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우리 모두는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의 자살폭탄테러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으며 과연 이슬람이 어떠한 종교이기에 이러한 사건을 저지르게 되었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슬람은 종교와 정치가 일치되는 신정정치국가 이념을 가지고 있으며, 강력한 선교정책을 펴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슬람이 정복한 나라에서는 종종 무슬림과 비무슬림 사이에 차별을 두어서 비무슬림에게 무겁게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최근 선교정책에서도 이슬람은 강력한 국가의 지원을 통해서 급속히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이 전파되도록 하고 있으며 이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이철수, ‘이슬람 이해를 통한 회교권 선교방법 연구’, (장신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0), 4.). 근래 들어 이슬람 신봉자 수는 9억 내지 10억에 달한다고 한다.
영국의 수도인 런던은 무슬림 스스로가 ‘세계 10억의 무슬림의 수도’라고 부를 정도로 모든 이슬람 행사가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고, 약 1500개 정도의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있다고 한다. 미국에도 현재 2백만 명의 이슬람들(1985년, 188만 3천명)이 있으며 이들은 포교에 기세를 올리고 있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The Church Around The World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50년 동안 이슬람은 500% 성장(2억에서 10억으로)한 반면, 같은 기간 동안 기독교는 47%, 힌두교는 117%, 불교는 63% 성장하였다고 한다(정윤진, ‘10억의 무슬림 복음화 10억인 방파 선교’, (서울: 빛과 소금, 1987, 10), 188.).
본 논문에서는 이슬람의 세계적인 현황과 한국의 상황을 살펴보고 어떻게 그들에게 효과적인 선교를 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2. 이슬람의 세계적 현황
1998년 판 ‘브리테니카’ 연감에 따르면1997년 중반을 기준으로 한 전 세계 인구는 58억 4,874만 9천명이고, 그 중 종교인구는 49억 4,184만 4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84.5%를 차지하고 있다. 적어도 5명중 4명 이상이 종교인인 것이다. 주요 종교 별 인구 분포를 보면
표1-1과 같다. (브리테니커 연감 1997.)
표1-1 주요 종교 별 인구 분포 (단위: 명, %)
| 종교인구 | 세계총인구 대비 비율 | 종교 내 비율 |
기독교 | 전체 | 1,929,987,000 | 33.0 | 100.0 |
카톨릭 | 1,040,354,000 | 17.8 | 53.9 |
개신교 | 360,913,000 | 6.2 | 18.7 |
기타 | 305,416,000 | 5.2 | 15.8 |
이슬람교 | 1,147,494,000 | 19.6 | 수니83% 시아16% 기타1% |
불교 | 353,141,000 | 6.0 | |
힌두교 | 746,797,000 | 12.8 | |
유대교 | 14,890,000 | 0.3 | |
기타종교 | 749,535,000 | 12.8 | |
무종교인 | 906,895,000 | 15.5 | 무신론자, 비종교인 |
계 | 5,848,739,000 | 100.0 | |
위의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계종교에서 기독교는 33.0%, 이슬람은 19.6%, 힌두교는 12.8%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인구에서 카톨릭과 정교회를 뺀 개신교 인구는 사실상 세계 총 인구의 6.2%에 불과하다. 이렇게 볼 때, 세계에서 제일 큰 종교가 기독교가 아니라 이슬람교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도 모른다.
표1-2 대륙 별 이슬람 인구 분포 1998 (Briannica Book of The Year, p.314)
(단위: 백 명, %)
세계전체 | 아프리카 | 아시아 | 유럽 | 라틴 아메리카 | 북 아메리카 | 오세아니아 | 세계 총인구 대비율 | 분포 국가수 |
1,147,494 (100) | 306,606 (26,7) | 803,784 (70,0%) | 31,347 (2.7%) | 1,632 (0.1%) | 4,066 (0.4%) | 238 (0.0%) | 19.6 | 204 |
2.1 이슬람의 부상과 발전
이슬람은 7세기 중동의 한 지역에서 마호메트가 받은 계시에 의해 그 틀이 세워진 후, 그 세력이 점차로 확대되어 2000년 현재 세계 인구의 약20%를 차지하는 종교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카톨릭과 정교회를 뺀 기독교 인구보다 많은 수치이다.표1-3 세계 이슬람의 부상과 발전 (단위/만 명,%)
세계인구 | 1970 | 1990 | 1999 | 2000 | 2025 |
세계인구 | 1,619,8 | 3,701,9 | 6,010,7 | 6,091,3 | 8,039,1 |
이슬람 | 200,1 | 558,2 | 1,189,3 | 1,215,6 | 1,894,4 |
세계인구비례 | 12.3% | 15.0% | 19.8% | 20.0% | 23.6% |
표1-3을 보면 2000년 현재 세계인구가운데 이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20%나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자료는 KRIM의 김창호 연구원이 2000년 발표한 ‘세계선교 현황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인용한 것이다(이 도표의 정확한 출처는 Barrett and Johnson, 1999이며, 김창호 연구원 보고서로는 p.6에 있다.). 이는 100여 년 전인 1900년 보다 무려 8%가량 증가한 것이며, 2025년에는 세계 인구의 23.6%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이슬람의 부상은 눈에 띄게 괄목할 만한 것이다.
