시사회조차 하지 않았다. 제작 과정은 온갖 유치한 방법이 동원되면서까지 베일에 가려졌고 앤디와 래리 워쇼스키 형제 감독은 모든 인터뷰를 사절해 왔다. 간교한 조엘 실버는 철학과 메시지를 가늠하기 힘든 10여 분 분량의 액션 시퀀스 모음만을 은근슬쩍 언론에 풀어 기대감만 잔뜩 부풀려 놨다. 과연 중력장을 무시하고 요술 공처럼 튕겨다니는 사이버 세계의 전사들에게서 우리는 얼마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크로바틱 너머의 대단한 철학을 발견하게 될 것인가.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 그것을 가늠하는 건 다만 추측일 뿐이고, 영화를 보는 두번째 방법은 영화만큼이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언론을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 조엘 실버는 “둘 다 말이 아주 없는 편인데…. 음, 래리는 지독한 철학 독서광이고 앤디는 공상 과학류에 파묻혀 사는 것 같다”며 빤히 보이는 잔머리까지 구사한다. 그래, 어쨌든 영화가 공개되고 나면 다시 얘기하자.
Technology - 회전 무제한, 극단의 속도
현재로선 온갖 경로로 입수되는 정보들을 조합해, 정말 <리로디드>의 특수 효과팀이 사용한 사상 초유의 알고리즘을 동원해서라도 그 윤곽을 더듬는 수밖에 없다. 일단 우리는 전편에 비해 <리로디드>가 어떤 ‘극단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조엘 실버는 동시에 제작이 진행된 <리로디드>와 <레볼루션스>의 대략 2천5백 컷에 달하는 특수 효과 장면들을 가리켜 “궁극의 기술”이 사용되었다고 자랑을 퍼부어댔지만 그것은 아마도 영화 전체의 성격에 해당될 것이다. 하긴 대개의 속편이란 1편의 어떤 요소들을 극단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에일리언 2>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리들리 스콧이 만든 1편의 외면적인 폭력성을 극단화시켰으며 <터미네이터 2>는 1편의 터미네이터가 보여준 집요함을 새로운 표현술로 강화시켰다. 그렇다면 <리로디드>가 극단화시킨 것은 무엇인가. 이야기의 주 무대가 되는 새로운 가상 공간과 인류 최후의 도시 시온의 크기가 뉴욕시의 10배, 100배나 된다는 호들갑인가? 1편에 등장해 네오를 쫓던 특수 요원 스미스가 자기 복제를 거쳐 100명으로 늘어난다는 용감무쌍한 설정? 아니면 <리로디드>와 <레볼루션스>의 제작비가 총 3억 달러에 달한다는 그 흔한 제작비 초과 달성의 위업? 아니다. <리로디드>가 극단화시키고 있는 것은 ‘속도’다.
이것은 <리로디드>가 구사한 새로운 기술과 관련이 있다. 1편에서 당신의 눈동자를 맥 빠지게 했던 놀라운 기술을 기억하는가? 옥상에 올라간 네오가 날아오는 총알을 뒤로 허리 꺾어 땅에 머리 대기 자세로 피하던 장면과 트리니티가 공중 부양 자세로 발차기를 날리던 장면. ‘불릿 타임 Bullet Time'이라 명명된 이 기술은 그린 매트로 둘러싸인 세트장의 정중앙에 배우를 위치시키고, 그 주변에 120대의 스틸 카메라를 배치해 동시에 촬영한 뒤 그것을 연속 편집하는 촬영술을 가리킨다. 그렇게 하면 정지해 있는 듯한 인물 주위를 카메라가 360도 회전하는 기묘한 효과가 나는 것이다. 물론 배경과 날아오는 총알은 장면 합성과 컴퓨터 그래픽을 거친다. 사실 ‘불릿 타임’은 카메라가 360도 안에 포함되는 공간을 이동하는 동안 시간을 정지시킨, 말하자면 극소화된 시간을 표현한 기술이다.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 매트릭스는 상식적인 시공간의 논리로부터 벗어나 있으니 불릿 타임이 가져온 정지된 시간의 효과는 이 몽상적인 세계의 가위 눌린 느림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했던 것이다.
불릿 타임은 1999년 <매트릭스>의 개봉 이후 온갖 CF와 영화에서 두루 사용되고 패러디되며 현대 영화의 상투구가 됐다. <리로디드>는 이 기술을 넘어선다. 그것이 발현되는 장면은 조엘 실버가 맛보기로 보여준 10여 분간의 액션 클립 속에 있다. 네오는 100명으로 늘어난 똑같은 스미스 요원에 맞서 말 그대로 일당백의 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이때 땅에 꽂은 막대기에 의지해 지면과 평행으로 회전하며 100명의 스미스에게 발차기를 날리는 장면의 속도는 눈이 뱅글뱅글 도는 수준을 넘어선다. 여기에 사용된 것이 ‘가상 촬영 Virtual Cinematoraphy’이라 불리는 기술이다. 1편에서도 특수 효과를 맡았던 존 게타의 특수 효과팀이 창안한 이 촬영술은 실사와 디지털 조작을 합성하는 최근 영화 촬영의 가장 앞선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우선 다섯 대의 900HD 카메라를 배우의 얼굴과 동작 주변에 배치한 뒤 실제의 이미지를 데이터로 담는다. 이렇게 모아진 데이터를 컴퓨터상의 가상 매트 위에서 다시 조합한 뒤 다섯 대의 카메라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앵글을 알고리즘을 통해 연산해낸다. 그러면 실사를 바탕으로 한 가상의 배우가 실사와 똑같은 이미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사와 다른 것이 있다면 배우를 화면상에 배치할 수 있는 모든 각도를 구현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특수 효과 담당자들이 그 가상의 캐릭터를 주변에 가상의 카메라를 설치해 초고속으로 회전시킨다. 존 게타가 밝힌 그 속도는 무려 시속 750km이다. 그렇게 하여 네오의 눈 돌아가는 멋진 발차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Action - 물리학 그 이상의 비상
1편이 자신이 속한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되는 네오의 불안한 선택과 주저함 끝의 용단을 다루고 있다면, <리로디드>는 부여받은 임무를 확실히 인식한 네오가 기계들과의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마도 극단화된 속도는 이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1편의 네오는 매트릭스의 비현실적인 시공간 법칙에서 균열된 틈새를 발견하고 시간을 정지시킨다. 그러나 <리로디드>의 네오는 그 법칙을 완전히 뛰어넘어 자신만의 새로운 속도의 법칙을 만들어낸다. 현재까지 추측할 수 있는 속도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급기야 네오는 시속 3천2백km로 하늘을 난다. 이것은 인류를 장악하고 있는 기계들의 매트릭스 공간을 유린하려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가상 촬영’이 전적으로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지한 것은 아니기에, 이와 같은 속도의 궁극성은 배우들의 피고름을 뽑아내고서야 가능했다. 네오와 100명의 스미스 요원들이 펼치는 결투는 무려 27일에 걸쳐 촬영되었으며, 아무리 액션 연기는 감정 연기와 달리 반복할수록 좋아진다고 하지만 키아누 리브스는 녹초가 됐다. 스턴트맨의 대역 연기보다는 주연 배우의 실제 연기를 원한 형제 감독의 뜻에 따라 이미 원화평 무술 감독이 지휘하는 6개월간의 지옥 훈련을 거친 뒤인데도 말이다. 그런 리브스를 지켜보아 온 로렌스 피시번은 “촬영장에선 자주 키아누 리브스의 머리 위에서 김이 나는 걸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특수 효과가 아니다. 메이킹 필름을 보면 그가 쉬거나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에 탄 모피어스와 트리니티가 요원들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는 간선도로 장면 역시 속도 무제한의 <리로디드> 세계를 떠받들고 있는 한 부분이다. 모피어스와 트리니티가 매트릭스를 빠져나올 광케이블을 향하는 이 장면은 캘리포니아주 알라메다 전 해군 기지 근처에 실제로 건설한 간선도로 위에서 촬영되었다. 제작진은 트리니티의 모터사이클로 하여금 시속 80~90km로 달리는 자동차들에 맞서 역주행하도록 지시했으며, 그 장면을 모터사이클에 근접한 차량과 멀리서 따라오는 차량, 그리고 간선도로 곳곳에 배치한 카메라를 통해 극한의 스피드로 잡아냈다. 뒤쪽에선 요원이 자동차 지붕을 콩콩 밟아 뭉개며 엄청난 속도로 모터사이클을 따라온다. 하지만 트리니티는 네오의 속도감에 버금간다. 그 속도의 목표는 매트릭스로부터의 탈출이다. 이것은 물리학의 법칙을 넘어서려는 영화 속 인간들의 자유 의지 중 가장 볼 만한 종류의 것이다. 물론 워쇼스키 형제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기 위해 250만 달러나 들여 이 도로를 건설해준 제작사의 무모함도 볼 만한 것이지만 말이다.
Drama - 시온의 저항과 매트릭스 탈출
스토리도 밝히지 않고 너무 엄한 얘기만 늘어놓은 것 같다. 어쩌면 가장 궁금해 할 이야기와 그 배경에 대해 떠들어보기로 하자. 1편의 마지막에서 네오는 기계들과 인간의 전쟁이 본격화될 것이며 자신이 그 전쟁에 앞장설 것임을 예고하고 승천한 바 있다. <리로디드>의 주 무대가 되는 곳은 지구 핵 근처에 자리 잡은 인류의 마지막 도시 시온이다.
시온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꿀벌통 같다는 것이 미술감독 오웬 패터슨의 설명이다. 급하게 경사가 진 둔덕 모양의 도시 곳곳에 꿀벌통의 육각 셀과 같은 집들이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 모양은 고대로부터 권력자들을 피해 도피한 소수 저항 민족들의 거주지 형태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다. 빨간 문을 가진 집들 앞에는 버섯을 키우는 정원이 있다. 버섯은 인간들의 식량이다. 도시 경계엔 기계들을 방어할 구조물들이 세워져 있고 파이프를 통해 운송 수단들이 이동하는 터미널이 있다. 시온의 인구는 대략 25만 명 정도이다.
업그레이드 된 기계들은 지상으로부터 시온으로 통하는 통로를 뚫어 진압군을 내려 보내고 시온의 저항군들은 이에 맞서 싸운다. 저항군의 리더는 당연히,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다. 여기에 모피어스의 옛 애인이며, 후버크래프트 로고스호의 함장인 ‘니오베’가 가세한다. 니오베 역을 맡은 배우는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다. 시온에 살고 있는 여인 ‘지’도 저항군에 합세하는데, 원래 이 역은 팝스타 알리야가 맡기로 되어 있었으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뒤 <알리>에 출연했던 여배우 노나 M. 가예가 대신 이어받았다. 모피어스가 지휘하는 인류 저항군은 기계에 맞서 싸우지만 아무래도 무리다. 모피어스는 매트릭스를 관장하는 기계들의 중앙 컴퓨터에 침투할 열쇠를 쥔 ‘키메이커’를 찾아내 매트릭스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게 유일한 희망임을 알게 된다. 키메이커를 찾는 과정을 돕는 것이 니오베다. 조금 전에 언급한 간선도로 장면은 키메이커를 모터사이클의 뒷자리에 태운 트리니티가 현실 세계로 빠져나올 전화 부스를 찾아 질주하는 장면이다.
