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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
일본전도 / 욱일기(旭日旗) / 일장기(日章旗)
♠ 욱일기: 일본 제국시대의 일본군 깃발 ♠일장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공식 깃발
♠ 변천: 일본 제국주의가 붕괴(2차 대전) 되자 육군과 해군의 깃발이었던 욱일기는 없어지고 간소화한 일장기가 대신하게 되었다.
<일본 개관>
♠면적: 약 38만 ㎢(남한 면적의 약 4배) ♠인구: 약 1억 2,600만 명 ♠인종: 일본인 98.5%, 기타 소수민족
♠수도: 도쿄(東京) ♠언어: 일본어 ♠1인당 국민소득: 약 4만 USD ♠환율: 일본돈 100엔(円)=한국돈 약 1.128원
♠종교: 토착신앙(神道) 47.4%, 불교(佛敎) 47%, 기타 5.6%
◐ 일본 배낭여행
평소 가깝게 지내는 동료 세 명과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일본열도 배낭여행을 해보자고 의논이 되었는데 막상 떠나려하니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모두 나이가 60대라 8박 9일간의 빡빡한 여행일정을 소화해 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 일본어는 내가 조금 가능하긴 하지만 다른 이들은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도 걱정스러웠다. 여행 계획은 인터넷으로 꼼꼼히 세웠는데 부산에서 배로 후쿠오카로 가서 곧장 도쿄까지 간 다음 후지(富士)산 등산을 하고 후쿠오카로 내려오면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지를 중심으로 관광하는 것으로 짰다. 카페리는 경로할인가격으로 왕복 18만원, 일주일짜리 JR패스는 하필이면 엔화가 가장 비쌀 때(100엔=1.440원)여서 41만원...
<1차 여행: 2009. 8월>
1. 후쿠오카(福岡)의 하카다항(博多)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의 모텔에서 자고 9시 배로 떠났는데 쾌속선이라 2시간 50분 만에 규슈(九州)의 하카다항에 도착하였다. 버스로 하카다 역까지 이동하여 도쿄 행 신칸센의 좌석을 예약하여 출발시간이 가까웠는데 방송으로 야마구치현(山口縣)에 폭우가 내려 철도가 불통되어 복구중이라 기다리라고 한다.
할 일없이 두어 시간을 대합실에서 서성거리다가 결국 운행중지로 다음날 표를 예약하고 호텔을 잡으러 역 앞을 서성거리다 저렴하기로 소문난 토요코인(東橫Inn)에 짐을 풀었다. 다음 날에도 아침부터 대합실에서 서성거리다가 떠나지 못하고 결국 이틀을 허비하고 말았다. 그럴 줄 알았으면 마지막 날로 잡혀있는 아소(阿蘇)산, 구마모토성(熊本城) 관광과 벳부(別府) 온천이나 다녀올 것을.... 계속 기다리라는 방송 때문에 하릴없이 대합실(待合室)에서 서성거리다 오후에 후쿠오카 시내 관광을 하였다.
짧은 일본어로 JR 패스를 끊었는데 폭우로 이틀 간 꼼짝을 못했으니 사용기간 연장을 해 달라.... 가까스로 일본 철도청의 승인이 떨어졌다며 이틀 연장을 하여 준다. 그런데 나중 다니다보니 JR 패스는 신간센(新刊線) 등 중앙 노선만 되고 지방노선(Local Line)은 통용되지 않아서 따로 열차표를 사야 했다.
하카다 묘락사(妙樂寺) / 동장사(東長寺) 정문 토리이(鳥居)
일본은 도심에 웬 절(寺刹)이 그리 많은지... 여기만 그런가, 전국이 모두 그런가?? 묘락사(妙樂寺), 성복사(聖福寺), 승천사(承天寺), 동장사(東長寺), 와가하찌방궁(若八幡宮/神社)을 돌아보았는데 모두 역 근처에 있어 걸어서 다닐 수 있다.