2.2 이슬람의 미래
A.D. 6C 경에 시작된 이슬람교는 이후 아랍 전 지역뿐만 아니라,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친 광범위한 지역에 그 교세를 크게 떨치고 있었다. 이슬람 문화는 이집트 헬레니즘의 문화를 포함하는 수준 높은 문화로서 일찍부터 상업과 무역이 발달하였고, 점차 그 교세가 확장됨에 따라 다른 나라와의 교역 또한 활발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이슬람은 당분간 그 절대적인 숫자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미 앞에서 통계자료를 통해서 확인한 바와 같다. 그 원인의 첫 번째 이유는 서구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율이다. 이슬람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아시아 지역과 아프리카 지역의 출산율은 서구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으며, 이들 이슬람 지역의 무슬림들에 의해 출산한 그들의 자녀들은 무슬림으로서의 신앙을 그대로 전수받아 이슬람 신앙 공동체를 형성한다. 둘째는 한 이슬람의 모체인 중동의 산유국들이 보유한 풍부한 재정을 들 수 있다. 이슬람 국가인 중동 산유국들의 집중적인 재정지원은 이슬람 포교를 강화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이들 지역의 이슬람 국가들과 경제적인 교류를 가지고 있는 비 이슬람 국가들은 경제 및 정치적인 이유들로 인해 이슬람 국가에서 입국한 무슬림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셋째로 이슬람 각 국의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포교활동이다. 이슬람은 7세기 이후, 경제력과 무력으로 지속적인 포교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별로 전략적 요충지를 지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공략한 뒤, 인근 지역을 점령해 나가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런던, 파리 등과 같은 유럽의 대도시들이 이러한 전략에 의해 희생된 사례로 남는다(송원규, 한국 이슬람의 현황과 전망, 합동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 p.8.).
3. 한국 이슬람의 정착과 발전
군소 이슬람 단체로 분열되어 침체기를 맞고 있던 한국 이슬람교는 수차례의 통합을 시도한 끝에 ‘한국이슬람 중앙연합회’를 발족시키고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임시성원과 사무실을 마련하여 선교활동을 재개하는 한편, 해외 이슬람 단체들과의 유대강화에도 힘을 썼다.
1967년 ‘한국이슬람교 중앙연합회’는 당시 문교부에 ‘재단법인 한국 이슬람교’란 법인체 등록을 함으로써 공인된 종교단체로 자리를 잡았다(‘한국이슬람 40년사’ p.40). 이외에도 한국적인 상황에서 이슬람의 발전 요인은 종교와 민중과의 관계 중 실생활 면보다 문화, 습관의 차이에서 야기될 수 있는 종교적인 면이 더 많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 이슬람교가 부흥하는 현상에는 이슬람제국들이 한 때 대부분 개발 도상국가들이었으므로 경제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제 현상들이 우리나라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슬람 교리의 평이함, 이슬람교가 실천의 종교로써 젊음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젊은이들로 하여금 이슬람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하는 요소가 숨어 있다( Fouad Abd Elsalam Elkhazindar, 이슬람의 한국 전파와 한국의 무슬림 실태조사, 서울:경희대학교, 1985, pp.23-24). 또 아랍 세계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국가들에 대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인 관심이 증대된 것도 이에 기인한 요소이다.
한국 내 이슬람 연구센터와 모스크는 그 역할 또한 남다르다. 기독교와 불교가 지배적인 한국에서 이슬람이 발을 붙이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수반되었었다. 초기의 이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한국의 이슬람교는 나름대로 일정부분 발전을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이슬람 발전에 무엇보다도 큰 역할을 한 것은 모스크의 설립이다. 모스크의 설립과 동시에 각 모스크에는 이슬람 연구센터가 설치되어,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에서 파견된 무슬림 포교자들에 의한 포교활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같은 책, p.30.). 그러나 이런 모스크와 이슬람 연구센터들의 좋은 외부적 분위기와 여건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이슬람은 재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모스크 내 이슬람 연구센터들의 부진한 활동과는 달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 학생들과 명지대학교 아랍어과 학생들, 그리고 이슬람에 관심이 있었던 학생들은 중앙연합회산하에 한국 이슬람교학생회를 조직하여 학문적으로 이슬람에로의 접근을 시도하였다. 모스크를 통한 부진한 활동과는 달리 이러한 기구들을 통한 이슬람 연구는 매우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서울에서의 이와 같은 움직임에 부응하여 부산에서는 부산외국어 대학 아랍어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슬람 선교와 교리연구가 이루어졌고, 1985년에는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조선대학교 내에 아랍어과가 개설됨으로써 호남지역의 이슬람 선교에 대한 새로운 발판을 구축하게 되었다(같은 책, p.31.).
