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석에서
누가 육상을 비인기 종목이라 했나
손경찬 수필가 (사)대구예총 예술소비운동공동본부장
대회 나흘째 경기장은 여전히 만석. 7시 여자 허들 400m 준결승을 시작할 무렵 선수석 외에는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연일 만석이다. 누가 육상을 비인기 종목이라 했나! 첫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이 스타트라인에 섰을 때 대형 화면에 귀여운 살비가 등장, 입술에 손을 대고 ‘쉿’, 장내는 조용하다. 선수들은 질주했고 박수소리 요란하다. 대구의 관람 수준이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뿌듯하다. 경기장에서 경기만 보는 것이 아니라 높은 시민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보통 재미가 아니었다.
경기 중간 시상식을 가졌는데 금메달의 위대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상대에 메달을 딴 선수들이 메달을 목에 걸고 서면 금메달을 딴 국가의 국가가 울려 퍼지고 국기가 올라간다. 수만 관중이 일어서서 그 나라 국가를 듣고 국기를 주목한다. 일어서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을 법도 하건만 내 시야에서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스포츠가 국가 브랜드를 높인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미녀새’ 이신바예바, 여자 장대높이뛰기 5m06의 세계신기록 보유자, 27차례나 기록을 갱신했던 선수, 그에게 보내는 관중의 응원은 참으로 대단했다. 그러나 그는 4m60는 넘어섰지만 그 뒤로는 ‘미녀새’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관중들은 참으로 많이 안타까워했다. 영원한 승자는 없는 것인가.
나흘째 저녁 경기는 필드에서 여자 장대, 남자 원반. 나머지 7경기는 트랙 경기였다. 사력을 다해 달리는데 앞선 선수에게 환호를 보내는 건 당연하지만, 나는 뒤쳐져오는 선수들에게 눈길이 가 짠해지는 걸 억누르기 어려웠다. 아직은 어리다고 할 수밖에 없는 선수들이 각 나라를 대표해서 참가했는데 얼마나 아쉬울까. 그러나 세계대회가 인류 평화를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이라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여자 7종 경기 결승을 끝내고 그 경기에 참석했던 선수들이 우승자는 자국의 국기를 들고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 모두 트랙을 돌며 중간 중간 손을 잡고 길게 늘어서 인사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스포츠의 위력이다.
9시 30분쯤 되었을까, 본부석 뒷쪽이 술렁댔다. 장내 아나운서는 수영스타 박태환이 왔다고 알려주었고 잠깐 대형 화면을 스쳐갔다. 마지막 경기인 400m 남 출발 직전 아나운서의 멘트는 물속의 400m 스타가 왔는데, 땅위의 400m 스타를 가리는 경기라는 센스있는 멘트를 날려 관중을 기쁘게 했다. 경기가 끝나는 게 아쉬웠다. 육상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 줄 몰랐다. 또 하나 얻는 생각은 육상 경기도 관중이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축제로 승화시킨다는 것을, 대구대회의 성공은 선수와 대구시민이 함께 만들어내는 것, 장하다 대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