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에서 동태찌개 하나만큼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의 맛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습니다.
관광지의 판에 박힌 식당에서 비싼 돈 주고 먹는 그저그런 고등어 조림같은게 아닌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좋은 곳으로 동태찌개 잘하는 집을 추천할 때 슬기식당이라고 해도 크게 이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외지인과 제주도 현지인의 입맛엔 미묘한 차이가 있고 동태찌개 스타일이 서울, 수도권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서 호불호가 갈릴 순 있겠습니다만, 늘 익숙한 맛도 이곳에선 잠시
접어두고 제주도에선 제주도식 동태찌개를 맛본다라는 생각으로 한번쯤 들려봄직한 집입니다.
해서 찾아간 곳은 제주시 건입동에 위치한 허름하고 작은 음식점.
처가식구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엔 다소 이른 시간에 찾았는데요. 이때가 오전 11시.
줄만 안섰을 뿐 이미 가게 앞엔 대기자들이 서성이고 있는 풍경입니다.
동태찌개 하나로 제주시를 호령한 맛집이라..
취급품목도 단촐하지만 영업시간 또한 단촐하기 그지없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반까지만 거의 4시간만 영업하고 가게문을 닫는다고 해요.
동태찌개 하나로 점심장사를 하는데도 자리가 없어 줄 서야 할 판.
음식장사 정말 효율적으로 하네요. 제가 생각했을때 가장 이상적인 장사방법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말이 오전 10시부터 2시반이지만 준비하고 정리하는 시간까지 더해 +알파가 있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오후 시간을 다른데 투자할 수 있는
영업형태. 거기다 이렇게 시간을 제한시켜 놓으면 그것으로 인해 왠지 맛있을 것 같은 집이라는 기대심리가 생기는 것도 무시못할 것입니다.
밑반찬은 네가지로 단촐한 편.
그다지 특색있는 반찬들은 아니지만 동태찌개와 함께 먹을때 무난한 반찬들.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테이블 회전률이 빨라 바로바로 손님교체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오전 11시쯤 와서 점심시간상 다소 이르지만 계속해서 손님들이 들어오는 상황인데, 이 집의 동태찌개는 다른 집 처럼 커다른 솥에 미리 끓여놨다
담아내 오는게 아닌 주문을 받을 때마다 뚝배기에 새로 끓여내 오는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랄까요.
슬기식당의 동태찌개는 두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매운맛과 안매운맛.
사진은 안매운맛인데 특이하게도 된장 베이스의 구수한 국물맛이 있습니다.
제가 시킨 매운맛 동태찌개.
안매운맛과는 빛깔부터 차이가 있는데 한술 뜨자마자 칼칼함이 전해옵니다.
다소 맵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계속 먹다보니 생각보단 맵지 않은 맛.
동태찌개란게 하는 집마다 스타일이 제각각인데 이곳 제주에서 맛본 동태찌개 맛은 확실히 수도권에서 맛볼 수 있는 시원함, 칼칼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대신 된장 베이스의 걸쭉한 국물과 진한 맛이 어우러져 좀 더 토속적인 느낌이라고 할까요.
때문에 멀거므레하면서 시원한 동태찌개를 생각하고 이 집을 찾는다면 전혀 다른 스타일에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적응도는 어지간해선 쉽게
동화될 수 있는 맛.
"이것도 괜찮네"
뭐 이런 반응이 나옴직한 동태찌개입니다.
단지 스타일의 차이로만 이 집의 동태찌개를 말하기엔 들어간 재료들인 꽤 실한 편.
동태찌개에서 가장 중요한건 아무래도 동태겠지요.
이 집의 동태를 살펴보니 대충 가져와 쓴게 아닌 씨알이 굵은 동태를 씁니다.
물론 원양산이겠지만 토막난 두개의 덩어리가 생각보다 양이 꽤 많다고 느껴질 정도로 푸짐한 편.
동태찌개에선 빠져선 안될 곤이도 꽤 푸짐합니다. 먹던 도중에 한컷 찍어봤는데도 한가득 남아 있습니다.
간도 한점 보이구요. 간은 고소함을 넘어 느끼해서 절반만 먹었습니다. 요건 갠적인 취향이고.
곤이에 대해 잠시 말하자면 요건 동태에서 나온 곤이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대구의 곤이를 따로 사서 쓰는게 아닐까 사료되고요.(명태 곤이는 크기나 양에서 이렇게 안나옵니다.)
두부도 부들부들한게 싸구려를 쓰는 것 같지 않고 전반적으로 들어간 식재료에 공을 들인 흔적이 보입니다.
동태찌개 스타일에서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제 개인적으론 걸쭉하고 구수한 느낌의 동태찌개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사실 제 취향은 동태찌개가 아닌 시원하고 칼칼한 동태탕에 가까운 것을 선호하지만 ^^)
반찬 재활용을 안한다는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