4. 오늘날의 한국 이슬람 공동체
이슬람 성원은 무슬림들에게 신앙의 장소로써 뿐만 아니라 이슬람과 아랍 세계를 알려는 한국인들과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의 무슬림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곳이다. 다시 말해, 이슬람과 한국 교류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공식적 장소의 수립이라는 의미와 중요성을 갖는다. 한국에서의 이슬람 성원의 의미는 한국 이슬람교 중앙 연합회 활동의 지침이 되었으며, 이곳에서 이슬람 책자 발간 등의 이슬람 선교 활동은 물론 아랍어 강좌도 개설함으로써 이슬람 국가들로 한국인들이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국 무슬림들의 숫자도 급증하여 개원 전 약 3700명에서 개원 후 3년 내에 1만 5천명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입교한 한국인들의 다수는 충분한 이슬람 지식이나 신앙에서가 아니라 늘어가는 이슬람 나라들과의 교류로 말미암은 취업, 유학, 결혼, 사업 등이 입교의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입교한 무슬림들은 실제로 아랍에서의 이슬람에 대한 접근을 통하여 귀국 후에 신실한 무슬림으로 회심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배경으로 1978년 3월에는 중동에 진출한 많은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그들이 사는 세계의 종교와 사상 그리고 문화로써 이슬람을 알리기 위해 최초의 해외 지회인 ‘제다 지회’가 설립되었다. 중동에 파견된 기술자들의 이슬람에 대한 관심은 ‘제다 지회’의 설립과 함께 구체화되어 이슬람에 입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8000여 명이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1979년 7월에는 쿠웨이트 지회도 설립되어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1984년까지 약 3000명이 무슬림이 되었다. 이러한 이슬람 세계로 진출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자국 문화와 종교를 교육시키는 목적은 인도네시아 지회 설립도 가능하게 하였다.
서울 이슬람 성원의 개원으로 서서히 각 지방에서 이슬람 선교가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가정집, 비닐하우스 등에 임시 예배실을 마련하고 이슬람을 알리는 노력은 지방에서의 이슬람 성원 건립을 유도하였으며, 외국 무슬림들의 지원으로 1980년 9월 부산 이슬람 성원이 남산동 두실에 개원하고, 이어 1981년 7월에는 경기도 광주에서, 1986년 11월에는 전북 전주에서 이슬람 성원이 개원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이 노력은 외국 무슬림들의 지원을 받지 않고 한국인으로서 개원하기에 이르러, 1986년 4월에는 안양의 한 한국인 무슬림이 기독교 교회를 매입하여 이슬람 성원으로 개원하게 되었다(한국이슬람 홈페이지주소 http://www.islaminkorea.org/islam_in_korea.htm). 현재는 울산과 제주에도 임시 예배실이 설치되어 한국과 이슬람과의 교류에 힘쓰고 있으며, 약 4만 명의 무슬림들이 있다고 한다.
1) 한국 이슬람의 선교(다와) 이해
한국 무슬림 공동체는 자체적인 홍보를 통하여 이슬람을 알리는 활동을 하면서 이슬람교에 대한 왜곡된 점들을 시정하려고 한다(전재옥, ‘한국의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선교 신학적 접근’ <아시아 무슬림 공동체> 전재옥 역, 1999, p. 42.). 또 한국 무슬림 지도자들은 이슬람교가 한국 전통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 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 무슬림 공동체는 무슬림의 엄격한 생활규범, 특히 금주가 한국 사회의 금주 문제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15여 만 명의 무슬림들에게 철저한 종교적 삶을 기대하고 강조하면서, 이들의 삶이 한국인에게 잘 비춰져 이슬람교의 긍정적 차원을 열어 보이고 싶어 한다. 한국 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신앙과 행위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을 비판하는 젊은이들이 이슬람교의 질서 있고, 군사적인 패턴에 이끌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때문에 무슬림 지도자들은 ‘다와’의 대상을 먼저 학생들과 대학생들로 보고 있다. 한국 무슬림 공동체의 ‘다와’ 접근은 무엇보다도 먼저 한국 사회에서 적대적 관계를 지양하고 무슬림들이 소수 공동체로서 자유로우면서도 소외되지 않고, 차별을 받지 않으며 이 사회에서 공헌할 점을 찾으며 나가는 것이다.
2) 선교정책
따라서 이슬람 선교정책은 단순히 종교적 차원의 것이 아니다. 초기 이슬람교 발전 과정에서 포교는 정치적 문제였고 경제적 세력 확장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 들어온 이슬람교 선교활동은 짧은 역사이지만 이미 전통적인 선교 패턴을 보여준다.
먼저는 경제, 외교를 통한 포교이다. 한국과 중동의 건설관계 확립은 1960년에 시작되어 1966년부터는 견고하게 되었다. 1973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자국의 도로공사를 한국의 업자들에게 맡김으로써 한국에서는 중동을 대상으로 한 건설 ‘붐’이 일어났다. 페르시아 연안 제국이 핵심지역이 되는 중동은 안국에 원유를 공급하고 건설시장을 제공하는 교역상대가 되면서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에 직접, 간접적으로 기여했다. 이슬람교의 선교활동은 이러한 기술제휴 과정에서 직접적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이슬람교의 선교는 전통적으로 통상관계를 통하여 이루어 졌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경제적 관계는 곧 ‘다와’ 사상에 근거하고 있는 무슬림들에게는 이슬람교 선교정책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둘째로, 정치적 활동을 통한 포교이다. 건축, 청부, 오일 수입, 기타 다른 무역품목을 가지고 무역관계를 이루어 나간다 하더라고 경제적 관계는 곧 정치적인 관계이다. 한국 이슬람교의 무슬림의 왕래는 초기부터 정치적인 관계를 통해서였다. 무역의 길이 열리면서 한국은 경제적 이유로 중동 여러 나라와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고, 중동은 한국의 위치와 한국이라는 나라를 의식하게 되었다. 한국에 들어온 이슬람교의 선교요원들은 당당히 외교관의 환대와 한국정부의 손님으로 드나들었고, 최초의 이슬람교 사원 부지를 확보하는데도 박정희 정권 안에서 대통령의 지지로 가능하게 되었다.