키메이커는 색소 결핍증 환자들인 쌍둥이 형제 ‘트윈스’에게 감시당하고 있다. 트윈스는 <리로디드>에 새로 등장하는 캐릭터다. “사물의 물질적 속성을 없앨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가상현실에 제대로 어울리는 캐릭터다. 네오가 고층 빌딩의 옥상에서 바닥으로 내리꽂혀도 풍선처럼 튀어 오르는 매트릭스의 물리적 변형을 우리는 이미 1편에서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하의 여신의 이름을 딴 ‘페르세포네’ 역시 <리로디드>에 새로 합류한 캐릭터다. 네오를 유혹하는 페르세포네는 모니카 벨루치가 연기한다고 하니 실제로도 기계처럼 움직이는 목석 같은 키아누 리브스를 어떻게 요리할지 볼 만하겠다. 그러나 <리로디드>에선 1편에서 머뭇거렸던 네오와 트리니티의 사랑이 진하게 펼쳐진다니 그 결과야 예측할 수 있겠지만.
Philosophy - 초월자 네오의 자기 확신
<리로디드>가 지닌 철학적 깊이에 대해선 다들 할 말이 많은 모양이다. 심지어 특수 효과를 담당한 가장 기술적인 스탭 존 게타조차도 “<리로디드>의 심오한 철학과 영혼은 그 어떤 영화도 따라올 수 없다. 이 영화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특수 효과가 아니라 철학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떠버리 조엘 실버는 한술 더 떠 <리로디드>엔 인류 역사를 정리해 온 동서양의 모든 철학이 정교하게 조합돼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사실 그것은 1편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매트릭스>엔 인류가 간직한 다양한 상징 체계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솔직히 그런 상징들이 없었다면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 사회라는 설정은 너무나 상투적이고 진부한 것이었으며 놀라운 테크놀로지는 그저 볼 만한 스펙터클에 불과할 뿐이었다. 무엇보다 <매트릭스>는 기독교적인 상징들의 조합이었다.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한 토머스 앤더슨이라는 이름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Neo'라는 새 이름을 부여받는데, 이 이름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 ‘One'의 아나그램(철자를 뒤바꿔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수사학)이다. 저항군들의 함선 이름 ‘느부갓네살’은 구약 다니엘서에 나오는 바빌론의 왕으로 이상한 꿈을 꾸고 그 꿈의 의미를 좇는다. 인간들의 마지막 도시 ‘시온’은 세계의 끝에서 인간들이 살게 될 기독교적인 낙원이며, 모피어스는 세례 요한처럼 메시아를 기다리다 네오가 오자 그를 추앙한다. 저항군의 일원이었다가 네오가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있는 코드를 뽑아버리는 ‘사이퍼’는 성서의 유다처럼 네오를 배신하는데, 코드를 뽑기 전 “네오가 진정한 메시아라면 이 상황을 헤쳐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광야에서 예수가 마귀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메시아라면 스스로 구해 보라는 비난처럼. 네오는 한 번 죽었다가 트리니티의 키스로 부활하는데 ‘트리니티’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뜻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여기에 <매트릭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내세와 부처에 관한 불교적 세계관, 그리고 장자의 꿈을 결합시킨다. ‘모피어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꿈의 신이다. 가상 공간은 꿈속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장자의 세계와 흡사하다. 그러나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이 영화가 양자 역학이 말하는 여러 개의 ‘병행 우주’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자 역학은 후에 워쇼스키 형제 역시 가장 중요하게 참조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여러 층의 매트릭스와 현실 세계는 병행하고 있는 복수의 우주다. 여러 개의 우주엔 서로 다른 각각의 자아들이 살고 있다. 그 우주들을 넘나들며 네오는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 헤맨다. 이것이야말로 부여받은 단 하나의 자아가 아니라 이상적인 자아를 스스로 완성하려는 양자 역학의 인식론적 기반이며 또한 <매트릭스>가 꿈꾸는 인류 해방의 토대이기도 한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리로디드>의 정신적 바탕이기도 할 것이다. 의상 디자이너 킴 배럿은 “네오는 스스로를 믿는다. 그것은 종교적인 차원의 것이다”라고 말하고, 존 게타는 “네오로 하여금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힘을 갖게 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잠재력에 관한 자기 확신, 이것은 인류를 구원할 네오의 영적인 힘이며 앞에 설명한 초월적 액션의 철학인 것이다.
여기까지다. 현재로서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매트릭스>는 ‘<매트릭스>적’ ‘<매트릭스> 스타일’ ‘<매트릭스> 효과’라는 고유명사를 낳은 문화적 현상이었다. 이 영화는 세기말을 목전에 둔 사람들의 인식에 영화 한 편이 줄 수 있는 인식의 파장 그 이상의 것을 부여했으며 4년 동안 식지 않는 신화적 열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제작진은 비밀리에 두 편의 속편을 만들고 있었으며 이제 그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Sci Fi’ 매거진이 키워드로 내건 ‘more’, 도대체 무엇이 더 담겨 있는지 궁금하다.
4. <매트릭스>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
Jean Baudrillard, 『Simulacres et Simulation』중에서
Q : 워쇼스키 형제는 어떻게 이런 엄청난 스토리를 생각해냈을까요? 영화의 제작 배경에 대해 간단히 알려주세요.
말틴 :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이런 '기발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혹은 '얼마나 훌륭히' 영화화 해내었냐 하는 것입니다. '매트릭스'와 유사한 소재는 이전에도 많은 영화들에서 다루어졌습니다. <토탈 리콜>(왜 아니겠습니까! 워쇼스키 형제는 필립 K. 딕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야곱의 사다리>, <오픈 유어 아이즈> 등등. <매트릭스>의 공개 직전에 만들어진 <다크 시티> 역시 유사한 주제를 다룬 영화였습니다. (<다크 시티>에서 쓰였던 세트 중 하나가 <매트릭스>에서 그대로 쓰인 거 아시나요? 어떤 것인지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전의 어떤 영화도 이 영화처럼 기발한 방법으로 이런 소재를 다루진 못했으며, 이 영화와 같은 뛰어난 완성도와 재미를 주지는 못했다는 점이 많은 관객들로 하여금 '와 정말로 놀랍고 창의적인 스토리이다'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단기 기억 상실증'을 소재로 삼은 영화는 <메멘토>가 처음이 아니었음에도 그 정도의 성과를 거둔 영화가 없었기에 사람들에게는 (그런 영화를 전에 보았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단기 기억 상실증'하면 이 영화만 기억되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요.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매트릭스>의 스토리는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처럼 워쇼스키 형제가 오랜 시간 영화화를 꿈꾸며 다듬어왔던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느 순간 '번쩍'하고 떠오른 아이디어였지요. 그리고, 영화의 분위기가 말해주듯 이 아이디어는 사실 만화책을 위한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들이 이 아이디어의 '영화화'를 '꿈'꾸기 시작했을 때, 그때까지 그들의 인생과 사상을 지배하고 있던 모든 지식과 관심사들이 이 아이디어 속에 녹아들어 하나로 뭉치게 되었습니다. 저패니메이션, 홍콩 무술 영화들, 오우삼, 필립 K. 딕의 소설, 그리고 장 보들리야르에서 장자에 이르는 동서양 철학까지. 영화의 초반부에 나오는 네오의 방에 장 보들리야르의 저서 '시뮬라크라와 시뮬라시옹'이 있는 것을 보고 저는 처음에 이렇게 생각했지요. '만화책과 저패니메이션, 홍콩 영화에 미쳐서 살고 있던 신세대 감독들이 저걸 끝까지 읽어보기나 했을까?' 하지만 이들의 뒷조사를 해본 결과는 무척 흥미로왔습니다. 그들은 이 골치 아픈 책을 마치 만화책 읽듯이 즐겨 읽었답니다! 심지어 네오의 역을 맡았던 키애누 리브스에게도 시나리오를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으라고 심각하게 권고했을 정도입니다. 참 재미있는 친구들이지요. 이렇게 해서 비교적 빠른 시간내에 만들어진 스토리는 모두 제대로 영화화하려면 최소 3부작 정도는 되어야 할 정도로 방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영화화 된<매트릭스>분의 스크립트를 제작자에게 보여주고 영화화를 의뢰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거절되었습니다. - 관객이 받아들이기에 너무 복잡한 내용이라는 것과 엄청난 제작비가 든다는 것 - 하지만 이 기간동안 그들은 두 가지의 커다란 수확을 거둡니다. 하나는 이들이 직접 각본을 써 주었던 영화 <어쌔신>에서의 경험입니다. '거장'이라 부르기는 약간 미흡한 면이 있습니다만, 적어도 훌륭한 테크니션임에는 틀림없는 리차드 도너에 의해 연출된 이 영화에는 오우삼의 이른 바 쌍권총 슬로우 액션에 헐리우드식의 멋진 편집과 촬영기법을 결합한 황홀한 액션 장면이 나옵니다. 워쇼스키는 이 장면들이 연출되는 과정을 직접 보고 경험했으며, 이 경험은 물론 <매트릭스>를 만드는데 큰 힘이 되었지요. 두 번째는 물론 이들이 감독으로 데뷔한 저예산 영화 <바운드>의 비평적 성공입니다.
Q : 아주 원초적인 질문입니다. 매트릭스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생겨났죠?
말틴 : 영화를 여러 번 열심히 보신 분들이라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당연히 줄줄 꿰고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을 위하여 영화에서 자세히 설명되지 않은 것들을 약간 포함하여 연대기 순으로 간단하게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21세기초, 인류는 드디어 AI(인공지능)를 탄생시킵니다. 인류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AI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며, '생존 본능'에 따라 스스로 많은 '기계족'들을 탄생시키게 됩니다.
2. AI의 세력 확장은 은밀하게, 그러나 급속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자신들의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인류와 AI 사이에 오로지 생존을 위한 '전쟁'이 발발합니다.
3. 인간들은 당시 AI가 전력원으로 의지하고 있던 태양 빛을 인공적으로 차단함으로써 기계족들의 작동을 중단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AI는 이미 전 인류를 압도할만한 세력으로 커져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대체 동력원을 찾아내게 됩니다. 바로 그것은 자신을 탄생시켰으며, 자신을 다시 파괴시키려고 하던 장본인인 인간들이죠.
