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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최상왕경(諸法最上王經)
수(隋) 북인도(北印度) 시나굴다(闍那崛多) 한역
김철수 번역
제법최상왕경(1)
또한 이 법을 설하실 때 부처님[婆伽婆]께서 왕사성(王舍城) 죽림(竹林)에 있는 가란다정사(迦蘭陀精舍)에 노닐고 계셨는데, 대비구(大比丘) 대중 1,250사람도 함께 있었다.
그들 중에는 지난 날 머리를 묶고 외도(外道)를 믿고 행했던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이 으뜸이었다.
이들은 모두 아라한으로서 온갖 번뇌[漏]를 이미 다 끊고 해야 할 일을 실천하였으며,
무거운 짐을 다 벗어버리고 자신의 이로움을 얻은 경지에 이르렀으며,
온갖 번뇌의 얽힘을 다 풀고 바른 지혜로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이들은 모두 마음이 자재(自在)하여 제일가는 피안(彼岸)에 이르렀으나 오직 한 사람만은 그렇지 못했으니,
그는 곧 부처님을 항상 수행하던 아난다(阿難陀)였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보름날 포살(布薩)을 행하시려고 맨땅[露地]에 앉으셨으며, 모든 비구 스님들은 부처님을 빙 둘러 에워싼 채 공손히 경의를 표하며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출가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한 비구가 그날 구족계를 받았는데, 그는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와서 부처님의 발아래 머리를 숙여 예를 올린 다음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 나서 합장한 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얼마 전 출가하여 오늘에야 계를 받았습니다. 바라옵건대 저를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마을[聚落]에서 어떻게 음식 공양을 받아야 좋은 음식[善食]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음식을 먹어야 깨끗한 복전(福田)이 될 수 있으며, 제일가는 이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당시에 그 비구는 부처님을 향하여 게송[伽他]으로 아뢰었다.
저는 출가한 지 그리 오래지 않아
오늘에야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보시를 깨끗하게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를 위하여
집을 버리고 집에 재물을 쌓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이 깨끗한 보시인지
그 이치를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이와 같이 아뢰자,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잘 듣고 바른 생각[正念]을 내도록 하라. 지금 그대를 위해 말해 주겠다.
만일 비구가 헛되지 않게 마을의 음식을 받아서 그 음식을 먹으면, 깨끗한 보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선가자(善家子)나 선가녀(善家女)가 집을 버리고 집에 재물을 쌓아 두지 않으며,
위없는 행[無上行]을 실천하여 마침내 최상의 뛰어난 경지를 얻게 되는 것처럼,
이와 같이 비구도 수행자[僧]의 무리에 들어가야 하고,
수행자가 해야 할 일[僧業]을 알아야 하고,
수행자의 이로움[僧利]에 부합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갖추면 헛되지 않게 마을의 음식을 받고 또한 음식을 먹어서 보시를 깨끗하게 할 수 있으니, 마땅히 제일의 이익을 얻게 되느니라.”
이때 세존께서 이를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중생이 만약 수행자의 무리에 들어가고
또한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다시 수행자의 이익에 부합하면
그 보시를 깨끗하게 하는 복전이 되네.
그때 그 비구가 세존께 아뢰었다.
“저는 지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러한 간략한 가르침을 들었사오나,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야 비구가 수행자의 무리에 들어가,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수행자의 이로움에 부합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저 비구는 이를 게송으로 아뢰었다.
어떠한 것이 수행자 무리에 들어가서
수행자가 행해야 할 일인지 보여주시고
어떤 것이 수행자의 이로움인지 저를 위해 설명해 주십시오.
듣고 나면 저희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뢰자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마음을 잘 가다듬고 듣도록 하라. 나는 지금 그대를 위하여 수행자와 수행자가 해야 할 일과 수행자의 이로움에 대해 말해 주리라.”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정말로 좋은 말씀입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즐겁게 듣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수행자[僧]라 하는가?