셋째로, 교육활동을 통한 포교이다. 197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무슬림 지도자들은 한국의 높은 교육열을 파악하고 한국의 이슬람교 포교를 위해서 교육선교를 강조하는 정책을 세웠다. 60년대, 7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경제적 통로를 통한 선교라면 70년대 후반부터 치밀한 교육정책을 사용하고 있다(전재옥, 앞의 책, p.33). 이외에도 무슬림 교육 포교가 사원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언어 연구반이 있고 본격적인 출판기획을 통한 홍보 책자를 발간하여 국내 무슬림과 비무슬림들에게 비매품으로 배부하고 있다. 교육을 통한 포교 활동으로 특별히 언급할 만한 것은 이슬람대학의 설립추진이다. 1986년 보도에서는 8백 명의 학생 수를 첫해 목표로 하였으며 대학을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지급하고, 전원 기숙사에 기거하는 학생 생활을 계획을 하고 있다고 보도된 바 있다(전재옥, 앞의 책, p.34-35.). 그 밖에도 정기적으로 대학들을 대상으로 학회지 발간 및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고, 연중행사로 성지 메카순례를 위한 연수생들을 확보하여 교육시키고 있다. 이러한 무슬림 교육포교 정책은 상당한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정책이며, 현재 한국 실정에서 매우 매력 있는 도전이 되고 있다.
3) 선교정책의 한계
이제까지 언급해온 이슬람교의 대한 포교정책은 한국 실정에 있어 매우 매력 있는 도전이다. 그러나 이슬람교의 포교 요원들의 계속적인 수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미약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지적될 수 있다.
첫째, 이슬람교 근본주의 부흥으로 시작된 한국 이슬람교 공동체가 복합적 종교사회인 한국에서 타 종교들과 공존해야 하는 문제이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철저하게 꾸란과 그들의 전통인 하디스로 되돌아가 초기 이슬람교 공동체의 양식대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철저히 무슬림의 생활양식을 지킴으로 무슬림 공동체의 소속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의 복합적인 종교사회에서 무슬림은 그 정체성을 제대로 지켜낼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 무슬림 공동체는 소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무슬림은 내적 신앙의 발달과 성장에 의존하여 무슬림이 되기보다는 삶의 양식과 종교적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무슬림됨의 의미를 갖게 되는데 한국의 상황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둘째로, 전체주의에 대해 한국인이 가지는 거리감이다. 무슬림은 그들의 신앙고백과 종교적 의무 및 ‘다르 알 이슬람’ 원리에 의하여 살고 있다. 엄격하고 철저한 무슬림 공동체는 개인의 의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슬림 공동체의 절대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중요한, 전체주의의 틀 안에 살고 있다. ‘민중’의 소리가 절대적 힘을 행사하듯이 무슬림 공동체는 전통의 가르침에 순응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또 하나의 전체주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거의 획일적인 가치관에 의한 삶에 대한 태도가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은 흑백으로 옳고 잘못된 것이 구별되어 있어서 상황적 태도변화와 선택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대학생 및 지성인 대상의 무슬림 선교 정책인 ‘다와’ 접근에서는 바로 이것이 문제가 된다. 공산주의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전체주의가 안착할 자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전재옥, 앞의 책, p.36.) 무슬림 공동체의 종교 의무를 행하는 것은 개인의 시간과 방법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함께 나누면서 같은 언어와 같은 행동으로 의례를 지켜야 한다. 공산주의의 전체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없는 것이다(전재옥, 앞의 책, p.36-37.). 그러나 한국의 분단 상황에서 전체주의는 경계심을 갖게 하고, 공산주의의 전체주의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한 배경에서 새로운 전체주의를 수용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로, 문화적 거리감이다. 문화는 종교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종교는 문화의 실재라고도 한다. 무슬림들은 그들의 신앙이 독특하게 문화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일정한 기도와 금식과 성지순례를 해야 한다. 무슬림 문화는 하나로 표현될 수는 없겠으나, 이슬람교의 아랍어 존중 사상으로 인해 무슬림 문화는 흔히 아랍문화로 인식된다. 물론 무슬림들이 어느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가에 따라 생활언어는 지역 언어를 사용하고 아랍어를 배우지 않을 수도 있다. 무슬림 신도들 가운데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무슬림들은 비아랍계 무슬림들로 그들의 언어를 생활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무슬림 인구는 세계인구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무슬림을 하나로 묶는 것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랍어로 기록된 꾸란이다. 이들은 꾸란을 낭독할 때 아랍어로 낭독한다. 