일본의 절들은 생각보다 건물이 컸고, 정원과 수목들이 잘 가꾸어져 있었는데 지나치다할 정도로 깨끗하다. 다른 절들도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묘락사의 경내는 크고 작은 묘비들로 온통 가득 차 있어 묘지라고 하는 것이 더 가깝겠다. 바로 담장 옆에 아파트가 있는데도 많은 묘비 앞에 향이 타오르고 있고 꽃이 놓여 있는 것을 보니 일본사람들의 조상숭배와 또 도시 가운데 묘지가 있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국민의식도 놀라웠다.
2. 일본의 심장 도쿄(東京)
아침 7시 04분에 출발한 신칸센(新幹線)은 9시 45분에 오사카(大阪)에 도착, 10시 13분 기차로 갈아타고 도쿄에 도착하니 오후 1시 10분이다.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신칸센으로 5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모양이다.
신주쿠(新宿)에 짐을 풀고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황거어원(皇居御園)과 요요기(代代木)공원 등을 둘러보았다. 치요다(千代田)에서 시부야(淽谷)까지는 이른바 도쿄의 심장부로 니주바시(二重橋), 니혼바시(日本橋)를 비롯한 숱한 다리와 어원(御苑:황실정원), 히비야(日比谷)공원, 요요기(代代木)공원 등 시민들의 휴식처로 조성되어 있다. 엄청나게 넓은 면적에 울창한 수림이 우거져 있고 티끌하나 없이 깨끗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요요기공원 안에는 메이지천왕(明治天王)을 모신 메이지진구(明治神宮)가 있다.
히비야(日比谷) 공원 / 어원공원(御苑公園) 천수각터 / 명치신궁(明治神宮)
다음날은 후지산(富士山) 등산이 계획되어 있어 호텔에서 교통편도 확인하고 등산루트도 다시 확인하고 있는데 TV에서 후지산 등산객의 조난을 방송한다. 화면에 보니 뿌옇게 안개가 끼었는데 20대 중반의 두 젊은이가 7부 능선 부근에서 강풍에 휘말려 추락하였는데 수색하느라 헬기가 뜨고 난리다. 해발 3.776m... 갑자기 모두 자신이 없어졌다. 등산객 6~70%가 고산병에 시달린다 하고, 비도 올뿐더러 정상부근은 몹시 춥고 위험하여 7~8월만 일반에 개방하고 나머지 달은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등산허가가 난다고 한다.
결국 후쿠오카에서 이틀을 까먹은 것을 핑계로 등산을 포기하기로 결정하였다. 다음날 오전에 메이지신궁과 근처를 더 돌아보고 오후에 나고야로 향하였다.
3. 항구도시 나고야(名古屋)와 기후(岐阜)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나고야는 일본 3대 무역항 중의 하나라고 한다. 아침을 먹은 후 기후(岐阜)에 있는 전통마을 구조하치만(郡上八幡)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구조하치만은 물의 마을(水の里)이라고도 불리는데 옛 에도(江戶)시대의 전통이 살아있는 곳으로 일본의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하여 내가 적극 관광을 주장하였던 곳이다.
젊은이들은 잘 몰라서 노인들한테 물어물어 기차를 탔는데 예상보다 훨씬 멀었고,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곳이었다. 기후는 산악지대로 기차가 꼬불꼬불 산속으로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간다. 갈아타야한다는 역에 내려 물어보았더니 이곳부터는 JR패스로 안되고 Local 표를 사야하며, 또 2시간 이상이나 더 가서 다시 버스를 타야한단다. 결국 일본 전통초가집인 갓쇼우조(合掌造)와 전통 생활모습 관광을 포기하고 그냥 돌아오기도 그래서 역 부근의 관광지를 알아보았더니 일본 소화촌(日本昭和村)이 있다. 택시를 탔는데 제법 멀어서 2.000엔(47.000원)이나 나왔다. 기본료가 620엔(8.500원)이니....