4. AI는 태양빛의 대체 전력원으로 많은 다른 것들을 생각해 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AI가 전력원으로써는 그다지 효율적이라고 볼 수 없는 인간을 굳이 선택한 이유는 인간이 오랫동안 기계를 노예로 삼아왔듯 그들을 자신의 완전한 노예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인간이 오랫동안 기계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며 기계와 더불어 '공존'했듯, AI도 인간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유지하며 인간과 더불어 '공존'하게 되는 묘한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5. AI에 의해 완전히 유린된 인간들은 이제 '고치' 속에 갇힌 채 기계들의 전력원이 되고 맙니다. 인간들의 죽은 시체는 액화되어 살아 있는 다른 인간들의 영양분으로 '재활용'됩니다.
6. 이제 인간들은 더 이상 '태어'나지 못하고 기계족들에 의해 '재배' 될 뿐입니다. 이 질서를 유지함에 있어 AI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들이 '깨어나서'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계속 '잠재우는' 것이었죠.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매트릭스'입니다.
7. 첫 번째 매트릭스는 지나치게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인간 사회가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결점들이 전혀 없었던 탓이 인간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의심하게 됩니다. 결국 첫 번째 매트릭스는 실패로 끝나고, 기계족들의 '수확물들'은 종말을 고하고 맙니다.
8. AI는 인류가 AI를 탄생시키기 직전의 상황, 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하여 인류가 자만심으로 가득 차있던 20세기 후반을 배경으로 하여 새로운 매트릭스를 탄생시킵니다. 이 매트릭스는 이전 버전과는 달리 인간 세상의 법칙을 그대로 반영한 '불완전(?)'한 것으로써, 이때서야 비로소 인간들은 가상 세계를 '현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9. 인간들은 이 가상공간 -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벽'한 - 을 이제 절대로 거역할 수 없게 됩니다. 가끔씩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잠에서 깨어나는 이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깨어나는 즉시 기계족들의 '전력원'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죄로 매트릭스와의 연결에서 제외됨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10. 매트릭스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 속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매트릭스를 거역하고 변형할 수 있는 '그(The one)'가 탄생합니다. 그는 여러 사람들을 깨운 뒤 자신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가르쳐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반란군'의 탄생이지요.
11. 인간 반란군들은 기계족들의 눈을 피해 땅 속 깊은 곳에 그들만의 도시 '자이온(Zion)'을 건설하여 세력을 키워 나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인간의 도시 역시 '컴퓨터'가 있어야만 제대로 운영되는 도시지요. 지구의 중심에서 가까운 곳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 이곳에서는 '지열'이 주된 에너지원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자이온에서는 임무를 띤 여러 척의 호버크래프트들을 현실 세계의 여기 저기에 침투시킵니다. 그 중 하나가 모르피어스 일행이 탄 '네버캐네자'지요.
12. 인간 반란군들은 가상 세계를 부정하고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이들을 하나 둘씩 깨워 자신들의 편으로 포섭하게 됩니다. 이들의 중심에서 오랫동안 충실한 조언자 역을 해왔던 사람은 특별한 지각 능력을 가진 오라클(예언자)이었죠. 그녀는 오래 전 숨을 거두었던 '그(The one)'가 돌아올 것을 예언하게 되고, 모르피어스와 동료들은 오랫동안 '그'를 찾게 됩니다. 매트릭스의 시간으로 1999년, 실제 시간으로 2199년 무렵, 그들은 드디어 '그'라고 여겨지는 사람을 찾아내고 그와의 접촉에 성공합니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이러한 기본적인 설정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재미있는 장치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Q : 어떤 것들이 있나요?
말틴 : 우선 주인공들의 이름이죠. 사실 전 끼워 맞추기식의 이런 해석을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만, 이 영화의 이름들은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나 재미있어서 무시할 수가 없더군요. 주인공의 이름 'neo'가 희랍어로 'new'를 뜻하는 말이라는 것은 다들 아실테고, 이것이 'one'의 애너그램이라는 사실과 '예수'의 암시라는 것, 'Morpheus'의 의미도 영화 공개시부터 여기 저기서 수없이 다루어진 너무나 진부한 것들이라 여기선 그냥 넘어가도록 하죠. 하지만 이런 것은 생각해보셨나요?
1. 주인공 네오의 매트릭스 속의 이름인 '토마스 앤더슨(Thomas Anderson)'의 의미입니다. Anderson은 외형적으로 앤더스의 아들(Son of Anders)를 뜻합니다만, 더 깊이 들어가면 앤더스(Anders)는 앤드류(Andrew)를 뜻하기도 하고, 이것은 'man'을 뜻합니다. 결국 'anderson'은 '사람의 아들'(Son of man)이라는 묘한 의미를 띄게 되죠. (기계의 아들이 아닌? 역시 '예수'에 관련된 암시일까요?) 더 재미있는 것은 'Thomas'입니다. 이것은 '쌍둥이(twin)'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그럼 토마스 앤더슨은? 즉, 구원자는 부활을 거친 두 개의 삶을 산다는 뜻일까요?
2. '배신자' 사이퍼(Cypher)의 이름이 '루시퍼(Lucifer)'의 변형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3. 매트릭스 안에서 네오가 거주하는 방은 101호입니다. 네오(neo)가 'one'의 애너그램임을 생각하면 뭔가 의미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죠. 101은 바로 컴퓨터의 이진법에서 쓰이는 두 개의 숫자 0과 1의 조합이라는 사실. 즉 네오는 컴퓨터가 창조한 매트릭스 내에서 조차 '컴퓨터의 세계'에 갖혀서 살고 있었던 셈입니다. 또 흥미로운 사실은, 영화 첫 장면에서 트리니티가 갖혀있던 호텔 방의 번호가 303호였다는 사실. 트리니티(Trinity)가 '3'을 뜻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역시 흥미롭지요.
4. 모르피어스가 지휘하는 호버크레프트 네버캐네자에는 'Mark Ⅲ. No. 11'이라는 표식이 붙어있습니다. 성서가 있으신 분은 Mark 3:11(마가복음 3장 11절)에 어떤 말이 있는지를 찾아보세요. 역시 'neo'와 연관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5. 오라클의 등장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흐르던 곡은 듀크 앨링턴의 'I'm beginning to see the light'입니다. 역시 암시성이 강한 제목이지요? - 그나저나 걱정입니다. 오라클의 역을 맡았던 배우 글로리아 포스터가 갑자기 사망함에 따라 그녀가 출연하기로 예정되어있던 후속작(특히 3편에 해당하는 Matrix revolution)의 내용이 다소 바뀌게 되었는데요. 이야기 구조상 그녀의 활약은 후속편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확실시되었기에 감독들이 어떤 식으로 그녀의 공백을 채워 나갈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결과가 좋으면 다행이지만....아무래도 뭔가 허전하겠지요?
6. 영화속에서 '매트릭스'로 투영되는 공간은 '가상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촬영감독 빌 포프에 의해 의도적으로 '녹색 톤'으로 촬영되었습니다. 이것은 워쇼스키 형제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한 것인데요, 극장에서 볼 때는 그렇게 효과적으로 보이던 색감이 DVD로 보니 영 '아니올시다'더군요. - 실제로 DVD 출시시 많은 사람들이 화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며 불평을 해대곤 했습니다. -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보아야 제 맛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경험이었지요. '가상 공간'인 매트릭스 안의 사람들이나 사물이 사람의 마음속에 투영된 이미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영화 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반사'이미지가 사용됩니다. 모르피어스의 안경에 비친 네오의 모습, 영화속에 수없이 등장하는 거울에 반사되는 사람들, 유리창이 빽빽히 박힌 건물에 반사되어 비치는 헬리콥터의 모습 등등..
7. 가상공간 '매트릭스'안에서는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납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죠. 영화 초반부 네오가 요원들에게 붙잡혀 갈 때 트리니티가 그 광경을 오토바이의 거울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장면이 뭔가 '이상하다'라고 느끼신 분이 과연 몇 분이나 될까요? 거울 속의 사건은 '슬로우 모션'으로 일어나고 있는 반면 거울 밖의 사건은 정상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현상들이 매트릭스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기를 거부합니다. 이것은 영화 '매트릭스'가 아닌 우리들이 사는 실제 세상에서 사람들이 도저히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실들을 적당히 합리화하고 넘어가려는 습성과 너무나 흡사해 소름이 끼치기도 합니다!
Q : 요원(Agent)들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설명해 주세요.
말틴 : 요원들은 매트릭스 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AI에 의해 탄생된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램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닌 AI안의 또 다른 AI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1. 이들은 한 눈에 보아도 '정부 요원'임을 알 수 있는 복장(검은 옷, 넥타이와 선글라스)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항상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매트릭스 안의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세 명의 이들 요원 중 우두머리는 아시다 시피 '스미스' 요원입니다.
2. 이들은 - 정확히 말해 이 프로그램은 - 매트릭스 안에 구속되어 있는 인간들의 몸 - 이것도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잉여 자기 이미지(Residual self-image)' -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습니다.
3. 이들은 매트릭스 안에서는 죽일 수가 없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주인공들이 힘들게 이들을 향해 권총을 쏘느냐고요? 그것은 이들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들이 기생하고 있는 '몸'을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일단 그 몸이 죽고 나면 이들은 다른 살아있는 몸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4. 이들은 매트릭스 안에서 인간들이 상상하기 힘든 스피드와 괴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인간들의 몸 사이를 옮겨 다니고 괴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가급적 인간에게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의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들은 트리니티와 같은 특수범(?)을 잡을 때와 같은 부득이한 경우에만 그 위력을 발휘하곤 합니다.
5. 이들은 항상 권총을 가지고 다닙니다. 왜 기관총이나 M-16이 아니냐고요? 말씀드렸다시피 '정부 요원'으로써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광선총을 안겨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매트릭스 속의 시대는 1999년이니 그럴 수는 없잖아요?
6. 재미있는 것은 이들은 마치 컴퓨터 게임의 캐릭터와 같은 특성을 지녔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싸움 도중 썬글라스가 부러지기도 하고 권총의 총알이 바닥나기도 합니다만, 다른 몸으로 이동하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복귀합니다. 마치 게임에서 주인공 캐릭터가 죽고 나서 다시 등장할 때에는 본래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아이템들을 모두 가지고 다시 등장하는 것과 같지요. 이들이 컴퓨터가 탄생시킨 캐릭터임을 생각한다면 정말 재미있는 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7. 그럼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 또 하나. 요원은 '네오'의 몸 속으로 침입할 수 없는가? 물론 가능합니다. 모르피어스가 설명하듯, 매트릭스 내의 모든 사람들은 요원이 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가 있습니다. 영화 초반부 차 안에서 스위치가 네오에게 총을 겨눈 것도 바로 이런 위험성 때문이었습니다. 요원이 네오의 몸 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그를 통해 '모르피어스'를 찾기 위함이었지요. 매트릭스의 구속에서 벗어난 네오는 네버캐네자의 다른 사람들처럼 더 이상 기계에 연결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요원이 침입할 수가 없었죠.
