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 1, 2, 3(The Godfather 1, 2, 3 1972-1990) : 일그러진 영웅의 몰락으로 드러나는 미국의 치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
신천지, 약속의 땅이었던 미국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가. 미국의 1970년대는 집단적 나르시시즘의 시대였고, 코폴라는 미국의 번영 뒤에 가려져 있던 치부를 갱스터 영화의 양식을 빌려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1972년에 시작된 <대부> 시리즈는 1990년대에 와서야 3부작이 완성됐다.
제1부는 비토 코를레오네의 쇠락과 마이클의 성장, 제2부는 비토의 젊은 시절과 마이클 가족의 해체, 제3부는 마이클의 사회적 성공과 쓸쓸한 죽음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 세 편의 이야기 구조는 모두 같다. 화려한 파티와 은밀한 거래에서 시작해 음모와 살인, 갈등이 빚어진 다음 혼자 남은 마이클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 것이다.
코폴라는 마이클을 순수 악이자 미국적 부패의 총체적 상징으로 그리려고 했다. 그러나 1편에서는 관객이 마이클에 은근히 동조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이는 권력에 대한 관객의 환상과 욕망을 마이클이라는 인물이 충족시켜 준 탓이기도 하지만, 이야기 구조 차체가 신화나 전설의 서사적 구조를 닮았기 때문이다. 갱스터 영화의 보편적 특성 가운데 하나인 고독한 영웅(마이클)과 그 적들, 그리고 영웅을 돕는 후원자(비토)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친숙한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마이클을 동정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그래서 2편에서 코폴라는 마이클을 좀더 고통스런 인물로 묘사하기로 했고, 그와 더불어 아메리칸 드림의 악몽을 좀 더 깊이 그리고자 했다.
시칠리아에서 피살의 위험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비토는 성공의 기회를 잡는다. 하지만 그것은 살인과 범죄의 대가로 이룬 것이었다. 그가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것은 가족의 안전과 패밀리(조직)의 영화였다. 때문에 그러한 가치와 사회적 가치는 늘 대립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이클은 이러한 아버지의 뒤를 이으면서 음지에서 양지로, 암흑가의 보스에서 존경받는 기업가로 끊임없는 변신을 꾀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노력은 그를 암흑의 세계로 더 깊숙이 빠져들게 하고, 가족과도 멀어지게 만들며, 마침내 혈육인 형까지도 죽이게 한다. 아버지 대에서 시작된 원죄는, 마이클이 아무리 씻으려 해도 씻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어만 간다.
3편에서 마이클은 그 죄의 대가를 가장 처절하게 치른다. 1편과 2편에서 소외돼 가는 모습으로만 비치던 마이클이 3편에서는 목숨과도 같은 딸을 잃고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코폴라는 미국적 악몽의 상징인 마이클을 처단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죄에도 불구하고 코폴라는 미래에 대해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하다. 코를레오네 패밀리는 마이클 이후에도 그가 평생 소원했던 합법적 기업의 탈을 쓰고, 한층 더 냉혹한 조카 빈센트를 통해 사업을 계속 확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선과 악의 구분은 무엇인가. 미국적 가치의 숭고함은 어디에 있는가. 낙원을 만들고자 했던 이민세대의 꿈과 희망은 처절한 악몽이 되어 후세대에 이어지고 있지만, 그 악몽이 깨어질 가능성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코폴라의 미국 묵시록, 이 비극의 대서사시는 그래서 너무나 암울하다.
ㅡ김지석
33년 만에 <대부> 스크린으로 돌아오다
영화 <대부>가 스크린으로 돌아온다. 1972년 미국에서 개봉한 지 38년, 한국개봉으로는 33년 만이다. 타임지 선정 100대 영화, 엠파이어지 선정 최고의 영화, IMDB 관객평점 역대 2위 등 수많은 기록과 찬사를 받은 영화. 영화 학도들에겐 갱스터 무비의 교과서, 영화시나리오의 교본으로 꼽히며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전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걸작을 스크린으로 다시 만난다는 것은 영화를 사랑하는 누구에게나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더구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 빛이 더욱 찬연해지는 ‘고전’을 다시 재조명함으로써 현대의 트렌드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어 더욱 의미가 클 것이다.
거장 감독들의 염원이 만들어 낸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젝트
영화<대부> 시리즈 디지털 복원작업
영화 <대부>를 스크린으로 다시 만날 수 있게 한 것은 영화 <대부>의 디지털 복원 작업 덕분이었다. 할리우드 자료보관사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일수록 오리지널 필름은 더 많이 손상되고 상처를 입는다.’라는 말이 있다. 흥행에 실패한 영화는 찾는 사람이 적은 만큼 자료는 비교적 깨끗한 상태로 보관되는 반면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그만큼 필름 여기저기 ‘영광의 상처’를 간직한 채 세월을 견뎌야 한다는 얘기다.
70년대에 제작되었던 영화 <대부 I>, <대부 II>가 바로 그 대표작이었다. 두 작품 모두 30여 년의 세월 동안 파라마운트사의 자료보관소에서 쇠락해져 가고 있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언젠가 <대부> 시리즈를 디지털로 복원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고, 2006년 마침내 프로젝트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스필버그 감독이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대부>시리즈의 디지털작업에 누구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스필버그 감독이 코폴라 감독을 대신해 파라마운트사를 설득했고, 그 덕분에 <대부 I>, <대부 II>의 디지털 복원이 가능했던 것이다.
영화 <대부>가 남긴 기록, 기록들
영화<대부 I>과 <대부 II>는 영화사상 다시 없을 만큼 많은 기록과 추앙을 한 몸에 받았다. <대부 I>은 1973년 45회 아카데미시상식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작품상, 남우주연상, 각색상을 수상했다. 1973년 제작된 <대부 II>로 47회 아카데미에서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각색상, 음악상, 미술상 6개 부문을 석권해 전편에 이은 연속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더구나 영화사상 속편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유일한 영화가 되었으며, <대부> 시리즈는 갱스터 무비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영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