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원
지난 수요일 오후에 친구들과 헤어져 자전거로 전주 삼천 산책길을 달렸다. 혹시 봄볕에 자란 달래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설렘을 지니고 있었다. 매나니로는 달래를 캘 수 없으므로 쇠꼬챙이도 한 토막 챙겼다. 벌써 여러 해 동안 산책길에 눈여겨보아 몇 군데 달래가 자라는 자리를 알고 있기에 몇 뿌리는 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른 갈대 사이를 헤치고 달래가 낫던 자리를 찾아갔다. 안타깝게도 이미 누군가 주변을 온통 파헤쳐 한 오라기도 남기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달래를 캘 때도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 굵은 것만 담고 가는 오라기는 잘 묻어주어야, 그것이 자라서 가을에 씨를 남기고 봄까지 남아 또 캘 수 있는 법이다. 봄나물을 모르는 초심자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 자리에서 달래의 씨를 말려버린 것이다. 달래를 캐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다른 자리에서도 그런 일이 눈에 띄면 마음이 더욱 불편할 듯했고, 혹시 내가 캐지 않고 두어서 씨가 퍼지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쇠꼬챙이도 버리고 자전거를 씽씽 몰아 생태공원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다가 매년 달래를 보던 자리가 생각나서 가보았다. 제방 길섶에 마른 풀 사이로 보랏빛이 아련하게 감도는 달래 몇 뿌리가 보였다. 아직은 여리고 고불고불한 달래 잎이 성깃성깃 나 있다. 손으로 가만가만 쓸어주니 향긋한 냄새가 퍼진다. 서너 뿌리만 캐어도 한 종지의 달래 간장을 만들어 봄맛을 볼 수 있을 터이지만, 아까 본 광경이 생각나서 허리를 폈다. 그리고 주변에서 마른 풀과 작은 나뭇가지를 주어다가 그 위를 덮었다. 누군가의 눈에 뜨이지 말고 자라서 씨를 퍼뜨려 내년 봄을 더 향기롭게 해주기 바랐다. 돌아오면서 내내 달래 생각을 했다. 제발 누구의 눈에 뜨이지 말고 무사히 올해를 넘길 수 있기를. 그리고 내가 몇 뿌리를 가져오지 않은 일이 퍽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조금 행복했다.
집으로 향해 오다가 ‘완주군 로컬 푸드 판매장’에 들렀다. 봄맛을 보려다 냄새만 맡고 집에 들어가는 일이 조금 서운했을까? 농민들이 내놓은 딸기, 토마토를 비롯하여 갖가지 나물과 농산물이 널려있다. 재배한 달래가 있고 돌나물, 머위 잎, 땅두릅, 돌미나리가 보였다. 돌미나리도 요즘은 재배하여 출하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노인들이 개울가에서 자라는 야생 돌미나리를 캐어 내다 파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조금 자잘하고 억세 보이는 것을 한 봉지 골랐다. 도톰하고 연해 보이는 것은 재배하여 거름이 좋은 곳에서 자란 것이리라는 짐작으로 고른 내 선택은 옳았다. 집에 와서 씻으면서 본 돌미나리는 다듬으며 버리는 부분은 많았어도 향긋한 냄새가 그만이었다. 몇 번이나 씻어서 소금물에 데쳐, 마늘을 다져 넣고 소금과 깨소금만으로 무쳤다. 무치면서 한 입 맛본 돌미나리는 아삭하고 향기로워 입안에 봄이 가득하고 넘쳤다. 달래 향을 포기한 대신 돌미나리가 날 행복하게 해주었다.
향긋한 저녁밥을 먹고 컴퓨터를 켰다. 요즘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포토샵 CC를 만나 그 매력에 빠져들고 싶어서이다. 사진을 좋아했던 내가 미국 어도비(Adobe)사의 사진처리 프로그램인 포토샵을 만난 건 90년대 초반이었다. 그때부터 진화를 거듭하는 프로그램을 따라잡느라 새 버전이 나오면 날밤을 새우며 새로운 기능을 익혔다. 당시는 젊은이들도 포토샵을 잘하는 사람이 드물어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나오면 애를 먹었다. 그러다가 아내의 발병으로 포토샵도 멀어져 새로운 기능에 별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우연히 옛날에 가입했던 포토샵 연구모임 카페에 들어갔다가 최신 버전에 대한 내용을 보았다. 눈이 번쩍 뜨이게 달라진 새로운 ‘Photoshop CC 2015’의 시험판을 내려받아 설치하고 컴퓨터 바탕화면에 만족스럽지 못하게 수정되어 있던 아내의 사진 원본을 수정해보았다. 못마땅했던 부분이 완전하게 고쳐지는 데 불과 1~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녀의 고운매가 살아나고 당장에 내게 말이라도 걸 듯하다. 내가 몇 시간에 걸쳐 작업해도 시원치 않았던 사진이었는데…. 곧바로 프로그램을 익히는 책을 주문하고, 헤어졌던 포토샵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지금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 새로이 만들어진 기능들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나는 지금 포토샵을 다시 만나 사랑하느라 행복하다.
아내를 잃고 상심에 빠져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대며 몇 달을 보내면서 마음을 달래려 이런저런 처방을 해봐도 실효가 없었다. 수필에 마음을 얹어보려고 안간힘 하다가 어느 날 문득, 내 처지에 맞는 삶을 생각하게 되고 작은 행복이라는 명제를 얻었다. 흔히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이름을 너무 높고 무거운 것으로 설정하여, 이루어내려고 안간힘을 하다가 좌절하고 스스로 불행한 사람이라고 자처해버린다. 남들이 부러워하고 알아주는, 그럴싸한 일이 일어나야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자랑할 만한 일이라는 게 누군가에겐 불행이 되었던 일을 포함하고 있다면 그건 행복이 아닐 것이다. 편법과 보편적인 기준에 이르지 못하는 일을 해놓고, 그것을 정당화하려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부당한 방법으로 경쟁에서 이긴 일을 두고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도둑의 심보가 아닐까? 나는 주변에서 행복하다고 드러내며 자랑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이런저런 행복을 나열하는 가운데에는 결코 자랑일 수 없이 부끄러운 속내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횡행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지만, 행복하다고 자랑하기 전에 과연 떳떳한 것인지 열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가장 사소하고 남들에게는 의미 없는 일일지라도 그 하찮은 일이 떳떳하여 내게 보람이고 기쁨이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잇달아 일어나서 하찮고 시시한 일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삶을 살련다. 어둡고 슬픈 기억들을 지우고, 더 작은 일에서, 의미 없을 법한 일에서 행복의 꼬투리를 찾아내는 눈높이와 지혜가 내 남은 시간 내내 함께하기 바란다.
첫댓글 행복의 꼬 투리를 찾아 내는 눈높이와 지혜,,,
그 속에서 우린 작은 행복을 발견하듯 그 행복 에서 많은 것을 만끽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아침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가르침의 시간 속에
머물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