Q : 많은 분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부분입니다. 네버캐네자(이하 줄여서 ‘넵’으로 표기)의 승무원들은 일반 전화를 통해 매트릭스의 내부로 출입합니다. 왜 휴대폰이 아닌 일반전화여야 할까요?
말틴 : 감독들과의 인터뷰 및 각종 기사들의 내용들을 토대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유추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모르피어스 일행들이 들고 다니는 휴대폰은 그들이 매트릭스와 현실 세계를 연결해주는 연결 통로로서 사용하고 있는 일반 전화(유선 전화)와는 근본적으로 개념이 틀린 것입니다. 일반 전화는 매트릭스의 일부분인 반면, 일행들이 소지하고 있는 휴대폰은 요원들의 권총처럼 이들이 매트릭스 안에 들어갈 때 자동적으로 지급되는 일종의 옵션과 같은 것이지요. 그들이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이것을 통해 현실 세계(‘넵’ 안의)의 오퍼레이터와 교신을 하기 위해서죠. 자, 그럼 그들은 왜 휴대폰이 아닌 일반전화를 통해서만 매트릭스의 세계로 들락거릴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매트릭스가 실제의 인간 사회의 ‘완벽한’ 반영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현실 세계의 휴대폰과 일반 전화는 기본적으로 데이터의 전송량과 속도면에서 대단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 물론 일반 전화가 훨씬 높죠. 매트릭스 안의 일반 전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르피어스 일행은 바로 이 특징을 이용하는 것이죠. 즉 그들은 전송률이 매우 높은 매트릭스 내의 일반 회선 프로그램을 해킹하여 이 루트를 통해 자신들의 의식을 주입시키거나 빼내는 것이지요. 단, 그들이 출입구로 사용하는 ‘하드 라인’은 아무데나 널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해킹작업은 대단히 까다로운 것이어서, 그들은 몇 군데의 하드 라인을 정해 놓고 그곳을 통해서만 출입을 하는 것이지요. 그 대표적인 곳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호텔의 303호실의 유선 전화입니다. 물론 AI는 끊임없이 이들이 사용하는 하드 라인을 찾아 끊어버리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영화 속에서 줄기차게 등장하는 노키아 휴대폰은 블록버스터 영화 속의 PPL 광고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해줍니다. 매트릭스가 공개된 후 도대체 네오가 쓰던 휴대폰이 어떤 것이냐는 문의가 전 세계적으로 빗발쳤다고 합니다!
Q : 네오가 지각하여 직장 상사에게 꾸중을 듣는 장면에서 유리창을 닦고 있던 두 사람이 감독들이라던데 맞습니까?
말틴 :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육안으로 보아도 그 두 사람은 감독들하고는 체격이 틀리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상하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알고 있더군요. 심지어 IMDB에도 그 두 사람이 감독이라고 나와있어요) 이 두 사람은 영화 속의 스턴트 액션을 담당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까메오로 이 장면에 출연한 것이 아닙니다. 이 장면은 스튜디오의 세트에서 촬영된 것이 아니라 호주에 있는 실제 고층 빌딩 내부에서 촬영된 것입니다. 고층 빌딩의 창문을 밖에서 닦는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역일 수밖에 없었기에 이들을 특별히 고용한 것이지요. 이 영화의 대부분의 장면은 호주의 시드니에서 촬영되었는데, 관객들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제작진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요.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죠.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고층 건물 안에서는 커다란 창문을 통해 시드니의 명물인 오페라 하우스가 훤히 보였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기 위해 영화 사상 최대의 배경 그림 막을 건물 밖에 세워서 창 밖에 비치는 광경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우리가 영화 속에서 본 ‘매트릭스 내부의 광경’은 이렇게 완벽하게 조작된 것이랍니다. 그러나 제작진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몇 장면들 때문에 우리는 쉽게 영화 속의 배경이 미국이 아닌 호주임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 유명한 로비 총격씬 다음에 네오와 트리니티가 타게 되는 엘리베이터 버튼 앞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써있습니다. (그것도 클로즈 업으로) “DO NOT OPERATE ‘LIFT’ IN CASE OF FIRE" 제작진은 미쳐 ‘LIFT'(호주식의 엘리베이터) 라는 글자를 ’elevator'로 바꾸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나 봐요. 하지만 미국 관객들이 보기에 이것은 분명히 어색한 것이지요. 이 영화가 대부분 호주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실은 특히 스미스 요원 역을 맡았던 휴고 위빙에게 반가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젊은 시절을 호주에서 보낸 그에게 이곳은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죠. 헐리우드의 다른 영화였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던 그의 호주식 억양은 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그의 강점이 되었습니다. 무뚝뚝하고 높낮이가 일정한 기계 같은 차가운 말투에 독특한 그의 호주식 억양까지 결합하니 컴퓨터가 창조해 낸 살인 기계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목소리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Q : 요원들과 관련하여 역시 많은 분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점입니다. 초반부의 트리니티가 있던 303호 방으로 경찰들이 잠입하는 장면에서 왜 요원들이 경찰들의 몸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말틴 : 그 해답은 스미스 요원의 대사 속에 있습니다. “당신 부하들은 이미 죽었소! your men are already dead!" 그의 말대로 요원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303호 방으로 투입된 경찰들이 트리니티에게 당한 후였습니다. 영화는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시간의 순서를 무시하고 이 두 장면으로 교차 편집하여 보여준 것뿐이지요.
Q : 역시 많은 분들이 질문하신 부분입니다. 네오가 ‘고치’에서 깨어나서는 장면에서 기계족의 정찰 로봇(일명 ‘스퀴디’)은 왜 네오를 죽이지 않았을까요?
말틴 :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가끔 네오처럼 매트릭스에서 깨어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끔찍한 현실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무시무시한 공포감에 휩싸이게 되지요. 매트릭스라는 근사한 가상 세계를 거부한 이들은 이제 기계족들에게는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네오처럼 매트릭스와의 연결을 강제로 해제당하고 하수관(정확히는 폐수관)을 통해 ‘몸을 액화시키는’ 기계로 보내지게 되지요. 이들은 평생 온 몸의 근육을 써보지 못했기 때문에 깨어나는 순간부터 몸이 액화되어 죽음을 당할 때까지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스퀴디가 굳이 이들의 목을 자를 필요는 없었던 것이지요. 다만 네오의 경우는 이전 장면에서 먹은 빨간 약(위치 추척 프로그램)덕분에 모르피어스 일행에 의해 구조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것 혹시 생각해 보셨나요? 매트릭스에 연결되어 있는 인간들은 대부분 실제의 자기의 모습을 (평생동안)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럼 매트릭스 안에 투영되는 외모는 그들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기계가 임으로 만든 모습일까요? 매트릭스의 ‘이론’에 따르면 그렇지 않습니다. 매트릭스 속의 외모는 인간 자신의 실제 모습의 ‘잠재적’ 발현이기 때문에 실제의 외모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이지요. 헌데 많은 분들이 간과하신 재미있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잠에서 막 깨어난 현실세계의 네오의 귀에 처음부터 귀걸이용 구멍이 뚫려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
Q : 아마도 위의 질문과 관련된 부분인 듯 합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트리니티와 사이퍼가 통화를 합니다. 그때 사이퍼는 ‘우리는 그를 죽일지도 몰라(We're gonna kill him)'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말틴 : 그 해답은 후에 모르피어스의 설명을 통해 제시됩니다. 인간이 매트릭스에서 깨어나 처음 현실 세계를 접하는 충격이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기 때문에 일정한 나이가 지난 사람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결국, 가능성이 있는 인간들을 매트릭스에서 해방시키는 일 자체가 인간 반란군들에게는 큰 모험인 셈이지요. 여기에 덧붙여, 이 대화에서 우리는 사이퍼가 네오가 ‘그 - 구원자’라는 것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도 읽을 수 있지요. 네오가 정말 ‘그’라면 매트릭스에서 해방되었다고 해서 죽을 리는 없을테니까요.
Q : 다시 ‘하드 라인’과 관련된 질문입니다. 사이퍼가 스미스 요원과 만나 음모를 꾸미는 장면입니다. 당시 오퍼레이터가 없었던 것은 분명한데, 사이퍼는 어떻게 매트릭스 안으로 잠입했으며, 또한 어떻게 빠져 나왔을까요?
말틴 : 여기에 대한 해답은 그 바로 전 장면에 있습니다. 무언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던 사이퍼의 등뒤로 네오가 다가와 말을 걸자 사이퍼는 깜짝 놀라며 자신의 앞에 있던 모니터를 황급히 꺼버립니다. 즉, 그때 그는 매트릭스 안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말하자면 ‘자동 의식 전송 시스템’을 가동시키고 있던 것이었지요. 이들에게 오퍼레이터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시기에 AI의 눈을 피해 하드 라인을 통해 그들을 현실 세계로 다시 불러오기 위해서입니다. 사이퍼의 경우는 스미스 요원과 만나기 위해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기 때문에 AI의 감시망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드 라인을 통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의식을 다시 현실 세계로 다운 로드 시킬 수 있도록 일종의 ‘타이밍’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던 것이지요.
Q : 영화 속 설정에 따르면 ‘자이온’은 지구의 중심부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인간들의 도시입니다. 그런 곳에 과연 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요?
말틴 : 이 설정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비과학적인 것이지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지구 중심부 가까운 곳’이 어느 정도 깊이를 말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맨틀 가까운 부분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지요. 그렇다면 그곳은 엄청난 고열과 압력이 있는 부분인데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곳에 인간의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영화 속의 현실 세계는 지금부터 고작 200여년 후의 미래일 뿐입니다. 이 기간동안 지구의 내부가 냉각되어 버렸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지요. 워쇼스키 형제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무모한 설정을 했을까요? 두 편의 매트릭스 후속편에는 ‘자이온’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 제공된다고 합니다. 과연 이 말도 안되는(!) 곳이 어떤 식으로 그려질 지 관심을 지켜보도록 하지요.
Q : 이 영화 속에 나온 총알들은 진짜 총알일까요? 슬로우 모션이나 클로즈 업 화면 때 유심히 보면 마치 진짜 총알처럼 보이던데요.
말틴 :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실제 총알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총이 발사될 때 총구에서 번쩍거리는 효과를 내기 위해 실제 공포탄이나 예광탄이 쓰이기도 했는데, 현재 헐리우드에서는 배우들의 안전을 위해 이런 실탄의 사용이 전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 결정적 계기는 93년 <크로우>를 찍던 브랜던 리가 총기 사고로 사망한 사건이었지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 탄피가 쏟아지는 장면은 너무나 리얼하여 실제 총격장면을 방불케 할 정도입니다. 특히 탄피 떨어지는 소리는 정말 예술의 경지지요. 심지어 예전 제가 AV 시스템의 성능을 테스트할 때는 이 영화 DVD의 탄피 떨어지는 소리를 기준으로 기계들의 성능을 비교한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Q : 이 영화 속의 ‘쿵푸’ 장면은 어떻게 보셨나요?