수행자란 네 쌍, 여덟 무리 부가라(富伽羅)를 일컫는 것으로서 이들을 수행자라 하나니,
마땅히 착한 마음으로 공양거리를 지니고 그를 향해 합장해야 한다.
이는 받은 보시를 깨끗하게 하는 복전(福田)이므로 온갖 천상(天上)과 인간들이 필요한 물건을 다 공양하느니라.”
이때 세존께서는 이를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네 쌍[四雙]의
여덟 무리 부가라를 말하리니
이들을 이름하여 수행자[僧]라 하는데
위없는 뛰어난 복전(福田)이니라.
“비구야, 어떤 것을 수행자가 실천해야 할 일[僧業]이라고 하는가?
4념처(念處)ㆍ4정단(正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분(覺分)ㆍ8성도(聖道)이니,
이것을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를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항상 부지런히 가장 뛰어난 도를 닦아야 하나니
이른바 8성분(聖分)이니라.
그대가 말한 수행자가
행해야 할 일이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니라.
“비구야, 어떤 것을 수행자의 이로움이라고 하는가?
4사문과(沙門果)이니,
어떤 것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수로다아반나과(須嚧多阿般那果:須陀洹果 )이고,
둘째는 새흘리타가미과(塞訖利陀伽彌果:斯陀含果)이며,
셋째는 아나가미과(阿那伽彌果:阿那含果)이고,
넷째는 아라한과(阿羅漢果)이니,
이를 수행자의 큰 이로움이라 하느니라.”
이때 세존께서는 이를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큰 수행자의 몸에는 커다란 이로움이 있으니
저 수행하는 부가라(富伽羅)에게는
사문(沙門)의 4과(果)가 있어
능히 보시의 복덕을 깨끗하게 하네.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수행자들의 무리에 들어가 수행자가 실천해야 할 일을 알고 수행자의 이로움에 부합하면,
그 사람은 마을에서 베풀어 주는 음식을 잘 받은 것이고,
음식을 먹은 다음에는 보시를 깨끗하게 하는 복덕을 얻게 되어 제일가는 이로움에 이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대승(大乘)의 마음을 내어서 두루한 지혜를 알아 집을 버리고 출가하면,
그 부가라는 수행자의 무리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까?
또 수행자가 실천해야 할 일을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수행자의 이로움에 부합되는 것입니까?”
이와 같이 아뢰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매우 좋은 말이다. 비구야, 그대는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智)에 대해 잘 알기에 이런 질문을 하는구나.
비구야, 그대는 아주 길상(吉祥)하고 말솜씨[辯才] 또한 지극히 뛰어나고 오묘하구나. 이 뜻에 대해 잘 물었다.
비구야, 그대는 생각[思念]을 잘 하기 때문에 여래에게 이런 뜻을 질문할 수 있는 것이다.
비구야, 이는 모두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이 그대로 하여금 지금과 같은 말솜씨를 낳게 한 것이며,
이런 구절의 뜻을 물어보려고 했던 것도 역시 그대의 숙원력(宿願力)이 능히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비구야, 잘 듣고 잘 생각해 보아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말해 주리라.”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좋은 말씀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즐거운 마음으로 듣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생각한 것을 말하길,
‘저 부가라가 대승(大乘)의 마음을 내어서 두루한 지혜[遍智]를 알아 집을 버리고 출가하면,
저 부가라를 수행자의 무리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까?
또 수행자가 실천해야 할 일을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수행자의 이로움에 부합되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비구야, 저 부가라는 수행자의 무리에 속한다고 볼 수 없으며,
수행자가 실천해야 할 일과 수행자의 이로움 또한 볼 수가 없느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이를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그를 수행자 무리에 속한다고 볼 수 없고
수행자가 실천해야 할 일 또한 알 수 없으며
수행자의 이로움에 또한 부합하지 않으니
그는 보리심을 냈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말씀을 마치자,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 때문에 저 부가라는 출가하여 마을의 음식을 받아도 수행자의 무리에 속한다고 볼 수 없으며,
또한 수행자가 행해야 할 일과 수행자의 이로움 역시 그와 같은 것입니까?”
