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7년 오키나와의 조용한 마을 '나하시'에서 태어난 여자아이의 이름은 '아무로 나미에'로 지어지게 된다
여 주인공이 상대역으로부터 항상 괴롭힘과 고생을 당하지만 당당하게 역경을 헤쳐나가는 '오하라 레이코'
주연의 NHK 특별드라마(극중 여 주인공 이름은 '나미에')
드라마의 여 주인공처럼 어떤 괴로움과 역경에도 견뎌낼수있는 강한 여자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 까만 피부때문에 혼혈아이로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들 가난했던 집안사정들...
가수의 꿈을 가지게될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현실은 냉혹하기만 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소녀의 꿈을 차마 외면할수없었는지 소녀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주게된다
그것은 어린 '나미에'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본 '마키노'원장선생과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나미에'의 어머니로부터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을 듣게된 '마키노'원장은 특기생으로 수업료없이
'액터즈 스쿨'을 다니게 해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나미에'는 연예계의 첫 걸음이 되는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에 다니게 될수 있었다
어린시절 유난히 수줍음이 많았던 소녀의 꿈이 조금씩 현실화되기 시작한건 결코 우연만은 아닐꺼라 생각되고
너무나 간절했기에 이루어진 '나미에'의 마음의 힘이 이루어낸 결과가 아닐까?생각이 든다
'액터즈 스쿨'을 다니는데 문제는 집과의 거리였다(당시 '나미에'의 집과 '나제'에 있는 '액터즈 스쿨'까지의
거리는 아이 걸음 으로 1시간30분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만큼 상당한 거리였다)
그 만큼 먼 거리였기에 같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버스를 이용하거나 부모들의 차 를 이용하였지만
'나미에'는 그럴수가 없었다
왜냐면 '나미에'에게 차비까지 줄 만큼 집안사정은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나미에'도 그러한 집안사정을 잘 알고 있기때문에 걸어다니는것에 한번도 힘든내색을 하지않았던
이해심 많고 마음씨 착한아이가 바로 '나미에'였다


1992년 '나미에'(당시 나이16살)는 비슷한 또래 아이들 4명과 함께 '슈퍼몽키즈'의 5인조 그룹을 결성
본격적인 연예계 데뷔를 하게된다
첫 싱글인 고이 노 Cute Beat/Mr.U.S.A "(도시바EMI,92/9/16) 를 발매를 시작으로
93년 5월26일 2번째 싱글 Dancing Junk/Rainbow moon(도시바EMI)
같은 해 11월에 3번째 싱글 아이시떼 Mascut/와가마마오 유루시떼 (도시바EMI)
94년 7월20일에 4번째 싱글 Paradise Train/카나시키 Broken Boy (도시바EMI)를 차례로 발표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성적은 좋지못했다
그룹명을 '아무로 나미에'&'슈퍼몽키즈'로 바꾸면서 95년1월25일 5번째 싱글 "Try Me
(와따시오 신지떼)/Memories"(도시바EMI)가 100만장이상 판매되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낸 계기가되었다
95/4/26일에 6번째 싱글 태양의 계절/하또니 히오 쯔께떼 (도시바EMI)역시 90만장 이상이
판매되는 연속 히트를 기록하게된다
같은해 7월24일에 7번째 싱글 Stop the music/Good night (도시바EMI)가 발매와 함께
'나미에'는 '슈퍼몽키즈'그룹에서 솔로 독립을 하게된다


'나미에'의 솔로 독립으로 어쩌면 '수퍼몽키즈'가 해체될수있는 위기도 있었지만 그 동안 함께 해온
'나미에'와 멤버들간의 끈끈한 우정은 갈라놓을순없었다
'수퍼몽키즈'멤버 모두 '나미에'백 댄서를 자청하며 변함없는 우정과 함께 '서포트'를 자청한다
나중 96년 9월 치바마린스타디움 콘서트때 '나미에'의 솔로 성공을 누구보다도
기뻐해주고 '서포트'해준건 '수퍼몽키즈'멤버들이었다
이후 '수퍼몽키즈'는 그룹명을 바꾸어 MAX로 새출발하지만 '나미에'와의 우정에는 변함이 없을뿐더러
서로 도와줄수있는 멋진 '파트너'로 관계를 유지하게된다
음반회사를 도시바EMI에서 신흥음반사인 Avex Trax 로 옮김과 동시에.그리고 히트메이커로 알려진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코무로 테츠야'와의 만남은 '나미에'가 일본 가요계를 강력하게
흔들준비가 되었다는 '신호탄'과 동시에 앞으로 펼쳐질 '나미에'의 거칠것없는 음악적 행보의 시작이었다


