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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1 포병단 장병 여러분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특강 부탁을 받고 무슨 말을 하는 것이 좋을까 망설였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할 때 저는 먼저 3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 내가 말하려는 것이 진리는 아니라 해도 사실인가? 둘째, 내가 말하려는 것이 듣는 이에게 덕(德)이 될 만한 말인가? 셋째, 내가 말하려는 것이 꼭 내가 해야 할 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지금까지 제가 체험적으로 살아온 삶을 반추하면서 거기서 깨달은 바를 “삶과 꿈과 인간관계” 란 제목으로 생각나는 대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볼까 합니다.
독일의 문학자 한스 카롯사는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인간은 만남의 존재로서 산다는 것은 만남을 의미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만남이지만 만남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 부모나 배우자나 자식, 형제와 같은 혈연적인 만남을 비롯해 스승이나 친구나 선후배와 같은 소중한 만남도 있고, 보통 사람들과의 만남 등 여러 종류의 만남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만남에 의해 성장하고 행복이나 불행은 이러한 만남을 통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모든 만남은 서로 잘 만나야 인생도 잘 풀릴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에 왔다가 한번 자기 꿈을 펼치다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부조리를 고발한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인간에게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없다는 것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평범하게 살다가 열심히 벌어서 오래오래 살면서 잘 먹고 살다가 죽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꿈이 있는 젊은이라면 그것을 초월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그 무엇’은 개인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그것은 가정일 수도 있고, 돈이나 명예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자기의 꿈과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흔히 사람은 젊어서는 꿈을 먹고살고, 늙어서는 추억을 먹고산다고 합니다. 꿈을 갖고 산다는 것은 젊게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젊었어도 꿈이 없으면 늙은 것이고, 비록 늙었어도 아직 꿈이 있다면 젊게 사는 것입니다. 꿈은 크거나 높아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어느 꽃이나 꽃을 피워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시간은 짧지만 그 짧은 기간을 통해 우리는 그 꽃에 대한 이미지를 기억합니다. 이처럼 자기의 꿈을 실현한 사람은 비록 짧게 살다 가도 생을 아름답게 마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은 자기를 발전시키는 역사입니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얼마나 발전시켰느냐 마침내 그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인생의 목표를 설정할 때는 내가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려면 목표관리도 중요하지만 인간관계가 더욱 중요합니다.
사람은 나이에 따라 대개 추구하는 대상도 달라집니다. ①어릴 때엔 좋은 가정과 부모를 원하고, ②청소년 시절에는 예쁜 용모와 실력을 바랍니다. 그리고 ③장년시절에는 훌륭한 인격이나 자아실현을 추구하고, ④노년기엔 건강과 돈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연로하신 부모님께는 통장을 하나 만들어 드리는 것이 가장 좋은 선물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많이 할애합니다. 시간은 돈이라고 하지만 돈보다 더 값진 것입니다. 생명이 다급한 사람과 시간을 나누는 일은 생명을 나누는 일입니다. 돈이 있으면 우리는 갖고 싶은 것들을 다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잃어버린 시간입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젊은이들은 젊음 하나만으로도 부유한 사람들이며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 부러운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행복한 삶을 위해선 사랑과 희망과 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건강이 없으면 어느 것도 담을 수가 없습니다. 건강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얻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보다 좀 더 갖고, 좀 더 높이 오르려다 화를 당하곤 합니다. 탐욕은 화를 부르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아무리 잘나가던 사람도 더 높은 곳릐 꿀과 향기를 탐하다 그만 거미줄에 걸려 헤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덫에 걸려 자기 몸 하나 추스를 수 없는데 명예와 재물과 권력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세상 살아가는데 최고의 경쟁력은 인간관계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거나 병이 나면 인간관계도 리모델링이 필요합니다. 젊고 건강할 땐 삶의 단위도 몇 십 년 단위로 세우지만 나이가 들면 조금씩 줄여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오늘 살아 있음과 잠을 잘 잘 수 있고 걸을 수 있음에 대해 매일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주어지는 오늘을 소중한 선물이라 생각하며 오늘에 초점을 맞추어 살고 있습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제일 중요한 인간관계는 부부간과 부모 자식, 그리고 형제간의 삼친(三親) 관계입니다. 이 중에 가장 중요한 관계는 부부입니다. 부부는 인생 최후의 동반자면서 가장 가까운 인생의 길벗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늘 서로 편한 관계로 배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라도 언젠가는 누군가 먼저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동반자로 남을 수 있어야 좋은 배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 해도 목적지까지 못 가서 고장이 난다면 명품 자동차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효자로 알려진 증자(曾子)는 그의 부친[曾晳]에게 양지(養志)로 효도했고, 증자의 아들 증원(曾元)은 증자에게 양체(養體)로 효도했습니다. 현대의 효 개념으로 생각해도 양지가 양체보다 더 효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의 부모님 세대는 효에 대해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세대입니다. 아무튼 부모님께 받은 은혜는 잊지 말고[受恩不忘] 자식에게 베푼 은혜는 마음에 두지 말아야[施恩不念] 합니다.
