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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열광케 한 지적, 예술적 성취 속에는 열정과 광기가 숨어 있다. 불광불급( 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허균, 이덕무 등 18세기 조선의 지식인. 이들은 당대의 마이너였으나 그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열정과 광기로 말미암아 일가(一家)를 이룰 수 있었다.
당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이러한 '마니아적 성향'은 시대적 추세였다. 이덕무는 책에 미쳤으며, 바다 생물에 미친 정약전은『현산어보』를 남겼다. 자신들이 세운 뜻을 위해, 송곳으로 귀를 찌른 이도 있었으며 심지어 굶어죽은 천재도 있었다. 이렇듯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했던, 미치지 않고선 이룰 수 없었던 그들의 열정적 생애는 오늘날에도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또한 1부 벽(癖)에 들린 사람들외에 2부 맛난 만남, 3부 일상 속의 깨달음에서는 인간냄새 물씬 풍기는 그들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김득신의 독수기(獨數記)와 고음벽(苦吟癖)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한 번 척 보고 다 아는 천재도 있고,
죽도록 애써도 도무지 진전이 없는 바보도 있다. 정말 갸륵한 이는 진전이 없는데도 노력을
그치지 않는 바보다. 끝이 무디다 보니 구멍을 뚫기가 어려울 뿐, 한 번 뚫리게 되면
크게 뻥 뚫린다. 한 번 보고 안 것은 얼마 못 가 남의 것이 된다.
피땀 흘려 얻은 것이라야 평생 내 것이 된다.
-일억 일만 삼천 번의 독서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은 자못 엽기적인 독서가다.
아이큐가 절대로 두 자리를 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그는, 평생을 두고 잠시도 쉬지 않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역대 시화 속에는 믿기지 않는 그의 둔재와 무식한 노력이 전설처럼 돌아다닌다.
한 사람의 인간이 성실과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한계를 그는 보여준 사람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다음의 <獨數記> 한 편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백이전(伯夷傳)은 1억1만3천 번을 읽었고, 노자전(老子傳), 분왕(分王), 벽력금(霹靂琴), 주책(周策) ,능허대기(凌虛臺記) ,의금장(衣錦章) ,보망장(補亡章)은 2만 번을 읽었다. 제책, 귀신장, 목가산기, 제구양문, 중용서는 1만8천 번, 송설존의서, 송수재서, 백리해장,은 1만5천 번, 획린해, 사설, 송고한상인서, 남전현승청벽기, 송궁문, 연희정기, 지등주북기상양양우상공서, 응과목시여인서, 송구책서, 마설, 후자왕승복전, 송정상서서, 송동소남서, 후십구일부상서, 상병부이시랑서, 송료도사서, 휘변, 장군묘갈명은 1만3천 번을 읽었다. 용설(龍設)은 2만 번을 읽었고 제악어문(祭鱷魚文)은 1만4천 번을 읽었다. 모두 36편이다.
....(이하 생략)
만 번 이하로 읽은 것은 아예 꼽지도 않고, 만 번 이상 읽은 36편 문장의 읽은 횟수를 적은 글이다.
도대체 김득신의 미련이 아니고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정작 내게 놀라운 사실은 그가 허구한 날 같은 글을 되풀이해 읽으면서
읽은 횟수까지 빠짐없이 적어두었다는 점이다.
김득신이 태어날 때 그의 아버지 김치(金緻)가 꿈에 노자를 만났다.
그래서 아이 적 이름은 노담(老聃)을 꿈에서 보았다고 해서 몽담(夢聃)으로 지어주었다.
하지만 신통한 태몽을 꾸고 태어난 아이는 머리가 너무 나빴다.
열 살에야 비로소 글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흔히 읽던 십구사략(十九史略)의 첫 단락은
겨우 26자에 지나지 않았건만 사흘을 배우고도 구두조차 떼지 못했다.
저런 둔재가 있느냐고 곁에서 혀를 차도 아버지는 화내지 않고 되풀이해 가르쳤다.
아들이 노자의 정령을 타고났으니 자라서 반드시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하면 아버지는 이렇게 아들을 두둔하였다.
“나는 저 아이가 저리 미욱하면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으니 그것이 오히려 대견스럽네. 하물며 대기만성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떠듬떠듬 나아간 끝에 김득신은 나이 스물이 되어서야 비로소 글 한 편을 지어 올리기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그 글을 받아 보고 크게 감격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더 노력해라. 공부란 꼭 과거를 보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아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서 물러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후 그는 더욱 분발해서 남들이 즐겨 읽는 글 수백 편을 뽑아놓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읽고 또 읽었다.
뒤늦게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들어간 뒤에도 길을 걸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남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나 혼자 있을 때나 옛글을 외우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다른 선비들은 그가 식당에서 묵묵히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저 친구 또 고문을 외우고 있구먼?’ 했을 정도였다.