그중에 도시바EMI에서 베스트 앨범 성격의 첫 정식 앨범인 "DanceTracks Vol.1"이(95/10/16) 200만장 정도의 판매를 기록한다
95년10/25일에 '에이벡스'에서의 첫 음반이자 8번째 싱글인 "Body feels exit"를 시작으로
같은해12/4일에 9번째 싱글인 "Chase the chance"로 '나미에'의 시대가 왔음을 팬들에게 확실하게 어필하게된다
96년3월에 10번째 싱글인 "Don't wanna cry/Present"
96년6월에 11번째 싱글인 "You're my sunshine" 발표하는 싱글마다 모두 100만장이상의 높은 판매량은
'나미에'의 존재감을 더욱 상승시키게했다
96년7월22일에 2번째 정식 앨범인 "Sweet 19 Blues" 앨범을 발표 나이에 맞게 노래를 19곡으로 선정
(이때 '나미에'의 나이는 19살) 싱글곡 이외에 새로운 곡도 다수 포함되었다
"Sweet 19 Blues" 앨범은 무려 400 만장 이상이 팔려나가는 폭팔적인 판매량을 자랑하며
'최연소' '최다앨범 판매' '최단기간 최다 판매'로 기네스에 오르기도 했다




96년8월21일에 12번째 싱글인 "Sweet 19 Blues/Joy"를 발표 Joy에서 'M.C.AT'가 레퍼로 '서포트'
Sweet 19 Blues는 '나미에' 첫 출연 영화인 "사상 최대의 작전! 그것은 컨닝!" 에서 엔딩곡으로 쓰였고
여기서 '나미에'는 화학생도로 출연했다 ('엑터즈 스쿨'시절 '연기'에도 수업을 받은걸로 기억된다)
96년9월 치바마린스타디움(일본 프로야구 롯데 치바마린스 홈구장)에서 '나미에'게 있어 역사적인 첫 솔로
콘서트로 이틀간 공연 8만명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게한다
콘서트 공연에서 보여준 '나미에'의 음악적 열정은 8만명이상의 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동시에 완전한 팬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을 보여주었다
성공적인 공연을 위해 누구보다도 힘이 되어주었던 '슈퍼몽키즈'멤버들과 '서포트 세션 뮤지션'들
그리고 수 많은 공연 스탭들 모두 '나미에'에게 있어서는 고마운 존재들이었다





콘서트의 마지막곡인 "Sweet 19 Blues"를 남기고 코무로 테츠야'는 피아노로 발걸음을 하게된다
'코무로 테츠야'역시 자신의 곡들을 너무나 훌륭하게 소화해준 '나미에'에게 대한 보답이랄까?
피아노 건반 반주로 '나미에'와 호흡을 같이하며 '나미에'의 마지막곡을 멋지게 연주해준다
"Sweet 19 Blues"중간 부분에서 '나미에'는 그 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보이며 잠시동안의 침묵이 흐른다
오키나와에서의 어린시절 꿈을 잃지않고 달려온 '나미에"게 있어 굳이 눈물의 의미에 대해서는 묻고 싶지않다
마린 스타디움에 터지고 있는 아름답고 황홀한 불꽃들처럼 '나미에'도 이제는 행복하기를 바랄뿐이다.....
だけど私もほんとはさみしがりやで
誰も見たことのない顔 誰かに見せるかもしれない
하지만 나도 정말은 외로움 잘타는 사람이어서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얼굴 누군가에게 보일지도 몰라
첫댓글 영상에 잔상이 많아 마치 100년 전 기록 영화라도 보는 듯 해요! (^^;
저 때 카메라 저장 기술이 마그네틱 필름을 썼던 때이죠..
리뷰에 어울리게끔 제가 일부러 흑백영화의 오래됀 필름처럼 영상에 입힌거에요^^ DVD로 발매되었던 콘서트 투어 모두 블루레이로 리 마스터링 해서 다시 발매했으면 좋겠네요~
추억의 영상, 사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