형제간에도 우애 있게 지내는 집보다 갈등하는 집안이 많습니다. 소학에 ‘불요상학(不要相學)’이란 말이 있습니다. 서로 좋지 않은 점은 배우려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형은 동생을 사랑하는데 동생이 공손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동생은 형을 공경하는데 형은 아우를 사랑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대부분의 경우, 형이나 동생이 잘못하면 그것을 본받아 마침내 형제간의 우애가 깨지는 것입니다.
비단 형제간뿐만 아니라 모든 대인관계가 다 그렇습니다. 적처럼 대하던 사람도 존경심을 보여 주면 금세 내 편이 되고 친구가 됩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온전한 사귐이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남이 나에게 항상 잘해 주기만을 바라지 말고, 남이 내게 늘 충성스럽게 해 주기만을 다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중국 격언에 “일사이형삼붕(一師二兄三朋)”이란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스승 한 분, 형처럼 돌봐 줄 선배 두 사람,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벗 셋만 있으면 행복한 삶이라는 뜻입니다. 새로운 친구 만드는 것도 좋지만 오래된 친구 잃지 않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나이가 들면 이해관계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영혼이 맑은 친구가 제일입니다.
자식은 아홉 번 잘못하다가도 한 번 잘하면 사랑하게 되지만 남은 아홉 번 잘하다가도 한 번 잘못하면 의를 끊기도 합니다. 서로에게 향기로운 난초처럼 맑은 영혼을 피워 우정을 함께 하는 벗이 진정한 친구입니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이해관계로 얽매여 있습니다. 이 중에 신앙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그래도 영혼이 맑은 친구들이 많습니다.
노자(老子)에 명예와 자기 몸 중에 무엇이 친하며, 자기 몸과 재물 중에 무엇이 더 귀한가? 그리고 탐욕을 버리는 것과 탐욕을 채우는 것 중에 무엇이 더 큰 근심이 되는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실제 생활에서 대부분 거꾸로 살아갑니다. 인생은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이것을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700명이나 되는 여자를 거느렸고, 순임금은 요임금의 두 따님을 아내로 삼고 천하를 얻었지만 그런 부귀영화로도 근심을 풀 수는 없었지만 디오게네스는 통나무 집, 아니 옹기그릇 속에 살면서도 현재의 삶에 만족함으로써 행복을 찾았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인간의 행복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족하는 삶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을 다스림에 인간은 삼품(三品)이 있습니다. 상품지인(上品之人)은 탈이 나기 전에 미리 정신을 차리는 사람이고, 한번 맞고 나서 정신을 차리 이는 중품(中品), 그리고 맞고 나서도 정신 못 차리는 사람은 하품(下品)이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에서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무엇이 걱정입니까? 종교는 이런 점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줍니다.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나는 출구가 아니라 내세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생각을 갖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믿음의 생활을 통해 우리는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사랑과 봉사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됩니다. 사람은 결국 이 세상을 하직하면서 자신의 이름과 정을 남기고 떠납니다. 삶의 마무리를 위해 저는 다음의 5가지의 삶을 제시해 봅니다.
(1)나누며 봉사하는 삶
아무리 성공해서 돈을 벌고 사업을 벌여 놓아도 나누고 베풀지 못하는 삶이라면 진정 성공적인 삶이라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지막 단계에 남을 위해 뭔가 나누며 봉사하는 시간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돈이 있어야만 베풀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말처럼 ①마음을 주는 일, ②몸으로 봉사하는 일, ③상대방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는 일, ④밝은 웃음으로 편안하게 해 주는 일, ⑤좋은 말을 하는 일, ⑥겸양의 미덕을 나타내는 일, ⑦끝마무리를 잘하는 일 등 이런 일은 돈이 없어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베풀 수 있는 일입니다. 남의 말에 귀 한 번 기울여 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손 한 번 잡아 주고, 입으로 말 한 마디 칭찬해 주고, 다만 몇 분이라도 발걸음 동행하며 정을 나눈다면 그것이 어찌 돈으로 베푸는 것보다 못하겠습니까?
