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양씨(南原梁氏) : 시조 : 양을나(良乙那) 시조는 양을나이며 양탕의 후손 우량이 757년
(신라 경덕왕 16)때 공을 세워 남원백에 봉해졌으므로 제주에서 분적하여 본관을 남원으로
하였다.그러나 문헌의 실전으로 선계를 상고할 수 없어 능양(병부공파), 주운(용성군파), 윤
위(장영공파)를 1세조로 하여 각각 세계를 이어왔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견이 광정
대부에 책록되고 진현관 대제학을 거쳐 지춘추관사를 역임하였으며, 동국의 백이숙제라 불
렸던 우가 판도판서와 진현전 대제학에 올라 가문을 중흥시켰다.조선에서는 관료파 학자로
서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성지가 유명하였는데, 그는 세종 때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세조 때
이조판서를 지내고 대사헌, 대제학을 거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그의 손자 연은 별시문과
에 급제하여 병, 이조판서를 거쳐 판중추부사에 이르렀고 증손 구신이 임진왜란 때 많은 공
을 세우고 순절하였다.이외에도 희가 춘추관 편수관으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구국전선에 앞장선 대복과 홍주, 그리고 몽열과 황,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어영대장과 형, 공조판서를 역임한 현수 등이 유명하였다.근대에
와서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위해 몸을 받친 의병장 상기와 한규, 독
립운동가로 광복군 사령부 교육위원장을 지낸 기하와 조선혁명당군의 총사령관을 역임한 세
봉 등이 남원양씨의 가문을 빛냈다. 전남 화순군 이양면 일원전남 화순군 도곡면 일원
용장서원 양능양 전북 남원군 주생면 상동리
용장서원 양주운 전북 남원군 주생면 상동리
용장서원 양대박 전북 남원군 주생면 상동리
구천서원 양희 경남 함양
월곡서원 양우 전남 담양
대포서원 양성지 경기도 김포
월곡서원 양성지 전남 담양
심근서원 양원달 강원도 삼척
경문서원 양서 평북 영변군 독산면
경문서원 양우경 평북 영변군 독산면
문헌서원 양우준 평북 영변군 영변면 용추동
구암사 양성지 충남 금산군 부리면 평촌리
충민사 양지 충남 청양군 운곡면 모곡리
삼절사 양지 부산직할시
삼절사 양조한 부산직할시
삼절사 양통한 부산직할시
충민사 양진국 평북 안천
충의문 양대박 전북 남원군 남원읍 화정리
충의문 양경우 전북 남원군 남원읍 화정리
충의문 양형우 전북 남원군 남원읍 화정리
첫댓글 자세한 설명 감사 하구요 잘 몰랐던 사실도 있네요.그런데 뭉크님은 누구...?
조카~그 마싯는 오리도 몬묵고 벌초하시느라 고생이 많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