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두타문학 게재요.hwp
<2020 두타문학 게재용>
<태마시>
태풍 루사 기억하기
1. 사진첩
흙 묻은 사진첩을 버린다
정원에 가꾸던 갖가지 나무들
산판 내던 전기톱에 윙윙윙
추억의 나무 밑둥치가 잘린다
초등학교에서 대학 사진첩까지
외동딸 졸업 사진첩도 함께 버린다
결혼식 사진첩도 버린다
살다가 이따금 사진첩을 열면
추억이 활짝 꽃으로 피어났지
루사 전 내가 이 집을 우겨서 샀어
아내와 딸에게 자꾸 미안하다
갑자기 과거가 정전이 되어 캄캄하다
2. 구호물품
수재민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
물에 놀란 수재민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게 물이었어
거참 생각할수록 이상하지
어릴 적에도 해일이 났었지
구호물품으로 받은 빨간 운동화 한 켤레
나는 골목을 한 치씩 떠 다녔어.
그 때는 빨간 운동화가 기쁘게 했어
수해를 입었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
경자庚子야, 부탁한다 외 3편
김진광
경자년 아침 찬란한 해가 솟았다
동해바다로 줄을 서 몰려온 사람들 가슴으로
고개 위와 산 위, 두 손 모은 사람들 가슴으로
아직 잠자는 엄마 품속 아기들 고운 가슴으로
이글이글 붉게 타오르는 희망의 해가 솟았다
같으면 옳음으로, 다르면 그름으로 쪼개져
이편 저편으로 갈라서 눈흘기던 대한민국
경자년 첫날, 바다와 해를 향해 함께 섰다
풍요와 다산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쥐띠 해
새해 첫날 아침 구름없는 맑은 얼굴 경자庚子야
취직도, 부동산 값도, 수츨도, 남북관계도,
한일관계도, 한중, 한미관계도 술술 풀어다오
모든 강을 차별없이 안아주는 바다여,
어디에서 흘러왔는지 묻지 않는 바다여,
우리의 반목과 불신과 다름을 모두 안아다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2마리 짐승들 중에서
제일 먼저 앞장서 하얀 쥐 경자庚子가 왔다
모든 시작은 가슴 설레이고 꿈이 있다
경자庚子야, 올 한 해 꼭 부탁한다
* ‘새해 아침을 여는 시’ 삼척동해신문 게재
남프랑스 니스
유럽 작은 나라 모나코와 가까운 거리
기후가 연중 온란하고 아름다워 다시 찾는
유럽인들이 사랑하는 지중해 항만 도시 니스
세상의 돈 많은 사람들 별장이 즐비하고
밤새도록 카지노에는 불이 꺼지지 않고
해변 야자수가 바람에 바다를 흔든다
에멜라드 빛 바다에서 방금 나온 인어들
상체를 벗고 햇살에 몸을 말리고 저만치
썬글라스를 낀 식인 상어들이 바라보고
얼마전 큰 자동차를 몰고 돌진하여
죄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거리에 서서 잠시 기도를 한다
동양인은 모자를 쓰고 파라솔 아래 앉는데
유럽 사람들은 햇살 아래 벗고 눕는다
햇살 좋은 날은 작은 자리에 누워
햇살을 쬐는 서양 해바라기들
식인상어들이 선글라스 너머로 보고 있다
이탈리아 버스 기사 다니엘
한 열흘 쯤 우리와 예약된 사람
키 크고 코크고 잘 생긴 관광버스 기사
베네룩스 3국에서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동안
얼굴은 흐렸다, 비 왔다, 해났다 야단법석
일찍 퇴근하고 집안일도 잘 돕지만
몸에는 바람기가 묻어있는 밀라노 남자
이혼하면 불알만 두 쪽 찬다는 밀라노 남자
한국 여성을 참 좋아한다고 선언하는 남자
그 말 듣고 60대 아내 가슴 좀 설렜을까
하루 일하는 시간, 주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더 이상 차 운행이 금지된 우리와 다른 나라
이탈리아 축구 대표가 국제 경기가 열리는 날은
중계시간 맞추어 버스 운행시간을 맞추는 기사
돈을 버는 가장 큰 이유를 물으면
멋진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멋진 가족의 여름 바캉스를 위해
그리고 주말에는 바캉스를 즐기기 위해
돈 벌어 부자 되려는 우리와 좀 다른 사람
지금도 관광객을 싣고 유럽 어느 길을 달리겠지
멋진 여름 바캉스 멋진 크리스마스 맞이하길
하루 관광이 끝나는 저녁 호텔로 돌아갈 때면
우리는 항시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었어
“그라제, 다니엘!”하고……
*‘그라제’는 이탈리아어로 ‘감사합니다’ , ‘다니엘’은 기사 이름
피니시
-터키 여인
눈 덮인 독일 하이델베르크 성을 구경하고
로텐부르크 동화 속을 걸어 나와서
소도시 한적한 거리 끝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식사 시간 호텔의 식당에 들렸다
처음 나온 보리스프 짜서 물을 타 먹고
소시지와 양배추 요리도 역시 짜다
유로 권에서 잘 사는 독일 음식 왜 이렇게 짠가
몸무게를 늘이기 위해 도살장에 들어가기 전
소에게 소금을 먹이고 물을 먹인다는 말
문득 떠오르는 저녁, 입가심 흑생맥주를 시켰다
접시와 맥주를 나르는 종업원 터키 여인은
연신 ‘피니시?’하고 웃는 다 우리도 웃으며
3유로짜리 생맥주를 소금 먹힌 소가 물마시듯
자꾸 시켜 마셔도 오랫동안 혀가 짜다
피니시 참 좋은 말이다 한 접시의 음식을 먹고
한 잔의 생맥주를 마시며 오늘을 마무리 하는
너와 내가 손잡고 이국의 별을 언뜻 바라보는 밤
문득 터키 여행을 했을 때가 떠오른다
여기는 터키예요 모든 건 신의 뜻대로
오늘 저녁 음식과 술은 독일식대로
오늘 밤 일정은 아내 금자 씨 뜻대로
삶이 끝날 때도 이번 여행처럼 행복하기를
*피니시(finish) :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