말틴 : 홍콩 영화 속의 현란한 쿵푸 액션은 예로부터 헐리우드의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간 많은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서 이러한 홍콩식 쿵푸 액션을 흉내내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만, 대부분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요. 아무래도 ‘전통’이라는 것은 한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뿐만 아니라 이상하게도 홍콩의 무술 스타들을 직접 캐스팅하여 만든 헐리우드 액션 영화들 속에서도 홍콩 영화에서 느껴지는 스피디한 박력은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절대로 어색한 쿵푸 장면을 보여주어서는 안된다는 워쇼스키 형제의 쿵푸 액션에 대한 집착과 원화평 무술 감독의 비지땀으로 인해 이 영화의 쿵푸 장면은 이전의 엉성한 홍콩 영화 모방 헐리우드 액션 영화들의 그것과 비교하면 많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배우들과 함께 근 4개월간 고생을 한 무술 감독 원화평에 대한 경의의 표시인지, 네오가 쿵푸를 학습하는 장면에서는 원화평 감독이 낳은 초기 걸작 ‘취권’에서의 성룡의 동작이 모니터를 통해 비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4개월의 지옥 훈련(?)만으로 이소룡이나 성룡이 만들어 질 수는 없는 법이지요. (특히 홍콩 영화를 많이 접하는 우리나라 관객들이 보기에는 어떻게 하더라도 이 서양스타들의 홍콩 무술 장면은 어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독들은 홍콩영화가 절대 따라 올 수 없는 헐리우드의 화려한 편집 기술과 특수 촬영에 승부를 걸었습니다. 주인공들의 액션 장면에 불릿-타임을 결합하니 이전의 헐리우드나 홍콩 영화에서 모두 볼 수 없었던 기가 막힌 장면이 연출되어 관객들을 환호하게 만든 것이지요. 이 영화의 액션장면 및 구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영화라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영화를 떠올리시겠습니까? 홍콩영화들을 제외하고 이 영화의 액션 쇼트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 영화가 한편 있습니다. 바로 <모탈 컴뱃>입니다. 무슨 말인지는 <모탈 컴뱃>의 액션 씬의 구성과 이 영화의 그것을 비교해 보신 분들은 바로 아실겁니다.
Q : 불릿-타임이 무엇입니까?
말틴 : 여기에 대해선 아마도 할 말이 많을 듯 합니다.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To be continued...
5. 가상현실과 시뮬레이션, 그리고 매트릭스(2003.11.24.월요일, 딴지 편집국)
<매트릭스>의 마지막 시리즈 레볼류션편이 개봉되면서 또다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 영화가 일종의 사회현상으로서 인식될 정도로 붐을 일으키게 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핵심은 롤러코스터 식의 재미만을 추구했던 기존의 미국식 영화 주류에서 "철학적 주제"이라는 그동안 상업영화에서 금기시되오다시피 했던 요소를 내세워서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로 인식되는데 성공한 때문이다. 이는 기존의 많은 오로지 재미 많을 추구하던 상업영화와는 전혀 다른, 수준 높은 영화로서 칭송받으며 매니아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많은 설정들 중에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가상현실에 관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뇌에 인위적으로 자극을 전달하여 새로운 가상현실을 만들어낸다는 설정은 당연히 믿어왔던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갖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과 가짜로 만들어진 가상현실과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가상현실과 근본적으로 다른 실제의 세계는 무엇으로 규정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해답에 연결되어 있다. 스페이스 오딧세이, 공각기동대 등의 여러 SF의 걸작들은 여러가지 다른 방식에 의해 이러한 질문에 나름대로의 방향과 관점을 제시하고 영화화함으로써 영화사에 남는 걸작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매트릭스>에 대한 평은 양 극단으로 엇갈려 환호와 혹평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매트릭스>는 이러한 걸작 대열에 오를만한 영화인가, 아니면 화려한 화면과 액션으로 포장된 또하나의 롤러코스터 영화일 뿐인가? 이 영화는 철학으로 어설프게 포장된 알맹이 없는 영화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철학을 이야기하는 영화인가?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그 전에 먼저 가상현실과 뇌, 인간, 생명, 지능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를 얻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 이후에 이 영화의 감독과 작가가 어떤 관점에서 영화를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철학적인 위치를 평가할 수 있다.
가상현실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생활속으로 자리잡은 일반인들에게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가상현실세계가 리니지와 같은 네트웍 게임을 통해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가 가상현실을 통해 인간 존재자체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낸 이 기회를 빌어, 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가상현실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얻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가상현실과 시뮬레이션
가상현실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을 비슷하게 컴퓨터로 시뮬레이션(simulation, 모의실험) 해서 만든 컴퓨터 상의 가짜세계라고 이해되고 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가상현실에 대한 정의이다. 하지만 이것이 엄밀히 따져서 가상현실에 대해 올바르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상현실은 보통 인간이 오감으로 인지할 수 있는 수준의 정밀도를 갖는 정보를 컴퓨터상에 재현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주로 시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정보들이 가상현실을 구성하기 위해서 계산되는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컴퓨터 그래픽에서 주로 작은 다각형(polygon)을 연결하여 물체를 구성하고 그 표면을 입히고 색을 씌운다. 이런 방법으로 사람과 물체 등의 실제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컴퓨터상에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다. 요즘의 컴퓨터 그래픽의 기술은 사진과 눈으로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의 높은 정밀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이고, 하드웨어의 지원으로 실시간 움직임도 만들어낼 수 있다.
가상현실 세계가 실제와 비슷하게 작동되기 위해서는 보이는 겉모습뿐 아니라 그 움직임까지 실세계와 유사해야 한다. 이렇게 동적으로 움직이는 것들을 실제와 유사하게 컴퓨터로 재현하는 것을 시뮬레이션이라고 하며 이 단계까지 오면 실세계와 똑같이 움직이는 가상현실 세계가 만들어진다.
가상현실 세계는 컴퓨터로 인위적으로 시뮬레이션 된 것이므로 현실에서 불가능한 많은 것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지만, 무작정 아무것이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반드시 가상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법칙을 따라 만들어져야 한다. 그 법칙이란, 바로 가상현실속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에 해당하고, 모든 것은 그 법칙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흔히들 가상현실에서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유로 현실이 아닌 가짜세계라고 이해하곤 한다. 하지만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그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을 자유로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일 뿐, 그 세계가 법칙이 없이 아무것이나 가능한 세계라는 의미는 아니다. 가상현실도 그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을 프로그램함으로써 시뮬레이션되고 움직인다는 점은 실제 세계와 전혀 다르지 않다.
따라서 가상현실의 세계에서도 현실세계와 비슷하거나 다른 여러가지 종류의 법칙들이 프로그램 되어있기 때문에 그 법칙을 벗어나는 현상들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 이는 실제 세계가 물리법칙을 벗어나는 일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것과 동일하다.
사실상 가상현실의 세계는 실제와는 다른 물리법칙이 적용되는 또 하나의 세계이다. 실제 세계와 다른 점이라면 만든 이가 외부에서 원하는 대로 프로그램을 바꿔서 그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들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점 뿐이다. 하지만 이를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구분하기 위한 이유로 삼을 수는 없다. 그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이 누군가에 의해서 바뀔 수 있던 없던 간에, 주어진 법칙을 따른다는 점에서 이 두 세계의 다른 점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들 세계의 본질은 그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에 있다. 그 세계 안의 모든 현상들은 바로 그 법칙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비탈길에서 굴러가는 구슬은 중력의 법칙에 대한 결과이며, 떨어지는 빗방물, 출렁이는 물과, 몰아치는 바람 등 이 모든 것은 그 구성 분자들의 물리법칙의 결과이다. 생물과 인간 역시 그 법칙에 따라 작동된다. 궁극적으로 같은 법칙을 갖는 세계는 동일한 종류의 세계인 것이다.
가상현실이 실제의 현실세계와 비슷한 종류의 또 다른 세계라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연 현실세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자, 한 단계 더 나아가보자.
현실세계
현실세계는 물리법칙이 지배하고 있다. 모든 구성요소들은 그 물리법칙을 따라 정확히 움직이며 작동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쉽게 볼 수 있는 법칙은 중력의 법칙이다. 땅으로 떨어지는 모든 물체에 대해서 우리는 중력의 법칙을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분자들의 결합력에서는 이외에도 전기력이 크게 작용하며 자기력, 핵력, 약력 이렇게 다섯가지 밀고 당기는 힘의 법칙이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기본법칙이다.
누군가 우주와 동일한 세계를 만들고자 할 경우, 이 다섯가지의 물리법칙만 적용한다면 어디에서든지 동일한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물론 소립자레벨에서 시뮬레이션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량의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방법으로는 의미 있는 규모의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어렵다).
현실세계의 본질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현실세계 역시 소립자 등의 기본 입자에 의해서 작동되는 시뮬레이션의 일종이라는 사실이다. 현실세계를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사용하는 법칙이 바로 앞서 말한 다섯가지 우주의 기본 힘이다. 그리고 현실세계 작동을 위해 필요한 계산을 하는데 사용되는 컴퓨터는 바로 소립자들이다.
우주는 컴퓨터다!
우주는 기본적으로 소립자를 구성 요소로 이뤄진 거대한 컴퓨터이다. 이 컴퓨터에서 다섯개의 기본 힘이 법칙으로 작용하여 거대한 세계를 시뮬레이션 하고 있고, 바로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인 것이다.
이렇게 현실세계 역시 시뮬레이션의 일종이라는 것은 정보와 시뮬레이션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얻기 이전에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시뮬레이션에 대한 이해는 컴퓨터가 등장한 이후 정보의 개념이 확립되고, 많은 물리현상들을 차차 정보처리활동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비로소 얻게 된 것이다.
기존에는 현실세계의 근원을 물질에서 찾아왔다. 하지만 물질을 근원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정해진 물체를 정의하는데는 유용하지만, 동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을 설명하는데는 무용지물이었다. 동적으로 변하고 움직이는 현상을 물질로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현상에 적용되는 법칙을 설명해야 된다. 그 현상의 근원은 당연히 그 적용 법칙에 있다.
이렇게 물질에서 벗어나 논리적인 법칙으로 세상의 근원을 규정하는 관점에 서게 되면, 현실세계와 가상현실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에 새로이 직면하게 된다. 시뮬레이션과 가상현실이 쉽게 가능해진 요즘의 시대에서는 이러한 질문은 철학과 과학분야뿐 아니라 영화와 문학에서도 관심을 갖는 뜨거운 화두이며, 그 답을 찾는 것은 시대적인 과제로까지 여겨지곤 했다.
하지만 그 답은 명확하고 자명하다. 현실세계와 가상현실세계가 다른 점은 적용되는 물리법칙이 다르다는 것뿐, 이 둘 모두 주어진 법칙이 지배하는 시뮬레이션 된 세계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는, 물리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그리고 소립자 컴퓨터에서 시뮬레이션되는 가상현실의 일종인 것이다.