기독교가 한국에서 한글을 통해 전파된 것을 생각하면, 아랍어를 꾸란의 언어로 강조하는 무슬림 공동체가 과연 아랍어로 한국인들을 이슬람화 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미 전통문화로 가득한 한국에 하나의 새로운 아랍문화가 수용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슬람교에 있어서 이슬람교 문화의 옷을 벗고 한국 전통문화 속에 적응하며 들어올 수 있는 메시지와 근거는 빈약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넷째로 남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무슬림 여성들의 신분과 지위의 문제이다.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여성의 위치는 남자보다 낮다는 것이 꾸란에서 명시되어 있다(꾸란 4:3, 34). 꾸란은 여성의 위치를 그 당시 아랍문화의 여성 신분보다는 높인 것으로 기록하였다. 그러나 꾸란에서 나타나는 여성관은 한국적 상황에서는 수용될 수 없다고 본다. 여성학 등을 통해 여성의 동등한 사회참여와 인권존중의 의미가 날로 커 가는 한국 여성문화에서 무슬림 여성상은 한국 여성들에게 호기심과 비판의 대상은 되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잘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전재옥, 앞의 책, p.38-39.). 일부다처제도와 오늘의 이슬람 근본주의의 운동은 여성의 사회진출에 제동과 억제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4.1 한국이슬람 중앙회(KMF)의 주요 선교활동
1) 이슬람에 대한 강의와 연구① 아랍어 연수원 1976년 아랍어 연수원이 개설된 이후 아랍어 외에도 이슬람권 언어들(말레이어, 인도네시아어, 터키어, 이란어)과 이슬람기본 교리에 관한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정기적인 강좌가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저녁에 KIIC에 의해 진행되고 있으며 서울 중앙성원을 방문하는 단체 대학생들, 중 고등학생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비정기 강의가 시행되고 있으며 요청 시 정부기관, 공공단체, 대학 등에 방문 강의도 실시하고 있다.② 일요 마드라사(꾸란 학교) 매주 일요일, 국내외국인 무슬림 자녀들을 위한 꾸란 수업이 외국 이슬람선교 단체에서 파견된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이 수업을 통해 무슬림 어린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이슬람의 교리와 무슬림으로서의 바른 생활을 배우게 된다.
③ 이슬람 연구 및 학술모임지원 한국 무슬림 연맹(KMF)은 1976년 서울 중앙 성원 건립 후 많은 수의 내외국인 무슬림 학자들을 초청하여 세미나와 포럼을 지속적으로 개최하였다. 최근에는 이슬람국가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돌아온 한국인 무슬림 학자들에 의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각종 이슬람 연구와 학술모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2) 이주 무슬림 관련 봉사활동① 무료 진료 및 외국인 노동자 상담한국 무슬림 연맹(KMF)은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무슬림을 위해 월 1회 의료봉사를 실시하고 있다. 서울 중앙 성원 대회의실을 임시진료소로 사용하여 양 한방 치료를 동시에 제공하는 이 행사에는 매월 100명 이상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진료 및 상담의 혜택을 받고 있다. 이 봉사활동은 강동 성신병원, 전곡 한의원 원장, 나라 한의원 원장 및 간호사들과 여러 무슬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외국인 근로자들의 수가 급증함에 따라 발생하고 있는 노무관련 문제들과 고충해소 상담을 실시하고 있는데 외국인 무슬림 노동자 상담 활동을 통하여 임금체불, 산업재해로 인한 불이익, 인권 침해 사례 등 제반 문제와 사건들에 민사 및 대정부를 상대로 한 변호 역할을 하고 있다.
② 임시 예배소(무쌀라)의 개설과 활성화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무슬림 노동자의 수는 약 10만 명에 달하고 있다. 한국 무슬림 연맹(KMF)은 서울 중앙 성원과 각 지방성원을 중심으로 이들을 위한 임시 예배소(무쌀라) 마련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전국에 외국인 무슬림 노동자들의 신앙생활과 종교 활동을 위한 임시성원의 숫자는 약 60여 개에 달하고 있는데 수도권 근교 도시인 경기도 안산, 포천, 김포, 마석 등지에 건물을 매입하여 무살라(예배소) 및 이슬람 선교센터로 운영하고 있다.
3) 이슬람 관련자료 번역 및 출판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이면서도 한국사회에서는 유독 잘 알려지지 않은 이슬람을 선교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이슬람에 관한 책자를 출판하고 배포하는 일이다. 한국 무슬림 연맹(KMF)은 지금까지 약 100여종의 이슬람 자료를 한국어로 출판, 무슬림과 비무슬림에게 무료로 제공되어 왔다. 한국 이슬람 학자들로 구성된 KIIC역시 현재 번역 및 출판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의 선교 교육국에서도 <예배입문>, <초보자를 위한 이슬람 바로 알기>등 이슬람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각종 기초자료들을 발간 배포하고 있다. 한편 한국 무슬림 연맹(KMF)은 한국어와 영어로 "이슬람 주보", "알 이슬람", "코리아 이슬람 헤럴드" 등의 다양한 신문과 잡지를 출간하였고, "주간 이슬람"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발행해 왔으며, 1998년 9월부터는 새로운 컬러판 격월잡지 "한국의 이슬람"이 한국어판과 영어판으로 만들어져 국내외로 보급되어 왔다. 최근에는 운영 인터넷(www.koreaislam.org)을 통해 한국사회에 이슬람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편견을 바로잡는 데 노력하고 있다.