이와 같이 아뢰자,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저 비구가 다시 세존께 아뢰었다.
“저 부가라는 수행자의 무리에 속한다고 볼 수 없으며 또한 수행자가 행해야 할 일과 수행자의 이로움 역시 그와 같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보시를 깨끗하게 하는 복덕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때에 세존께서는 그 비구가 세 번씩이나 청하는 것을 보시고 미소를 머금은 채 신통을 지으셨다.
이와 같은 신통을 지으시자, 미간(眉間)에 있는 털에서 큰 광명(光明)이 나왔다.
그 빛은 다시 한량없는 백천(百千) 가지 다양한 색을 냈으며,
이 빛의 위력은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었고,
나아가 모든 대해(大海) 안에 살고 있는 중생들에게까지 이르렀다.
저들 모두는 일찍이 이러한 빛에 대해 보거나 듣지 못했기 때문에 몹시 놀라 털이 곤두섰다.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들도 또한 모두 한 생각[一念]으로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이 광명이 부처님의 미간으로부터 출현한 것임을 알고는 마음에 몹시 놀라 털이 곤두섰다.
그때 삼천대천세계의 사천왕천(四天王天)과 나아가 색계천과 무색계천에 이르기까지 다 왕사대성(王舍大城) 죽림(竹林)에 있는 가란타정사(迦蘭陀精舍)로 찾아와서 부처님 발아래 머리 숙여 예를 올린 다음 오른쪽으로 무량 백천 번을 돌고 나서 부처님 앞에서 바른 생각[正念]으로 합장 공경하며 몸을 굽혔다.
움직이거나 기대지 않은 채 눈 깜짝할 틈도 없이, 존중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과, 펄쩍펄쩍 뛰고 싶은 마음과, 참는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과, 깨끗한 마음과, 장애 없는 마음을 내어 즐거이 법을 듣고자 한쪽으로 물러가 머물렀다.
그때 이 삼천대천세계의 커다란 신통력을 지닌 모든 하늘 등과 온갖 용(龍)ㆍ야차(夜叉)ㆍ나찰(羅刹)ㆍ건달바(乾闥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류다(迦留茶)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ㆍ사람인 듯 사람 아닌 것[人非人] 등과,
모든 천주(天主)와 용주(龍主)ㆍ야차주(夜叉主)ㆍ건달바주ㆍ아수라주ㆍ가류다주ㆍ긴나라주ㆍ마후라가주ㆍ사람인 듯 사람 아닌 주[人非人主] 등이 저 지하에서 정상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막대를 꽂을 틈도 없이 꽉 차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때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優婆塞迦]ㆍ우바이[優波斯迦] 및 모든 세간의 땅을 의지하여 다니거나 머무는 잡다한 종류의 중생들이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그 광명을 보고는 마음에 몹시 놀라 털이 곤두섰다.
비유하면 마치 큰 힘을 지닌 장부가 팔과 다리를 굽혔다 폈다 하는 짧은 순간, 그들도 모두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한 생각에 왕사성(王舍城) 죽림(竹林)에 있는 가란타정사(迦蘭陀精舍)에 이르러 머리 숙여 부처님의 발아래 예배드리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를 돈 다음, 부처님 앞에서 바른 생각으로 합장한 채 몸을 굽히고, 존중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과 펄쩍펄쩍 뛰고 싶은 마음과 참는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과 깨끗한 마음과 장애 없는 마음을 내었다.
또한 눈을 크게 떠 세존을 우러러보며 흔들림 없는 몸가짐으로 한쪽에 머물렀다.
그때 이 삼천대천세계의 성(城) 안이나 밖이나 외진 곳이나 크고 작은 시내나 강물 속에 사는 것들 모두가 법에 의지하고 흐름을 따르면서 작은 소리를 냈다.