(2)오늘에 충실한 삶
하루가 쌓여 한 달이 되며 한 해가 됩니다. 내일은 환상이고 어제는 역사이며 오늘은 선물입니다. 사르트르는 과거에 내가 무엇을 했고, 또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과거는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므로 나의 것이 아니고, 미래라는 것 또한 내게 주어지리라는 보장이 없으므로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도 그의 <세 가지 의문>에서 세상에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만나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그 사람을 위해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삶의 목적은 행복의 추구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행복을 미래형으로 추구한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살아온 날의 마지막 날이면서 여생의 첫날이므로 더욱 소중한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3)자연에 순응하는 삶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입니다. 떨어지는 단풍 낙엽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멀리서 보면 다 아름답게 보이지만 손에 놓고 가까이서 보면 온전하게 물든 단풍보다는 벌레 먹고, 바람에 찢긴 상처투성이의 낙엽들이 더 많고, 산에 있는 나무들도 곧게 자란 나무보다 바람에 굽거나 상처가 난 나무들이 더 많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날 것입니다. 땅에 사는 짐승도 관찰해 보면 다리를 절거나 몸에 상처가 짐승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면서 묵묵히 자기의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처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천명(天命)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4)영성이 충만한 삶
종교를 갖게 되면 극한상황이 닥쳐도 기도에 매달려 용기를 갖거나 평상심을 찾을 수 있어 큰 도움을 받습니다. 영성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대상입니다. 병을 얻기 전까지는 이성과 지성의 힘으로 살아왔지만 큰 병을 얻으면서 종교에 입문하면서 영성이 충만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논어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진리와의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주어진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5)의미 있는 삶
오래 사는 것은 미덕이지만 건강이 담보되지 않은 삶은 오히려 오래 사는 것이 원수입니다. 본인도 적당히 아쉬움을 남기고 가는 게 아름다울 수 있지만 가족이나 친지들에게도 짐이 되어 진을 빼 놓으며 오래 사는 것은 큰 복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 60에 죽으나 90에 죽으나 한을 남기고 죽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한을 적게 남기는 것이 성공적인 삶이 될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목적을 갖고 살면 죽음도 피해 간다고 합니다. 저처럼 한번 어려운 질병의 고통과 시련을 겪고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입장에 서면 한 생명의 아픔 덜어 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래 기 위해 사는 것도 헛된 삶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투병생활 중에 문단 데뷔를 했고 글을 쓰기 시작해 지난 연말에 수필집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윤동주는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얼마나 사랑했나? 열심히 살았나? 남에게 상처를 준 일은 없나? 어떤 열매를 맺으며 살았나? 나의 삶은 아름다웠나? 이제는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가? 남들을 적대자가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섬기며 살고 있나? 내가 신봉하는 절대자 앞에 나는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등을 반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투병생활 속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준 도쿠가와 이예야스(德川家康)의 유훈(遺訓)을 소개하면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은 것 서두르지 말지어다.
부자유함을 일상으로 여기면 부족함이 없다.
마음속에 욕망이 생기면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오랜 행복의 근원, 노여움은 적이라 생각하라.
이기려고만 하고 지는 것을 모르면 그 해가 자신에게 미친다.
나를 책하고 남을 책망하지 말지어다.
미치지 못함은 오히려 지나침보다 나은 법이니라.
오랜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2008. 12. 17. 육군제11포병단)
○ 기주연 프로필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ROTC 7기로 예편하신 후, 고교에서 교편생활을 하시다 문학박사를 취득 후, 세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및 학생처장을 지냈고 대원과학대학에서 2대, 3대 학장을 각각 역임하였다.
논저로는 《근대국어조어론연구》등 20여 권의 전공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으며, 그 밖에 번역서 《쉽게 풀어쓴 소학》과 수필집 《한 생명의 아픔 달랠 수 있다면》등 많은 저서가 있다. 특히 투병생활 중에 문단에 등단한 후, 현재 한국문인협회 및 짚신문학회 회원으로 작품 활동을 하며, 제7회 짚신문학상(수필 부문)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첫댓글 지난 12월 17일 김두옥 동기회장의 안내로 강원도 횡성(안흥)에 있는 11포병단에서 장병들에게 들려준 특강 내용입니다. 포병단장은 육군중앙교회에서 김 회장과 인연을 맺은 ROTC 후배로 이날 신우회의 성금(50만원)을 전달하고 별도로 김회장은 장병들에게 간식을 제공하고 돌아왔습니다. 부부가 함께 많은 은혜받고 돌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콘텐츠의 다양화와 효율적 운영을 위해 본란을 신설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토요문단(논단)은 꼭 자기 작품이 아니라도 교양이나 유익한 정보가 될 만한 논문이나 작품들을 본란을 이용해 게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ROTC후배가 근무하는 11포병단에 격려위문차 다녀왔군요. 수고했습니다. 월송의 특강은 젊은 장병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살아가는 지혜를 안겨주었겠군요. 특강자료는 젊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강석태
월송 글 올려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후배지휘관이 아주 뿌듯했겠읍니다.토요문단란이 앞으로 더욱 풍성하도록 격려와 지도편달 바랍니다.평상시 함께 하면서 틈틈이 들려 주시던 인생 향기가 이글에서 유감없이 잘 표현되고 있어 월송과 함께함이 감사할 뿐입니다.바라옵건데 새해에는 신의 은총 충만하시어 건강완쾌 되시길 이시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