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감독 : 이안
주연 : 히스 레저, 제이크 질레할
눈부신 만년설을 두른 산봉우리 아래 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과 거울처럼 맑은 호수를 간직한 8월 로키산맥의 브로크백 마운틴. 여름 한 철 일자리를 구하러 온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레할)은 양치기 일을 맡으며 방목장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
한 사람은 밤낮으로 양 떼가 방목된 곳에서 양들을 지키고 한 사람은 캠프에서 요리와 빨래 등을 담당하며, 식사 시간 동안 둘이 마주하는 것 이외에는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의 생활. 둘은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으며 마음을 열고 우정을 넘어선 감정에 휩싸인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자신들 행위의 의미와 감정을 외면하고 함구한 채 두 사람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가정을 이룬 에니스와 잭. 경제상황이 넉넉하지 않은 에니스는 두 딸의 아버지이며 남편의 책임에 지쳐가고 잭은 부자인 장인에게 무시당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잭은 엽서를 보내고 에니스를 찾아온다. 4년 만에 재회한 둘은 주어진 책임들을 뒤로한 채 브로크백으로 캠핑을 떠나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1년에 한두 번 호숫가에서 며칠간의 만남을 20년간 지속하며 감정을 이어간다.
잭을 만나면서 동시에 가정을 유지하고 싶은 에니스와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고 설득하는 잭. 결국, 잭과의 관계를 아내에게 들킨 에니스는 이혼당하고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에니스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은 잭은 다른 상대를 찾아 위험한 행각을 벌이다 이웃에게 들켜 죽임을 당한다.
잭의 아내에게서 사망 소식을 들은 에니스. 브로크백 마운틴에 묻히고 싶어 했다는 말을 듣고 유골을 가지러 잭의 고향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잭의 옷장에서 양치기 시절 서로의 주먹다짐으로 자신의 피가 묻은 셔츠가 소중히 간직된 것을 발견한다.
에니스는 슬픔을 받아들인다.
흔히 이 영화를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나는 사람과 사람과의 사랑을 다룬 영화라고 말하려 한다.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사람의 존재라곤 둘밖에 없는 브로크백에서 에니스는 잭에게 하나뿐인 사람으로, 잭은 에니스에게 유일한 사람으로 존재하고 받아들여진다. 그곳에서 둘은 성별을 떠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정신적이며 동시에 육체적이다.
자연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회귀의 뜻을 가진 가상의 산 브로크백은 그 둘을 나무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본다. 겨울을 상징하는 하얀 눈과 여름을 상징하는 푸른 숲이 함께 공존하는 브로크백은 죽임을 당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으며 자신도 인정하기 어려운 감정을 묵묵히 지켜본다.
자연은 인간의 과거이고 현재이며 미래이다. 그곳에서 에니스와 잭은 본연의 모습을 통찰하고 가식에서 벗어나 진실해진다.
보편적인 것이 모두 정당한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이성 간의 사랑이 보편적으로 허용됐다고 해서 동성 간의 사랑이 옳지 않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동성애는 그늘진 곳에서 이성애와 공존해 왔으며 그것은 분명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선악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감정이다.
남자 후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동성애에 대해 치를 떨 것이다.”
하지만 묻는다. 이성에게 성폭행이나 성적인 학대를 경험한 사람은 이성 간의 사랑에 치를 떨어야 하는가? 아니다.
지구에 있는 사람의 개체가 하나이면 소외라는 낱말은 애초에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중 속의 고독이 자살을 부를 정도로 처절한 소외감을 낳는 것은 현실이다.
사람의 홍수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소통하고 있는지는 스스로 통찰해 보아야 한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웃고 떠들며, 깊은 외로움을 포장한 채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람이 필요함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성별이나 보편적으로 허용된 판단 기준을 떠나서 에니스와 잭과 같은 소통을 이룬 관계가 있는가? 그 사람과 함께 돌아가고 싶은 브로크백 같은 공간이 있는가? 진정 사람 사이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하나의 개체로서 인원수에 1을 더하고 있는가?
나에게 먼저 되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