또한 모든 가리어진 곳의 안이나 허공 속에 있는 온갖 새들의 소리도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저마다 서로 호응하여 조화를 이루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코끼리ㆍ말ㆍ소ㆍ양 내지 들소ㆍ물소 등도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모두 편안하게 지낼 처소를 찾았으며,
모든 큰 바다에 사는 중생들도 또한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죄다 침묵한 채 머물렀으며, 하늘의 음악 역시 다 소리를 죽였다.
그때 이 세계의 모든 악한 중생들 가운데 모질게 타오르는 악독한 마음으로 갖가지 악을 즐겨 짓고 나아가 여러 가지 역죄(逆罪)를 지었던 이들도 모두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 한 생각에 서로 사랑함이 마치 친한 친구를 사랑하는 것과 같았다.
이로운 마음과 즐거운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과 능히 업을 짓는 마음과 기쁜 마음과 깨끗한 마음과 장애 없는 마음을 내고,
웃는 얼굴로 먼저 말을 건네고 미간을 찌푸리지 않으며,
말을 할 때는 부드럽고 매끄럽게 하되 급하거나 거칠게 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하고 좋아하게 하였다.
또한 늙은이나 젊은이나 중년이나 저마다 적절한 처소를 얻었다.
그때를 당해서 이 대천계(大千界)는 물론 나아가 그 어느 곳이든 기침 소리 하나 없었으니, 이는 부처님의 위신력 때문에 중생들이 조용하였던 것이다.
일체의 바람과 기후가 부드러웠고 또한 향기로워 중생들이 즐겨 관찰하고 환희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또한 온갖 나무 가지와 잎 및 약초 등은 불어도 흔들리지 않았으니,
이 또한 모두 부처님의 위신력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제8인(人)이 멸진정(滅盡定)에 들어 숨을 내쉬거나 들이쉬지 않는 것과 같이,
여기에 모인 모든 대중들도 침묵한 채 머무름이 또한 이와 같았다.
이는 그 비구가 과거 세상의 원력으로 지은 공덕의 힘이 뛰어나게 주지(住持)하였기 때문이었고,
또한 부처님의 공덕이 뛰어나게 주지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때 부처님을 수행하고 있던 제자 사리불(奢利弗)은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것을 알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한 쪽 어깨에 욱다라승가(郁多羅僧伽)를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바닥에 대고 합장한 채 몸을 숙여 일심으로 우러러 대중들로 하여금 안온하게 하고 이롭게 하였으며, 마음이 깨끗하고 장애가 없도록 하였고,
저 비구가 물었던 부처님의 뜻[佛義]과, 부처님이 빛을 방출하신 연유와, 모든 천(天)과 인(人) 등이 모여든 인연 등에 대한 법문을 듣고 싶어 세존께 아뢰었다.
“인연이 없지 않으시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미소를 띠시고 광명을 내셨을 것입니다.
지금 이러한 상서로운 모습에는 어떤 인연이 있으며,
나아가 모든 대중들이 모여들어 침묵한 채 머무는 이유는 또한 무엇입니까?”
이때 사리불은 이를 게송으로 아뢰었다.
모든 부처님, 가장 뛰어난 상서(祥瑞)엔 원인이 없지 않으니
뛰어나신 분께서는 무엇 때문에 상서로움을 나타내셨습니까?
세존이시여, 지금 속히 이 뜻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인연으로 이런 큰 신통(神通)을 지으셨습니까?
백천(百千)의 많은 중생들과
나유다(那由多)의 중생들이
지금 이 모임에 와서
나타내신 신통력을 보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는 어떤 원인[因] 때문이며
세존이시여, 이는 어떤 조건[緣] 때문입니까?
무엇 때문에 저 대중들이
오늘 이렇게 모여든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이 뜻을 잘 아실 터이니
무슨 인연 때문에 대중들이 모여든 것인지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시어
저희들을 위해 이 뜻을 말씀해 주십시오.
모든 천상(天上)이나 세간의 사람들이
널리 존중하는 마음을 일으켜
열 손가락을 모아 합장하고
이족존(二足尊)을 우러러봅니다.