시뮬레이션과 본질
현실세계가 시뮬레이션의 일종이라는 말은 일견 당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종종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 있었다. 시뮬레이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인간의 지능을 시뮬레이션하는 기계의 가능성에 대해서 논쟁이 시작된 인공지능 분야에서이다.
컴퓨터가 사람의 모든 것을 똑같이 시뮬레이션 할 수 있다면 그 컴퓨터는 인공지능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컴퓨터가 진정으로 인간처럼 생각한다고 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겉보기에 인간과 비슷한 출력을 내보이는 것일 뿐 사람과 동일하게 자아를 가지고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하는가?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가상현실 공간안에서 순수하게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이 종종 등장한다. 이들은 실제 사람과 똑 같은 자아를 가지고 느끼며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컴퓨터 프로그램이 작동해서 나온 출력에 불과할 뿐 자아와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할까?
이 문제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왔던, 그리고 지금도 부분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시뮬레이션과 본질의 문제에 그 핵심이 있다.
인공지능에서의 이 시뮬레이션과 본질의 문제는, "지능"이라는 어떤 개념을 우리가 상상할 때 실질적으로 인간을 외부에서 관찰해서 얻은 단편적인 지식들을 얻어서 종합적으로 만든 것일 뿐, 외부현상으로 관찰되는 것이 아닌 그 어떤 것도 전혀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야만 그 의문이 확실히 풀릴 수 있다.
지능, 인간, 현실 등 인간이 갖고 있는 개념들 모두 실제로는 외부로부터 관찰되는 현상을 종합해서 만들어내고 판단하는 것들이다. 그 외부에서 관찰되는 현상들이 정확히 일치한다면 그것은 그 개념과 정확히 일치하게 되어 가짜가 아니라 사실상 진짜이며 본질이 된다.
실제 세계의 원본 역시 소립자들의 기본 구성요소들에 의해서 시뮬레이션 된 것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자. 실제 세계를 만드는 시뮬레이션과 가상세계를 만드는 시뮬레이션이 동일하다면 이 둘은 사실상 가짜 진짜를 따질 수 없는 양쪽 다 진짜로 볼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많은 경우 시뮬레이션이 실세계와는 다른 가짜라고 쉽게 생각해버리는 경우는 대부분의 시뮬레이션이 원래의 원본과는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구별이 전혀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히 동일하게 시뮬레이션된다면 그것은 사실상 가짜가 아니라 또 하나의 진짜가 된다.
따라서 프로그램되어 만들어진 인공지능의 경우에도 완벽히 동일하게 만들어진다면 사람과 동일한 지능과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사람과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실세계와 완벽하게 동일하게 만들어진 가상세계는 사실상 실제세계와 동일한 또하나의 실제세계로 봐야하며, 그 안에서 프로그램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공지능 역시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고 활동하는 실제 사람인 셈이다.
이렇게 실제세계 역시 시뮬레이션의 일종이라는 사실은, 현실과 가상현실 세계에 대한 혁명적인 이해를 가져다 주게 되며, 실제 세계만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가치는 부정되어 버리고, 가상세계와 실제세계를 동일한 선상에 놓이게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시뮬레이션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근본적 관계, 가상현실과 실제세계와의 관계 등을 완전히 새로이 정립하게 만들기 때문에 영화와 문학 등에서 다루기 아주 적합한 주제이다. 하지만 여기서 설명한 바와 같은 본질적인 이해를 바탕으로한 작품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 몇가지 의문을 제시하거나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가진 로봇을 내세워 감정에 호소하는 수준의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 가장 근접한 것을 찾는다면 인공지능을 다룬 SF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들 수 있다. 놀라운 점은 이 영화는 인공지능분야가 본격적으로 출발하기도 전, 제대로 된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던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미국의 우주 개발이 한창이던 시대에 만들어졌다. 인간의 도구가 끊임없이 발달하여 우주선과 같은 과거 공상속에만 있던 것까지 만들어 낸다면, 궁극적으로 스스로 생각하여 결정하는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도 가능할 것이라는 가정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그런데 이 인공지능은 주어진 임무에 너무나 충실하여 이를 수행하기 위해 사람을 공격하는 위치로 뒤바뀌게 된다. 인간과 같은 외형조차 없는 프로그램인 이 인공지능의 생각과 결정들은 너무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서 사람보다 더 사람답게 느껴지도록 한다. 이 영화는 기계의 지능과 인간의 지능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본 인간과 자아
단순한 정보활동의 일종인 시뮬레이션이 느낌과 생각, 그리고 자아를 만들어 내는 근원이라는 점은 우리의 자아의 본질에 대한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해 준다. 우리의 자아 역시 시뮬레이션의 일종이라는 사실이다.
철학의 가장 오래된 그리고 지금도 가장 많이 다뤄지고 있는 주제는 바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규정하는데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자아이다. 자신 스스로를 인식하며 여러가지 사고작용을 제어하는, 인간 사고능력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인간자체를 규정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자아이다.
이 자아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금 내가 앞을 보고 감각을 느끼고 생각하는 그것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주변의 물질들과는 다른, 정신세계에 위치한 이 자아는 한편으로 신비스러운 영혼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동물과 기계로부터 인간을 분리하여 오로지 인간만이 갖고 있는 것으로 믿어져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핵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자아의 정체를 확실히 밝혀낸다는 것은 인류역사에 기록될만한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다.
그런데 이 시뮬레이션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그 자아의 정체에 대한 의문에 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자아의 정체에 대한 의문은 뇌에 대한 이해로부터 그 실마리가 풀린다. 뇌는 뉴런이라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의 사고활동은 모두 이 뉴런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자아는 이 뉴런들로 구성된 뇌에 의해서 시뮬레이션 된 결과이다. 뇌는 뉴런이라는 소자로 구성된 컴퓨터로 자아를 시뮬레이션해내어 사고를 하고 생존에 필요한 활동을 하도록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뇌가 시뮬레이션한 자아와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한 자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놀랍게도 이 둘사이에는 근본적인,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생물학적인 세포인 뉴런을 전자뉴런으로 대체하여 뇌를 부분적으로 전자화하는 경우에도 자아는 그대로 유지되며, 나아가 뇌 전체를 전자뉴런으로 대체하여도 자아가 유지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기계가 시뮬레이션한 자아 역시 인간과 동일한 자아가 되는 것이다.
뇌는 시뮬레이션을 위한 장치이며 자아는 바로 시뮬레이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자아의 정체가 바로 시뮬레이션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한 기쁨, 슬픔, 사랑 등의 감정과, 촉각, 미각, 후각, 청각, 오감의 느낌들의 정체 역시 이 시뮬레이션이 본질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말해준다. 자아와 감정, 감각의 본질이 시뮬레이션이라면, 뇌에 의한 시뮬레이션이 아닌, 컴퓨터 전자회로에 의한 시뮬레이션 역시 동일한 느낌과 감정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와 감정, 감각이 시뮬레이션이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은 과거 우리의 이해와 상식을 뛰어 넘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은 물질과 같은 구체적인 형체가 없는 정보활동이다. 우리의 자아와 감각이 정보활동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은, 정보활동이 의식과 감각의 본질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정보란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개념인 것으로만 믿어왔다. 정보활동에서 자아와 의식이 발생한다는 것은 이렇게 우리가 정보와 그 활동에 대한 이해가 아직도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정신세계가 사실은 정보활동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은 정보와 정신세계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필요로 한다.
최근의 뇌에 대한 연구는 자아의 이해를 위한 새로운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 자아는 하나의 단일한 구성체가 아니라 최소한 두 개 이상이 모인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컴퓨터 CPU칩 두 개를 동일하게 작동하도록 병렬적으로 연결하여 가상현실속의 인공지능의 뇌로 사용한다면 그 인공지능의 자아는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연결한 두 칩을 각기 따로 작동하도록 분리해 버린다면 자아가 두 개가 된다. 이는 정보활동으로서 자아를 이해하게 되면 당연한 결론이다.
그런데 인간에게서도 자아가 분리되는 동일한 실험이 이미 발견 되었다. 인간의 뇌는 좌뇌와 우뇌 두개의 거의 유사한 작용을 하는 장치가 병렬적으로 연결된 것이다. 1950년대 이 둘의 연결을 분리시키는 수술이 행해진 후, 자아가 좌우 두개로 분리되는 현상을 발견하였으며(좌우대뇌사이의 연결만 절제하여 기억과 감정은 공유함), 연구자는 이 발견으로 1981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이 발견은 인간의 자아가 뇌에 의한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시뮬레이션과 정보활동에 대한 이해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 역시 영화나 문학작품으로 쓰일만한 좋은 주제가 될 수 있다. 여기에서 설명한 자아에 대한 관점은 지금 이 시점에도 너무나 새로운 진보적인 관점이라서 아직 영화에 실현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놀랍게도 이미 1995년 <공각기동대(영문제목: Ghost in the Shell)>에서 아주 정확하고 심도 있게 다뤄졌다.
문제적 영화 <공각기동대>
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은 전뇌(전자회로로 대체한 두뇌)화된 인간이며, 어느날 순수한 컴퓨터 프로그램(인형사)이 스스로 살아있는 생명체라 주장하며 새 안드로이드의 전뇌에 침투해 들어갔을 때, 주인공은 의문을 품게 된다. 순수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안드로이드는 사람처럼 자아를 가지고 느끼며 생각하는 것일까? 단순한 프로그램이 그렇다면 내 자아도 프로그램은 아닐까? 주인공은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인형사 몸으로 다이빙하여 관객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보는 눈을 통해 주변을 볼 수 있게까지 시도한다.
이 작품의 영문제목에 영혼(ghost)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는 이 작품이 인간의 자아(이 작품에서는 자아를 'ghost'로 칭함)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주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각기동대>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어 이 영화를 새로운 스타일의 액션영화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가상현실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일들
여기까지 시뮬레이션을 근본으로한 가상현실을 잘 이해하였다면 가상현실이 단순히 상상으로 만들어진 가짜세계가 아니라, 또 다른 하나의 실제세계의 일종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상현실을 주제로한 영화나 문학작품들이 흔히들 상상하는 것을 보면 다 가능하다는 식으로 마구잡이식의 설정을 하곤 하는데, 이는 현실세계에서 슈퍼맨과 같은 설정이 비현실적인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가상현실에서도 비현실적인 것이다. 가상세계의 현상들 역시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모든 현상을 만들어내는 법칙들이 존재해야 하므로, 가상세계의 현상들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와 설명이 주어지거나, 간접적으로 추론될 수 있어야 실질적으로 가능한 설정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가상세계에서 프로그램을 삽입하여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그 세계를 만들어내는 원리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아주 낮은 레벨의 법칙을 만들어 넣는 것이다. 실제세계에서 아주 낮은 레벨인 소립자레벨에서 구현을 한다면 다섯개의 힘을 만드는 것으로 동일한 가상세계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방법은 원리는 간단하나 엄청난 계산량을 요구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
반대로 높은 레벨의 법칙들을 만들어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방법은 만들기가 다소 복잡하나 계산량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현실성이 높다. 게임에서 만든 세계에서 사람 전체의 고정된 모습을 아이콘화하여 만들어 넣고, 이들이 움직이는 동작도 미리 정해진 것만 가능케 하는 방식이 이에 속한다. 이렇게 높은 레벨에서의 가상세계 구현은 계산량이 작고 원하는 대로 모든 물체를 쉽게 제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그 모습과 동작이 현실세계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 되어 버린다는 단점이 있어서 실사수준의 가상세계를 만드는데는 다른 방법이 사용되어야 한다.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실사수준의 가상세계가 실제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계산능력이 허락하는 한 가능하면 더 낮은 레벨에서 이뤄져야 가능하다. 최초의 실사수준의 애니메이션 영화인 <파이널판타지>는 세밀하게 작은 다각형을 이어붙여서 물체를 구성하고 표면을 입히는 방법이 사용되었으며, 사람의 눈썹과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일일이 심어서 만들 정도로 세밀하게 만들어져 있다.
