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감사 할래? 천석꾼 집 마름 할래? 나는 마름 할라우. 나도 마름 하겠수. 나도 마름. 나도 마름.
대체 마름이 뭐기에 모두가 평양감사를 팽개치고 마름을 하겠다는 건가. 마름은 지주를 대신해 소작농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그 자리가 뭐 그리 대수인가? 모르는 소리. 몇마지기 논이나 밭뙈기에 매달려 사는 소작농에게 마름은 저승사자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다.
벼가 누렇게 익기 시작하면 마름의 끗발은 하늘을 찌른다. 마름은 두루마기 자락을 펄럭이며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이 논은 나락 한섬 세가마.”
“저 논은 나락 두섬.”
소작료를 매기는 것이다.
뒤에서 졸졸 따라오던 소작농은 마름의 두루마기 자락을 잡고
“아이고 나으리~, 이 논에서 한섬 세가마를 바치면 저희 식구들은 겨울을 못 넘기고 모두 굶어 죽습니다요. 살려주십시오~.”
논마다 이런 실랑이가 벌어지지 않는 곳이 없다. 이러니 마름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겠나!
마름은 누가 하는가? 보통은 부잣집의 집사가 하는 게 상례다. 그러나 권 참사는 달랐다. 천석꾼 부자이면서 처가쪽 조카인 집사를 두고도 마름 자리는 자신이 직접 했다.
권 참사가 소작료를 정하러 대문을 나서면 새벽부터 소작농들은 대문 밖에서 기다리다가 서로 다투어 점심식사는 자기 집에서 하라고 간청을 넣는다.
“아닐세. 노 생원 집에서 하기로 이미 약조를 했네.”
노 생원이 부치는 논 다섯마지기와 밭 세마지기는 개울 건너 산 밑에 외따로 떨어져 있다.
권 참사가 이 논, 저 밭을 돌아다니며 소작료를 책정하다가 점심 나절에 외나무다리를 건너 노 생원 집에 도착했다. 노 생원의 안내로 안방에 들어가자 개다리소반에 씨암탉 백숙이 모락모락 김을 올리고 있었다.
천하의 권 참사가 씨암탉이 먹고 싶어 노 생원 집을 찍었는가. 아니다.
부엌문이 열리고 노 생원의 부인이 막걸리 호리병을 들고 들어왔다.
“참사어른 한달 만에 다시 뵈오니 용안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허허 자네는 더 예뻐졌네.”
한달 전에 노 생원 부인이 꿩고기 만두를 빚었다면서 한접시 들고 찾아왔을 때 권 참사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목구비가 또렷한 뽀얀 얼굴에 허리띠를 바짝 매어서 엉덩짝 윤곽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날, 한달 후의 점심약속을 했던 것이다.
“약주 한잔 올리겠습니다. 참사 어른.”
색기 어린 눈으로 권 참사를 올려다봤다.
“어머머!”
노 생원 마누라가 술을 따르다 말고 문을 열고 나가더니
“여보, 참사 어른께 어찌 막걸리를 올립니까! 빨리 도가에 가서 청주 두병만 사오세요.”
노 생원이
“맞아, 내가 그걸 생각 못했네.”
노 생원이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노 생원 부인이 바짝 다가앉아 백숙을 찢어서 권 참사 입에 넣어줬다.
“이보게, 막걸리도 괜찮으니 한잔 따르게.”
“참사께서 이런 천한 술도 드십니까?”
생긋이 웃으며 한잔 따랐다. 술잔을 들이켤 때마다 노 생원 부인이 손으로 찢은 백숙을 권 참사 입에 넣어주는데 두 손가락이 입 깊숙이 들어와 권 참사가 물어버렸다.
손가락을 빼지 않고 물린 채 달라붙어 앉느라 그녀의 무릎이 권 참사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권 참사의 하초가 뻐근해졌다.
술도가까지 20리, 노 생원의 걸음이 아무리 빠르다 한들 반나절은 걸릴 터! 권 참사가 슬며시 노 생원 마누라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저고리를 벗기고 치마끈을 풀자 살짝 거절하는 척하더니 양팔로 권 참사의 목을 감았다.
벌거벗은 권 참사가 그녀 위로 막 오르려는데 방문이 벌컥 열리며 노 생원이 들어오다가 ‘악!’ 비명을 질렀다. 두 사람이 후다닥 옷을 입는데, 노 생원은 마루를 두 손바닥으로 치며
“청주 사러 가다가 가만히 생각하니 다락 속에 더덕술이 있는 게 생각나 돌아왔더니…. 아이고, 아이고~.”
노 생원이 대들보에 목을 매려는 걸 마누라와 권 참사가 낫으로 줄을 끊어 살려놓았다. 권 참사는 앞이 캄캄했다. 사또에게 발고라도 하면 어쩔 거며 동네방네 소문이 나면 특히나 며느리 둘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협상이 벌어졌다. 권 참사가 노 생원이 소작하고 있는 논밭 문서를 그에게 넘긴다 해도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 더 보태, 권 참사네 마름 자리를 노 생원에게 넘기는 것으로 없던 일이 되었다.
부부사기단의 원조인가?
꼬리칠땐 조심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