밤에는 늘 책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
누가 까닭을 묻자 “잠에서 깨어 가만히(책을) 손으로 문지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둔한 재질은 어쩔 수가 없었던 듯, 홍한주의 ‘지수염필’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김득신은 지혜가 부족하고 재주가 몹시 노둔했는데도 외워 읽기를 몹시 부지런히 했다.
독서록이 있었는데 천 번을 읽지 않은 것은 기록에 올리지도 않았다.
사마천의 ‘사기’ 중에서 <백이전> 같은 것은 1억1만3천 번을 읽기에 이르렀다.
뒤에 한 번은 말을 타고 어떤 사람 집을 지나가는데 책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글이 아주 익숙한데 무슨 글인지 생각이 안 나는구나.”
말고삐를 끌던 하인이 올려다보며 말했다.
“부학자(夫學者) 재적극박(載籍極博) 어쩌고저쩌고 한 것은 나으리가 평생 맨날 읽으신 것이니 쇤네도 알겠습니다요. 나으리가 모르신단 말씀입니까?”
김득신은 그제야 그 글이 <백이전>임을 깨달았다. 그 노둔함이 이와 같았다.
하지만 만년에는 능히 시로 세상에 이름이 났다.
그의 일화는 대부분 엉뚱하고 기발해서 사람을 포복절도하게 했다.
한 번은 한식날 말을 타고 들 밖으로 나갔다가 도중에 5언시 한 구절을 얻었다.
그 구절은 ‘마상봉한식(馬上逢寒食)’이었다. 마땅한 대구를 찾지 못해 끙끙대자, 말고삐를 잡고 가던 하인 녀석이 연유를 물었다. 마땅한 대구를 못 찾아 그런다고 하니, 녀석이 대뜸 ‘도중속모춘(途中屬慕春)’을 외치는 것이 아닌가? “말 위에서 한식을 만나니 도중에 늦은 봄을 맞이하였네.”로 그럴싸한 대구가 되었다. 깜짝 놀란 김득신은 즉시 말에서 내리더니 “네 재주가 나보다 나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네 말구종을 들겠다.” 하고는 하인 녀석더러 말을 타게 했다. 하인은 씩 웃으면서 사실은 이 구절이 자기가 지은 것이 아니라, 나으리가 날마다 외우시던 당시(唐詩)가 아니냐고 했다. ‘아 참 그렇지.’ 하며 김득신은 자기 머리를 쥐어박았다는 것이다.
...중략.
김득신은 괴로이 읊조리는 벽(癖)이 있었다. 시에 몰두할 때면 턱수염을 배배 꼬며 형상조차 잊었다.
그의 아내가 어쩌나 보려고 점심상을 차리면서 상추쌈을 얹어놓고 양념장은 두지 않았다.
아내가 물었다. “간이 싱겁지도 않아요?”
그가 말했다. “응? 어쩌다 보니 잊어버렸어.”
또 비 오는 밤에 시구를 찾다가 마루로 나가 오줌을 누는데 추녀 끝에 매달려 있던 빗방울이 요강으로 떨어졌다.
오줌에서 빗방울 소리가 나는 줄 알고, 새벽 내내 마루 아래에 서 있었다.
또 한 번은 정두경이 지은 ‘과모화관’이란 시의 ‘해 지는 모화관, 가을바람에 정두경’이란 구절을 좋아했다.
뒤에 모화관을 지나다가 뜻을 얻어, ‘해 지는 모화관, 가을바람에 김득신’이라고 읊조리더니 금세 기쁘지 않은 낯빛으로 “사람의 이름 글자도 또한 음률과 관계가 있구나”라고 말했다.
그는 <백이전>을 1억1만3천 번 읽은 것으로 이름났다.
이때 1억은 지금의 10만을 가리키니, 실제 그가 읽은 횟수는 11만3천 번이다.
그 자신도 이것을 자부해서 자신의 거처에 ‘억만재(億萬齋)’라는 당호를 내걸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얼마나 머리가 나빴으면 길가다 우연히 들려온 <백이전>의 한 구절을 기억 못했다.
말고삐를 끌던 하인조차 질리게 들어 줄줄 외우던 글을 말이다. (...중략)
황덕길은 김득신의 피나는 노력을 말하면서, 부족한 사람은 있어도 부족한 재능은 없다고 했다.
부족해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어느 순간 길이 열린다. 단순무식한 노력 앞에는 배겨날 장사가 없다.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는 동안 내용이 골수에 박히고 정신이 자라, 안목과 식견이 툭 터지게 된다.
한 번 터진 식견은 다시 막히는 법이 없다.
한 번 떠진 눈은 다시 감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어려운 책을 몇 번 읽고 줄줄 외웠던 천재들의 글은 지금 한 편도 전하지 않는다.
남은것은 그런 천재가 있었다는 풍문뿐이다.