일본 소화촌은 우리나라 민속촌 비슷하게 꾸며놓았는데 성인대상이 아니라 학생들 교육실습용 비슷하여 실망하였지만 손님도 별로 없어 전통 차도 마시며 그런대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냈다. 구경을 하다 보니 시라가와고(白川鄕)라는 간판의 찻집이 보이는데 근처에 시라가와(白川)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있었던가 보다.
일제 때 우리나라에 일본인들이 창씨개명을 강요했는데 사촌 형님의 이름이 白川吉野(시라가와 요시노), 즉 우리 백가는 시라가와(白川)로 창씨개명을 했었다. 내가 찻집의 50대 여인에게 ‘내 성씨가 백(白)씨인데 일제 때 창씨개명으로 시라가와(白川)로....’ 서툰 내 일본어를 알아들었는지 일본 아줌마는 나한테 허리를 구부리고 수도 없이 연달아 절을 해댄다.
그런데 문제는 나오는 교통편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길거리 사람에 물었더니 안내소의 직원을 통하여 콜택시를 부르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부탁하여 콜택시를 부르고 왕복요금까지 택시비 걱정을 하였는데 10분쯤 후 나타난 택시는 기차역까지 미터요금만 받는 것이 아닌가? 일본은 거의 여행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일은 없는 것 같고 특히 길이라도 물어보면 너무도 친절하여 미안할 정도이다.
나고야(名古屋)성 천수각(天守閣) /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동상
이튿날 나고야(名古屋)성을 보러 갔다. 길 하나를 두고 성 건너편에는 이 성을 축조하였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동상이 있고, 일본의 전통극인 노(能) 공연장이 있다. 성(城)은 그다지 크지는 않았으나 해자(垓字)로 둘러싸인 오래된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용마루에 얹혔었다는 엄청나게 큰 황금 물고기가 있었는데 잉어인 듯... 절마다 있다.
4. 고도(古都) 교토(京都)
(1) 교토(京都)의 이모저모
교토는 8세기 나라(奈良)에서 천도하여 온 후 당시에 지어진 무수한 건축물들을 잘 보존하여 성(城)과 사찰(寺刹) 등을 일괄하여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도(古都)이다. 교토역에 도착하여 바로 옆에 있는 교토타워에 올라갔는데 131m라 하고 타워 정상은 그다지 넓지 않았지만 도시 전체가 조망된다. 우리가 관광할 사찰과 신궁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배낭을 둘러멘 채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로 향하였는데 한창 보수 중이었다.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의해 건축되었다는 혼간지(本願寺)는 엄청난 건물규모에 압도되는데 기둥의 굵기가 정말 엄청나다. 신발을 벗고 회랑을 거닐다가 유물 전시실도 둘러보았다. 이 혼간지(本願寺)는 길 하나 건너 니시혼간지(西本願寺)도 있다.
교토거리 산책 / 교토 히가시 혼간지(東本願寺)
이번에는 호텔보다 기왕이면 전통 일본 료칸(旅館)에서 일박(一泊)해 보자고 전통 여관촌을 기웃거렸는데 평균 1인당 8천 엔(10만 5천원) 정도로 비싸서 놀랐다. 가다가 1인당 4천 200엔(5만 5천원)이라 써 붙인 허름한 여관이 보여 주인을 불렀더니 꾀죄죄한 차림의 중늙은이가 나와서 다다미방 1개를 주고 아침은 없으며 밤 10시 이후에는 문을 걸어 잠그고... 결국 여관을 포기하고 가장 저렴한 도요코인(東橫Inn) 호텔에 짐을 맡기고 간단히 점심을 때운 후 서둘러 키요미즈데라(淸水寺)로 향하였다.