4) 한국에 설립되는 이슬람 대학
현재 대한민국 용인에 이슬람 대학교가 건립될 계획에 있다. 한국 이슬람 중앙연합회는 이슬람 선교 교육을 지향하기 위하여 이슬람 대학에 대한 꾸준한 계획을 세웠다. 이미 1976년 이슬람 대학 위원회를 발족하였고, 1980년에 최규하 당시 대통령과 칼리드(Lhalid)사우디 왕과 협의로 대학 부지를 기증받아 현재 건축 및 교육과정 준비가 진행 중이다. 이 교육 프로그램의 주목적은 이슬람을 신학적. 역사적. 문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 무슬림들 중에는 상당수 해당되는 이들이 대학 졸업자이기는 하나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 혹은 그 이상의 교육을 받기 위하여 해외 유학을 지망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이슬람 국가들을 택하고 있는데 이유는 경비의대부분을 이슬람 기구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에 의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대학의 설립취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슬람 교육기관 설립을 통해 한국 무슬림들에게 이슬람의 정신을 고취시키며, 그들에게 적절한 이슬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슬람의 진정한 가르침과 우수성을 숙지시킨다.
둘째, 어떤 종교를 믿든, 가능한 한 많은 학생들에게 이슬람교육의 장을 마련해 주어 그들에게 타 종교와의 비교 연구를 통해 이슬람의 우수성을 알린다.
셋째, 대학의 설립은 각종 종교 활동의 중심지가 되리라 예상된다. 즉, 대학의 무슬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이슬람 서적 출판이나 이슬람 문화 전시회 개최 등을 통해, 이슬람의 올바른 뜻과 가르침을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다.
넷째, 미래의 무슬림 교육자들을 양성하여 이슬람에 대한 왜곡과 편견이 없는 교육을 실시토록 한다.
다섯째, 극동지역에는 이슬람 교육기관이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향후 한국에서 건립될 이슬람 대학은 단지 한국 내 무슬림 학생들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대만 등 주변 국가의 무슬림 학생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해 명실 공히 극동의 대표적인 이슬람교육기관의 역할을 다하도록 한다.
여섯째, 한국 이슬람 대학과 이슬람 국가의 대학 간의 교환 교육을 통해 실질적인 이슬람 지역의 전문가를 양성토록 한다("한국 이슬람 40년사" p.18.)
<표1-4> 이슬람 대학 건설 학과 분야 및 학생 수
이슬람법과, 언어학과 | 단위(명) |
이슬람법과 아랍어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이사어과 | 150 100 120 370 |
인문학과 | |
한국어. 한국문학과 영어. 영문학과 | 80 120 200 |
경제학과, 경영학과 | |
경제학과 국제무역학과 경영학과 | 80 120 200 |
합계: 8과 학과 | 800 |
5. 한국 교회의 이슬람권 선교의 전망
첫째, 종교인권운동이 필요하다. 이슬람이 말하는 종교의 자유란 이슬람만을 믿을 자유를 의미한다. 서방세계와 아시아의 종교 자유가 있는 나라들은 이슬람 국가들의 지도자들을 향하여 종교 인권을 보장하도록 포괄적이고도 꾸준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슬람 국가들은 종교는 개인의 결정 사항이 아니라 국가나 가정, 공동체 전체의 선택이라고 강변한다. 여기서 유엔 인권헌장의 종교 자유 항목은 의미가 없다. 서구 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당면한 중요한 이슈는 인권, 특히 종교 인권이다. 이슬람은 절대로 종교는 개인의 자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반면, 서방 세계에서 종교는 철저히 개인적 영역에 속하여 종교에 관한 한 얼마든지 자유가 있다. 여기서 가치관의 충돌(conflicts of value system)이 불가피하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실현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인내와 시간을 요한다.
둘째, 변증적 선교이다. 이슬람 선교는 변증적 선교가 되어야 한다. 변증적 선교란 고난 당하는 상황에서도 왜 기독교인가를 겸손하게 변증하는 것이다. 베드로 전후서는 변증 선교의 모델이다. 기독교 신자들은 도덕적 통전성을 보여주면서 기독교 진리를 변호하고 전도해야 한다. 이슬람에서 공개적 전도는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일부 국가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무슬림들이 기독교를 공격하는 것을 지혜롭게 해답하고 질문을 유도하면서 답변하는 전도전략을 사용한다.