<파이널판타지>의 실사같은 CG
이들 물체들의 움직임을 현실세계에서의 움직임과 유사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물체들의 구성요소가 세포나 분자수준에 근접해야하고, 중력과 인장력, 표면장력 등의 법칙이 그 최소구성요소에 직접 적용되어야 한다. <파이널판타지>에서의 머리카락들은 바람과 중력, 장력의 법칙을 그대로 적용하여 움직임에 따라 찰랑거린다. 물은 분자수준의 구성요소들로 시뮬레이션되어 물결이 치고 빛이 굴절하며, 불꽃 역시 최소 아주 작은 불꽃분자 레벨에서 시뮬레이션되어 타오르는 생생한 모습이 만들어진다. (물론 현재 시뮬레이션을 위해 사용되는 최소 단위는 실제 분자보다는 훨씬 크다.)
인간의 경우에는 뼈와 골격, 근육, 피부까지 해부학적으로 동일한 몸체를 갖도록 구성하지만, 그 행동자체는 뇌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기술이 아직 없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사람의 행동 데이터를 추출하는 모셥캡춰 장치를 이용하여 가상세계에 이식시킨다.
이렇게 세포와 분자에 근접한 수준으로 가게 되면 이론적으로 모든 물체와 생명체를 비슷한 수준에서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식물이 영양분을 섭취하여 햇볕을 받아 자라나고 잎을 키우고 꽃을 피워 최종적으로 씨앗을 뿌리는 과정은 이미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수준에 와있다. 만일 동물과 뇌까지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수준이 된다면, 그 뇌는 실질적으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다.
낮은 레벨에서 이뤄지는 시뮬레이션의 경우, 그 안의 물체들은 중력과 전자기력과 같은 아주 간단한 법칙만으로도 실세계와 거의 동일하게 작동하게 되며, 뇌까지 이 방법으로 작동하는 경우 그 뇌를 가진 사람은 실제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자유의지를 가진 살아있는 사람이 된다.
따라서 이렇게 낮은 레벨에서의 가상현실 구현은 세포나 분자와 같은 아주 작은 구성요소를 직접 제어하는 방식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에 큰 물체와 인간수준의 거대개체를 마음대로 제어하는 것은 실세계에서 만큼 대단히 어려워진다. 어떤 물체와 인간을 구별해내기 위해서는 그 구성 분자 요소의 경계를 나누고, 원하는 움직임을 주기 위해서는 그 분자들을 재배치 해야하는데, 이것은 엄청난 계산량을 필요로 하며 엄밀히 나누기도 어렵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 <매트릭스>와 같이 중앙 시스템이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미리 프로그래밍된 또 다른 사람을 보내는 방식을 써야만하며, 이렇게 되면 현실세계에서 사람을 통제하는 방법과 동일한 사회가 된다.
영화 <매트릭스>는 이런 방법들중 어떤 방법을 써서 가상현실 세계가 구성된 것으로 설정한 것일까? 중앙에서 사람과 건물, 개체 등을 일일이 통제하지 못하고 스미스와 같은 요인을 보내 주인공을 잡으러 다니는 것은 개개의 물체들이 높은 레벨에서 직접 정의되지 않고 분자수준의 낮은 레벨에서 시뮬레이션 된 시스템이라는 것을 말한다. 실제 실사수준의, 그리고 사람들이 평생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정밀한 가상세계라면 이렇게 낮은 레벨에서의 가상세계 구현방법이외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하지만 영화가 이런 기술적인 설정까지 고려하여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 <매트릭스>
여기까지 가상현실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기본적인 설명을 마쳤다. 그럼 이제 영화 <매트릭스>가 어느 관점에 서있는 영화인지 이야기 해보자.
먼저 <매트릭스>는 뇌에 조작된 자극을 전달하여 가상현실 속에 살도록 하는 가상현실을 시작으로 출발하는 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가상현실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고 있으며, 영화의 결말이 결국 기계와의 공존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가상현실 영화가 아니라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조명하는 영화이며 가상현실은 작은 소재로 사용된 것에 불과하다고 봐야한다.
2편 릴로디드에서 주인공 리오가 현실세계에서도 가상세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장면에서 현실과 가상에 대한 의문제기 같은 설정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3편 레볼류션편에서 이 같은 능력은 단지 주인공 능력이 뛰어나서 얻게 된 것이라는 비현실적이고 허무한 이야기로 얼버무려졌다.
가상현실세계의 프로그램들은 실제 인간과 어떻게 다른가? 이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이나 문제제기, 혹은 새로운 관점이 제시될 법 한 상황이었지만, 단지 화면에 보여질 뿐 전혀 다뤄지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
기본적으로 <매트릭스>에서는 가상현실은 가짜이고 허상이고 현실세계만이 진짜라고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가상현실 속의 프로그램에 의한 인물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닌 가짜라고 보고 있으며, 그들은 인간과 같은 자아도 없다는 관점에 서있는 셈이다.
인간과 생명에 대해서 역시 전혀 철학적인 문제제기가 없다. 시뮬레이션에 대해서 현상과 본질에 관한 고찰도 없으며 가상현실로부터 제기된 문제 역시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가상현실 속의 사람들이라면, 프로그램에 의해 작동되는 사람이라면,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를 상대한다면 한번쯤은 꼭 의문을 가질만한 주제들인데 그러한 것이 제기될 듯 암시만 풍길 뿐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제기된 것이 없다.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과, 오라클이 말해주는 미래에 대한 암시, 아키텍트의 등장과 함께 쏟아지는 현학적인 이야기들이 모두 가상현실을 기초로 무엇이든 철학적인 내용을 이야기 할 것만 같은 장면들이 많은데, 결과적으로 보여준 철학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결말은 가상세계를 기초로한 이러한 철학적 사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단지 기계와 타협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게다가 이 결말과 그 장면들은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거의 베낀 것이다.
과연 작가와 감독이 어떤 철학을 이야기 하고자 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가상현실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것 뿐인지 좀더 확인하기 위해서, 이 영화의 배경에 관한 내용이 담긴 애니<매트릭스>를 다시 보았다.
애니<매트릭스>는 <매트릭스> 2, 3편이 만들어지는 해 함께 공개된 것이다. 여기에서는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만든이의 기본적인 철학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애니<매트릭스>에서는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 현상이 사실은 <매트릭스>에서 시뮬레이션된, 어떤 목적에서 시스템이 부여한 것이라는 내용으로 암시된다. 이는 <매트릭스> 1편에서 숟가락을 구부리는 초능력도 사실은 가상공간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해석하는 것과 일치한다. 그리고 가상현실에서 빠져나온 이들은 <매트릭스>를 파괴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이는 가상현실은 가짜라는 기본 인식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매트릭스>에 가두게 되는 배경도 너무나 허술하다. 어처구니 없게도 인간의 생체 에너지를 동력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매트릭스>를 가동한다는 비과학적 설정을 사용하고 있다. 생물체에서 약간의 전기가 발생되는 것은 사실이나 인간의 경우 0.5V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전기를 내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음식과 공기를 소비해야되는 비효율적 시스템이다. 그를 이용하여 기계세계의 동력으로 쓴다는 것은 과학적 기초상식이 결여된 것이다.
<매트릭스>에서 죽음을 당하면 실세계에서도 사람이 죽는다는 것 또한 거짓이다. 왜 이렇게 억지주장 같은 줄거리를 만든 것일까? 그 이유는 가상현실이라는 소재가 헐리웃 영화의 특기인 컴퓨터 그래픽의 멋진 장면들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으로 일부러 짜맞춰 들어갔기 때문이다. 기계와의 전쟁과 공존의 줄거리에서 <매트릭스>와 같은 가상현실 설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자연스럽다.
기계는 인간을 가두기 위해 <매트릭스>와 같은 가상현실을 만들 필요도 없으며 거기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도 없다. 주인공은 <매트릭스>안에서 죽는다고 해서 실제세계에서도 죽지는 않기 때문에 영화속에서와 같이 살기위해 그렇게 싸워야할 이유도 없다. 죽어가는 애인을 살리기 위해 바쁘게 날아갈 이유도 없다. 다시 접속해서 들어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상현실의 실제 성질이 그대로 반영되고 가상현실의 세계의 진실을 보여주게 된다면 영화는 정말 보여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상현실을 엉터리로 만들어 설정에 끼워 넣은 것이다. 배우들이 가상현실 속에서 열심히 싸우는 컴퓨터 그래픽을 삽입하기 위해, 가상세계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다는 거짓말을 끼워 넣었고, 기계와의 전쟁에서 가상현실을 활용하기 위해 인간에게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매트릭스>를 가동한다는 엉터리이야기를 끼워 넣었다.
가상현실을 다룬 내용이 결국은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다루기 위해 낮은 비중으로 끼워들어간 것이니 이를 과학적으로 세밀히 따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는 있지만, 불행히도 이 영화의 제목은 바로 가상현실 세계의 이름인 <매트릭스>이다. 게다가 기계와 인간과의 관계를 결말은 맺은 장면은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베낀 것이니 기계와 인간과의 관계의 재조명이 이 영화가 전하는 바라면, 이 영화는 베끼기 영화로 볼 수밖에 없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 영화의 주목할만한 점을 찾아야 할까? 이 영화는 1편에서 새로운 촬영기법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영상을 만든 영화로서 주목해야 한다. 그 부분은 훌륭하게 평가받을만 하다. 이 영화는 그에 머물지 않고 공각기동대와 같은 철학있는 영화가 되기 위해 몸부림을 쳤으나, 결과적으로 <매트릭스>는 철학적 주제라고는 전혀 없는 롤라코스터 영화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매트릭스>는 공각기동대류의 영화가 아니라 스타워즈류 혹은 판타지류의 영화로 봐야 하는 것이다.