(2) 키요미즈데라(淸水寺)
태평양전쟁을 결정하였다는 키요미즈데라(淸水寺)는 수림이 울창한 산자락 끝에 있었는데 붉은 산문, 우뚝 솟은 3층 천수각(天守閣)이 인상적이다. 투신자살 장소로도 이름난 계곡 절벽에 우뚝 세워진 목조 5층 베란다, 청수사란 이름이 연유한 무병장수한다는 맑은 세 줄기 물줄기 등도 볼만하다.
이 세 줄기의 물은 각각 지혜, 연애, 장수를 의미한다는데 두 줄기 물만 기도하고 마셔야 효과가 있고, 세 줄기를 모두 마시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속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줄을 서서 기다려 처마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표주박으로 받아 마셨는데 물맛이 좋다. 키요미즈데라(淸水寺)는 서기 778년에 창건되었는데 소실되었다가 1633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키요미즈데라(淸水寺) / 청수사 샘물
청수사 입구를 나서면 바로 오른쪽에 엄청나게 큰 대불(大佛)이 보이는데 보성원(寶性院) 대불이라는 간판이 붙었는데 안내판에 태평양전쟁 전사자들의 위패를 모셨다고 적혀 있다. 무심코 거닐어 본 청수사 아랫녘 마을은 관광객들을 위한 일본전통거리로 좁은 골목엔 일본 전통복장의 사람들이 거닐고 있고 인력거와 인력거꾼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이 일본 국보로 지정된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는 기둥과 기둥사이의 칸이 33개로 무척 긴 집이다. 실내에는 사람크기의 금동불상 1001개가 모셔져 있는데 모두 자세와 표정이 다르다.
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東京)에서 교토를 방문했을 때 저택으로 사용했다는 니조조(二條城)는 그다지 크지는 않았으나 특유의 우뚝 솟은 천수각(天守閣)과 특히 아름다운 일본식 정원이 인상적인 성이었다.
니조조(二條城) /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
기타노덴만구(北野天滿宮)은 교토 북쪽에 위치한 큰 사당으로 주신(主神)은 신라인이라던가? 이른 봄 매화꽃이 유명하고, 사당 내에는 사람들이 봉헌한 수백 개의 석등(石燈)이 있다. 이곳은 학문의 신으로 모시고 있어 입시철이면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욕심을 내어 가고 싶은 대학을 두 개 쓰면 효험이 없어 모두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사당 둘레의 담벼락 밑에는 벼룩시장이 벌어져 가지가지 물건들을 땅바닥에 펼쳐놓고 있었고, 사당 입구에는 꼬치와 덴뿌라, 붕어빵 종류 등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죽 늘어서 있어 재미있었다.
긴가쿠로쿠온지(金閣鹿苑寺)를 비를 맞으며 들어가 경내를 한 바퀴 돌았는데 연못 한가운데 있는 본당은 3층으로 지붕부터 전체가 금박을 입혔는지 황금빛으로 빛난다. 용마루 위의 봉황새는 순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입장권을 자르지 않고 주는데 세로로 기다란 부적모양이다. 집에 보관하거나 지니고 다니면 좋다고 하는데 글쎄... 14세기에 건축된 긴가쿠지(金閣寺)는 정원이 유명한데 불교의 극락정토를 현세에 재현하였다고 하며 아기자기한 숲속 길을 돌아 나오는 산책로가 정말 예뻤고, 이 정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일본에는 일본인들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이런 절이나 신사(神社) 또는 신궁(神宮)들이 수도 없이 많다.
키타노덴만구(北野天滿宮) /쿄토(京都) 옛날 거리
택시를 타고 가며 기사에게 절과 신사가 무척 많다고 했더니 ‘도쿄(東京)에는 도로(町:마치)가 팔백 개, 교토(京都)에는 절(寺:데라)이 팔백 개’ 라는 속담이 있단다.