셋째, 원주민에 의한 원주민 선교이다. 선교를 궁극적으로 원주민 교회가 자기 나라에 대한 복음화와 선교를 책임져야 한다. 선교의 궁극적 목표는 헌신적인 원주민 지도자와 평신도이다(사66:21). 100년 전에 이미 독일 선교학자 구스타프 바르넥은 이슬람 선교는 이 지역의 기독교회가 선교회를 만들어 선교할 때 진정한 선교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선교는 궁극적으로 선교지 사람들이 자기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넷째, 해외 무슬림 선교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무슬림은 우리에게 선교의 도전이자 기회이다. 서구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은 서구의 종교를 이용하여 이슬람 확장에 엄청난 자금과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정확한 숫자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서구 등 해외에서 무슬림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상당수 무슬림들은 금요일이면 수천 명씩 한남동 모스크로 모여든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기독교로의 개종자가 분명 있다. 프랑스에서는 기독교로 개종한 무슬림이 약 5천 명으로 추산하기도 하는데, 이 숫자는 계속 증가한다고 한다. 이들은 기독교로의 개종을 비밀로 한다. 이유는 상당수 하층민들은 극단적인 이슬람 센터가 있는 곳에 거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도 개종이 발각되어 미움을 받거나 배반자로 살해당하는 경우가 있다(Agnieszka Tennant, "The French Reconnection: Europe's most secular country rediscoveres its Christian roots," Christianity Today, March 25, 2005:33-34). 이들은 금요일에는 모스크에 가서 기도하지만 일요일에는 교회 예배에 참석한다.
다섯째, 선교사가 접촉점이다. 이슬람 선교 역시 선교의 효율성은 궁극적으로 선교사 자신에게 달려있다. 바르트주의 선교학자 헨드릭 크레머는 선교의 가장 좋은 접촉점은 바로 선교사 자신이라고 하였다. 특히 이슬람권에서는 전도가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선교사의 삶과 인격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기독교가 이슬람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은 선교사들이나 기존 기독교 신앙인들의 윤리적, 인격적 통전성을 통하여 증명되어야 한다. 이슬람 문화권일수록 일대 일의 개인 접촉점이 가장 효과적인데, 이것 역시 잘못하면 위험부담이 따른다. 일대 일의 접촉에서 선교사는 신분을 감추지만 무엇보다도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한다.
여섯째,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선교사의 인격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아랍어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슬람 국가에서 아랍어로 설교와 강의를 능숙하게 하는 선교사들은 아직도 소수이다. 영어가 자유로운 선교사는 신학교나 지도자 양육의 기회가 있지만, 아랍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선교사들은 실제로 개 교회에서 봉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일반인들은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아랍어로만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기독교의 좋은 모든 단어나 용어들은 이미 이슬람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일곱째, 상황화의 선교이다. 이슬람 선교의 노하우를 가진 대부분의 서구 선교사들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선교는 철저히 상황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상황화란 기독교의 본질이 결코 손상되지 않는 범위에서 이슬람 언어와 문화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효과적 커뮤니케이션이다. 인도네시아 등 일부 이슬람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에서는 금요일이 안식일이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기독교회들도 대부분 금요일 오전에 예배를 드리는데, 이것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때로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거나 그날 저녁에 집회를 가지기도 한다. 바울은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하였다. 그의 메시지는 철저히 적응의 원리이다(Phil Parshall, New Paths in Muslim Evangelism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0), 38-39). 영국의 신학자 존 스토트는 “예수 모스크”를 제안한다. 이슬람에서 모스크는 종교적 사회적 회집 장소이다. 모스크에서는 종교 문제뿐만 아니라 세상 문제도 서로 대화의 내용이 된다. 따라서 모스크는 문을 닫는 일이 없다고 한다. 유의할 것은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로의 개종은 죽음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눈에 잘 보이는 장소에 십자가를 다는 교회당 건물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모스크인양 위장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랍 출신 교회 지도자들은 가정 교회 혹은 셀 그룹을 권장한다.
여덟째로 문서 선교이다. 이슬람 선교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문서선교라고 하겠다. 한국교회 선교에서 취약한 분야는 소위 선교의 인프라이다. 사람을 보내는데 급급하지 연구나 자녀 교육, 산학교육이나 제자양육에 필요한 자료나 서적들을 만드는 데는 관심과 투자가 부족하다. 발로 뛰는데 너무 바쁘다. 하지만 문서나 서적은 분명 스스로 성장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아랍어 성경은 있으나 아직도 신학서적은 너무나 부족한 형편이다. 신학자들이 이슬람 선교에 눈을 돌리고 또 이들을 파송하는 한국 교회가 되어야 한다(전호진, 전환점에서 선 중동과 이슬람, 2005, p.195~206.).