마치면서
<매트릭스>가 가상현실과 인간에 대한 아무런 철학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뇌와 가상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잘못된 영화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아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이 가상현실과 인간에 대한 철학을 제대로 다루는 영화가 등장할 기회를 남겨뒀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SF에서 이러한 철학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오랜 SF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변두리를 지키고 있던 일본에서 나온 공각기동대였다. 그리고 이영화의 철학을 뛰어넘는 작품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은 항상 변두리에 있던 비주류에서 나온다는 것은 오랜 역사가 이미 증명해주고 있다. 주류의 세계에서는 그 세계가 지배하는 철학이 오랫동안 너무나 뿌리깊게 박히게 되어 그 안에서는 그를 벗어나는 새로운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글에서 설명한 가상세계와, 실제세계와의 관계, 기계와 인간의 철학적 규명, 인간 자아와 정신세계의 정체 등은 아주 새로이 태동한 진보적인 관점이기 때문에 주류세계에서 과거의 철학을 뒤엎으며 소화해내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매트릭스>와 같은 영화가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한 환경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철학에서 벋어나지 못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필자는 이러한 주제와 철학을 제대로 다룬 영화나 문학작품이 한국에서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은 이미 그러한 철학을 받아들이기 좋은 최고의 여견이 조성되어 있다. 헐리우드의 주류사고를 이해하면서 완전히 빠져있지도 않으며, 컴퓨터 네트웍 환경은 이미 전국민의 생활 공간이 되고 있고, 한국의 네트웍게임은 세계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자신의 분신인 아바타를 꾸미기 위해서 돈을 기꺼이 지불하는 국민이 사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뿐이다. 또한 영화산업도 본궤도에 올라 헐리우드 영화를 밀어내는 힘을 보이고 있는 추세이다.
가상현실은 새로운 철학이 필요한 새로운 분야이다. 한국의 영화산업도 이제 미국식 영화와 차별화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상현실이야말로 한국에서 새로운 스타일로 자리잡을 만한 소재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철학을 소화한 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전혀 성급한 기대가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상현실에서 파급되는 철학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바라고 영화를 비롯한 문화계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함께 참여하여 새로운 철학을 보여주는 작품이 멀지 않은 미래에 나오기를 희망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6. 현각 스님의 <메트릭스> 관람기
<매트릭스 2 리로디드>는 전편 <매트릭스>가 제기한 존재, 또는 주체에 대한 질문을 더 확장시킨다. 그 방향을 놓고 여러가지 해석과 함께 논란도 나오고 있다.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인 현각 스님은 <매트릭스>를 10번이나 본 이 영화의 열혈 팬이다. 현각 스님의 <매트릭스 2 리로디드> 관람기를 싣는다. 편집자
1편‥'더 원'이 세계를 구할것이다
종교는 때때로 위험하다. 진실한 믿음은 마음을 해방시키는 혁명이다.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에게 이러한 혁명은 종파에 상관없이 매우, 매우 위험한 것이다. 혁명을 두려워하는 종교적 도그마 자체가 매트릭스이고, 우리는 그 매트릭스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한다.
지난 주, 이집트 정부는 <매트릭스 2 리로디드>(이하 <리로디드>)의 상영을 전면금지했다. 금지된 이유는 폭력이나 선정성 때문이 아니라, 인류창조에 대한 전통적 종교관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것이 중동지역 특정종교 하나의 편견에만 국한된 문제일까 아니다. 이집트 문화검열국장이 밝혔듯, “이 영화가 금지된 이유는 인간의 실존과 창조같은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가 존중하고 신봉하는 3대 유일신 종교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 모두와 관련된다.”
2003년 현재의 “현실세계”에서조차 이처럼 곤란한 질문은 위험하다. 실존의 본질 자체에 대한 질문은 기존 종교체제를 전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또 왜 창조되었는지 묻는 것은 위험하다. 종교의 권위자들은 말한다. “시스템이 만들어졌고, 우리는 단지 거기 놓였을 뿐이다. 시스템에서 자유로운 선택의 자유는 우리에게 없다. 당신은 매트릭스를 믿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실한 믿음을 위해 매트릭스에 도전해야만 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왔는가” “맹목적 신앙은 진실한 길인가 아니면 거짓인가” “이 방대한 시스템의 설계자 내지 프로그래머는 선한가, 악한가”
<리로디드>는 매우 변혁적인 영화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안주해온 맹목적인 종교적 믿음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서 놓지 못하는 믿음을 뿌리부터 뒤흔든다. 내가 접한 대중문화 가운데 이만큼 멋진 통찰을 보여준 영화는 드물다. 인간 밖의 유일한 권력을 믿는 제도화된 종교들은 또다른 형태의 통제와 지배, 즉 인간의식을 지배하는 매트릭스에 불과하다.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종교 자체가 일종의 매트릭스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2편‥구원자 '더 원'은 없다
<매트릭스> 1편은 스스로 깨달은 니오가 인간의식을 지배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인 매트릭스에 승리하는 것으로 끝난다. 초영웅적 존재인 니오가 인류를 구원하러 옴으로써 선지자의 예언이 실현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사실 겉으로 보면 감독들이 이런 생각을 은근히 유도하면서 관객이 모피어스처럼 맹목적으로 생각하도록 유혹한다 - 우리가 예언을 따르기만 하면 초인적인 ‘더 원’(The One)이 세계를 구원할 것이다. 이야기 끝.
그러나 <리로디드>는 이런 생각을 완전히 전복시켜 버린다. 모피어스가 절대적 신념을 가지고 떠받드는 예언자 오러클은 매트릭스의 권력에 봉사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일 뿐이다. 오러클은 매트릭스의 “어머니”이고 시스템의 완전통제를 돕는다. 니오가 모피어스에게 말하듯 “예언은 거짓이었다. ‘더 원’의 목적은 그 어떤 것도 끝내는 게 아니야. 그건 또 다른 통제 시스템에 불과했어.” 바로 이런 전복성이 이 영화의 뛰어난 면이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 용어와 상징만 보고 이 영화가 자신들의 종파적 종교관을 입증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1편에선 세계를 구원하는 ‘더 원’이 단순한 정답인 듯도 하다. 그러나 2편은 “정답” 대신 모든 위대한 종교들이 가르쳐온 일, 즉 질문을 제시한다. 사람들이 안주해온 신앙체계를 전복하고 무너뜨린 다음, 우리 실존의 본질 자체에 대한 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맹목적 신앙은 정답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니오는 오러클로부터 모피어스에게 전해진 맹목적 신앙을 이제 버려야 한다고 깨닫는다.
따라서 <리로디드>는 종교적 확실성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어떤 도그마나 예언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쉬운 신앙을 주창하는 영화도 아니다. 쉬운 정답 대신 위험하고 심오한 질문을 제시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집트에서 상영금지된 것이다. 정치적이건 민족적이건 종교적이건 아무리 확실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우리는 맹목적으로 따르는 대신 질문해야 한다.
니오와 설계자의 만남 역시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니오는 두개의 문 가운데 선택해야 한다 - 한쪽으로 가면 시온을 구하지만 연인은 죽는다. 다른 한쪽으로 가면 연인을 구하지만 시온주민 모두가 멸망한다. ‘더 원’의 사명은 인류의 구원이다. 예언에 따르면 그것이 니오의 목적인 것이다. 시온을 구하지 않으면 니오는 ‘더 원’이 될 수 없다.
당신 자신이 당신을 구한겁니다
그러나 니오는 예언으로부터 자유롭게 행동하기를 선택하고 트리니티를 구함으로써 설계자에 맞선다. 예언의 계획 대신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을 따름으로써, 궁극적인 힘은 설계자가 아닌 바로 인간 자신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인과법칙을 넘어서고 매트릭스 시스템의 설계자와도 대결한 니오는 홀로 서있다. 인간의 도덕적 조건에 대한 책임은 오직 인간 자신에게 있을 뿐, 개인의 자유의지보다 더 큰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 니오의 말처럼 “선택, 문제는 선택이다.”
만일 신앙에 대한 전통적 지지를 철회했다면, <리로디드>에서 종교적 믿음이란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1999년 인터넷 채팅 인터뷰 중 “이 영화에서 신앙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감독 워쇼스키 형제 스스로 답한 바 있다. “(우리가 관심 있는 문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니오가 시온에 돌아왔을 때 한 청년이 “당신이 나를 구했어요”라고 외친다. 그러나 니오는 퉁명스럽게 답하기를 “아니요, 당신 자신이 스스로를 구한 겁니다.” 그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너를 구한 것은 네 믿음”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은 누군가 “다른” 이가 “나를” 구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더 원’이 필요한 이유이다. 허나 니오도 인간 밖의 수퍼맨이 구원자라고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우리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이뤄진 <리로디드> 비평 가운데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불교적 영향을 받았는지 언급한 것은 드물다. 1999년 인터뷰에서 시나리오를 쓴 워쇼스키 형제는 불교가 그들의 사상과 시나리오에 큰 영향을 끼쳤느냐는 질문을 받고 “예스!”라 대답했다. “불교와 수학, 특히 양자물리학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고 그 둘이 접합하는 지점은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둘 다 오래 전부터 불교에 매혹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많은 관객이 이 점을 놓치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는 무지와 미몽에 빠져 잠들어 있으며,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만 스스로 깨닫고 또 다른 사람들이 깨닫도록 도울 수 있다. 한편 니오가 오러클을 만나러가는 장면에선 종교물품 벼룩시장이 등장한다. 힌두교 신, 성모 마리아, 예수상 등이 보인 후 마지막으로 카메라는 불상을 비춘다. 화면 속의 부처는 명상자세로 앉아 자기 마음의 본질을 관조하고 있다. 니오가 오러클을 만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비춰진 종교의 이미지가 바로 이것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1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니오는 마치 최후의 초영웅 ‘더 원’처럼 보인다. 하지만 2편에서 밝혀지는 놀라운 사실에 따르면 니오는 “수학적 완성”의 여섯 번째 예외, 여섯 번째 구원자이다. 흔히 상징 기법을 사용하는 영화에서 과연 이 여섯 번째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불교에 매료된 감독들의 답은 명료하다 - 불교에서 2500년 전 나타난 석가모니 부처는 고해의 매트릭스인 이 우주에 나타난 여섯 번째 부처로 간주된다. 고전불경에 따르면, 새로운 우주가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부처가 나타나 미몽에 빠진 중생을 제도한다. 만물이 유전하므로 우주 또한 끊임없이 변하고 이윽고 쇠하여 적멸한다. 그러면 새로운 세계가 나타나고 따라서 새로운 부처가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태어나고 다시 또 태어나고 - 나는 중생들 가운데 다시 태어날 것이다.”
<리로디드>가 던지는 화두는 바로 믿음이다. 이 영화를 감상하기에 따라서는 대중문화가 성서나 불경처럼 올바로 종교적 믿음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