또 신사(神社)와 신궁(神宮)의 차이점을 물었더니 신사는 고승이나 학자들, 또는 조상들을 모시고, 신궁은 일본 개국신이나 황실의 가족을 모시는 것이 아니겠냐며 확실히는 모르겠다는 답변이다.
5. 고도(古都) 나라(奈良)의 풍광(風光)
도다이지(東大寺) 사슴 / 일본 최대의 목조건물 도다이지 대웅전
나라(奈良)는 4세기, 지방의 호족들이 힘을 합쳐 야마토(大和) 정권을 수립하고 최초로 수도로 삼은 곳으로 중국의 장안(長安)을 본떠 도시를 설계했다고 한다. 그 이후 불교를 받아들이고 문예를 부흥시켜 국가의 기틀을 잡았다는데 백제의 왕인(王仁) 박사는 천자문을 가져다 가르치고, 호오류사(法隆寺)를 지은 후 신라의 불교화가인 담징(曇徵)을 모셔와 벽화를 그리게 하였다고 한다.
또 백제의 아좌(阿佐)태자를 모셔다가는 쇼도쿠(聖德)태자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백제가 멸망하자 백제인 2만 명이 이곳으로 이주해와 아스카(飛鳥)문화를 꽃피웠다고 하니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처음으로 찾은 곳은 도다이지(東大寺)로 절 입구에 들어서자 수많은 사슴들이 나무 밑에 누워있기도 하고 길까지 나와 관광객들을 졸졸 따라다녀서 신기했다. 머리를 쓰다듬고 귀를 만져도 그저 가만히 있다.
엄청나게 넓은 경내 가는 곳마다 있으니 수백 마리는 되겠다. 관광객들이 먹이(鹿せんべい)를 주어 따라다니는데 길옆에는 먹이봉지를 파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목조건물로는 일본에서 제일 크다는 도다이지(東大寺) 본전(本殿) 건물은 물론이려니와 절 입구의 산문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모신 목조 부처님상은 검은 색인데 또한 어마어마하게 크다.
대웅전 기둥구멍 / 동대사 사슴 / 검은 목조불상
부처님 왼편 뒤쪽의 기둥 아래쪽에는 구멍이 뚫려있는데 부처님의 콧구멍이라고도 하고 손가락 구멍이라고도 하며, 사람이 그 구멍으로 빠져나오면 무병장수한다나... 날씬한 관광객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빠져나오는데 기둥이 얼마나 굵은지 사람이 들어가면 머리와 발이 안보일 정도다.
카스카타이샤(春日大寺) / 카스카타이샤의 석등(石燈)
산자락에 위치한 가스카타이샤(春日大社)는 큰 규모의 사당(祠堂)으로 서기 768년에 창건되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여기는 사람들의 염원을 비는 석등이 수도 없이 들어서 있는데 기부한 사람들의 액수와 이름을 새긴 대리석들이 수도 없이 길옆에 서 있다. 옛날의 오백 엔짜리부터 요즈음의 천만 엔짜리까지....
이곳에는 석등(石燈)이 1.800여 개, 금속등(金屬燈)이 1.000여 개 있다고 한다.
흥복사 삼층탑 / 오층탑 / 국보관의 아수라상
높이 50m의 고주노토(五重の塔)로 유명한 고후쿠지(興福寺), 산주노토(三重の塔)도 있고 2만 여점의 중요 문화재와 공예품을 보유하고 있는 고쿠호칸(國寶館)도 유명하다.