모두 다 천궁전(天宮殿)을 버리고
천자들이 여기에 모여 와서
존중하는 마음으로 법을 즐겨 듣고
이족존을 우러러봅니다.
용궁(龍宮)을 버리고 떠나와
한량없이 많은 용들이 모여들었으니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와 같은 신통한 변화가 있게 된 뜻을.
야차궁(夜叉宮)을 버리고 떠나와
한량없는 야차들이 모여들었으니
세존이시여, 이제 무엇 때문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와 같은 신통한 변화가 있게 된 뜻을.
그때 사리불은 이 게송을 아뢴 다음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
(이에 부처님께서 게송을 말씀하셨다.)
이 범음(梵音)을 내는 장부(丈夫)는
우레나 북소리와 같은 커다란 사자후로
사리불을 위하여
이와 같은 신통변화의 뜻을 설하노라.
저 새로운 비구가
오늘 구족계를 받았는데
그 비구와 사리불이 나에게 질문한 것은
모든 보살들을 위한 것이니라.
그가 묻기를 무엇 때문에 출가하며
해야 할 업은 또 무엇인지
어떻게 마을의 음식을 받아야 하며
어떻게 보시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사리불아,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미간의 털에서 광명을 내어
이 빛의 큰 위력(威力)으로
세계를 두루 비춘 것이니라.
사리불아,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모든 천상의 대중들이 다 모여
열 손가락을 모아 합장하고
이족존(二足尊)을 우러러보는 것이니라.
사리불아,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용이나 야차가 모여와서
우레 소리처럼 외치는 소리가
여래의 처소에까지 이르는 것이니라.
사리불아,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헤아릴 수도 없는 억수의 대중이 모였으니
모두 다 아라한의 경지를 얻고
번뇌를 다하여 열반에 이른 자이니라.
사리불아,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억수의 대중이 모여
모두 다 이러한 뜻[意]을 일으켜
독각(獨覺)의 인연이 된 것이니라.
사리불아,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억수의 대중이 모여
갑옷으로 스스로를 장엄하나니
부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한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억수의 대중이 모여
대승으로부터 물러나지 않고
가장 뛰어난 보리를 얻는 것이니라.
이러한 구절의 의미를 듣고 난 다음
이로 인해 부처님께서 수기(受記)하시어
강한 의지로 악행을 뉘우치게 하시니
억수의 대중이 이와 같음을 얻느니라.
이러한 구절의 의미를 듣고 난 다음
뒷날 말세(末世)에
천억 수에 달하는 중생들이
가장 뛰어난 도(道)에 머무느니라.
저 보살들을 제외하고는
뒷날 말법 세상에
이 경(經)을 간직하더라도
끝내 이러한 이치가 없느니라.
저 보살들을 제외하고는
뒷날 말법 세상에
이 경을 듣더라도
지혜가 없는 이는 믿지 않느니라.
저 중생들이 믿음이 적으면
보리심을 낼 수 없어서
이 경을 듣는다 하더라도
항상 의혹이 일어나느니라.
이 경전을 불신하면
항상 삶과 죽음에 머물게 되고
지옥[泥犁]이 그가 갈 곳이며
축생이 바로 동산 숲이 되리라.
천상이나 인간세계에 태어나더라도
모두 다 파괴되어 아무것도 없으며
이 경만은 파괴되지 않나니
뒷날 말법 세상에
그가 천상이나 인간 세계에서
모두 아라한의 경지를 얻어
앞에서 연설하게 되더라도
그들은 또한 의혹만 일으키리라.
만일 독각(獨覺)의 도를 얻어
시방세계를 가득 채울 때
그 앞에서 연설하더라도
저들 마음엔 또한 의혹만 일게 되느니라.
선(善)을 닦지 않는 이 없고
이와 같은 설법을 들어
만일 뜻을 세워 성취하면
이 도(道)를 들을 수 있느니라.
보살들을 위한 까닭에
내가 이 경법(經法)을 설하는 것이니
그 가운데서 수행하여 마치면
이족존(二足尊)을 성취할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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