6. 한국 교회의 대 한국 이슬람 선교
한국 교회의 대 한국 무슬림 공동체 선교를 위해 한국 교회는
첫째, 우월주의에 빠지지 않고 낮은 자리에서 소수 공동체를 대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종교 인구에서 2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교회는 아시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큰 선교 사례를 가지고 있다는 선교우월주의의 징조를 극복하고 사회에서 우선 신뢰를 키워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때 신뢰의 대상은 한국 이슬람 공동체와 같은 소수의 공동체를 포함한 포괄적이며 총체적이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5천만 한국 인구 중에 한국인으로는 3만여 명의 신도를 가진 아주 작은 교세의 이슬람교에 대해 무관심하기 쉽다. 그러나 다원화 국제화 시대를 맞아 다양한 통로를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유입되고 있는 외국인 무슬림들은 계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일 것임으로 이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
둘째로, 교회의 신앙공동체로서 이미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한국 교회의 대안으로 기독교와 유사한 종류의 종교인 이슬람의 합리적이고, 윤리적이고, 획일적인 삶의 양식이 제시된다면 이는 한국인들에게 충분한 매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한국 무슬림들 가운데는 어렸을 때 교회에 나갔던 이들이 있다. 그들은 교회를 통해서 충족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것들로 인해 이슬람교를 환영했을 것이다. 즉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분열과 빈부의 차이, 인권문제, 기복신앙에 흔들리고 있을 때, 질서 있고 형제애를 주장하는 무슬림 공동체의 매력에 이끌려 무슬림 공동체를 선택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의 대 한국 이슬람선교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한국 교회의 참회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 이슬람권의 선교적 과제를 이행하는 출발점인 것이다. 아울러서 우리는 기독교가 무너지고 이슬람이 세워져 가는 유럽적 상황을 좀 더 면밀히 연구 검토해서 한국 기독교의 미래를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또한 방황하는 청년들을 찾아 나가야 한다. 한국 교회는 한국의 어떤 젊은이들이 어떠한 이유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는지 그 이유부터 인식해야 한다. 첫째는 경제적 이유이다. 한국에는 취업이 어렵고 혼란스러운 한국 땅을 벗어나 경제적인 보장이 이루어지는 외국 파견 직업을 선호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 중 일부가 무슬림 지역으로 나가기를 자원하고 있다(전재옥, 앞의 책, p.44.). 둘째로 정치적인 이유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한국 현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로 인한 고독감에 시달리는 이들이 삶의 극복을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형제애의 교리가 매우 강한 무슬림 공동체에 소속되기를 원하기도 한다(전재옥, 앞의 책, p.44.).
세 번째는 교육적 이유이다. 이것은 앞의 두 가지 이유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다. 특히 1960년대 초기 한국에서 유학의 길이 매우 좁았던 시기에 이슬람교로 개종한 이들은 중동,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에서 정통 이슬람교를 연구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슬람교는 학문으로 다룰만한 역사와 신학이 있고, 학문의 모든 것을 이슬람교 안에서 접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슬람 예술, 문화, 경제, 언어 등 이슬람교와 관련된 학무의 깊이와 높이는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도전인 것이다. 현재도 아랍 언어반, 학생반, 문화 활동반 등 거의 다 회비나 등록금이 없이 모여서 관심분야를 연구한다. 이슬람교는 동양종교들, 힌두교, 불교, 유교 못지않게 연구할 것이 무궁무진한 종교인 것이다(전재옥, 앞의 책, p.44-45.). 그러나 이제는 선교적 측면에서 이슬람교를 선교 신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요청되는 시점이 되었다.
7. 결론
한국의 이슬람교는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한국 이슬람교협회를 발족, 초대회장 김진규, 부회장 겸 사무국장 윤두영과 신도 70여명으로 시작되었다. 초창기 10여 년간에 포교운영의 고난을 극복하고 65년 한국 이슬람교 중앙연합회로 재발족, 67년 3월 재단법인 한국 이슬람교로 인가되어 신도 7500의 교세를 갖게 되었다. 76년 5월 현재의 용산구 한남동에 중앙 성원을 건립하고 (사우디아라비아, 기타 6개국의 원조로) 80년 항도 부산에 제2성원, 81년 경기도 광주에 제3성원을 건립하였다. 또한 해외교포를 위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인도네시아에 지회가 설립되어 국내의 신도 수 약 32000의 교세를 가지게 되었다. 80년 5월 최규하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시 고 칼리드 왕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 이슬람 대학교 설립 공사비 일체의 제공을 확약 받았으며 경기도 용인에 13만 평의 대지를 확보하고 기공식을 가졌다. 현재 한국 이슬람교는 70년대의 중동 붐을 타고 두드러지게 교세가 확장되어 근래에 매년 중동 각 국에서 무슬림이 되어 귀국한 1700여 명의 기능 근로자 신도들을 핵으로 삼아 신도 배가 운동을 펴고 있다.
또한 이슬람국가에서 이주해 온 외국인 무슬림 근로자들과 주한 이슬람국 대사관, 영사관 등 외교관 신분으로 들어와 있는 무슬림들 및 사업차 또는 학생의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와 있는 무슬림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각각의 이슬람 공동체에서 한국내의 이슬람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통한 한국에서의 이슬람 선교는 다원화된 사회의 한국인의 습성 및 기호와의 차이점을 비롯하여 예배의식의 용어 및 교리의 토착화 등 숱한 난제를 안고 있다.
한국 이슬람이 한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토착화되어야 하며 상황화에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이슬람의 한국 토착화는 말처럼 쉽게 이루어 질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이슬람에 있어 상황화는 이슬람의 정통성을 깨뜨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송원규, 한국 이슬람의 현황과 전망, 합동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 p.41-42.).
한국교회는 위와 같은 한국에서의 이슬람의 현재 상황을 인식하고 주의해야 한다. 지금은 해외 이슬람 선교뿐만 아니라 국내 이슬람 선교에도 관심을 가져야할 시점이 되었다. 한국교회가 이러한 상황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대응과 선교전략이 구비되지 못한다면 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 한국도 이슬람의 주요선교 요충지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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