오후에 이카루카(斑鳩)지역의 료센지(靈山寺)에서부터 산길을 따라 토묘지(東明寺), 야타데라(矢田寺), 마쓰노오데라(松尾寺)를 거쳐 호오류지(法隆寺)에 이르는 5km정도의 등산을 할 예정으로 기차와 택시를 타고 영산사(靈山寺)까지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제법 빗줄기가 굵어진다. 하는 수 없이 1km정도 떨어진 암자까지 우산을 쓰고 갔다가는 돌아와 절을 둘러보았는데 등산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불교사원 료센지(靈山寺) / 료센지 황금전(黃金殿)
료센지(靈山寺)는 본존(本尊)이 약사여래(藥師如來)인 불교 진언종(眞言宗)의 일본 대본산으로 AD 8세기, 일본승려 교기(行基)와 인도승려 보리산나(菩提僊那)가 창립하였다고 한다. 황금과 백금으로 법당을 지은 황금전(黃金殿), 백금전(白金殿)이 있고 또 경내에 온천탕이 있는 것도 특이하다.
절 앞에서 산 밑을 빙 돌아 호오류지(法隆寺)까지 버스나 기차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없어서 당황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남학생(고등학생)에게 물었더니 친절하게도 버스노선까지 보아주며 자세히 알려주는데 결국 버스로 시내까지 다시 가야 된다고... 또 버스에서 만난 젊은 여성은 법륭사 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자기는 잘 모른다며 엄마한데 핸드폰으로 전화하여 물어보면서까지 자세히 알려준다.
호오류지(法隆寺) / 호오류지(法隆寺) 대법당 건물
아좌태자와 담징의 혼이 서려있는 호오류지(法隆寺)는 아스카(飛鳥)시대에 지어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고 한다. 호오류지(法隆寺)는 일본 불교를 일으킨 쇼도쿠태자(聖德太子)에 의해 서기 670년에 지어졌다고 하니 실로 1.3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셈이다. 이 절은 일본 고유수종인 히노키(檜:측백종류)로 지었다고 하는데 히노키는 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고 한다. 나라(奈良)는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백제 영향인지..
길거리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너무나도 친절하고 상냥하였다. 우리 핏줄이 섞여서 그런가 가깝게만 느껴진다. 교토(京都)와 나라(奈良)는 외국 관광객이 무척 많다.
길옆에 앉아 쉬는데 어떤 동양인이 느닷없이 교토어원(御苑)이 어디냐고 묻는다. 마침 우리가 막 다녀오던 길이라 ‘이 담벼락을 따라 쭉 가다가....’ 가르쳐주면서 보니 서양사람 두 명을 안내하는 모양이다. 가르쳐준 후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일본인이란다. 세상에...... 웃으면서 ‘나는 한국인이요~~~.’ 했더니 계면쩍은 웃음으로 어쩔 줄 몰라 한다. 한국 사람이 일본인 가이드한테 길을 알려준 셈이다.
6. 대도시 오사카(大阪)
오사카성 / 웅장한 오사카성 천수각
오사카(大阪)는 예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오갔던 일본 제2의 도시로, 항구(港口)도시이자 운하(運河)의 도시이다. 우리나라 부산에서 카페리가 이곳까지 직접 오는 것도 있는데 열여덟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후쿠오카에서 부산행 오후 3시 30분 페리가 예약이 되어있어 서둘러 오사카조(大阪城)만 보기로 하였다. 오사카에서 후쿠오카 하카다(博多)까지 신칸센 히카리(光)호로 2시간 40분정도 걸린다.
나고야(名古屋)성, 구마모토(熊本)성과 함께 일본 3대 성으로 불리는 오사카(大阪)성은 규모면에서 가장 크다. 깊고 넓은 해자로 둘러싸인 성은 높은 언덕위에 늠름하게 우뚝 솟아있다. 오사카 JR역에서 성으로 들어가려면 해자에 걸린 돌다리를 건너 구불구불 돌이 깔린 언덕길을 상당히 걸어 올라가야 한다. 성벽은 어마어마하게 큰 돌들로 쌓았는데 일정하지 않은 모양으로 깎아 교묘하게 석축을 쌓아올렸다. 페루 잉카인들 석축기술의 정교함에서는 못 미치지만 그 규모와 크기에서는 단연 앞서는 것 같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하여 16세기에 건축되었다는 이 성은 태평양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다는데 그 수려한 외모와 일본건물 특유의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모습은 정말 아름다우면서도 웅장하다. 오중탑(五重の塔) 구조의 천수각(天守閣)은 오래된 목조부분도 있기는 했지만 복원하면서 많은 부분이 철 구조물로 바뀌었고, 맨 꼭대기까지는 엘리베이터도 있지만 나선형의 계단도 있어서 걸어 오르내릴 수도 있다.