김득신은 그렇지가 않았다.
공부를 아무리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사람은 김득신을,
아니 그의 끝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스승으로 모실 일이다.
- 이상 본문 중, '김득신의 독수기와 고음벽' 중에서 인용 -
지은이 : 鄭珉 -충북 영동 출생. 현재 한양대 국문과 교수다. 무궁무진한 한문학 자료를 탐사하며 살아 있는 유용한 정보를 발굴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꼼꼼히 읽어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을, 다산 정약용이 창출한 새로운 지적 패러다임과 그 삶에 천착하여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다산의 재발견』 『삶을 바꾼 만남』을 펴냈다. 더불어 18세기 지식인에 관한 연구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과 『미쳐야 미친다』 등이 있다. 또 청언소품에 관심을 가져 『마음을 비우는 지혜』 『내가 사랑하는 삶』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돌 위에 새긴 생각』 『다산어록청상』 『성대중 처세어록』 『죽비소리』 등을 펴냈다. 이 밖에 옛글 속 선인들의 내면을 그린 『책읽는 소리』 『스승의 옥편』 등의 수필집과 한시 속 신선 세계의 환상을 분석한 『초월의 상상』, 문학과 회화 속에 표상된 새의 의미를 찾아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모든 것을 담은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를 썼다. 아울러 한시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한시 미학 산책』과 어린이들을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충북 영동 출생. 현재 한양대 국문과 교수다. 무궁무진한 한문학 자료를 탐사하며 살아 있는 유용한 정보를 발굴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꼼꼼히 읽어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을, 다산 정약용이 창출한 새로운 지적 패러다임과 그 삶에 천착하여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다산의 재발견』 『삶을 바꾼 만남』을 펴냈다. 더불어 18세기 지식인에 관한 연구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과 『미쳐야 미친다』 등이 있다. 또 청언소품에 관심을 가져 『마음을 비우는 지혜』 『내가 사랑하는 삶』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돌 위에 새긴 생각』 『다산어록청상』 『성대중 처세어록』 『죽비소리』 등을 펴냈다. 이 밖에 옛글 속 선인들의 내면을 그린 『책읽는 소리』 『스승의 옥편』 등의 수필집과 한시 속 신선 세계의 환상을 분석한 『초월의 상상』, 문학과 회화 속에 표상된 새의 의미를 찾아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모든 것을 담은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를 썼다. 아울러 한시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한시 미학 산책』과 어린이들을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사계절에 담긴 한시의 시정을 정리한 『꽃들의 웃음판』을 썼다.
※ 책 소개와 지은이 소개는 인터넷 YES 24에서 모셔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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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일듯 시포요^^
울 태후니,
이 선배가 선물할게~
^^
대신, 한 줄도 빼 놓지 않고 읽을 것~!
태후니만의 癖 하나, 기대하면서...
ㅋㅋㅋㅋ
참 많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두 번 이상 읽은 글, 책이 어떤 책이었나? 생각해도 도무지 생각나지 않네요. 아울러 재미있으면 열번 스무번 읽어서 내용을 줄줄 외우던 손녀에게 다독을 권장하며 읽은 책 또 있느냐고 뭐라 했던 순간이 떠 올라 더욱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습니다.
이 정도면 미친(及)겁니다.
어떤 글을 봤을 때
스스로를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면 오십 점,
그로 인해 댓글까지 달게 될 정도면 팔십 점,
정말 개선한다면 백점이겠지용~ㅋㅋㅋ
100점은 사실 힘들겠지요~~~
다만, 100점의 주인공이 되려 노력하는 그 시간들이말로
백점이 아닐까...^^
학교에서 만난 인연은 후배님이지만
사회에선 선배님이시네요~^^
두루 배우는 한 해였답니다.
행복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귀감이 되는 글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0^*)/
아...제가 본받고 싶은 인물중 하나인 백곡 김득신...
(다른분은 다산 정약용의 제자 황상입니다. 두분 모두 노력과 끊임없는 열정으로 경지에 오르신 분들이죠)
그분이 스스로 지은 묘비명에 이런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었으나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
제 마음을 움직인 그분의 말입니다.
백곡 김득신님에 대한 글을 보는순간 왈칵, 반가움이 앞섰습니다!^^
아...그러고 보니, 황덕길님의 말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면 어느순간 길이 열린다 라고 한 뒤쪽의 전체 문장은, 다산 정약용이 제자 황상에게 처음 해주었던 내용과 거의 비슷한 내용이네요, 글에 친근함을 느낀 이유가 아마도 동질감이 아닌지...^^ 좋은책 소개 감사합니다.
@조현미(09, 동문) 자신이 아둔하여 제자가 될 수 있을지 되묻는 황상에게 다산이 해준 말이 위의 책에서 황덕길님이 하신 말과 거의 일맥상통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제가 예전 빛샘 카페에 올렸던 글을 한번 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