각 층별로 많은 유물과 사진이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촉박하여 엘리베이터로 맨 위까지 올랐다가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전시품들을 관람하였다. 일본의 성(城)이나 절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하나같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일본인들을 축소 지향형(작은 것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알고 있었는데 옛날의 일본인들은 지금과 달리 무엇이든 크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옛 일본인들은 이런 거대한 건축물들(거대한 석축 성곽과 해자)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렸을까.....
시간이 촉박하여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비지땀을 흘리며 역으로 와서는 도시 환상선(都市環狀線)을 타고 오사카 역까지 와서 다시 신오사카 역까지 가야 후쿠오카 행 신간센을 탈 수 있다. 구경에 정신을 빼앗긴 탓으로 가까스로 시간에 맞추었는데 신칸센에 오르고 채 1분도 안되어 출발한다. 이 기차를 놓쳤으면 어찌할 뻔 했을꼬...
<8박 9일간의 배낭여행을 마치며>
우리의 이번 여행은 뒤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폭우가 내려 계획하였던 도쿄의 후지산(富士山) 등산과 큐슈의 아소산(阿蘇山) 등산을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을 적어보면,
물가가 너무 비싸다. 한 끼 식사가 우리 돈으로 8천~1만 원 정도인데 양이 너무 적고 반찬도 없어 평소 식사량이 많은 사람은 어렵겠다는 느낌이 든다. 숙박비도 너무 비싸서 젊은이들은 부담스럽겠다.
도쿄에는 한국인이 하는 민박도 있는 모양인데 여럿이 비좁게 자도 1인당 4만 원은 주어야 한다.
호텔도 그렇지만 민박도 사진에서 보니 돌아서기가 어려울 정도로 좁다. 교통비도 만만치 않아 가급적 JR 패스를 이용하는 것이 그래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버스 기본요금이 2.500원 정도, 택시 기본료가 8.000원 정도였다.
기차도 지역노선(Local)은 물론이려니와 신칸센은 엄청나게 비싸다.
8박 9일간의 여행경비가 1인당 대충 160만 원 정도 들었는데 오히려 패키지로 여행하는 것이 더 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감수한다면....
일본의 고성(古城)에서는 말을 탄 뿔 달린 괴상한 투구의 쇼군(將軍)과 깃발을 등에 꽂고 달려가는 일본의 옛 군사들 모습, 성을 공격하고 지키는 치열한 전투장면이 연상되었고, 또 어둑한 달밤,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싼 닌자(忍者)들이 담벼락 위로 소리 없이 달려가는 모습도 연상되어 즐거웠다.
어느 곳에서나 줄서는 일본인들, 미소 띤 얼굴로 소곤소곤 작은 소리로 말하고 관광객(외국인)들에게는 자기 일을 팽개치고 직접 나서서 길을 가르쳐 주고 자신이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라도 가르쳐 주던 일본인들, 말끝마다 ‘아리가도, 스미마셍,...’
몇 년 전이던가 일본에서 ‘오아시스 운동’ 이 전개되었다고 한다.
-오하요고자이마스(おはようございます。/안녕하세요?)
-아리가토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감사합니다.)
-시쯔레이시마스(しつれいします。/실례합니다.)
-스미마셍(すみません。/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우리나라의 ‘아나바다 운동’ 이나 ‘고미안 운동’ 도 여기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 철저한 청결의식 등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국제매너라고 생각되었다. 아무튼, 일본은 전통과 현대가 잘 조화된 선진국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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